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산업의 분쟁 패턴

!@#… 올해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에서는, 문화콘텐츠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한 “문화산업분쟁조정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한마디로, 법적 소송이 아닌 분쟁조정을 통해서 융통성 있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간단계를 각 문화산업 분야에 적용시키겠다는 것. capcold 생각에도 이것은 무척 필요한 숙원사업이고, 저작권 개념의 균형발전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각 문화산업 파트별로 구체적인 분쟁 유형을 정리하는 작업중이라고 하는데, 여차저차 만화 파트에 대해서 정리해주기로 했다. 괜히 기합만 들어가서 마감일도 넘겨버렸지만, 여튼 제출완료. 만화산업의 특성에 대해서 문외한이라도 전체적인 상을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목표. 정리해놓고 보니, 나중에 만화산업 관련 강의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한 모양새. 뭐 최종 보고서에 이대로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내가 보낸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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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정책 제언: 정책의 기본을 다지자[계간만화 2005 겨울]

!@#… 계간만화, 이번 겨울호에 기고한 글(의 원 버젼). 지난 한 해 동안 목격한 바보같은 작태들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솔루션을 내뱉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여러 꼭지들이 어우러진 특집 코너 전체를 같이 놓고 볼수록 좋다. 특히 이번 호 특집은 더욱 더 그렇다. 현재 한국만화’판’의 거시적 틀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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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정책의 기본을 다져야한다

김낙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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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사랑에 보답하다 – <슬램덩크> 후일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041217]

지난주, 일본 카나가와 현에 있는 한 폐교가 갑자기 다시 학생들로 붐볐다. 이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스포츠 속에서 우정과 성장을 나누던 멋진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만화 작품 한편을 기리기 위한 이벤트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붐을 몰고 온 바 있는 농구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타케히코)고, 이번 이벤트는 1억권 판매 돌파를 자축하기 위한 팬서비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작품, 자기 작품과 그 속의 주인공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낸 작가. 여하튼 30여권의 시리즈로 단행본 1억권을 돌파한 것은 만화시장이 거대한 일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척도인 셈이다.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작가가 시작한 작전의 첫번째는 바로 일간지 전면광고였다. 어느날, 일본의 주요 종합일간지에 주요 캐릭터들이 각각 한 명씩 신문 한면을 통째로 채우며 멋진 모습의 스케치로 등장해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통 큰 팬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 두번째 이벤트는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주인공들의 농구경기 장면이 펼쳐지고, 관중석에는 관중이 가득하다. 그리고 팬들은 사이트에 등록해서, 자신만이 아바타를 관중석에 앉히고 응원 메시지를 띄울 수 있도록 했다. 즉 북산(쇼호쿠) 고교 농구부 경기의 하이라이트에 직접 가서 응원을 하는 기분을 만끽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난주의 폐교 이벤트였다. 폐교에 들어가서, 23개 학급의 칠판에 만화를 그린 것이다! 작품에 등장한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23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칠판위에 분필로 그려냈다. 그것도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그 동네에서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이미지,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나아가 칠판위의 분필 낙서가 가지고 있는 그 자유분방한 에너지까지. 뭐랄까, <슬램덩크>라는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공식 사이트에서 제작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며, 만화 내용은 칠판색 그대로 편집한 특별 한정판 엽서세트로 소량 상품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간의 ‘꿈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칠판을 지우는 마무리까지.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일맥상통한다.

만화라는 장르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라면 바로 독자와의 긴밀한 호흡이다. 이번 슬램덩크 이벤트는 그 점을 명확하게 짚어준 최고의 사례다. “1억권 팔렸으니 이런 이벤트도 하지” 라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이벤트를 할 정도의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1억권 팔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독자들과 작품에 대한 사랑으로 따지자면 10억권이라도 부족할 한 만화 작가의 성의에 박수를 보낸다.
[경향신문 04.12.17]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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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강풀) 또 대박치다.

!@#… 박수. 간만에 이 동네에 좋은 소식이 나왔군…

“순정만화”, 일본에 최고가 수출

YTN 2004-11-09 17:04]

[이경아 기자]

온라인으로 연재돼 큰 인기를 모은 만화 ‘순정만화’가 사상 최고가에 일본에 수출됐습니다.

