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라크 파병 이야기…

!@#… 학자에게 닥쳐오는 직업병, 그것은 ‘현실성 결여’다. 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고 체화시킬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양의 것들을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 비단 학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학자야말로 ‘지식과잉섭취’의 첨단에 있는 직종이고, 그 결과 소화불량 – 즉 현실성 상실 – 에 걸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마치 벽돌 나르는 사람에게 류마티스가 쉽게 다가오듯이. 가장 간단한 현실의 상황으로 생각하면 명쾌한 것들을, 자꾸 엄청난 지식의 차원으로 치환하려고 하는 것에서 오는 곤란함.

!@#…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지난 4월, 모 대학의 모 교수가 패스트푸드와 비만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각 신문에서 우루루 보도화를 시켜줬고… 무슨 의학 전문기자니 어쩌니까지 다 이름붙여가면서.

클릭. 또 클릭.

…그러니까, 논지는 이거다. 실제 업체들이 직접 칼로리를 계산해보니까, “맥도날드의 빅맥이 590㎉, 불고기버거 433㎉, 프렌치프라이 450㎉, 아이스크림콘 150㎉이다. 버거킹의 와퍼는 680㎉, 치킨 텐더 4조각 170㎉이며, KFC의 치킨 불고기버거는 448㎉, 오리지널 치킨 닭다리 한쪽 337㎉ 등이다. 반면 이와 함께 이들이 비교한 한식의 칼로리는 돌냄비가락국수가 565㎉, 볶음밥 617㎉, 떡볶이 482㎉, 비빔밥 500㎉ 등” 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패스트푸드는 비만의 주범이 아니라, 운동부족이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서 위의 논문은 무려 칼로리가 아니라 지방량이 문제라고 장황한 분석을 내놨다. 그에 비해서 한식은 탄수화물 위주라서 해피하고. 음. 오히려 최근의 웰빙 바람과 함께 탄수화물을 더 줄이기 위해서 햄버거의 빵 자체를 점점 없애나가고 있는 그런 추세는 차치하고서라도, 참으로 당혹스러운 분석방법이다. 왜냐하면, 칼로리라는 전통적인 잣대 하나만 가지고도 여전히 패스트푸드의 해악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으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발상이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어떻게 식사하는가?”

…무슨 말이냐고? 간단하다. 나는 맥도날드에 가서 밥을 먹으면, 빅맥세트를 시킨다. 빅맥 590kcal, 프렌치 프라이 450kcal, 콜라 200kcal. 거기다가 하나 더 덧붙이자면, 햄버거류는 한식의 ‘밥’류보다 공복감이 더 빠르게 온다. 경험적으로, 더 빨리 ‘배가 꺼진다’는 말이다. 칼로리는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빅맥세트는 먹고도 금방 배고픈데, 돌냄비가락국수를 두 그릇이나 우겨넣지는 못한다.

!@#…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격언(?)이 있다.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같은 현상에 대해서라면, 가장 간단한 설명이 베스트”라는 거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학자가 빠질 수 있는 직업병에 대한 경고가 담긴 나름대로 유용한 말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예 좀 더 필요한 것은, “가장 현실적인 말이 베스트”라는 말이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라면, 가장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 말 그대로 ‘현실적인’ – 설명이 가장 좋다.

…아아… 원래 무슨 말을 할려고 했더라… 아, 그래. 그러니까, 이라크서 양놈새끼들이 주민들을 고문하고 생쑈한게 드러났다. 심리학적으로 무슨 ‘누구나 교도소 환경 같은 권력 구조에 들어가면…언제적의 무슨 실험에서 증명된 바 있는데…’어쩌고 변죽이나 울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아 미국 니들 사람 고문이나 하는 나쁜놈들이구나. 그러니까 우리는 거기에 동참하기 싫어…파병안해.” 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려달라는 거다. 교도소 관리하고 고문 담당한 specialist(전문가…라는 말이 아니라, 상병 비스무리한 계급을 지칭하는 말이다)가 제네바 협약이 뭔지도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데 그게 무슨 얼어죽을 심리학적 문제냐. 정말, 이래도 혈맹이고 국익이냐? 이래도 파병해야겠냐?

