[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11가지 이야기

!@#… 최근 수년간의 젊은 정치 칼럼니스트들 가운데, capcold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최내현 씨. 딴지일보 농설위원 시절부터 보여준,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예를 들어, 진중권 칼럼의 최대약점) 스트레이트한 돌파력은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다. 공감이 가는 좋은 칼럼이란 것은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 해서 들려줬을 때… 라고 보기에,  이것을 들려주고 싶다.

출처:  미디어몹 공식 신문 르지라시 정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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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침략자 한국, 첫 희생을 치루다

!@#… 무익하고 무의미한 – 심지어 자칫 악용될 여지까지 있는 – 강제적 죽음을 당하신 고인에게 명복을.

!@#… 사실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정서가 매말라서? 그게 아니라,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입니다. 국익을 위한 파병을 부르짖던 수많은 미친새끼님들, 이 정도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파병 반대론자들이 이런 종류의 위험을 경고했을 때 두 귀와 두뇌회전을 완전히 멈추어버리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파병 결정이 되었던 그 때 이미 충분히 놀라고 경악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그저 씁쓸하기만 합니다.

!@#… “우리는 이라크에 평화를 가져다주려고 가는건데 왜 공격하느냐” 라는 순진무구발랄한 주장을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저자거리의 시민들도, 심지어 나름대로 엘리트라고 자부한다는 양복쟁이들도. 그런데 말입니다… 이 똑같은 대사를 사실은 미군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에 폭탄을 쌔려부으면서 되뇌였던 대사가 바로 이겁니다. 왠지 느낌이 안온다구요? 2년전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때도 그들은 이 똑같은 대사를 읊었습니다. 지금 한국군 – 나아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라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약간은 감이 잡히십니까.

!@#… “왜 이라크놈들은 죄없는 민간인을 잡아다가 살해하느냐”라는 애처로운 뒷북도 곤란합니다. 미국의 똘마니로 파병을 결정한 그 순간부터, ‘한국’이면 이미 ‘죄없는’ 이라는 범주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인은 미군 군납업체의 직원이었고 군납물자를 운반하는 트럭에 타고 있었으니, 더더욱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죄없는 것은 이미 이유가 안되고, 민간인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을 두둔하고자 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그들의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그들은 자신들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표적을 잡았던 것입니다. 죄없는 민간인이든 죄많은 군인이든, 무익하고 슬픈 희생인 것은 어차피 매한가지입니다. 이라크 보내달라고 깝쭉대고 설쳤던 홍사덕씨가 잡혀서 희생을 당했더라도 마찬가지 감정이었을 겁니다.

!@#… “왜 일본은 구해냈는데 우리는 못했냐…무능한 정부놈들” 이라고 이제는 또다시 한일 비교론도 나오더군요. 하아… 무능한 정부놈들이라는 건, 일본과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똘마니로 파병결정을 했던 그 순간에 말이죠. 아니면 한미동맹을 위해서 반드시 전투병을 파병해야한다고 떠들어댔던 그 순간은 어떨까요. 숫제, 자랑스럽게 한국이 미국영국에 이은 3위 파병국이라고 언론이 떠들어댄 그 순간도 만만치 않죠. 다각적인 대처방안을 미리 세우고 어쩌고… 뭘 어떻게 세우란 말입니까. 결국 아무리 해봤자 방법은 두 개밖에 없죠. (1) 철군, (2) 뒷돈. 순진하게스리, 사람들은 – 무엇보다 조중동을 위시한 싸구려 언론은 – 여기에 (3) 훌륭한 설득으로 인질범들을 감화시켜서 감동의 눈물을 펄펄 흘리게 만들고 그들의 죄를 후회하게 만든다 라는 옵션이 있는 걸로 착각하는 듯 합니다. 철군은 안하겠다고 대뜸 선언을 해버렸고, 남은 방법은 결국 뒷돈. 아마 그쪽 민간업체의 사장분은 그 쪽으로 교섭을 시도했겠지만, 결국 실패한 겁니다.

!@#…”이제는 보복이다. 이라크놈들의 씨를 말려버려!” 라고 주장하는 힘만 넘치는 씹쑝들. 제발 고정하십시오. 사회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엉뚱한 방향으로 풀려고 하지 좀 마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우습게 보이는 거다, 철군하면 오히려 테러에 굴복하는 거다… 라는 논리도 결국 이것의 연장선상일 뿐입니다. 내 자식은 소중하고 남 자식은 바퀴벌레나 다름없다라는 식의 유치한 세계관을 이제는 졸업해야하지 않겠습니까.

