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대전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서.

!@#… 나는<평성너구리대전폼포코>를보면서무려자연보호캠페인으로해석해내는소위기자니평론가니하는사람들을도저히이해하지못하겠다.그들은이작품에서이야기하는전환기산업사회의계층모순과투쟁,그리고그속에결국적응하면서살아나가는소시민들의삶이안보인단말인가.얼마나순진무구한장미빛세상에서살았길래이정도로명쾌하게비유해줘도그개념자체를못받아들인단말인가.그것도제작된지10년이된작품인데도아직도그런글을무려기사로내뱉고있다니참기가찰노릇이지.-_-;

고우영, 거장의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기획회의 050502]

!@#… 5월 2일자 기획회의용 원고(따라서 2005.5.2까지는 이동불허. 그 정도 네티켓은 알아서 다들 지켜주리라 믿는다). 아직 개제안된 원고를 사전공개하는 건 평소 신조나 일반 도의에 어긋나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편집부도 너그러이 윤허해주겠지.

!@#… 여담이지만, 나는 만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화백은 그림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화백이라는 용어를 이쪽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왠지 미술계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시 – 즉, 만화가도 그림 제대로 그릴 줄 안다는 식의 소극적 선언같이 들린다. 특히 고우영 선생같은 길이 남을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튼,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종목을 초월한 극존칭인 ‘선생’으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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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거장의 남겨진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2004년 4월 25일, 한국 만화의 큰 별이 떨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니 여러 시대를 관통하면서 계속 풍미해온 명실상부한 거장 고우영 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일찍이 70년대에 스포츠신문이라는 공간에 연재만화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소개한 <임꺽정>을 필두로, 마지막 그날까지 항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역으로 특유의 해학과 입담을 발휘했다. 갑자기 이 지면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 투의 평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고우영이라는 이름이 남기고 간 한국만화의 걸작들을 두 편만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발간된 수많은 삼국연의 판본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잘 팔린 것은 이문열 삼국지다. 하지만 가장 재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고우영 삼국지>(애니북스, 전10권)를 선택하겠다. 단지 오락성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가 뛰어난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역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이어서 비단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뿐만 아니라, 관우와 제갈량 사이의 신경전이라든지 손씨 가문 여인들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하는 설정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며, 우리 독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우영식 고전 서사연출은 이 작품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으로,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작가의 해설은 동시대(현대)의 여러 맥락들을 섬세하게 풍자하고, 내부의 주인공들 역시 그 과정에 천연덕스럽게 동참해버린다. 단순히 극이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기분 좋게 세상사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고전은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의 전통은 스포츠신문 만화의 터주대감 같은 이미지로 굳어있는데, 고우영 만화가 바로 그 시조이자, 선구자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강의 현역선수였던 것이다.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탁월하다.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필치는 이미 달인의 경지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등장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고우영 삼국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가 다소 급작스럽게,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유씨 3형제와 제갈량이라는 주인공들이 극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첫 시작부분에서 황건적을 다룰 때 보였던 평범한 민초들에 대한 애착이 연재 종결의 시점에서는 다소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긴 연재기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생긴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故고우영의 사극들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창작물인 <일지매>(애니북스, 전8권) 역시 원전이 있으리라는 오해를 종종 사고는 한다. <삼국지>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이 그만큼 유명 고전들과 견줄 만큼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버려진 서자 일지매가 청국과 일본에서 각종 신기한 기술을 익혀서 의적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일지매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당대 조선조 양반사회의 부패, 청나라와의 국제 정세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비록 권말해설에서 평론가 박인하가 지적했듯이 그 모순에 대한 분노가 왕조 자체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일지매라는 일개 의적(!)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당연한 행보일수도 있다.

<일지매>에는, 훗날 <삼국지>에서 완성되는 능청스러운 재담의 원형이 가득하다. 칸과 면을 가지고 하는 만화적 장난은 물론, 현실세계의 맥락을 자꾸 환기시키는 농담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것 역시 여기서 이미 선보이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여장을 일삼는 미형 남자주인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설정도 고우영식 재담 속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지한 극 전개가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데, 그 분위기 전환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지매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양반의 부패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지매>는 오랜 연재기간동안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만큼 본질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기에, 연재 후 거의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봐도 그 재미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효과를 지닌 작품들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물론 장기 연재작이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너무 확연하게 바뀌어버린다거나, 때로는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러가버린다든지, 주요 이야기 단위 간의 균형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그림이야기 솜씨라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명예의 전당감인 여러 작품들이 그의 업적을 기릴 뿐이다. 고우영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서 한국만화의 더욱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숙제가 이제 후배 세대에게 남겨졌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관우와 임꺽정이 그를 만화의 천국에서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하지만 2005.05.02까지는 이동불허 —

[부고] 고우영 선생 별세

!@#… 고우영 선생 별세. 탁월한 해학으로 한 시대 – 아니 여러 시대를 풍미한 한국만화계의 거장 가운데 한명을 떠나보내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임꺽정과 삼국지 수호전의 영웅들이 그를 어디선가 반갑게 맞이해주겠지.

