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ek 상품 전문샵에서 본 감동적인 티셔츠 문구.
“세상에는 딱 10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진법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Geek 상품 전문샵에서 본 감동적인 티셔츠 문구.
“세상에는 딱 10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진법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캡콜닷넷에 어울리지 않게, 무려 배너(!)까지 달아주는 행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독자만화대상’ (http://www.comicreader.org). 2006년으로 벌써 5회째를 맞이하는 행사. 여기까지 오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대부분 아시겠지만, 독자들의 일반 투표를 통해서 부문별로 2006년 한 해 나온 만화 가운데 가장 넓은 지지를 받은 작품을 뽑아내는 행사. 한국만화대상의 인기상 부문이 이 형식을 참조해간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주목받아 마땅한 좋은 행사다. 뭐, 상금은 없지만. -_-; 여튼 capcold로서도 처음 설립을 위한 기획 단계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들이밀었던 개인적 인연도 있기까지 하니, 이리저리 홍보하고 다닐 만한 행사.
!@#… 여하튼, 올해 행사가 지난주부터 시작되었으니 만화에 관심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너도나도 달려가서 투표인단으로 참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기를. 투표할 만큼 많은 올 한해 나온 한국 만화 작품을 읽어본 적 없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들이 나와있고 내가 놓친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이트 운영 및 자료집 발간 등 행사 진행 전반을 위한 후원금 모금도 하고 있으니 그것도 도와주면 좋고.
지금까지의 역대 대상 수상작:
2002년 서문다미 | 그들도 사랑을 한다
2003년 정철연 | 마린블루스
2004년 강풀 | 순정만화
2005년 강도하 | 위대한 캣츠비
…자세한 설명 및 부문별 수상작 등은 공식사이트에 가보면 다 나와있으니, 클릭은 필수.
!@#… 이번주의 제11화로 드라마 ‘히어로즈’ 시즌1 전반부 종료. 한달반쯤 쉬고, 1월 말에 방송 재개 예정. 중간기착점이자, 두번째 스토리 아크인 ‘치어리더를 구하라, 세계를 구하라’의 종료인 만큼 중요한 단서들과 새로운 전개의 예고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이것참, 드라마 보는 재미가 막강하다. ##이 벌써 장렬하게 죽어버린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 그런데 뜯어보면 볼수록 이 드라마 대단히 잘 고안되어 있는데, 특히 초능력자 캐릭터들의 구도가 예술이다. 슈퍼히어로 만화장르 특유의 파워밸런스 개념에 어지간히 통달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힘든 경지에다가, 심리학적 성향 구분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선, 모든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단 한가지의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해이션(The Haitian)은 남의 기억을 지우는 것과 남의 초능력을 봉쇄하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캐릭터의 능력은 바로 상대의 정신활동에 방해전파를 보내는 능력 한가지다. 그걸 응용함에 따라서 기억을 지울수도 있고, 두뇌의 활동에 방해파를 보내서 초능력을 봉쇄하기도 하는 것.
그런데 그 ‘한 가지 능력’으로 무한한 능력을 취할 수 있는 캐릭터가 딱 두 명 나오는데, 바로 연쇄살인마 시계공 사일라와 정의의 간호부 피터 페트렐리. 초능력자들의 두개골을 깨고 두뇌를 열어서 능력을 흡수하는 사일라, 그리고 초능력자가 곁에 있으면 그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같이 구사할 수 있게 되는 피터는 바로 동전의 양면이다. 사일라의 고유능력은 바로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고치는 능력”.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두뇌를 직접 꺼내서 초능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유전자를 고침으로써 자기 능력으로 만든다. 그 절차를 위해서 상대 초능력자는 두개골이 열린채로 죽을 수 밖에. -_-; 한마디로, 사일라의 능력의 핵심은 바로 절대적인 ‘이성’이다. 부대적 피해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궁극의 이치를 위해서 끝없이 매진한다. 그와 정 반대 극단에 서있는 것이 바로 피터. 그의 고유능력은 바로 “상대의 모든 것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꿈을 통해서 자기 형이나 죽어가는 자기 환자 등 타인의 경험과 연동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극단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타인의 능력을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해버리는 것. 