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반전기금 광고, 스머프 마을편

!@#… 첨부파일 클릭. (벨기에 현지의 뉴스클립인 듯. 뭐 따지고 보면 불법동영상이지만, 무려 그 쪽에서 뭐라고 할리가 만무하니까. )

!@#… 스머프 마을 폭격. 아주 화끈하게 박살내는 광고. 반전기금 모금용 광고. 유니세프 벨기에 지부 제작. 효과가 좋았다고 함. 인쇄버전과 동영상 버전 두 종류가 있음. 둘 다 원작자 고 뻬요의 유족들의 동의하에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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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것 보다 대략 304958.304배 정도는 더 멍청하기 때문에, 평화니 공감이니 동정이니 말로는 아무리 떠들어도, 바로 자기와 연관되어 가치있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없으면 말짱 황이다. 지금 미국에서 파키스탄 지진 기금 안모이는 거 보면 안다…(빈라덴 숨겨준 나라라고 잘 망했다라고 하는 찌질이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_-;). 수만 이라크 시민들 죽는 것보다, 어린시절을 함께한 가상의 파란 캐릭터들이 죽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세상에 알맞은 멋진 광고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유니세프 한국지부에서 만든다면, 어떤 아이템을 써먹을 수 있을까, 적잖이 궁금해진다. 하기야 그런데 한국은 어차피 여러 비극적 사건들과 징병제 덕분에 문화속에 전쟁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으니 그 이상의 쇼크를 주기가 쉽지 않기는 할꺼다. 음… 설마 또 아기공룡 둘리를 써먹어야 할까? (농담)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아아드만 스튜디오 창고 전소.

!@#… 10월 10일 월요일 아침, 아아드만 스튜디오(월레스와 그로밋 외) 창고 전소. 촬영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아직 창고로 옮기지 않은 최신작 정도만 빼고는 모든 소품, 세트, 원본 촬영 필름… 한마디로 역사 일체 소멸. 최신작 “The Curse of the Were-Rabbit” 는 얄굿게도 미국 박스오피스 정상 차지.

Scene from “The Curse of the Were-Rabbit”. (c)Aardman Studios. 

!@#… 하지만 이 사건 속에서 가장 빛나는 한마디를 남긴건 W&G 시리즈의 닉 파크 감독 자신.

Mr Park, who began making animations in his parents’ attic in Preston, when he was 13, said that, after the earthquake in Pakistan, the fire was “no big deal”.

13살의 나이에 프레스톤에서 부모님 다락방에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던 파크 감독은, 파키스탄의 지진에 비하면 이번 화재는 사실 “큰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이 정도로 개념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긍.

PS. 한국 언론에서는 적당히 영국언론의 초기 톱기사만 베껴서 들여와서 아드만 스튜디오가 완전히 다 날라간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좀 더 많은 것이 아직 남아있다-_-; 화려한 외출의 로켓, 오스카 상들,  원본 네가티브 필름 등은 다른 전용 장소에서 보관. 게다가 원래 클레이 애니메이션용 캐릭터들 자체는 보관을 안한다(보존 문제가 있어서… 너무 오래두면 뭉게진다. 장기 전시 같은 것에 사용되는 것은 촬영용의 캐릭터 원본이 아닌 전시용으로 따로 처리한 물건들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훌륭한 논리라는 것

!@#… 고등학문, 특히 사회과학이란,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증명하는 훈련이다. 생각하는 바는 어차피 먼저 정해져 있는데, 마치 그것이 체계적이고 훌륭한 과정에 의해서 탄생한 것처럼 나중에 얼버무리기 위해서 자료와 논리를 그 사이에 끼워넣게 된다. 즉 좋은 논증이란 단지 내적으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막나가든 어쩌든 결국 원래 말하고 싶었던 그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음, 골치아픈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논증에 관한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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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피쉬’는 작고, 노랗고, 거머리처럼 생긴데다가, 아마 전 우주에서 가장 괴상한 존재인 듯. 이것은 뇌파 에너지를 먹고 사는데, 모든 무의식 수준의 주파수를 흡수한 후, 의식 수준의 주파수 및 두뇌의 언어중추에서 잡아내는 신경 시그널로 이루어진 일종의 신호체계를 텔레파시적 과정을 통해서 발산한다. 그래서 실용적인 결과는, 이것을 귀에 쑤셔넣으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설령 어떤 언어라 할지라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들으면서 뇌파의 신호체계를 해독하게 되는 셈이다.