!@#… 무슨, 파병예정지에서 한국군 파병 환영 서한이 왔다느니 8월이면 결국 간다느니 어쩌니 하는 기사들을 보고 짜증나서. 무슨 이상한 교수들이라는 인간들이 그래도 파병이다 어쩌고 칼럼을 쓰면서 이상한 이론들 동원하고 어쩌고 하는 거가 짜증나서.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새 배트맨…

!@#… 나는 특정 영화배우를 좋아하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다. 다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그 배역, 즉 캐릭터를 좋아할 뿐. 그런 전제조건 위에서, 어떤 배우가 그 캐릭터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표현해내면 감동한다.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는 건, 사실 꽤 복합적인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기본이고, 거기에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이 조화. 영화같은 집단 창작에서, 누구 하나에게 공을 집중해줄 생각은 절대 없다…주의자라서.

그런데, 그런 조화고 뭐고 간에 압도적으로 기가막히게 인상적인 어떤 연기가 뇌리에 남는 경우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유리가면’급 연기(뭐…만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것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AI’에서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설정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어린이의 마음을 넣은 안드로이드. 문지방 너머에서 윤곽선으로만 보이다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장면. 무심코 내딛은 그 발이 집의 바닥을…탐.색.한.다. 로봇 강아지 아이보 마냥, 묘하게 기계적인 관절 움직임과 마치 센서로 처음 새로운 공간을 학습하는 그런 이미지로 발목이 공중을 미묘하게 맴돌다가 비로소 착지. 이건… 막강하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아이보에 사람의 외피를 씌운거다. 그리고 방을 둘러다닐 때의 움직임도 감동. 우선 눈이 움직인다. 그 다음에 머리가 돌아간다. 그리고서야 몸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보캅스럽지 않고 조금도 과장되지 않게.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죽여주는 연기’는,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에서 잘 만든 영화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나름대로 화끈한 B급 액션영화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크리스챤 베일의 한 장면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평생 먹어온 감정을 억누르는 약을 끊고, 서서히 감정을 되찾아가는 주인공. 그런데 결국 자기 눈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려고 했던 여자가 화형을 당하고, 그와 함께 그 전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표정, 무덤덤하게 형장 바깥으로 나온 주인공. 그리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런데… 그의 뒷모습이 절규하고 있다! 정말, 얼굴 이 안보여도 그 표정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형언하지 못할 괴로움을 집중한 표정으로 바닥에 웅크리는 주인공. 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울지도 못하고, 소리지르지도 못하는 채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무너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연기를 본 다음에 든 느낌일 따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도 전에 먼저 어헉! 하는 탄성을 지르게 만든 사진이 있었으니…

…다음 배트맨 영화인 ‘Batman Begins’의 배트맨 역, 크리스챤 베일. 뭐라고 할까, 이건 상상했던 브루스 웨인의 젊은날 그 자체다. 젊은 대기업 사장다운 거만함, 하드보일드, 타협없이 자신만의 정의를 밀고나가는 불도저… 게다가 배트맨 옷을 입고 취한 저 포즈란! 크리스챤 베일의 집 지하실에 실제로 배트맨 비밀기지가 있다고 해도 믿겠다. 아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Christian Bale ………. Batman / Bruce Wayne”  이라고 안나오고,
“Batman  ………………. Himself” 라고 올라와도 믿겠다.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다 한보따리에 싸서 강물에 던져버려… 이제야 진짜 배트맨이 나타났다. 물론, 영화는 정작 나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각이 나오는 배트맨이 등장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해피하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펌] 이런 미친…

출처카페 : ■ 방배동 사람들 ■ / 석가

!@#… 출처는 방배동 사람들 -> Stone Age (석정현님 블로그) -> 이곳. 보시고 어이없어지신 분들은, 열심히 퍼다 나르심이 좋을 듯.