통속성이 빛을 발하다 – <엠마> [으뜸과 버금 0504]

메이드, 즉 하인 내지 하녀라는 소재는 무척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선 헌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현모양처 또는 자상한 아버지형 캐릭터를 쉽게 창조할 수 있다. 자기 집단 내에서 어울릴때는 발랄한 노동자이며, 기품 있는 집안에서 일을 돌보고 있는 동안에는 예절과 품격을 지킬 줄 아는 멋쟁이. 상류층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생기는 격차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나아가 서비스를 하는 자와 서비스를 받는 자 사이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우정이나 애정. 뭐랄까, 너무나 이야기의 규격이 맞춤형처럼 확연히 눈에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것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써먹어서, 이제는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다. 특히 특정 소재나 표현요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일본에서 90년대 이후 정착된 소위 ‘모에’라고 불리우는 소비성향 물결 속에서 메이드 – 특히 여성 메이드는 한층 더 정형화된 욕정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통속성이 극단으로 치닫다가 이상한 변이를 맞이해버린 셈이다.

하지만 통속성이, 꼭 이러한 어두운 결말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엠마>(모리 카오루, 북박스 / 현재 4권 발매중) 같은 소중한 사례가 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한 메이드와 귀족 남성의 신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나가는 이 만화는, 수많은 메이드물에 익숙할 대로 익숙할 만한 만화팬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선 전제를 하건데, 이 작품은 메이드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여타 공산품 만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메이드에 대한 진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착을 한다는 점이다. 메이드의 생활을 묘사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고증하여 재구성한 19세기 영국의 거리를 비롯해, 당시의 생활습관 하나하나를 되살려낸다. 그 결과 메이드는 성적 환상으로 버무려진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노동자이자 품격 있는 집안의 주인들이 되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의 미덕은 빛을 발한다.

이러한 집요함은 작가가 만화를 연출하는 모든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권 첫 대목에서 주인공 엠마가 등장할 때, 그녀가 청소하는 방의 풍경을 훑어주며 일하는 엠마의 손놀림, 목선, 표정을 하나씩 훑어나가는 시선처리는 어떤 영화나 사진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만화 본래의 효과다. 메이드들의 활기찬 집단 노동 장면에서 묻어나오는 에너지 역시 메이드 층의 다양한 속성들을 보여주기에 가장 효과적인 시퀀스들로 압축되어 묘사된다.

물론 <엠마>는 통속적이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니, 지난 2000년 인류 문학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정도로 전형적이다. 주말 드라마 마냥, 나중에 뻔히 맺어질 것이 보이는 두 신분차이나는 마음의 연인들이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적당히 시련도 닥치고, 방해자들도 끼어든다. 그 과정이 특별히 특이하지도 않고, 캐릭터들 역시 파격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 그 기본공식 위에 작가는 자신이 집착하고 싶은 메이드라는 흥미로운 소재거리에 하염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솜씨가 가히 녹록치 않아서, 독자들이 공감하고 따라온다.

결국 좋고 재미있는 만화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통속성/참신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통속적이라면, 아예 확실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집요하게 끝까지, 맨바닥까지 밀어붙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엠마>를 추천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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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바람의 나라, 태왕사신기, 김종학 프로덕션, 유치한 개그

!@#… 뭐 다른 말이 필요하겠나. 그냥 개그를 즐겨라. 김종학 프로덕션의 하이코미디 협박문. 혹은 이곳을 사칭한 누군가일지도? 여튼 무려 공문서이며 배포하라고 해놓고는, 대표 성함과 공식 서명/날인조차 되어있지 않다니 만약 이게 진짜라면 ‘인터넷 이용자’들을 우습게 봐도 아주 쌩 우습게 보고 있는 셈이다.

http://mishaa.egloos.com/1224798

!@#…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송지나 작가의 해명글이 여러분의 개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것이다. 졸지에 ‘바람의 나라’를 지지하는 나까지도 존내 유치한 청소년 취급 당해서 즐거웠다.

http://mishaa.egloos.com/1146660 (여기서 링크를 타고 들어가기를)

!@#… 이런 글들도 참고할만함. (이글루스는 뭐랄까, 성향이 은근히 뚜렷하다고나)

http://cren.egloos.com/1230459

http://hamadris.egloos.com/1228524

http://mayura.egloos.com/1228589

http://mishaa.egloos.com/1228776

!@#… 조만간 며칠 이내로, “그래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좀 정리 좀 하고.

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기획회의 050418]

!@#… 뭐야, 300번째 게시물이잖아 (경악. 100개를 채우기 전에 나간다고 내심 다짐했건만) !!! 음 뭔가 좀 더 강력한 걸로 채우고 싶었던 이벤트 번호였지만, 뭐 알께뭐람.

