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라 템플 1/220> / FSS

!@#… FSS에서 등장하는 모터헤드(MH, 즉 로보트) 중, 가장 얍삽한 전법을 쓰는 녀석을 하나만 꼽으라면? 개인 취향 차이야 있겠지만, 나라면 아슈라 템플을 꼽겠다. 어깨에서 팔이 두개 더 나와서 상대방의 어깨를 붙잡고, 그 동안 도끼로 졸라게 내려 찍는다는 설정. 그리고 상대 MH가 어깨가 움직이는 타입이라면? 피한다. 즉… 얍삽하다. 쪼잔하다. 비굴하다. 그러다가 Traffics 에피소드에서, 방돌을 만나서 처음에 얕봤다가 대판 깨진다. 그런 주제에, 모양은 나름대로 꽤 멋있다. 동글동글한 것이, 귀엽다. 게다가 빨갛다. 대략, 토마토. 그래서 여차저차 구해서 만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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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차선감소 : 인터넷 거버넌스

 

 

!@#…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있다.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 기술표준, 주소관리체계, 도메인 이름 부여, 컨텐츠에 대한 관리 체계 등등, 인터넷의 (메타)미디어적인 기능들을 조율하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주 상식적으로, 그런게 저절로 될 리가 없지 않는가?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신 당신, 구석에서 손들고 서있기를)  인터넷이 탈중심적이고 자유롭니 어쩌니 하는 것도, 누군가가 뒤에서 조율할 것은 다 조율하면서 의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현상이고 주장이다. 미디어의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산물이 아닌, 결정의 산물이다. 누가 어떻게, 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모르면 알게 모르게 바보되기 쉽상이다.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말이다. 대략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2001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인터넷 거버넌스 연구센터(cigs)에 연구원으로 있을 때 만든 녀석이다; 지금 만들라고 하면 꽤나 또 고쳐야 할 개념들이 있을 듯) 

!@#… 뭐 여튼. 맨 위에 걸어놓은 저 그림. 인터넷이 점점 더 ‘넓어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점차 선택의 폭은 좁아질 것이라는 냉소를 담고자 사용하고픈 경고판이다. 전방 차선 감소. 그래, 인터넷의 앞날에는 앞으로 몇차선이 남아있을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사이버 공론 형성의 공간: 전자게시판의 명암 [대학원 정보사회론 0206]

!@#… 대학원에서, ‘정보사회론’ 수업의 텀페이퍼로 전자게시판의 토론이 “어떻게 하면 개판이 되는지”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나중에 나 자신도 스스로 더 파볼 주제이기는 하지만, 혹시 또 누구 다른 사람이 이걸 보고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한번 올려본다. 떠오르면, capcold에게도 알려주시길 바람. 본문은 첨부파일.

(요약) 제목: 사이버 공론 형성의 공간: 전자게시판의 명암

“…즉, 인터넷이 하나의 ‘가능성’에서 ‘일상적인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서, 전자게시판 상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한가에 대한 당초의 기대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의 부정적인 기능들과 회의적인 발견들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자게시판이 합리적이고 열린 토론의 장으로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쉽지 않은 – 아니, ‘부정하고 싶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전자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어떠한 것들이 공공영역의 형성에 있어서 꼭 필요하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어떠한 요소들인지에 대한 개념화가 필요하다.”

1. 문제제기

2. 연구문제 및 연구방법

3. 전자 게시판에 관한 이론적 논의
 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나. 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문어적/구어적 속성에 대한 논의
 다. 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Telelogic/dialogic 속성에 대한 논의
 라. 새로운 범주구분 제안: ‘턴-바이-턴’ 대 ‘실시간’

4. 게시판 토론의 양상 
 가. 참여자 측면: 참여자의 문제
 나. 참여자 측면: 정체성의 문제
 다. 언어속성의 측면: 구두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
 라. 토론진행의 측면: catch-up의 문제
  1) ‘양’의 문제
  2) 게시판의 기술적인 장점으로 인한 문제
 마. 토론진행의 측면: 진행 일반의 문제