이 만화는 우리나라 단행본 만화로는 가장 높은 금액인 천 만엔에 일본 후타바샤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체결해 내년 단행본과 잡지로 일본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됩니다.

여고생과 30대 직장인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 만화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 태국 등 아시아 출판사들과도 계약을 체결했으며 국내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만화 무엇이 OSMU 성공을 끌어들이는가 [계간만화 04/가을]

!@#… 계간만화 04년 가을호 원고. OSMU라는 ‘누구나 다 이야기하기에 오히려 뻘쭘해지기 쉽상인’ 주제를 과감하게 정면돌파..; 언제나처럼, 여기 올리는 건 ‘오리지널 버젼’. 실제 버젼,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이 속해있는 특집기획 전체를 제대로 읽으려면 <계간만화> 가을호를 구해보시길 (http://www.qcomic.com). 아니, 꼭 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함.

!@#… 어차피 항상 나오는 이야기인 ‘만화에는 OSMU가 중요하다 / OSMU에는 만화가 중요하다’ 같은 이야기나 ‘만화는 원작산업이니까 이제 라이센싱 개념을 제대로 잡자’ 식의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이미 오랫동안 열심히 하고 계시기 때문에, capcold 성격상 남들이 안하고 지나간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봤다. 뭐냐하면, “그럼 만화가 좋은 원작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뭘 갖추어야 하는가?” 라는 것. 만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혹은 좋은 만화를 고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다른 분야의 입장에서도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 아닐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 그래서 이런 글이 되었다. …꽤 길다… -_-;

!@#… 그러고보니 요새 기억력이… 지난 여름호에 쓴 ‘독자의 진화’ 글도 여기 안올렸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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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소스, 그 맛의 비결을 찾아서

 – 한국만화의 무엇이 OSMU를 성공으로 끌어들이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원소스멀티유즈(줄여서 OSMU)를 하는 이유는 뭘까? 대답은 한 글자면 충분하다. “”. 이런 단순명료한 전제만으로도 OSMU가 추구해야할 핵심적인 방향성은 확실해진다. OSMU는 문화의 논리가 아닌, 산업의 논리다. 문화의 논리를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것은, 재료로 다루는 문화상품의 품질을 관리할 때 뿐이다. “모두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작품이 나와주면 저절로 모든 분야로 뻗어나가면서 대박이 터질꺼야”라는 순진발랄한 문화 논리와 산업적 성공은 대략 900광년쯤 떨어져 있다. 이것은 그다지 분노할만한 일도 아니고, 거부감을 가질 일도 아니다. 애초에 OSMU는 그런 개념이니까.

  한국의 만화에 있어서, OSMU는 좀 더 복잡미묘한 상대이기는 하다. 만화는 단지 산업적 이해 이상으로, 문화적 위상 자체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난 10여년 동안 이 개념에 매달려 왔으니까. 물론 이러한 개념혼동은 많은 시행착오와 멍청한 발상들(‘정부가 주도하는 중견 작가 인큐베이팅’이라든지)을 탄생시켰지만, 지금에 와서는 적어도 대중문화 산업 일반이 만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과연 만화가 OSMU 거래의 현장에서 내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밀 준비는 되어 있는걸까? 점검의 시간이다.

[] 비주얼과 이야기

  만화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이다. 카툰화법으로 그려진 그림 한 장만 봐도 앗 만화다!라고 할 정도로 익숙하며, 쉽게 받아들여진다. 캐릭터 라이센싱/프랜차이즈 사업에게 ‘캐릭터 산업’이라는 (오해의 여지가 많은) 호칭을 붙여주고 한창 거품을 키워낸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쪽 분야 대다수 상품들이 명백히 만화라는 장르에서 발달시켜온 시각적 기법들(그림체, 표정, 상황 묘사 등)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만화가 비주얼이라는 측면으로 큰 매력을 행사한다는 인식은 꽤 그럴 듯 하다.  만화의 비주얼 속성으로 승부한 아기공룡 둘리 프랜차이즈의 성공이라든지, 박희정, 권신아 등 화려한 비주얼을 뽐내는 만화 계열 일러스트레이션의 인기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비주얼 그 자체만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은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94년, 이현세/야설록의 만화 <아마게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당시 제작사측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운 부분이 비주얼의 완성도였는데, “이현세 그림이 움직인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했다. 즉 이전의 TV물에서 망가졌던 그림체가 아니라 이현세 만화 특유의 비주얼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자랑이며, 당시 이현세 만화의 비주얼이 가지고 있던 대중적 인기를 노린 발언이었다. 물론 애니메이터들의 노고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그런 부분은 그다지 신경을 안썼고, 결국 흥행참패를 했다는 것이었다. 비록 원작만화의 그림체를 형편없이 뭉개버리고도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등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애니메이션 같은 미디어 상품 분야에서는 이야기의 재미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재미있는 이야기와 결합한 훌륭한 비주얼은 더욱 재미를 배가시켜 주지만, 이미 재앙급으로 망가진 이야기를 구원해줄 힘 따위는 애초에 없다.