바로 절대적인 ‘감성’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다. 물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이, 폭주하면 자칫 아예 자아가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시즌1의 핵심 축을 이루는 대결구도는 이성-감성의 구도인 만큼 팽팽한 파워 밸런스를 이루면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결국 둘이 결국은 어떻게 공멸 또는 융화할 것인지가 관건. 캐릭터 밸런스를 위해서 ‘알고보면 인간적인 슈퍼악당’이라는 (이제는 꽤 뻔해진) 코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속성’ 그 자체를 통해서 구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편집증처럼 묘사되는 초능력자 주소록 작성자, 노골적으로 커밍아웃 코드를 지니고 있는 무한 힐링 10대 소녀, 억압된 공격성과 이중인격으로 무장한 주부, 소년 같은 정신상태의 히어로 오타쿠 회사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세속적 정치가 등 히어로의 원형적 경이와 현대 도시인의 각종 정신상태가 접합된 캐릭터들이 한 다스 서로 얽혀 들어간다. 참 똑똑한 설정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 또다른 측면의 즐거움이라면 역시 ‘장르만화적’ 재미. 이미 4화에서 올백+수염+가죽코트+등에 검을 둘러매고 미래에서 온 히로를 통해서 만화적 슈퍼히어로 후까시를 보여주어 자신들의 ‘슈퍼히어로 장르만화적’ 근본을 보여준 제작팀, 갈수록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더 캐릭터들이 슈퍼히어로적인 ‘이름'(별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 ‘싸일라(Cylar)’, ‘더 해이션(The Haitian)’, ‘DL’은 원래부터 슈퍼히어로틱한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스스로를 ‘스파-히로'(슈퍼히어로)라고 지칭하는 히로는 물론, 온갖 사람들에게 멀쩡한 이름 놔두고 그냥 ‘더 치어리더'(The Cheerleader)라고 불리우고 있는 클레어를 보라. 이거, 분명히 의도적이다! 울버린이나 사이클롭스 같은 멋진 히어로명이 있으면서도 뒤로 갈수록 더욱 더 로건이니 스콧으로 불러댔던 모 극장영화와는 정반대라니까. 또는 히로의 미래를 예지하는 아이삭의 그림이 그가 일본도 한자루로 티라노사우르스와 맞서는 장면인 것 역시 (낚시일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장르팬의 환호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 정도로 ‘골수 진성’이라면, 근육과 타이즈가 안나오는 정도의 타협은 기꺼이 받아들여주리라.
PS. …그런데 와이프님은 아무래도 “각본 예측”이라는 초능력이 있는 듯 하다. 같이 보고 있노라면 어떤 장르의 드라마라도 10분 뒤에 벌어질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_-; 그런 류의 능력들만 잔뜩 모아서, 한국식의 ‘히어로즈’ 드라마를 만들면 대박일 듯.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영웅을 바라보며 성장하기 -『핑퐁』
김낙호(만화연구가)
소년은 히어로를 동경한다. 미디어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현대 세계의 소년들은 확실히 그렇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래전의 소년들도 나름대로의 히어로를 동경하며 자라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히어로의 양상은 고대의 영웅과 아버지에서 현대의 슈퍼영웅과 멋진 또래 친구로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기본 속성은 여전히 하나다. 바로 감정 이입 가능하면서도 압도적으로 강하고, 자기 세계의 기준에서 최상의 ‘멋’을 구현해주고 있는 커다란 존재. 히어로는 자신이 동경하고 추종하는 대상이자, 자신이 언젠가 되어보고 싶고 뛰어넘고 싶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강함을 추구하는 성장을 사회적으로 저지당하곤 하는 ‘소녀들’은 히어로에 대한 동경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그런데 그렇듯 히어로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성장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통과의례가 있다. 스스로도 성장하고 더 강해지다 보니 자신이 쫒아 다니던 히어로가 사실 생각만큼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성장통이 시작된다. 나의 지금까지의 동경, 즉 목표로 삼아온 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연 내 히어로를 뛰어넘어도 되는 것일까. 따라잡힌 히어로 입장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이제 히어로가 아닌 그냥 아무나인 것일까. 나는 그에게 따라잡혀도 괜찮은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며, 친한 친구들끼리도 나타날 법한 패턴이다. 구식으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청춘의 고민이다. 연애 말고, 성장의 청춘.
