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추석 추천만화 10선

 출처: 블로그 > comix park
원문:  http://blog.naver.com/enterani/120006147722

청강국제만화교류연구소 추천 추석연휴 만화 10선


  지겹게 막히는 자동차 혹은 기차나 비행기도 좋다. 아니면 연휴 기간 내내 TV의 재방프로그램이 지겨워졌을 때라도 만화를 읽어보자.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함께 즐기는 만화에서, 어른들의 만화까지 10편을 모아봤다. 먼저, 어른을 위한 만화. 고우영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일지매>(애니북스)는 로맨스와 호쾌한 액션, 베일에 감추어진 비밀과 거대한 서사가 함께 넘나드는 대작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야기꾼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세주문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다음 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서스펜스의 보고다. 낯선 이미지의 거리만 극복된다면 만화가(이자 한전에 다니는 직장인) 오영진이 직접 체류하며 경험한 북한의 548일 이야기를 다룬 <남쪽손님>과 <빗장열기>(길찾기)도 후회안할 선택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전통무속신앙, 그리고 생생한 토종 도깨비들이 설치는 여성만화인 말리의 <도깨비 신부>(길찾기)도 추천작이다. 남녀가 함께 사이좋게 보기에는 사사키 노리코의 <동물의사 닥터 스크루>(대원CI)가 적당하다. 작가 특유의 썰렁한 개그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퇴색되지 않았다. 일본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드라마로 이미 한번쯤 본 작품이겠지만, 드라마보다 만화가 더 재미있다. 본격적인 웃음의 향연에 빠지고 싶다면, 역시 신세대 웃음꾼들의 만화를 찾아야한다. 곽백수의 <트라우마>(애니북스)는 스포츠신문 연재와 게시판 퍼나르기로 최고의 화제를 기록한 만화. 하지만 다시 봐도 웃기다. 이상신, 국중록 콤비의 <츄리닝>(애니북스)도 만만치 않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만화가 필요할 듯. <비빔툰>의 홍승우가 전공인 곤충이야기에 도전한 <소년 파브르의 곤충모험기>(애니북스)와 바로 그 ‘둘리’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키딕키딕)가 제격이다.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아름드리)은 원폭의 참혹함을 일깨워주는 작품. 어린이용이라고 골랐지만 어른들이 봐도 하나 손색이 없는 만화들이다. 이제 만화를 선택할 일만 남았다. 지루한 시간을 행복의 시간으로 바꾸는 마법에 걸리는 길이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다.

 

*선정 : 박인하+김낙호 ㅎㅎ

특별한 일상의 조건-<구미의 유학만화>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최근 몇 년 동안 온라인 세계에서 새로운 붐을 일으킨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의 특징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뭘까? 바로 일상성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문분야의 엄청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웹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나 생각들을 보고 즐거워한다. 물론 생각해보면 시시콜콜한 일상사로 수다를 떨거나 안주거리 삼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온라인의 발달, 그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여러 기술과 서비스의 도입으로 인하여 한층 더 개인화된 미디어가 가능해진 덕분에, 잡담의 네트워크는 더욱 광대해졌다.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이 멋진 이야깃거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평범한 일상은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좋은 이야깃거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즉, 이야기로서 매력이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는 다른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르지만 같은’ 일상성이 필요한 것이다.

‘구미의 유학만화’(http://chkoomi.cafe24.com)라고 제목이 붙여진 한 사이트에는, 한 평범한 일본 유학생의 일상적인 생활 관찰(?) 일기 만화가 연재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특히 ‘교포가족’이라는 시리즈다. 교포 3세인 작가 자신과 가족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 화부터 ‘강제 징용당했다가 허리디스크 덕분에 무사히 돌아온 할아버지’라든지, ‘한국말 못하는 아버지와 일본말 못하는 어머니의 결혼’ 같은 범상치 않은 사연들이 둥그런 구미 과자 캐릭터로 표현되어 독자들을 단번에 미소 짓게 만들어버린다.

최근 이 시리즈는 93년 일본의 쌀 부족 사태를 가족 경험담으로 풀어냈는데, 식량 자주성을 부르짖는 뭇 세미나 수십회보다 더 명쾌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일상성에서 오는 공감의 힘이 있다. 가족 밥상의 밥맛만큼 일상적이고 공감 가는 방식이 어디 있겠는가! 동시에 그것은 다른 환경의 일상성인 덕분에, 소재의 매력 역시 돋보일 수 있다. 즉 공항에서 일본 방문 손님들이 쌀을 한 포대씩 들고 오는 대목에서 박장대소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일본이라는 ‘다름’과 교포, 또는 가족이라는 ‘같음’이 주는 균형관계 속에서 일상성은 특별한 재미를 확보한다.

타인의 생활 속에서, 나의 생활과 같으면서도 다른 일상성을 찾아나서는 여정. 때로는 그 여정 자체에 중독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풍속도- 아니 우리 일상의 일부분인 셈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9. 17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군대라는 기억의 함정 – <돌격 앞으로>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인간의 기억은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그것도 지금 순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살짝 바꾸어서 기억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체적으로 ‘미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과거는 현재의 고난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이상적인(즉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안식처로 활용되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덕분에 쓰리디 쓰렸을 젊은날의 고뇌는 청춘의 열정으로, 가슴찢어지는 실연은 성숙을 위한 디딤돌로 재해석되곤 한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억해두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뇌세포들을 엉뚱한 조합으로 새로 이어붙이는 것이다.