!@#… 새삼 느끼는 바지만, 이 지면처럼 한 원고지 15매 정도는 최소한 되어야 ‘신간소개’를 하면서도 뭔가 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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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국민캐릭터’라는 천박한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폭넓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덕택에 어떤 시에서 주민등록증도 부여받을 정도로 활용가치가 높은 가상적인 인기인이라면 나름대로 무언가로 불러줘야 할 법 하기는 하다.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하다 보니 여러 세대가 같이 즐길만한 공동의 무언가가 생겨나기 참 힘든 이 땅에서, 그런 국민캐릭터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보람찰까. 하다못해 부모세대가 자신들의 어린 아들딸들한테 문화적 취향을 즐겁게 자랑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억지로라도 하나 뽑아보라면, 열중 아홉은 분명히 한 만화캐릭터를 지목할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라는 녀석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부모세대가 봤다는 아기공룡 둘리와, 지금 어린 아이들이 알고 있다는 그 아기공룡 둘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마 82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를 보았을 것이고, 87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스페셜을 보고 즐겼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기공룡 둘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둘리의 배낭여행 DVD를 한번쯤 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둘리가 빙하타고 내려와서, 청승파 구박덩어리 더부살이로 시작했다가 점차 눈물겨운(?) 투쟁으로 하나씩 가족으로서의 위상을 얻어나간 과정을 공유하고 있을까. 집안의 가장 고길동이 애완동물 길동이 취급당하며 명랑만화식 환타지 모험길에 끌려다니고 겪는 고초에서 우러져나오는 서민적 페이소스를 같이 공감할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감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작년 말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김수정, 키딕키딕. 현재 3권 발매중) 덕분에, 이제는 적어도 이런 작품이라고 이야기를 건네볼 수는 있게 되었다. 이전에 나왔던 여타 판본들과는 달리, 이번 애장판에서는 드디어 작품 전체를, 양호한 인쇄품질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작가와의 인터뷰 등은 반가운 보너스이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를 드디어 제대로 모아둘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풍족하다.

둘리를 동시대의 다른 명랑만화와 차별화시켰던 것들, 둘리를 둘리답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본다. 라면 박스로 만들고, 오징어가 끌고가는 산타클로스 썰매. 은행을 건물채로 뜯어가는 엽기성. 타임코스모스를 움직이며 집주인을 애완동물로 아는 빨간 내복의 변태괴짜, 도우너의 충격적인 데뷔. 아 그래, 이런 것들이었지. 착할 겨를도, 교훈적인척하고 내숭을 떨 넉살도 없는 순수하고 직선적인 명랑함. 구석구석 찌들어 있는 생활의 무게와 그 향기까지. 기억이 돌아온다. 둘리는, 재미있는 만화였다. 귀여운 캐릭터이고 국민 어쩌고 이전에, 불온한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도발적 개그였다. 둘리 만화가 완결된 이후의 90년대 이래로, 둘리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재생산된 모든 여타 둘리 프랜차이즈에서 깨끗하게 도려내졌던 바로 그 부분이다. 지금은 마치 티본 스테이크 같이 포장되어 칭송받지만, 원래는 비계가 덕지덕지 끼어있는 구수한 삼겹살이었다. 바로 그 비계맛 때문에 둘리는 특별했던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은 지나치게 멋부리지 않아서 반가운 책이다. 물론 번들거리는 은색의 하드커버 표지는 확실히 이질감이 들지만, 상품을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고싶다는 의도의 그 정도 오버는 그냥 대범하게 받아들여주자. 하지만 요새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다고 공연히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채색을 집어넣어서 풍미를 해치지도 않았고, 요즘 감수성에도 통할만하다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소위 베스트 에피소드들만 골라 넣는 만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날림으로 대충 넘겨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일화들일지라도 굳이 잘라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원래대로 우직하게 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부족한 지점,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와서 몸둘바를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참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소원이 이루어져 있다. 정말 별것 아닌것처럼 그대로 내는 것이야말로 ‘별 것’이다. 유능한 작가가 젊은 날의 가장 찬란했던 때의 에너지를 쏟아넣은 작품이 얼마나 멋진 빛을 발할 수 있는지, 감탄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멋진 작품을 보면, 작가가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완성된 재미의 작품을 본다면, 작가가 제발 절대 이 작품에 화사첨족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물론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원래대로 나왔음에 반가워할만한 독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둘리는, 추억상품으로 포장하고 향수를 자극해서 어른 매니아들을 노리기에는 너무 지금까지도 이미지가 대중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좀 더 최신 유행을 따라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취향 속에 캐릭터 이미지로서의 귀여운 둘리는 있지만, 구박받고 청승맞으며, 동시에 기발한 역전의 칼날을 가는 80년대 정서 가득한 서민 둘리는 없다. 아니 그런 둘리는 아예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사랑해준다는 말인가?

이 책을 사랑해 주어야할 사람들은, 좋은 만화를 보고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를 잊어버리지 않은 – 혹은 않았다고 자부하는 – 모든 이들이다. 좋은 만화는 취향은 탈 수 있지만 원형적인 재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현실세계의 시간의 오랜 흐름에 따라서 시대적 맥락의 효과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좋은 만화를 보다보면 그 맥락들이 다시 하나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만화 즐김이들 말이다.  국민캐릭터 둘리가 아닌, 즐거운 만화 둘리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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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