『핑퐁』(마츠모토 타이요 / 전5권 중 제2권 발행중 / 애니북스)은 탁구를 매개로 한 멋진 성장만화다. 사실 스포츠물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거의 모두 성장물일 수 밖에 없지만, 스포츠 경기 자체와 운동능력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있고 스포츠를 주요 소재로 하되 그 속에서 각각 주인공들이 겪는 인간사의 갈등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 경기의 승부에서 나오는 재미가 강점이고 인간사의 상대적 등한시가 약점이라면, 후자는 풍부한 인간이야기가 강점이고 박진감의 저하가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명작 스포츠물로 기억이 되는 것은 항상 인간사를 중심에 놓으면서 그 위에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얹어놓은 형식의 작품이지, 경기 자체에만 집중하느라고 물리법칙을 한참 벗어나는 온갖 초월적인 기술들이 무한 상승 난무하는 설익은 사이비 무협물이 아니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핑퐁』은 명작 스포츠물이자 소년 성장물의 교과서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동네 친구 페코와 스마일이 있다. 페코는 재능과 함께 쾌활한 성격, 그리고 탁구에 노력과 목숨을 걸지 않고 그저 즐기는 쪽을 선택하는 쿨한 자세를 지녔다. 그렇기에 스마일에게 있어서 페코는 히어로이며, 페코는 자만하지 않으면서 히어로의 지위를 즐기는 관계다. 그러나 성장의 시련은 다가오기 마련. 페코는 더 강한 천재와 노력으로 실력을 얻은 다른 친구에게 지고 만다. 히어로는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무뚝뚝한 스마일도 재능을 발굴당해서, 실력이 성장한다. 페코에게는 히어로로서의 모습을 회복하면서도 난데없이 모든 것을 탁구에 걸고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과제가 주어지고, 스마일에게는 스스로 실력이 자꾸 늘어나면서도 굳이 승부욕에 휩쌓이지 않으며 그 낙천적인 히어로를 여전히 동경하고 싶다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각자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둘에게 한 단계 성장한 우정은 커녕 자신들의 삶의 자세에 마저 금이 갈 것이다. 여기서는 탁구의 실력이 국가 대표급으로 우주 대표급으로 마구 치솟는 것이 성장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깊이를 키우는 것이 성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서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해답이다. 비록 맨 마지막에 완전히 밝혀지기는 하지만, 내내 복선으로 깔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지금 순간을 즐겨가면서 스스로의 성장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살아라, 라는 것. 사실 국내에 아직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동 작가의 여러 청춘 관련 작품들에서 비슷하게 강조되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한데, 청춘의 성장통을 외면하지도, 그것에 매몰되지도 않으며 여하튼 계속 성장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담담하게 던져주는 방식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 대비되는 속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이고, 사이가 좋으면서도 서로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고고몬스터』같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주거나 『철콘 근크리트』같이 추상적인 방식으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핑퐁』은 이 메시지를 장르 스포츠물의 줄거리 형식 속에서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구사해내는 중용을 발휘하고 있다. 뚜렷한 해결보다는 무언가 모자라지만 계속 다음 단계를 살아나가는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질 독자들도 있겠지만, 바로 그것이 이 작가의 작품세계의 매력이다.
스포츠물로서의 재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마츠모토 타이요 특유의 시각연출의 공이 크다. 광각과 다양한 시점변화로 점철된 칸연출은 탁구라는 좁은 공간의 스포츠가 지니는 격렬함을 역동적으로 강조해준다. 그리고 공이 공중에 멈출 수 밖에 없는 만화의 속성을 역이용, 빠른 속도와 한없이 시간이 정지한 듯한 틈새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색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또한 작가 특유의 대담하게 거칠면서도 세밀한 데생은 성장하는 소년들의 장난끼와 무정형성, 뻗어나가는 성장과 동시에 현실적인 세상의 다중성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마츠모토 타이요풍 그림에 담겨 있는 ‘쿨함’은 멋진 패션 모델들의 ‘쿨함’이 아니라, 불안과 낙관, 여하튼 질러보자는 도발성에서 나오는 그것이다. 타이요의 그림체가 주는 정서는 『GO』로 유명한 소설가 가네시로 카츠키의 문장이 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행히도 출판사는 작가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주기 위한 좋은 품질의 도서를 만들어냈다. ‘애장판’이라는 이름표에 안주한 것이 아니라, 성의 있는 번역과 인쇄, 멋진 표지디자인, 컬러 페이지 복원 등 이전 출판사의 판본이 지난 세기에 절판되었던 이래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독자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고도 남는다. DVD로 출시되는 영화판과 공동 판촉이벤트를 하는 등의 마케팅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좋은 작품을 좋은 품질로 만들어내면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또다른 사례를 남겨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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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본문에서는 좀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황당한 초월적 기술의 경연장인 아스트랄 스포츠물도 만약 정말 안면몰수하고 끝까지 가주기만 한다면 충분히 나름대로 명작(괴작?)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얼마나 재밌는데… 아, 그리고 하나오에 이어서, 열심히 마츠모토 타이요 작품들을 좋은 품질로 내주고 있는 애니북스 출판사 만세.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
핑퐁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애니북스 |
!@#… 간만에, 그냥 돌아다닌 사진 포스트. 추운 계절을 맞이하여, 여름 사진이나 좀 올려볼까 한다. 올해 여름에 한번 다녀왔던 밀워키의 독일 축제(German Fest 2006) 현장. 알사람은 알다시피 독일과 적지 않은 인연이 있는 capcold인지라, 오랜만에 고향에 놀러온듯한 분위기 속에서 해피하게 즐겼던 행사. 여튼 적지 않은 양의 사진인지라, 살포시 접고 시작하자.