  비주얼의 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는 팬시 상품 프랜차이즈의 일부 분야일 뿐, 현대 OSMU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디어 문화상품의 핵심적인 매력포인트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것에 어울리는 비주얼이라면 심지어 초등학생 낙서 같은 작대기 인간(‘졸라맨’)이라도 대형 스타 캐릭터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풍경 아닌가. 만화는 애초부터 이야기 매체다. 비주얼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하여 비주얼을 도입한다. 게다가, ‘한국만화는 비주얼이 너무 구려서 못써먹겠어’라고 푸념할 정도로 그래픽 기술력이 떨어지는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설령 정말로 구리다면, 더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 인력들을 동원해서 다시 디자인하면 된다. 한마디로, OSMU 프로젝트 속에 있는 만화의 입장에서라면, 비주얼은 (비록 욕심은 날지언정) 굳이 끝까지 책임져야할 분야가 아니라는 말이다. OSMU라는 네트워크에서 구석구석 만화의 힘을 발휘하고 싶다면 명백하게 신경써야할 우선순위는 이야기다.

[] 이야기성: 줄거리인가 캐릭터인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연달아서 히트를 쳤다든지, 만화 원작의 영화가 무더기로 제작된다든지 하는 것은 별로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영화를 필두로 하는 영상 미디어 분야가 워낙 급속하게 부흥하면서, 소재로 쓸 수 있는 이야기 거리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만화라는 분야가 꽤 흥미로운 것이다. 이미 비주얼로 풀어서 서사를 하고 때문에, 그 이야기가 영상화에 적합한지 좀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연재물 만화의 경우 극 진행의 독자와 밀고 당기기 호흡이 이미 레디메이드로 갖추어져 있기까지 하다. 이제야 만화 원작이 이렇게 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화와 영상의 파트너쉽은 천생연분이다.

  사실 만화의 입장에서도 영상과의 결합은 매력적이다. 문화상품의 OSMU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강력한 핵심 미디어 상품 하나가 전체 프랜차이즈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통제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만화가 OSMU 논리를 필사적으로 추구해왔다는 점을 뒤집어본다면, 그만큼 만화가 그 자체로서는 산업적 활력이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인식이 나온다. 즉 만화 산업은 현대적인 OSMU에서 ‘허브’역할을 할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주1). 하지만 현재 영화나 TV드라마는 히트작 한번만 나오면 ‘경제효과 수백억’이라는 등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고 있다. 윈-윈의 공생관계를 노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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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만화시장 자체가 기형적으로 크기로 소문난 일본의 경우라 할지라도, 히트작의 일반적인 성공 패턴은 인기를 검증받은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특히 텔레비전 장기 방영 시리즈)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2001년부터 월간지 ‘소년 강강’에 연재중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단행본 권당 20만부 가량 판매되던 중형 인기 만화이었다가, 2003년에 애니메이션 방영개시된 이후 수요가 급증, 2004년 7월 현재 발매중인 단 7권만으로도 누적판매 1200만부라는 어마어마한 히트로 피드백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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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야기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왕 기승전결 다 맞추어놓은 것, 그냥 그대로 쓰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재든 단행본이든, 만화는 독자적인 매체로서 특유의 소비/향유 양식을 구축해왔다. 그것에 알맞도록 구성된 이야기 전개나 호흡이 다른 곳에서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서 최근 영화화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도시정벌>의 경우, 만화원작이 대본소용 성인만화의 독서패턴 – 즉, 만화가게에서 수십권 분량의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새 가끔 딴짓도 하면서 물 흐르듯 줄줄 읽어내려가는 식이다. 두 시간 동안 어두운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에 집중해야 하는 극영화에서 그런 이야기 전개를 구현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즉 이야기의 큰 얼개만을 따온 상태에서 전체 내용을 완전히 새로 짜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제작되어 나름의 성과를 올린 영화  <바람의 파이터> 역시, 방학기 원작만화로부터는 거의 제목만 빌려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체 구성이 확연히 다르다.