!@#…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여전히 해답은 하나입니다. 파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라크를 돕고 싶다면 민간 구호 기관들이 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주고, 유능한 민간 경비업체들을 보내는 것이 정석입니다. 부정한 전쟁, 미국이라는 점령군의 친구 – 아니 이쪽 사람들 좋아하는 용어로 ‘혈맹’ – 자격으로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침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건 아무리 서희 젬마 부대가 지상위의 천사라고 할지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파병을 고집하는 것은, 어디로보나 이라크를 위해서가 아닌, 미국을 위해서겠지요. 보다 정확히는, 지금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부시라는 사악한 머저리와 그의 군산복합체 이익세력들을 위해서. 그리고 11월에 만약 정권이 바뀌면 또 그쪽에 붙어서 똥꾸멍을 햝아주고. 그 접대 근성을 언제 버릴련지. 과연 버릴 수 있을련지. 거래와 협상을 할 생각보다는, 접대로 감동시켜서 계약을 따낼 것만 생각하는 시대착오적 경영관행의 복사판에 다름 없습니다. 제발, 미친 짓 – 이라고 쓰고 ‘파병’이라고 읽어도 됨 – 좀 하지 맙시다.

!@#… 아침뉴스, 고인의 집 앞에, 일부는 아예 안으로 들어간 하이에나같은 언론사들의 자의반 타의반 돌격대장들의 장사진이 씁쓸했습니다. 늙으신 할머니가 방에 걸려있던 조악한 플라스틱 이라크 깃발을 바닥에 팽개치고 울음을 터트리시는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TV 카메라가 짜증났습니다. 단지 슬퍼하기만 할 뿐인 동네 주민들을 모조리 한번씩 훑어주는 화면을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피해자 속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속의 피해자라는 애매한 위치의 모순을 짚어주는 통찰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이라크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라크 파병의 진짜 득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약간은 더 성숙하게 접근을 해주었으면 좋겠건만.

!@#… 직접적인 자기 이익도 없이, 종주국의 눈치를 보고 꽁무니를 쫒아다니느라 자국민의 목숨도 갖다 바치는 불쌍한 침략자들. 이류, 삼류에 불과한 불쌍한 존재들. B급 침략자. 첫 희생입니다. 이걸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아랍언론의 시각

!@#…아랍어를 못하니까. 영어로 된 것이라도 찾아볼 수 밖에.

http://english.aljazeera.net    http://www.iraqdaily.com

http://www.tehrantimes.com  http://www.arabnews.com

http://www.arabicnews.com  http://www.arabworldnews.com

!@#… 논조들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렇다.

(1)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파병을 반대한다.

(2) 한국은 미국 눈치를 졸라 본다. 그래야 북한하고 협상할 때  지원을 받을 수 있거든.

(3) 한국은 군대 보내는 걸 미국과 동맹 강화 수단으로 본다.

…쪽팔려 죽겠구먼. 왜 이렇게 정확한거야, 얘네들? 에헴하면서 잘난척만 하고 있는 한국의 조중동 쓰레기들보다 2039495.394배 정도 더 언론으로서의 품격을 가지고 있다. 명확한 시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당당함의 미덕이겠지.

…어처구니없는 흥정의 거래물이 되어버린 김선일씨의 목숨에 안타까움을. 아직도 그곳에 있는 6-70여 교민들에게 걱정을. 파병을 주장하는 남녀노소 인간의 탈을 쓴 모든 개새끼들과 저능아들에게 한없는 저주를. 부시를 뽑아준,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양키나라 특산물 씹쑝들에게는 회복되지 않을 파멸을.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타자의 눈, 우리 모습 – <새댁 요코짱...>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흔히 ‘타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들이 쉽게 지나치는 일상적인 습관들이 사실은 얼마나 전혀 일상적이지도, 당연하지도 않은지를 탐지해내는 능력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완전한 타인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거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들’의 생활을 깊숙하게 같이 겪고 느낄 수 있어야 섬세한 발견이 가능하니까. 따라서 타인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외부인은 아닌 미묘한 균형점 위에 있는 자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타자의 눈이다.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의 주인공인 ‘요코짱’은 앞서 말한 그 중간지점에 서있는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중국유학 도중 만난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살게된 작가가 이곳에서 겪은 여러 가지 신기한 일상을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로 구성한 만화다. 대충 그린 주인공이라든지 잡담식 전개 등 부담없는 연출에, 일본어에 한글 자막 입히기 등의 기법 덕분에 평범한 일본사람이 일상적 수다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며 다른 아줌마들과 경쟁하기, 한국식 가족관계에서 자리 자리잡기… 사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아줌마들의 에너지에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더욱이 그것을 은근히 부러움 섞인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도 그리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아줌마 사회에서 아줌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웃으면서 자랑하는 모습은 남모를 재미를 준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네 아줌마들이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인정많다는 것은 어차피 우리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요코짱의 이야기로 들으면 더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일까? 간단하다. 타자의 눈이 주는 진정한 재미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이 확인해주었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입을 통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느끼고 있던 바가 맞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심정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요코짱이 묘사하는 한국 아줌마들의 오늘날 모습들에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묘사해주고 있는 요코짱이 ‘타자’라는 사실에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요코짱은 한국인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면 안되고, 매번 오해에 부딪혀주어야만 한다. 요코짱이 ‘우리’가 되면 매력을 잃어버릴테니까.