군대 생활, 일명 ‘한국 남자들의 궁극적인 집단적 공유기억’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병영생활은 뭐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시의 가학/피학적인 고통은 최고의 안주거리로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심한 경우 심지어 전우애를 다질 수 있었던 뜻깊은 시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듯이, 군대를 다루는 만화들 역시 대부분 과거의 턱없는 미화라는 함정에 깊숙이 빠져있다. <빤빠라 선착순>이나 <굳세월아 군바리> 같은 작품들이 묘사하는 인간적인 군대 생활의 이면에 담겨있는 원칙인 셈이다. 보다 흥미로운 경우는 마재권의 4칸 만화 <돌격! 앞으로>(잡지 <부킹>에서 99-02년까지 연재, 단행본 전 4권 발간)의 경우다. 이 작품은 처음 시작 부분에서는 군대에서 어처구니 없는 결정 때문에 이어지는 황당한 결과를 핵심으로 하는 짤막한 개그로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즉 군대라는 기형적인 폐쇄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웃음꺼리로 삼아주는 통렬한 블랙코미디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하지만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서 점차 이야기는 주인공들 – 즉 내무반 성원들끼리의 캐릭터 드라마로 변해갔다. 그리고 캐릭터 드라마로 변하면서 다시금 군대만화가 흔히 빠지는 그 함정 – 아름다운 전우애와 추억 – 속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갔다. 그것이 당시 통신 게시판에서 다수 올라왔던 “군대를 희화화하다니! 너 방위 출신이지?” 따위 독자 반응들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작가 스스로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한계 때문인지는 사실 알 길이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군대라는 기억을 ‘더럽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미묘한 습성을 조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 풍속도 속으로 결국 돌아와버렸다는 점 뿐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9. 4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루나하이츠 만세.

!@#… 호시사토 모치루의 ‘루나 하이츠’ 1,2권 국내발매. 출판사는 매니악한 선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B사.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본업으로, 그것도 더욱 성숙/진화해서 돌아온 작가에게 박수. 리빙게임과 바람불어좋은날(오므라이스)와 내사랑 사고뭉치와 굿모닝고스트(꿈이라도 좋아)에서 각각 장점만 새로 조합한 듯한 멋진 시작. 묘한 ‘생활의 때’가 들어박혀 있는 진정한 성인용 하렘물(그러니까, 야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대서사가 붕괴할지라도: <저수지의 걔들>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이번 것은 여차저차하다보니 내용이 좀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기자님은 오히려 이번 것이 평소보다 더 쉬웠다고 하시더군요. -_-;;; 여튼 요새 ‘요즘 젊은 것들은 긴 안목이 없어’ 투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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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가 붕괴할지라도 – <저수지의 걔들> 이동욱 作

90년대, 이 땅의 젊고 똑똑한 사람들의 관심분야가 급격하게 달라졌던 때가 있다. 그것이 소련붕괴 때문이니 자본주의적 개인주의가 만연해서 그랬다느니 나름대로 분석들을 했는데, 여튼 확실한 것은 결과로서 나타난 한가지 현상이었다. 바로 “대서사의 붕괴”인데, 포스트모던이니 시뮬라크르니 하며 폼잡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커다란 흐름이라든지, 중후장대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이 어느틈에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세상사는 큰 법칙과 통찰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파편화된 요소들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만화로 치환해보자면, 중후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가 점차 쇠퇴하고 짧은 호흡과 작은 성찰의 찰나적인 이야기들이 득세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에 대해서 최근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도 꽤 나오고 있다 – “장편만화의 위기”라는 꽤 자극적인 말로 신문지면에까지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수지의 걔들>이라는 작품이 좋은 예가 된다. 우주선을 타고 각 행성들을 여행하는 탐험단의 모험을 코믹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최근 주목할 만한 작품인데, 짦막한 4칸만화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4칸만화는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험은 보통 4칸만화 8~12편 정도가 내용적으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편에서 소개된 캐릭터는 한참 나중의 모험에 다시 재등장하기도 하면서 시리즈로서의 전체적 맥락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원래 미국에서 현대 신문만화의 시작과 함께했을 정도로 오래된 방식이지만, 몇년전 <아즈망가대왕>의 히트로 인하여 재발굴된 형식이기도 하다.
대서사가 파괴되고 장편이 부진하다고 해도, 그것은 갑자기 작가들이 이전보다 게을러져서도, 독자들이 얄팍해져서도 아니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읽어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전의 장편 개념이 하나의 스트레이트한 스토리로 그런 목표를 향해서 직선질주를 했다면, 지금의 짧은 호흡 작품들은 하나씩 벽돌을 쌓아가듯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하는 작품들보다는 실패하는 작품들이 많을 뿐이다.
결국 현실세계도 마찬가지다. 직선적인 줄거리 – 즉 중후장대한 사회규범의 틀을 통해서든 다양한 일상적인 부분들의 결합을 통해서든, 결국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전체적인 사회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대서사의 붕괴가 아니라, 그것을 시대의 흐름이니 도통 이해가 안되는 콩가루 사회이니 말하며 변명꺼리로 삼고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시키는 우리들의 세태일 뿐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21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