 

====================================

제목 귀하의 만화를 좀 쓸려고 합니다.
보낸날짜 2004년 05월 06일 목요일, 낮 3시 09분 17초 +0900
보낸이 “강윤철[Nenia]” <toarnie@nenia.co.kr> 수신거부에 추가 주소록에 추가
받는이 <kangfull@hanmail.net>

안녕하십니까?
귀하의 만화를 부분 퍼서 온라인 전자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형태는 추 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하의 사이트에도 무료로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서비스의 형태를 보시고 나중에 말씀해주십시요.
베타버전 형식이라도 보실려면 연락바랍니다.
요즘 제휴중이라 너무 분주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윤철드림.
===================================
NENIA – Digital Contants Solution

기획홍보팀 실장 강윤철

email_1: toarnie@nenia.co.kr
email_2: help@nenia.co.kr

direct: 050-5259-5259
tel: 0505-898-2367
fax: 0505-898-2349

네니아 http://www.nenia.co.kr
리얼뷰 http://www.realview.co.kr
보아요 http://www.boayo.co.kr
===================================

강풀형이 받은 메일 내용이라고 합니다.

보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미처 허락도 받지 않고 저도 모르게 퍼왔습니다.

미친..

무슨.. 나 참.

강풀형이 전화해서 막 항의했다더군요.

이 사람들 마인드는 ‘만화는 공짜로 퍼지니까 상업적으로도 공짜로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모양.

가장 가관은

‘귀하의 사이트에도 무료로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푸허허허!!!

진짜 뭐라 해야할지.

아하하.

가봤다

!@#… 오전에 가보고 싶다고 포스트 올리고는, 오후에 곧바로 가봤다. 로봇박물관. 이쁘다. 재밌다. 하지만 입장료는… 비싸다. 음음음. 하등 의미없는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 상영만 빼놓고는, 만족, 만족. 어중간하게 가지고 노는 어쩌고 하지 않고, 차라리 확실하게 관람용 전시로 특화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 전체적으로, 장난감으로서의 로봇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돋보임. 전시 기술도 예쁘고 (걸리버 로봇…). 피노키오 발전사니, 미술사조와의 연결이니, 기갑여인의 이미지 변천 등도 흥미로움. 하지만 만화/애니 로봇에 대한 시대적 통찰 등 문화론적 컨셉 연구는 부족한 게 아쉬움. 배트맨, 슈퍼맨, 로빈이 왜 로봇 범주에 들어가 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 수집가+전시디렉터로서 능력좋은 큐레이터인 듯 하나, 만화/애니쪽으로 제대로 밝은 친구가 하나쯤 같이 결합했으면 더욱 좋은 전시가 되었을 듯. 아 그리고, 아이들용 전시 안내는 뛰어난 듯 하지만, 매니아용 전시 안내는 아직 제대로 안갖추어진 듯. 태권브이 OST의 8-track이 있었는데,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놓여있다니! 우오오!

!@#… 사진은 여자친구님의 카메라로 찍은 관계로 아직 파일을 못받았음. 따라서 사진과 자세한 리뷰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다(과연?)…

온라인 만화와 창작환경의 변화 [계간만화 04봄]

!@#… 원 출처는 <계간만화 2004년 봄호 (통산3호)>. 이건 뭐랄까, 맨 처음에 쓴 오리지널 버젼. 잡지상에는 지면 한계로 축약. 물론 오리지널이라고 해서 꼭 더 좋은 건 아니지만.

!@#… http://manhwaiyagi.com/bb/zerotb.php?id=mhhh&no=3 에 가면 이 특집기획의 다른 꼭지 중 하나인 ‘만화판의 주체들’을 볼 수 있음.

=========================================

온라인 만화와 창작환경의 변화

김낙호 (만화연구자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오래 지나지 않은 한 때, 온라인과 만화의 만남이 갖은 장밋빛 희망으로 포장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출판만화의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이니,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니 하는 훌륭한 이야기들이 온 주변에 파다했다. 그리고 수년간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어져왔고 때로는 예상대로, 때로는 예상외로 현재의 판도에 이르렀다. 시장유통에서의 여러 실패담과 희망은 다른 지면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고, 본 지면에서는 창작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그 현황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보자: 온라인은 만화 창작환경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주었는가? 대답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몇가지 가능성들을 좀 더 표면화시켜 주었다”.