세계화되었다고 자평하면서도, 실제로는 타자들이 타자로 남아있어주기를 바라는 은근한 폐쇄성이 아직 공존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요코짱의 만화일기가 히트를 치는 2000년대 한국, 우리들의 풍속도다.

(글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6. 18]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보도 공정성에 대한 페티쉬

!@#…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언론학회에서 발표한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분석>. 내용은 보시면 알 듯. 귀찮으신 분들은 결론만 읽고. 첨부파일 참조.

!@#… 결국, 방송이 불공정한 보도를 했다는 거다. 그걸로 논쟁이 붙었는데… 나는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방송이 한민자의 탄핵처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체감적으로 다들 느낀 바 아닌가. ‘편들지 않기’라는 기준에서 볼 때, 불공정한 보도를 했다는 건 완전 납득.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즉, 연구보고서 자체에는 그다지 이의도, 논란거리도 붙일 만한 필요가 없다고 생각.

…다만 문제는 그 이전에 조중동을 위시한 신문들이 그 반대방향으로 불공정한 짓거리들을 많이 했고 그것에 대한 대안적 담론이 필요한 상황에서, 방송의 그러한 불공정한 보도행태가 과연 잘못되었던 것인가…라는 것이다. 음. 이렇게 물어보고 나니까, 그래도 사실 잘못된 건 맞다. 다시 물어보자. 불공정한 보도를 하기로 한 것이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는가? 이것도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마치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되는가’ 라는 식의 도덕적 딜레마 같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뭐, 이 정도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해보자.

…(생각의 흐름… 중간 과정 생략…)…

…그러니까, 나는 저널리즘 규범론의 핵심 축은 ‘공정함’보다 ‘의도의 선명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도라는 것은 크거나 작거나 결국 불공정할 수 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공정함을 표방하거나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하게 강조하고 요구해야 할 것은, 성향과 목표를 확실히 해달라는 것. 즉 나는 이러이러한 입장에서 저러저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도를 하는 것이다, 라는 전제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냥, 정정당당하게. 그러면 알아서 잘 감안해서 불공정한 뉴스라도 나름대로 공정하게 머리 속에서 저울질해서 받아들여줄테니까.

어차피 정보가 마구잡이 과잉으로 넘쳐나는 2000년대의 한국이라면 더더욱. 비유하자면, 가위 같은 것이다. 오른손잡이용 가위를 던져놓고 이건 그냥 가위입니다, 라고 해놓고 왼손잡이들을 괴롭히는 건 물론 곤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기술적으로 현실성 없는 양손잡이용 가위를 만들어 줄것을 무리해서 부탁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것은 오른손잡이용 가위입니다’라고 명확하게 꼬리표를 붙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왼손잡이는 왼손잡이용 가위를 구하거나, 없으면 그것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을 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필요하면 둘 다 구비할 수도 있고, 자신이 운영하는 옷가게 점원들의 특격상 왼손잡이용 가위가 더 많이 필요하다면 그쪽으로 비중을 높여도 된다. 즉, 기계적인 원칙에 따라서 소스 자체를 억지로 중간급으로 거세시키기보다는, 사람들이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조선일보가 좆같은 이유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 공명정대함을 부르짖으며 나아가 정보 자체가 아예 날조된 것이 많기 때문이지, 논조가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편향되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편향되어 있지 않다고 우기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언젠간 이 논지로 연구논문을 쓰겠지…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다보면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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