뭐, 이런 정신 혼미해질 정도로 유용한 것이 단지 우연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을 가능성은 무지막지하게 희박하다; 그래서 어떤 사상가들은 이것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극의 확고부동한 증거로 택하고 있다. 논증은 대략 이런 식이다:

  – “나는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를 거부할지니” 라고 신이 말한다. “증명은 믿음을 부정하고, 믿음이 없다면 나는 무(無)에 불과하도다.”

  – “하지만요,” 라고 인간이 말한다. “바벨피쉬가 결정적 증거잖아요, 안그래요? 이것이 당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인데, 그러니까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거네요. 증명 끝!”

  – “어머나” 라고 신이 말한다. “그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그리고는 논리 속에서 펑하고 사라져버린다.
  – “뭐, 쉽구먼.” 인간이 말한다. 그리고 앵콜로 이번에는 검은색이 곧 흰색이라는 증명까지도 해내고, 다음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죽어버린다.

———- Douglas Adams,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국내 출판본이 아니라, 그냥 김낙호 직접 번역문. 국내판은 극악하다고 소문난 옛날 판본도, 훨 나아졌다는 최근 판본도 사실 읽어본 적 자체가 없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라는 제목 자체부터가 그리 해피한 번역이 아니지만. “The Hitchhiker’s Guide to ***” 라는 말은 원래 “*** 초급 안내서”라는 말이다. 뉘앙스로 따지자면 “***,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정도의 발랄한(?) 표현. 물론 이 책에서는 초반에 주인공들이 정말로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하지만, 그건 오로지 만담개그를 넣기 위한 것이었을 뿐. -_-; 아니 사실 애초에 그냥 무단승차한 거지, 그게 어디가 히치하이킹인가. 게다가 나중에는 그 정도 개념마저도 다시 안나오다시피하고.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

성인들의 이야기 – <느티나무의 선물> [기획회의051003]

!@#… 사실을 고백하건데, 나는 지로 다니구치의 만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그의 만화들이 만화로서 우수하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관계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향수, 따듯한 인간애로 세상의 모순마저도 통째로 덮어버리는 박애정신은 capcold의 코드에 적잖이 거슬린다. 연출 측면에서도 만화적 공간구성의 장점들을 살리기보다는 ‘영화적’ 미장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너무 틀이 꽉 짜여져있다. 하지만… 중년 (남성) 독자들이 만화책 한권 추천해달라면, 그들의 취향에 맞을 만한 우수한 만화로서 별 망설임없이 추천해주곤 한다. 뭐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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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이야기 – <느티나무의 선물>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든 게임이든 음악이든 대중문화 전반의 특징이 바로 대중적 성공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중 – 즉 나름의 주관에 따라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상품을 소비해줄 수 있는 일반인들의 폭은 갈수록 넓어진다. 특히 연령적인 측면에서, 점차 더욱 일찍 대중문화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대중문화의 코드들 역시 점차 저연령화 되는데, 대략 중학교 1학년의 교양 수준에 맞추는 것이 관례가 된지 오래인(물론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텔레비전 교양/오락 프로그램의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코드에 대한 욕구 역시 커지고 있다. 특히 오랜 역사동안 저연령에 대한 포섭능력이 최대장점인 것처럼 포장되어왔던 만화라는 대중문화 양식에 있어서, 성인들이 ‘자신들만의 코드’에 맞는 작품을 원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성인들을 위한 만화란 무엇일까? 섹스나 폭력 같은 것으로는 턱도 없다. 그것은 성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취향인 것이 아니라, 성인이 아닌 자들에게 사회적으로 그 쾌락을 금지시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단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느티나무의 선물>(다니구치 지로 / 샘터)이다. 읽어보는 사람마다 “아, 이것이 바로 성인의 이야기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 작품의 무엇이 과연 그렇게 성인스럽다는 것인가. 느티나무가 모든 것을 주는 것이 꼭 부모님들의 무한한 사랑 같아서? 글쎄. 그런 식으로 보자면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보고 감동을 받기를 요구하는 동화류들과 기본 메시지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감정이입할 주인공들이 다 중장년이라서?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어른들만 나오는 아동물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성인스러움’은 좀 더 간단하고 쉬운 곳에 있다.