5. 대안들 
 가. 양의 문제
 나. 토론관리자의 도입
 다. 토론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에 대한 인식 확장

6. 결론

 

—- Copyleft 2001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잃어버릴 뻔한 삶의 조각들을 찾아서: 최규석 단편집 ‘공룡둘리’ [책속해설]

  …필자는 여러 지면에서 현실과의 고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젊은 만화가들의 경향성을 꽤 강도 높게 비판해온 바 있다. 삶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고민들보다는, 장르적 규칙만을 소재로 조합형으로 만들어진 매끈한 엔터테인먼트 코드의 덩어리 – 한마디로 쭉정이만 남는다는 것이다. 

  최규석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몇 안되는 젊은 작가다. 시각적으로도, 미소년미소녀 같은 장르 코드나 화사한 기교에 의존하기 보다는, 거칠면서도 정확한 선과 뚜렷한 데생, 주제와 이야기 중심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대부분의 재능을 할애하고 있다. 아직 ‘장편’작품을 남기지 못한 신인에게는 과분한 평가일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마치 막일로 단련된 근육질 마냥 투박하고도 탄탄하다. 드라마틱하고 형이상학적 고민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주변에서 약간만 자세히 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소외와 모순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온다. 하지만 최규석의 잠재력은 단순히 “어둡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현실의 범주에서, 때로는 절묘한 상상력의 비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심지어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산다는 것의 업보: <사랑은 단백질>

  <사랑은 단백질>은 본 단편집의 문을 여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살아가는 건 누군가를 밟고, 죄를 지어가며 쌓이는 업의 연속이다. 뭐 그렇지만 결국은 인간은 고기를 먹고 사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동물들 아니겠는가. 죄의식을 가지든, 무감각하든, 그 사실 자체만은 여전히 변함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닭집을 하는 닭사장, 족발집의 돼지사장의 처절한 희극성이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한다. 전체 주제를 압축해서 다시 재현해내는 돼지저금통의 캐릭터도 압권이다. 풍자와 유머의 칼날을 잔뜩 갈아서 한껏 펼쳐보이기로 작정한 작가의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약자 위의 삶: <콜라맨>

  원래 최규석은 <솔잎>이라는 작품으로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군입대로 인하여, 작가의 정기 지면 데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대후, 작가는 다시 ‘데뷔’를 했다. 2002년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의 극화부문 당선작으로, 만화판의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첫 사건인 <콜라맨>의 등장이다. “…페스티벌용 작품의 경우 모호한 이야기에 복잡한 연출이나 화려한 작화실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익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반면, <콜라맨>은…”는 당시의 심사평이 주목의 이유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공동작업을 한 서경순이 주로 작업했다는 골목길 배경의 표정들과, 투박한 삶을 사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이야기의 조화가 돋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밟고 그 기반 위에서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전형적인 우리 삶을 묘사하는 접근법이 더욱 매력적이다. 이러한 주제와 시각은, 이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공모전을 노린 해피(?)엔딩’이 아직은 약간 어색한 수작.

인생사의 블랙코미디: <공룡 둘리>

  <콜라맨>이 만화판에 관심있는 자들에게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알렸다면, 일반 독자층에게까지 그 차원을 확대한 것은 바로 이 작품 <공룡 둘리>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탄생 20주년으로 ‘주민등록증 발급’이니, ‘둘리의 거리 제정’니 하고 호들갑을 떨때 난데없이 한켠에서 등장해서 큰 화제를 모았던, 본 단편집의 표제작. 공모전이나 졸업작품집이 아니라 본격 상업지면에서 데뷔를 한 첫 작품이다. 국가대표급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을 처절하고 남루한 현실로 끌고들어옴으로서 만들어지는 극한의 블랙코미디. 다만 워낙 발상의 충격이 크다보니, 독자들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슬퍼해야할지를 헷갈리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최규석식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한층 명쾌하게 정리하며, 곤궁한 현실과 역설적 유머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인 수작.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왠지 둘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도록 하는 힘을 지닌 만화로, 단지 오마쥬나 패러디 정도로 의미를 한정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한창 젊고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서 발굴하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에 개재.