  덤으로 시기적인 유행의 문제도 있다. 만화 원작이 발탁(?)되는 시점은 보통 연재가 한참 징행되었거나 아예 완결이 된 이후다. 영화나 드라마 등 이후 미디어 상품의 제작기간까지 고려하면 그 시간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특히 한국같이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이 다른 곳에 우루루 모여 있는 사회에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요소들의 재창작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방향의 극단으로 갈 때, 원작의 줄거리는 커다란 기본 이벤트 몇 개만 남길 뿐, 나머지는 새로운 창작으로 채워진다. 그 때 결국 이식되는 것은 줄거리라기보다는 ‘캐릭터’다. 엄밀하게 말해서 등장인물들의 특정한 현재 성격, 그것을 형성해준 과거 경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서로 엮어주는 관계설정 등을 말하는 것이다. 폐인 신드롬을 낳은 미니시리즈 <다모>를 생각해보자. 만화팬 사이에서는 “방학기에서 김혜린으로 변신”했다고 불리워질 정도로 전체적 감각에 차이가 크다. 남은 것은 잠입 여형사라는 설정과 기본적인 주변 인물들의 관계다. 정작 히트를 친 요소들인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투르기, 와이어 액션 무협, 장중한 대사 등은 원작과 관계없다. 게다가, 캐릭터를 이식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작의 캐릭터 설정 전체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엘리와 라이더가 그냥 한국인 이야기로 바뀐 <풀하우스>는 어떨까? 원작과 다른 주인공 성격 때문에 원작팬들과 풍파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일본만화 원작의 영화 <올드보이> 역시, 쫒는 자와 쫒기는 자의 현재 구도는 가져오되, 그들을 형성한 과거의 사연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원작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만화에서 창작자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서 완성도를 높이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다른 분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 그대로 ‘소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OSMU의 관점에서 만화가 할 역할은, 어떤 특정한 줄거리와 캐릭터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초’, 혹은 ‘현존 최강’의 사례일 경우 비로소 줄거리와 캐릭터를 다른 분야에 대여해주면서 원작으로서 가치를 획득하고, 결국 비싼 라이센스비를 챙길 수 있다. 따라서 OSMU를 통한 성공을 꿈꾼다면, 현재 각 분야에서 유행하는 요소들을 매 순간 반영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무한대로 이어가면서 ‘기본빵’을 지키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일관성있는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특정한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연재의 와중에 캐릭터의 성격이 통일성 없이 망가지면 아웃이다. 어설픈 전개로 인하여 줄거리의 얼개 자체가 이해불능의 경지로 떨어져도 아웃이다. 괜히 “나중에 드라마화하려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면 어떤 줄거리, 어떤 캐릭터들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에 귀중한 시간과 뇌세포를 할애할 필요도 없다. 만화로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져서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높은 인지도를 끌어냈다면, 그것을 소재로서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그쪽 분야 전문가들의 몫이다(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쉽게 생각하자. 만화가 OSMU에서 당당하게 자기 위상을 획득하고 싶다면 생각할 것은 단 하나, 매력적인 줄거리와 캐릭터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서만화로서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것 뿐이다.