1) 표현의 확장 가능성

((도판: I can’t stop thinking 중 아무 장면이나))
((도판: e-merl 의 PoCom의 전체 회로도 또는 확대된 장면 하나))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는 것은 바로 표현적 측면인데, 기존의 종이 만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만화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다니는 선구자는 <만화의 이해>의 저자인 스콧 맥클루드인데, 온라인을 통해서 만화의 표현적 가능성을 넓혀나간다는 것, 새로운 방식의 만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즐거움을 역설하고 있다. 온라인 만화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온라인 만화의 형식으로 직접 제안하고 있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요I can't stop thinking> (http://www.scottmccloud.com에 원문이, http://www.kcomics.net에 한국어판이 있다)에서 제안한 연결선 위주 칸 이동 방식, 하이퍼링크의 적극적인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속칭 ‘무한캔버스’의 도입 등이 그런 취지하에서 발명되었다. 단순히 동영상과 음악 등을 입히는 초보적인 멀티미디어가 아닌, 만화 특유의 공간적 매력을 살린 시각적 실험의 향연은 수많은 국내 및 해외의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페이지 넘기기의 전형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만화 독서방법을 제안하는데, 톰 스택폴은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Forces> (http://www.pvcomics.com/free/invisibleforces/)에서 사용자의 조작에 따라서 하나의 페이지내부에서 일부분만을 보여주며 조금씩 변형시켜나가는 방식이 좋은 예다.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독법에 대한 실험정신은, 18명의 작가들이 함께한 프로젝트인 ‘PoCom UK 001’ (http://www.e-merl.com/pocom.htm)에 이르러서는 전통적 독법에 익숙한 독자들과의 한판승부를 벌이다시피 한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난돌 스튜디오의 ‘디지털 카툰’을 위시한 수많은 작가들이 모니터 속에서 놀랄만큼 효과적인 새로운 표현들을 시도하고 있다.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은 다양한 새로운 실험과 놀이의 장을 마련해주었고, 기존 종이지면에서 할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창작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적 측면이라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상상력과 기술소화 능력의 문제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앞서 ‘디지털’과 ‘온라인’ 사이의 혼동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은 만화작품을 전산정보로 만들어서 작업하고 보관한다는 지극히 도구적인 개념이지만, 온라인은 디지털화시킨 작품을 소통시키는 과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의 발표공간이 종이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야기를 짜고 그것을 칸 속에 그림과 글의 형태로 치환하여 표현해낸다는 본질적인 작업성격에는 변하는 것이 없다. 온라인에서의 발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도구(즉, 컴퓨터)의 사용이 더욱 보편적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차피 종이만화라 할지라도 도구의 발전에 따른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여전히 만화는 가내수공업에 더 가까운 창작활동이며, 그것이 계속 장점이자 한계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원고를 디지털로 스캔해서 전자우편으로 잡지 편집부에 보낸다든지 하는 도구적인 효용도 물론 있지만(물론 벽지 또는 해외에서 작가의 창작 활동이 수월해지는 등, 이 자체로서도 상당한 창작환경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의 이러한 속성이 창작환경에 미친 영향은 좀 더 미묘하다.

2) 타이밍의 문제

((도판: 스노우캣 다이어리 중 아무거나))