!@#… 돈이 개입되면 ‘나’만 보인다. 최근 ‘사이언스’ 저널 (황사기 사건, 특히 KBS 홍사훈 기자의 일급 황빠질 덕분에 한국에서 일반인들에게도 무척 유명해진 바로 그 지면)의 뉴스란에 소개된 심리학 실험 논문의 결과다.
!@#… 내용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네소타 대학의 Kathleen Vohs 교수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데려다놓고는 한 그룹에는 다른 과제를 주어주기 전에 돈과 관련된 사전 자극을 주었다 (돈에 관한 에세이를 읽게 하든지, 여러가지 돈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게 하든지, 기타등등). 그 뒤 퍼즐 풀기 과제라든지, 설문지 등을 풀게 했다. 그 결과 사전에 돈을 떠올리게 했던 그룹의 사람들은 과제 풀이에 있어서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경향이 더 강했으며, 타인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라고 하자 의자를 더 멀리 떨어트려 놓고, 설문지에도 혼자하는 활동들을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더 비사회적이 되었다는 것. 돈이 떠오르면 기를 쓰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가버린다는 결론 되겠다.
!@#… 그러고보니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유리에 은칠을 하면 거울이 된다고. 즉 돈이 개입되면 자신만 보이게 된다는 것. 동감이다. 돈이 단순히 물질적 축적의 의미에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옛날과는 다르다. 현대 사회라는 것에서 돈은 소비의 방식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역할까지 하니까 말이다. ‘I am what I eat’ 가 아니라, ‘I am what I spend‘다. 위의 연구는 아마도 돈과 사회성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듯 하지만, 제멋대로 지엽적인 것에 관심가지는 capcold는 바로 이 소비에 의한 정체성이라는 측면을 떠올린다.
!@#… 원래 소위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이 있다. 베블렌이라는 학자가 19세기 말 미국의 졸부들의 생활행태를 묘사하면서 이야기한 것으로, 그들이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생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과시를 위한 소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생각, 하나의 다른 가설이 필요하다. 뭐랄까, 사람들은 흔히 과시의 대상을 남에게만 한정하곤 한다. 하지만 남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과시의 대상이라는 것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자기 주변의 남들과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들과 자신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정체성을 위해서 과시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에게도 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받으려는 행동이 같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부르디외의 문화취향 이론과 베블렌의 소비 개념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 활동은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다. 단지 물건이나 서비스 자체보다, 그것을 향유함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라는 것이다. 커피의 맛 자체가 아니라, 비싼 아이스 후라푸치노를 먹는다고 남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언론학의 프레이밍 이론을 아주 멋드러지게 대중화시키고 있는 레이코프의 이론에서 사람들이 자기 이익보다는 궁극적으로 정체성에 따라서 투표한다고 주장했듯, 사람들은 소비 역시 즉각적 효용보다는 정체성에 따라서 한다는 생각이다. 굳이 말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과시인 셈이다.
!@#… 뭐 이런 이야기를 어디다 써먹을까. 예를 들어 마케팅. 제품의 우수성 어쩌고는 그냥 기본 전제로만 깔아야 할 따름이다. 이것을 소비하기에 바로 당신은 ‘어떤 사람’이다, 라는 접근, 바로 그런 컨셉이 명확해야 팔린다 (예: 애플의 아이팟). 단지 우수한 사람이다 잘난 사람이다라는 식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개성이 확립된다는 것. 이것을 하면 우수한 사람이라는 식의 성장지향 천민자본주의 마케팅도 물론 여러 분야에서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레벨의 경쟁이 이루어질 경우, 또는 판이 전체적으로 망가진 경우, 또는 취향의 힘이 강력한 변수가 되는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이런 정체성 소비가 한층 중요해진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바로 성찰의 시스템. 남에 대한 과시라면 통제 불능이다. 사회의 성장 속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말라 죽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 순수학문(…-_-;)이나 성명서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과시의 경우, 성찰적 훈련을 통해서 일정 부분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발달시킬 수 있다. 즉 성찰의 인지적 훈련에 대한 단초가 되어주는 것이다. 내가 소비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곧 나는 어떤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내가 취하고 있는 방법은 과연 합리적/효율적/심리적으로 만족스러운가라는 한층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돈, 즉 소비가 지니는 역할을 부정적으로 폄하하지 않고 현대적 정체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현대사회 속에서의 성찰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 돈은 자꾸 ‘나’를 보게 한다는 연구가 나왔다면, 돈을 ‘나’를 돌아보는 도구로 사용해보자는 발상을 파고 들어가보자는 작은 생각이다. 나중에 뭔가 자료만 잘 뽑아낼 수 있다면 논문이나 써볼까… 아마 무시당하겠지만.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