인간이 만든 것: <리바이어던>

  2003년 상명대학교 졸업작품집에 실린 단편. 권력, 지배에 대한 짧은 우화이자, 유쾌한 소품. 스스로 왕이 되지 않겠다는 영웅이라는 지극히 합리적 발상에서 시작하는 모험이,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데뷔작이었던 <솔잎>에서 다루었던 개인과 사회의 충돌, 그것을 통해서 처음에는 개인이 파멸하지만 결국 사회가 점차 바뀐다는 주제는, 이제는 살짝 비틀어진다. 개인에게 파멸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그 개인들 스스로였다는 자괴감이 밝고 명랑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친 상징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리바이어던이 커다란 심해의 뱀으로 등장하는 얄팍한 장르모험물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계약에 의해서 형성시킨 절대적인 힘”이라는 토마스 홉스의 비유는, 그동안 더욱 치열한 고민들 통해서 주제의식과 여유를 성장시킨 작가의 작은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이다. 과장되었으나 간결한 컬러 그림체가 색다른 매력을 주는 작품.

택일의 기로에서: <선택>

  한가지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선택이란 필요없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모습들을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면 그때가 바로 선택의 순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선택의 순간이 보통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학교졸업과 함께 ‘사실 세상은 이런 저런 것이 있단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낙오될꺼야’라고 강요받고, 복잡한 갈등과 생각들이 ‘승자와 패자’로 단순화된다. 그 속에서, 과연 ‘패자’를 선택할 무모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어디있을까. <선택>에서 주인공이 몽둥이를 들고 결국 내린 것은 그러한 선택이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그 환성의 밑에 묻혀있던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것은 작가로서의 선택인 셈이다. <리바이어던>과 함께, 졸업작품집에 실린 작품. 마지막의 응원장면은, 선택을 내린 개인이 다수로 확장되는 이미지라고 한다.  

…진정한 치열한 고민은 더욱 진행될 수록, 전체적 시각과 여유를 낳는다. 그리고 여유는 유머를 만들어준다. 최근의 단편작품들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처절함과 블랙유머의 조화는 작가의 성장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다소 고지식할 정도로 직선적인 연출 호흡이 성장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갖 첫 단편집을 묶어내는 ‘신인’에게 이 정도의 기대를 가져보기는 오랜만인 듯 하다. ‘리얼리즘’이라는 흔한 용어로는 묶어내지 못하는, 비굴한 현실과 만화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이야기꾼의 매력이다. 

  <만화, 내 사랑>이라는 책에서, 박재동은 오세영을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라고 칭찬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최규석을 “청테이프를 붙일 줄 아는 작가”로 칭송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처절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 투박하면서도 정직한 접착력으로 앞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달라붙기 바란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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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미정> – 변병준식 그림이야기의 성찬

단편집의 말미에 실리는 평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꽤나 난감한 일이다. 주례사 비평의 위험성은 기본이며, 더욱이 단편집은 그 속에 포함된 개별 작품들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보통이라서 하나의 책으로서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장황하게 작가론을 늘어놓아서 독자들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도 어색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한 작가의 창작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들과 그것의 진행방향을 엿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통의 단편집은 음반으로 치자면 B-SIDE 모음 같이, 작가가 보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와중의 틈새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즉각적인 시도들을 자유롭게 담고 있다. 즉 보다 직접적으로 날것 그대로의 사색과 그 발전과정의 흔적에 접속할 수 있는 접속점인 셈이다.