청소년/아동에게는 아직 없고, 성인에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바로, “과거”다. 지금을 신경 쓰고, 앞으로의 성장을 힘쓰느라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바로 청소년의 고민과 갈등이라면, 성인에게는 뒤돌아볼 과거가 있다. <느티나무의 선물>은 바로 그 과거 돌아보기가 만들어주는 성인적 감수성을 잔뜩 적셔주는 단편들의 모음이다. 우쓰미 류이치로의 원작 단편 소설들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이 작품에서, 다니구치 지로의 중장년 주인공들은 모두 지금의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어른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하여, 그것이 새로 이사온 집의 느티나무든, 오랫동안 못본 동생의 전화든, 그림 전시회든 간에, 과거를 돌아본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한층 인간적이고 따듯한 생활로 다시 방향을 잡아간다는 이야기 구도의 반복이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가 있는가 없는가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다. 청소년 취향 작품에도 나름대로 과거 사연을 지닌 멋진 주인공들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즉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거가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해주는 것인가, 라는 차원이다. 청소년은 과거의 반성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무언가를 더 이루고 싶어 아등바등 노력하는 성장을 하는 미래 지향이다. 과거는 극복의 대상이고, 다음 성장의 ‘이전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인은 과거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가 과연 무엇인가 반추해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는 좋았든 나빴든 간에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다. 이것이 바로 성장 중인지 성장이 이미 끝났는지에 대한 차이다. 성인은 성장에 대한 욕심이 이미 한풀 꺾인 존재들이다. 아 물론 세속적인 출세를 여전히 꿈꾸기는 하지만, 그것조차 나름대로의 현실론 앞에서 스스로 한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성인이다.

미래를 위한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과거의 정서는 때로는 복고 정서와 묶이기도 한다. 과거 “좋았던” 어떤 순간을 되돌아보며, 그다지 좋지 않은 현재와의 낯선 격차에 즐거워하는 감수성의 경향 말이다. 복고정서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과거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현재를 위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잊고 과거에 잠시 칩거하기 위한 과거.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인정서가 아니라 그냥  현실도피일 뿐이다. <느티나무의 선물>은 현명하게도 복고 정서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직하게 사람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사람이 아닌 느티나무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표제작 단편마저도, 정확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거다. 그리고 그 과거의 결과, 계속 느티나무와 함께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새 집주인의 모습이 바로 성인이다.

이러한 정서를 묘사하기 위한 다니구치의 화풍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특별히 역동적인 화면이나 재기발랄한 연출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세밀한 배경 덕분인 것도 아니다. 다니구치는 성인의 표정을 그린다. 말은 안해도 사연이 가득 담긴 표정, 의지보다는 관조가 넘치는 눈빛, 원만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성인들의 세계에서 연마된 듯한 적당히 경직된 딱딱한 표정. 특히 말없이 눈빛을 아래로 내리는 묘사에 있어서 성인의 정서를 연기력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화풍이 완전히 고착되어,  중간중간 드라마틱한 설정의 줄거리가 선보이는 부분에서도 그다지 강렬한 사건의 느낌으로 와닿지 않는 단점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과거 회상 속 아이들마저 어른의 눈빛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성인만화가 다 이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느티나무의 선물>은 담백한 시골 나물반찬 같은 책이다. 물론 성인의 건강에 좋고 성인만이 즐길 수 있는 그립고 반가운 풍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심심한 것만 먹어서야 식사가 즐거워질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끔 이런 풍미를 즐기는 것, 성인의 특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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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모범적 일상은 아니지만… <생활의 참견>[기획회의050919]

!@#… 그간 밀린 포스팅 떨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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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 일상은 아니지만, 모범적 일상만화 – <생활의 참견>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코너들 가운데 상당수는,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경험담을 털어놓는다는 것의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충격적인 소재와 극적인 전개, 놀라운 특수효과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야기 자체의 힘만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일상성의 매력, 공감의 힘이라고 불리우는 그 이상한 흡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일상성의 재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감’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다지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모든 것을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경험과 가까운 것으로 적극적으로 변환시켜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디테일이다. 타인의 이야기 속에 담긴 소소한 디테일이 내가 경험적으로 기억하는 어떤 것과 일치하면 마음 놓고 전체 맥락에 공감해버린다. 거꾸로, 전체 맥락이 공감 갈 만한 내용이라도 디테일이 미묘하게 다르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화자다. 이야기가 가상적인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의 생활이다, 라고 현존하는 주체가 부여되면 공감의 수준은 더욱 올라간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질때, 남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네들 사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아예 소재로서 일상적 살아가는 이야기나 생활을 다루는 것을 ‘일상물’이라고 한다.