[] 세계관

  앞서 스쳐지나가듯 OSMU의 ‘허브’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영화나 TV드라마를 예로 들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허브 역할을 해줄 강력한 매체로 떠오른 신흥 강자가  있다. 그것도 심지어 산업 성장성 등에 있어서 무척 전도유망하기까지 하다. 그 이름도 찬란한 ‘온라인 게임’이다. 확실히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의 사용자층, 확산력, 영상으로서의 비주얼, 응용분야의 다양성 등을 놓고 볼때 만화는 당장 온라인 게임과 혈맹이라도 맺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그렇듯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온라인 게임에서는 캐릭터와 줄거리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매체에서 독자는 특정한 캐릭터, 즉 주인공이나 그 주변인물들의 모험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캐릭터로서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정해진 줄거리에 따라서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 결과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만화의 핵심적인 역할, 즉 이야기 소스로서의 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 곤란하다. 그렇다면 만화는 게임이라는 멋진 허브를 포기해야할까? 물론 아니다. 만화 원작이 이러한 OSMU 모델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바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계관은 작품의 시공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장인물들의 특성 등을 직접적으로 관할하는 규칙이다. 그것은 크게는 <팔용신전설> 마냥 전체 세상을 통째로 창조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작게는 <파이트볼>처럼 단지 스포츠의 룰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작품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 규칙을 지켜나가며, 모든 갈등의 발생과 극복 역시 그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무협만화의 세계관에서는 레이저 병기로 상대를 날려버리지 않는다; 비급을 찾고 수련을 해서 무예의 힘으로 상대를 극복하는 것이 이 세계의 규칙인 것이다. 하지만 총과 미래형 병기들이 허용이 되는 세계관을 지닌 작품이라면 어떨까? 새로운 방식의 대결이 가능해질 것이고, 총보다 빠른 무공이 소재로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관장하는 규칙을 지켜가면서 목적을 이루는 서사구조’라는 차원으로 놓고 봤더니, 이제야 만화와 게임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게임은, 다양한 만화원작에서 창조한 세계관을 차용해서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만화는 그 표현적 자유도 덕분에, 현실 세계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그 덕분에 황당하고 허황된 것을 “만화 같은” 이라고 폄하하는 기분나쁜 관습도 생겼지만 말이다). 따라서 다양한 특이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비단 본격적인 환타지나 SF뿐만이 아니라도, 생략과 과장을 통해서 특정한 하나의 요소를 ‘작품 속 세계에서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포장해내는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만화 <유희왕>의 세계관 속에서는 특정한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트레이딩 카드를 통해서 격투를 하고, 그 속에서 강적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세계를 구원한다. ‘고작’ 초등생들 사이의 카드게임이 이 작품 속에서는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일정정도 인기를 끌자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당연히 실제 카드게임을 만들어서 상품화했다. 그것은 경쟁심 강한 남자 초등학생 층에게 크게 어필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OSMU 대형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격으로 군림해온 <리니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일숙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만화원작과 비주얼도 다르고, 특별히 줄거리나 캐릭터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단지 제목이 같기 때문에 원작이라는 말인가? 만화 <리니지>를 원작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혈맹이라는 세계관 때문이다. 혈맹이라는 단위로 아군을 만들고 적군을 구분하는 방식은 온라인 세계의 패거리 문화와 찰떡궁합을 이루어 이후 ‘공성전’ 등 특유의 집단 놀이문화의 촉발점이 되어주었고, 그 결과 큰 히트를 쳤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동명 원작만화의 작가인 이명진이 게임 디자이너로 직접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주인공 캐릭터들이나 핵심 줄거리는 전혀 인계되지 않았다. 심지어 온라인게임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TV애니메이션 시리즈 역시 원작만화와는 아예 연결고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세계관 구성만은 이 다양한 활용처(‘멀티유즈’)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주는 진정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나감에 있어서, 사실 세계관을 신경써서 만들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원래 있는 굉장히 잘 구축된 세계관 위에서 자기 캐릭터들로 다른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정도로 만족하는 작품들도 많다.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 세계관을 고유명사만 조금씩 바꾼 채로 그대로 가지고 와서 적당히 스토리를 꾸미는 수많은 환타지 만화가 범람하는 것은 사실 비단 한국만의 예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OSMU의 입장에서 다른 미디어 상품이 그런 작품들을 소재로서 발탁해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여하튼, 만화가 OSMU에서의 폭넓은 성공을 꿈꾼다면, 세계관이라는 요소를 주의깊게 가꾸어야할 필요가 있다. 꼭 방대한 설정자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의 세계에서 중요한 핵심 가치, 사람들의 행동 원칙을 통일성 있고 집요하게 강조해주는 작업이면 충분하다. 이쯤 되면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세계관이라는 것은 바로 작품의 주제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세계관이 부실하다는 것은 작품의 주제(즉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구심점이 되는 핵심 소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과 동의어다. 한마디로, 작품으로서 부실하다는 이야기다. 만화자체로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로 만화 원작 OSMU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인 셈이다.