많은 비평적 찬사를 얻어냈던 <프린세스 안나> 이후의 변병준은 주로 도시를 그려내는 작가다. 단순히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것도, 도시하면 떠오르는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아니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상황들과 정서가 대부분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만화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그림들’이라고 생각해볼 때, 변병준이 묘사하는 도시공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 하다. 친숙한 모습의 도시는 그 현실적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정서를 듬뿍 담은 정서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때로는 지극히 쓸쓸하고 차가운 정서가, 때로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적인 무언가가 그 공간 속에서 암시되고 있다. 이미 공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그냥 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작가가 단편 위주의 작업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병준의 만화의 주인공들은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반영이다. 공간배경과 하나가 된 그들의 생활 모습이 먼저 주어진 후, 이들의 과거 사연이 지나가듯 암시된다. 그 속에서는 극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결과를 낳기 보다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무언가를 매듭짓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득찬 밀도의 표현적 그림들로 인하여 독자들은 캐릭터로의 이입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작품 속 공간으로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입보다는 관찰을 유도해내는 그러한 화법 속에서 때로는 지나가는 농담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사연을 두 다리 건너서 전해듣는 것처럼 드라마가 펼쳐진다.

본 단편집 <미정>에 묶인 것은, 작가가 화풍의 다변화를 시도한 2000년대 초반의 일련의 단편들이다. 첫 단편집 <첫사랑>이 성인취향 개그물과 도시의 차가움, 농촌의 따스함라는 여러 관심사들의 모음이었다면, 이번 단편집은 도시공간이라는 하나의 큰 컨셉 아래에서 다양한 화법을 시도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들의 큰 줄기는 무언가를 찾지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 상처입은 소년소녀의 이야기 등 두 가지인데, 그 중 전자는 작가의 정서적, 또는 생활의 자화상을 녹여낸 흔적이 짙게 베어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본 단편집의 첫문을 여는 것은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미정>이다. 도시의 차가움과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나서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모티브를, 만화에서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변병준 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자화상적 서정과 상처입은 도시남녀라는 두 축 모두의 출발점인 셈이다. 2003년 봄 <계간만화>에 실린 작품으로서, 당해 1월에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의 전시작가로 현지를 방문하고 있었을때마저도 원고를 작성한 일화 역시 재미있다. 두 번째 작품은 <연두 17세>로, <프린세스 안나>에서 시작한 상처입은 소녀 모티브를 다루는 방식이 이제 완전히 하나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에서의 출판을 위하여 2003년 여름에 작성된 작품이다. 보다 간결하고 능숙하게 도시군상의 비극적 감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그 뒤를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한국 소년만화계의 스토리 작가로서 스타급 위치를 누리고 있는 윤인완과 협업한 <유틸리티>다. 기대만큼의 흥미로운 스토리가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위악적인 어린이들의 표정과 이들이 살아가는 살풍경한 도시공간의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블랙코미디는 또다른 발전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2002년 4월, 일본의 <빅코믹스피리츠> 증간호에 개제되었다. 흐릿한 모노톤의 컬러작업을 시도한 <너의 노래>는 2003년 가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층 친절해진 캐릭터들과 더욱 진일보한 공간묘사가 장점이다. <신일맨션201호>는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개그물인데, 그 쪽 분야의 실력 역시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 증명해주고 있다. 2000년 봄, 작가의 일본 유학시절에 그려진 작품으로, 생활의 자화상이 작가적 망상과 겹치면서 발생하는 유쾌한 코미디다. <빅코믹스피리츠> 2001년 12월호에 개제되었으며, 소학관 코믹스피리츠상에 입선했다. 이 정서는 2001년 가을에 그린 차기작인 <할아버지 힘내세요>의 고양이 개그로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여기서는 망상 대신에 미소녀 여선생이 등장해서 작품을 끌고나가는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활용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내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양승천이 글을 맡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썰렁한 농담을 전달하는 짧은 이야기로, 의인화된 캐릭터들의 상황묘사를 통해서 독자를 농담 속으로 집어넣는 손쉬운 방법이 아닌, 전화통화로서의 전달을 같이 듣도록 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주고받는 남녀의 관계, 그 감수성에 주목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분에 여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골방의 만화가, 즉 작가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이로써 처음의 상상화된 자화상과 마지막의 현실적인 자화상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본 단편집의 여러 이야기들을 감싸안는다.