창작물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개재 타이밍을 들 수 있다. 종이지면의 경우 잡지의 발간시기라든지, 책의 제작기간 등 다양한 물리적 제한에 따라서 작품의 창작이 이루어졌지만, 온라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수시 업데이트’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 홈페이지 방식의 공간은 물론, 종이잡지의 운영형식을 그대로 옮겨온 웹진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다. 잡지의 발간 스케쥴에 따른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창작 페이스에 따른 창작 연재가 주는 창작여건 개선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서는 분명히 희망적이다. 예를 들어 개인 홈페이지 방식으로 운영되는 <스노우캣>의 경우 작가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서 매일 또는 띄엄띄엄 한 화씩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작품 전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귀차니즘’과 ‘하고 싶을 때에나 한다’는 정서에 알맞은 소통방식이다. 수익모델의 다변화 가능성은 또 어떤가. 라이센싱이 아닌 만화 자체의 수익모델이 잡지고료 및 단행본 인세에 한정되었던 것이 전통적 모델이었다면, 기존의 모델에 더하여 사이트 유료 회원제라든지, 클릭 수 기반 수익 등 다양한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코믹플러스>등 대형 온라인 만화포털은 물론, 개인 사이트에서도 소액결제를 통한 유료 서비스를 시도해왔다. 이외에도 독자와 창작자 간의 직접적이고 동시적인 의견교환, 커뮤니티 활성화 등의 기능들이 온라인 만화의 긍정적인 새로운 창작환경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의 경험은, 가능성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누구나 작가가 작품을 직접 쥐고 독자들과 직접 만나며 소통을 하고 풍부한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창작환경의 혜택을 볼 수 있을 듯 하였지만, 생각보다 이상은 먼 곳에 있었다. 예를 들어, 전통적 연재만화 시스템의 기반인 정기적인 마감 압력의 감소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하나의 줄거리로 긴 호흡을 구사하는 작품의 온라인 연재는 속속들이 중도 하차하고,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끊는 단편들, 또는 에피소드 방식의 전개가 결국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언제 고조될지 불분명한 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원래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긴 호흡의 이야기일수록 일정한 속도의 업데이트에 의한 안정된 전개가 더욱 필요하다. 작품 연재의 페이스 자체가 안정되어 있어야, 독자들의 몰입도를 해치지 않고 다양한 드라마 투르기를 통해서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다음 회가 다음 주말에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작품에 대한 몰입이나 관심을 시청자가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화가 언제 하는지 일정하지 않다면? 관심의 패턴은 불규칙해지고, 많은 경우 아예 흥미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 온라인 만화 연재의 경우, 정기적 마감의 압박이 줄어들었을 때 작가가 결국 스스로 그 페이스를 놓쳐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잡지지면에서의 활동에 익숙한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작품연재를 의욕적으로 새로 시작한 경우,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전용 홈페이지를 통해서 서비스된 김준범의 의 경우를 상기해볼 수 있는데, 수익성 부족이라는 문제와 결합하여 결국 의욕적인 시작에 걸맞지 않은 이른 실질적 연재중단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많은 수의 온라인 만화들은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 방식으로 승부하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한 화가 그 자체로서 완결적이기 때문에 비정기적인 수시 업데이트를 하더라도 이야기 전체의 페이스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물론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일정을 고정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 역시 많은 경우 짧은 호흡의 완결성 있는 에피소드를 선호하고 있다. 한번에 많은 이야기를 구상하거나, 전체 작품의 커다란 형상을 계속 고민하지 않고 각 화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의 부담 자체가 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속칭 ‘감성 에세이툰’과 짦막한 ‘개그물’, 혹은 두 가지의 감수성을 엮어넣은 일기형식의 만화들이 온라인 만화의 절대적인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3) 수익성의 문제

((도판: WE6 메인화면))

‘수익성’이라는 현실적 과제 앞에서, 온라인 만화는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만화 연재 자체를 통한 직접적 수익은 염두에 두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형 모델과, 웹진 연재-고료지급형 모델이다. 개인 홈페이지형 모델은 만화 연재 자체에서 창작자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부분이 없는, 자발적 업로드를 특징으로 한다. 이 경우 수익은 단행본화나 관련 라이센싱 사업 등에서만 가능하다. 이 경우 연재는 작품의 인지도/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며, 출판사에 의하여 발탁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예 표현욕구 또는 소통욕구로 인하여 연재하는 아마추어 정신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은 모델이다. 웹진 모델의 경우, 실제로 작품을 연재하면서 그에 대한 고료를 지급받는 방식으로, 기존의 종이잡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고정 고료를 받는 경우와 클릭수에 기반한 인세를 제공받는 방식 등 다양한 세부 모델이 가능하지만, 연재 자체가 수익을 낸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 경우도 단행본 발간과 라이센싱이라는 선택은 가지고 있다.