상상력 풍부한 모험담, 자유분방한 표현법을 주로 발달시킨 만화에 있어서 이 분야는 사실 비교적 늦게 개척된 것 가운데 하나다. 논픽션(다소의 각색과 과장은 너그럽게 허용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에세이, 일기, 사연소개라는 컨셉이 한국에서 만화와 만나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만화를 발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성장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져서, 지금은 당당한 주류 장르 가운데 하나가 되어있다. 물론 항상 그렇듯이 함량미달의 물건들도 많지만,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들의 맥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생활의 참견>(김양수 / 애니북스)을 이러한 장르적 유행에 편승한 작품이라고 평한다면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이 장르의 사실상 선구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월간 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지난 98년부터 꾸준히 연재해오던 것들의 묶음이다. 월 1회 한 페이지 남짓 연재되던 것이기에 7년만에야 단행본 분량이 축적되었고(사실 그나마 글이 절반이다), 웹사이트에서 연재한 것이 아니라 종이잡지에서 한 것이기에 여타 일상만화보다 전파가 덜 되었을 뿐이다. 

<생활의 참견>은 좋은 일상만화의 장점을 고루 지니고 있다. 자신과 자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부여되는 현실감, 세부적 디테일을 맛깔스럽게 포장해내는 솜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치 10년만의 동창회 술자리에서 입담 풀어놓듯이 재미있게 전개시키는 이야기꾼 기질. 또한 각 이야기를 짧게 끊어주면서 일상 속 ‘에피소드’를 각인시키는 솜씨 역시 출중하다. 독자들은 작가의 삶 자체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감하고 즐길만한 편린들을 원하니까 말이다. 특히 책의 전반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80년대 초의 청소년기인데, 그 때가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격변기였기에 참 기억을 같이 나눌 일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유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 그때는 이런 게 다 생겨났었지. 우리 동네에도 그게 있었는데, 그 때 그런 친구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엉뚱하게도 **한 짓을 해버렸어!” 물론 좋은 마무리를 하려면, 결코 “그때가 그리워요” 식의 이상한 감상주의로 끝나면 안된다. 단편적인 재미있는 기억이 샘솟는 것과 정말로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예를 들어 군대 개그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좋은 일상만화의 또 다른 조건은 바로 일상의 공감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생활의 참견>은 이 것 역시 잘 충족하고 있다. 억지로 감상주의를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웃기려고 오버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림체마저도 부담없고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세밀하거나 박진감 넘치는 데생과는 애초부터 방향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더그라운드 만화에서 종종 활용하는 위악적인 낙서체의 느낌도 아니다. 그림과 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만화라는 매체의 매력을 확실하게 활용하면서도 절제할 줄도 아는 균형감각 역시 좋은 이야기꾼의 증거다.

하지만 모든 일상물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인 소재의 고갈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듯 하다. 사실 사람의 일생이란 워낙 재미있는 일들이 한정되어 있는데, 남의 이야기를 잘 포장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포장하는 것과 전혀 들어가는 힘이 달라진다. 당장 이 책 한권 안에서도 직접 겪은 일과 ‘사연을 소개받았다’는 일들은 특히 디테일의 활용에 있어서 워낙 재미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컨셉을 이제부터 사연보다 잡상으로 바꾸기 시작한다면? 책 말미의 섹션을 차지하고 있는 잡상류 작품들의 면면을 볼 때, 작가의 특기분야가 어느 쪽인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아니 사실 책으로서 컨셉 통일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예 말미 섹션 자체를 넣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국, 방법은 끊임없이 폭넓은 재미있는 생활을 만들어나가서 자꾸 현재진행형으로 소재를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다. 잘 해나가면 7년 뒤에 또다시 단행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마 독자들 역시 기쁜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여하튼 지금은, 일상에 즐겁게 참견당해서, 또는 참견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같이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책이 나와줘서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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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시체신부(The Corpse Bride) 보고오다.

!@#… 팀버튼신작애니메이션,시체신부(TheCorpseBride).알사람은알다시피,<크리스마스악몽>과비슷한분위기의퍼펫애니메이션.목소리(+캐릭터모델)는조니뎁과헬레나본햄카터.학생할인극장에서봄.한줄감상:팀버튼의겨울연가…라면좀과장이지만,치정살인,집안간갈등,엇나간사각관계,신랑보쌈,두번의결혼식…신부가반쯤썩은시체이고해골들이캬바레를한다는소소한사항들만빼면순도100%멜로드라마.연인과함께보길(정말?).짐작하겠지만,전체적포스는<크리스마스악몽>보다부족한편. [예고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