본 단편집은 변병준이라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는 것인 만큼, 아직도 극복 과정 중에 있는 단점들 역시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의 극적 재미 부족이나, <프린세스 안나> 이래로 이어지고 있는 유사한 이미지의 칸간 연출 반복 등은 아직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변병준식 개성으로 끌어내고, 더욱 깊은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2000년대 초반, 변병준이라는 작가가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성찬인 것이다. 그리고 도시적인 섬세한 감성과 상처입은 소년소녀, 그리고 따뜻한 유머와 당혹스러운 상황의 블랙코미디 등 이 모든 트레이드마크격인 요소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녹아들어간 변병준식 걸작의 탄생이, 앞으로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몇 년전, 한 지인이 변병준을 ‘박흥용의 적자’라고 일컫은 적 있다. <첫사랑>과 <프린세스 안나>에서 그가 보여준 도시풍경과 그 속에 녹아들어간 인간군상들이, 80년대 박흥용이 발표했던 작가주의 성향 단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당시 박흥용 단편집의 제목은 <백지>였고, 이번 변병준 단편집의 제목은 <미정>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으로서 공란을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어떤 여성의 이름일 수도 있도록 고안된 제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이 가운데 어떤 가능성을 발전시킬 것인지, 즉 다음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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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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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코스모스> 속에서 부유하기

<코스모스> 속에서 부유하기

신인 만화작가가 데뷔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가장 놀라움을 안겨주는 경우는 어느 순간 짦막한 단편으로 세상에 선보인 후 오랫동안 숨겨져있다가 온전한 작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력있는 신인을 새로 발굴한 듯한 만족과, 면식있는 작가의 성장한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들을 ‘중고신인’이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작가적 고민으로 인하여 스스로 만족할만한 역량을 쌓을 때까지 자진해서 다시 축적의 길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결심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준의 <코스모스>는 이러한 과정의 결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이한 사례가 될 것이다.

본 작가의 공식적인 데뷔는 97년 봄, <빅점프>에 단편이 입선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김성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97년, 제1회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에서 수상작에 올라와있던 <잠자리는 없다>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보통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들이 기발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특징지어진다면, <잠자리는 없다>의 경우는 오히려 흔한 SF적 발상이지만 잘 정리된 안정적인 연출으로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화풍이었지만, 색채의 연출 활용 등에서 스타일리스트로의 성장가능성이 점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미 충분히 상업지에서 정식데뷔를 할 수 있는 실력이나 감수성을 갖추었음에 분명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연재 소식이 들리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잊혀져갔다. 그런데 2001년, 다시 동아엘지 공모전에서 낮익은 이름, 하지만 그림의 질감은 사뭇 다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본선진출작에 걸려있던 <난...>이라는 단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잊을 만할 때인 2003년, <배바라기>라는 작품으로 다시한번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같은 해,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의 출판제작지원 대상작 명단에서 김성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고, 결국 이렇게 정식 출판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앞의 두 단편을 포함한 본서 <코스모스>의 탄생배경이다.