혹은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시키고자 한 시도도 있다. 여러 중견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자신들의 둥지를 튼 ‘WE6’의 경우, 작가들이 직접 나서서 웹진 형태로 운영하며 자유로운 창작 업데이트를 하도록 하며, 유료회원을 통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온라인 업데이트 특유의 ‘마감 압박 부족’으로 인하여, 개별 작품들의 연재 페이스가 불규칙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여하튼, 유료회원을 통한 수익모델 창출은 일부 성인만화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아직은 그다지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며, 많은 경우 중도에 좌절을 맛보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확실한 수익모델을 지니고 있는 포털 사이트(다음, 네이버 등)의 만화코너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다. 분명히, 앞으로의 과제는 개인 홈페이지형의 창작 활동에서도 수익성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소액결재 방법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창작 환경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수익모델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료를 받고 연재를 하거나, 곧바로 단행본으로 내고 인세를 챙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더욱 다양해진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3) 독자와의 정면승부

((도판: http://www.dcinside.com 카툰 연재 갤러리 중, 독자리플 쌓여있는 모습 아무거나))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것도, 당초에 예상한 만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만화가 창작 환경에 소통과 피드백을 주는 방식은 이전의 팬레터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었다. 연재되는 한화 마다 곧바로 직접적으로 독자들이 반응을 할 수 있으며, 많은 의견을 실시간으로 내놓기가 더 쉬워진 온라인에서 그것은 종종 날 것 그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전이라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정정도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소통을 시도했겠지만,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지기가 용이한 것이다. 덕분에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이 난무하여, 여린 마음의 작가라면 큰 상처를 받고 칩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의견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팬레터의 시절과는 달리 그러한 의견들을 중간에서 필터링해주는 편집부가 없이 직접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전자게시판으로 공개되어 의견들이 계속 축적되는 경우도 많다. 작가가 자신의 독자들과 얼마나 동시대적으로 호흡을 하고 있는가가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은 이전부터도 하나의 진리였지만, 온라인의 소통기능 덕분에 그 명제는 더욱 더 절실해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독자들과 매순간 정면승부를 해야하는 창작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4) 무엇보다 중요한 것

((도판: 강풀 <순정만화> 중 아무 장면이나…))

길게 이야기했지만, 여하튼 결국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창작환경에 적응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일 뿐이다. 유동적인 변화과정에 있는 이런 상태에서 모범답안이 있을 수야 없겠지만, 최근의 사례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원래 오프라인으로 데뷔했었던 ‘파페포포’ 시리즈는 논외로 하자면, 최근 온라인 만화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례는 강도영의 <순정만화>다. <순정만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국내 최대 규모의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연재중인 만화로, 이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0여 화가 문학세계사에서 최근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인터넷 포탈의 힘이 아니더라도, <순정만화>는 어차피 히트를 기록했을 법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커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솔로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떻게’라는 과정은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이런 큰 원칙을 좋은 작품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자신의 사이트 강풀닷컴을 비롯해서 여러 온라인 만화지면을 통해서 수련된 연출호흡은 모니터 친화적이며, 동시에 인터넷 독자들의 독서 및 반응 패턴을 정확하게 맞추어주고 있다. 한 회의 연재분량은 하나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끊어나가며, 그 속에서 자기 완결적인 기승전결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아가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방식 보다는 한 페이지 안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단지 수평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패턴에 함몰되지 않고 연속극 방식의 내용연결로 이야기의 전개를 축적하여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짧은 호흡을 보완해나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말하다 보니 대단히 어려운 개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을 잘 다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연재시에 <순정만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때 과연 살아있을 것인가.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힘이 다음 페이지면 다음 이야기가 있는 단행본에서도 통할 것인가. 또한 마치 가려진 부분들을 조금씩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던 한 페이지 내에서의 스크롤 방식이, 여러 페이지로 분절된 책 속에서 과연 매력을 발할 것인가. 나아가, 모니터 화면의 저해상도 불빛에 맞추어 놓은 여유로운 컬러 그림과 경계없는 칸의 매력이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혀서도 그 투박한 멋을 발휘할까.

출간된 책을 펼쳐본 결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의 기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만화의 진정한 힘,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온라인이라는 창작환경 이전에, ‘만화’를 만들어 나가는 힘 자체가 더 결정적이다.

  좋은 만화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그 탁월한 이야기꾼이 자신의 작품이 창작되고 수익을 창출하고 독자들과 소통되는 각 단계에 좀 더 깊숙하게 직접 관여하도록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러모로, 온라인을 통해서 창작자의 작품에 대한 책임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