<코스모스>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작가가 그린 7편의 단편들이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화풍이나 이야기형식, 그리고 분절성에 있어서 독립된 단편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발생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덕분에 독자는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난데없이 4명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 속으로 던져지며, 그 주인공들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난감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이들의 과거 관계를 조금씩 엿보며,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수렴된다. 이것은 분명히 매우 불친절한 방식이며, 창작자도 수용자도 편하게 뒤로 기대어 쉴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는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하지만 동시에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인연으로 서로 연결되는 두 쌍의 남녀, 그리고 그 남루한 현대남녀들의 사랑, 꿈, 환상의 담담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본작의 연출방식 역시, 친숙한 무언가를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필두로 90년대 후반 유행한, 독백조의 관념적 나레이션이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듯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류의 핵심적인 특징인 ‘쿨’한 성격이라기보다는 단지 상호관계에 미숙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앞선다. 상황과 분위기, 인물들은 하나로 섞여들어가기보다는 마치 각각 다른 레이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리얼한 묘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단지 환상 속의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만이 아닌 작품 전반에 걸쳐서 느껴지는 정서다. 나아가, 만화에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자체의 드라마성과 화풍을 통한 정서전달이라는 측면을 볼 때, 작가가 추구한 것은 오히려 이야기 자체의 정서전달과 화풍의 드라마성으로 생각될 정도다. 다시 말하자면, 대사와 드라마 전개는 인과에 의하기 보다는 정서적 흐름에 따라서 여러 주인공들 사이를 누비고 있고, 오히려 시각적 요소들이 다양한 화풍과 상황들을 넘나들며 어떤 특정한 전개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각 에피소드별 주인공의 전환이나 소제목을 통해서 드러나는 전체 정서의 방향잡기, 만화화풍이나 이야기서술 방식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흐름 역시 시간과 인과를 의도적으로  파괴해 나가며 진행된다. 속칭 실험 만화들이 시각적 파격에 대한 집착으로 흐르기 쉬운 것에 비해서, <코스모스>는 이야기 서술 자체를 파기하지 않고도 다양한 층위에서 파격을 실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성공적이고, 때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때로는 신선하고, 때로는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 도전정신 자체는 집요하리만큼 일관적이다. 

첫 이야기인 <올리브그린>에서 주인공인 시우, 연희, 은정, 지철은 서로 만난다. 네 명 모두의 시각에서 각각 그 만남은 묘사되며, 지난날의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난...>에서 시우와 연희의 첫만남이 공상속의 지구파멸과 정체성의 이야기로 유머러스게(?) 묘사된다. 그리고 시간은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연희가 상징물처럼 착용하고 있는 돌고래 목걸이를 처음 줍는 것으로 시작하는 <바다가 오다>의 연희와 은정의 취중환상으로 이어진다. <꿈속의 여인>에서 지철의 성적 환타지가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며, <나의 거리>에서 은정을 향한 지철의 마음이 아예 만화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직접 묘사된다. 이 낯선 변화가 끝난 후 다시 만화로 돌아온 이야기인 <배바라기>는, 4명의 주인공을 벗어나서 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건너뛰며, 연희의 돌고래가 가지는 ‘바다를 향한 탈출’이라는 자유로운 해방의 이미지와 현실에서의 비극적 결말을 내포한 상징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난교 그리고 바다>의 소설체를 통해서 결국 예정된 결말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의 에필로그 <핑크하우스>로 이후를 열어놓으며 이렇게 작품은 완전히 끝을 맺는다.

작가의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실험정신이나 실체를 알기 쉽지 않은 –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전형적인 관념적 흐름은 앞으로 차차 풀어나아가야할 과제다. 화풍에서나 이야기에서나, 자신이 영향받아온 특정 만화나 소설, 영화 작품들의 흔적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일부분에서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극복해 나아가야할 부분이다. 나아가, 표현이라는 측면과 독자와의 소통이라는 측면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균형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의 성장의 척도에 가깝다. 하지만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재능있는 신인으로서, 이번 작품이 부끄럽지 않은 데뷔작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권말의 서평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은 본작을 조금이나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고, 앞에서 그 것을 충족시켜보고자 한두마디 늘어놓은 셈이 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진심은, <코스모스>의 경우 이런저런 설명들을 살펴보면서 논리적인 해답을 찾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처음 볼 때의 그 거리감과 불편함을 더욱 즐겨볼 것을 바라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그것이 이야기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추구해보려고 하는, 오랜 제작기간을 들여서 만든 신인작가의 연작 작품의 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기는 방식이다. 작품의 마지막 공간이 그림속에 있고, 그 공간의 그림이 다시 그림속에 있는 무한반복의 라스트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작품과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잠시 부유해보며 여운을 느껴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 여운이,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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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