[] 매력을 유지해주는 미덕: 지속성과 스타성

  작품의 구성요소는 아니지만, 만화가 강력한 원소스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적인 미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지속성이다. 문화 상품의 소비라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소비다. 성게군이 그려진 다이어리를 사는 이유는 단지 그림이 예뻐서가 아니라 성게군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고, 그 매력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실제 작품인 <마린블루스>의 개별적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OSMU라는 말 자체가 결국 속되게 표현하자면 한가지 매력적인 아이템을 가지고 끝까지 뽕발을 뽑자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매력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자체가 계속 새로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가 계속 인기를 끌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시마로>의 사례처럼, 팬시상품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정작 그 유행의 근원이 되었던 원작 이야기 자체가 기약 없이 중단되어 버렸다고 한다면 전체 프로젝트는 아주 쉽게 김이 빠진다.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토끼 주인공의 허를 찌르는 성격과 에피소드들, 즉 ‘엽기토끼’ 였지, 무슨 귀여운 외모의 다양한 캐릭터들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스타성’이다. 반드시 만화로서 대박을 터트려야한다거나, 엄청나게 작품성이 우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수많은 만화들 가운데, 소재를 찾고 있는 OSMU 종사자들의 눈에 들어올 수 있기 위해서는 뚜렷한 지지층이 있는 것이 좋다. 즉, 이 작품을 누가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가 명백하게 드러나 주어야 산업적인 전략 구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상이 가능해야만 OSMU 산업으로서 성립이 된다. 또한 비슷한 작품군들 가운데 바로 이 작품이 선택되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그것 역시, 단지 일개 전문가의 식견이 아니라 작품의 지지층을 보고 판단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서 <신암행어사> 애니메이션이 만화를 어느 정도 이상 친숙하게 읽고 있는 청소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극장용 장편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만화 원작의 지지층 성향에 맞춘 기획인 것이다.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는 나중에 차차 증명될 일이지만, 적어도 명백한 전략을 짜고 제대로 부딪혀볼 수 있는 최소조건은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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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수박 겉햝기로나마, OSMU 프로젝트에서 만화가 내밀 수 있는 카드패, 그리고 그것이 정말 쓸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다양한 요소들을 언급했지만, 정작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하나로 돌아오고 있다: 우선 만화로서 완성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나서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애니메이션 풍, 영화 풍, TV드라마 풍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화로서 취할 수 있는 자유로운 발상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속을 모험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만화 특유의 표현법과 향유 패턴 속에서 팬층을 다지고 명망을 얻으면 된다. OSMU는 작품의 부족함을 메꾸어주거나 문화적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원래부터 가능성 있는 작품의 상업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개념이다. 문화산업 논리의 성공적인 정착에 따라서, 멀티유즈를 하겠다는 – 즉 자신들의 훨씬 더 장사가 잘 되는 미디어로 만화의 어떤 부분을 같이 데려가 주겠다는 – 파트너들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제, 만화가 득의양양하게 보따리를 풀어놓을 차례다. 사실, 한국만화는 많은 것을 비축해놓고 있다. 하지만 소진되기 전에, 계속해서 그 보따리를 다시 채워 넣는 것은 이제부터의 임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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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OSMU 성공의 조건 [시사저널]

!@#…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여기 블로그에 올리는 외부기고문들은 별도 언급이 없으면 대부분 ‘오리지널 버젼’들이다. 실제 실린 버젼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수도… 분량이나 기조 등 여러 이유때문에. 이번 것은, 지난주 시사저널에 보낸 박스 기사. 원래 올해에는, 문화산업 논의니 OSMU니에 관한 제대로 된 분석글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목표했는데… 아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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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OSMU 성공의 조건

90년대 후반 이래로 공공기관의 산업지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OSMU(One Source Multi Use)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적 지원의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OSMU는 실제적 성공가능성보다는 이상주의적 목표 설정용으로 동원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만화분야에서 이 논리가 그럴듯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들려오는 성공사례들 덕분이었다.

일본의 성공사례에는 만화가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문화상품들이 있다. 전세계에서 일본만화 최고의 히트작으로 군림하고 있는 <드래곤볼>부터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기대주 <강철의 연금술사>까지, 만화 작품이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재미있는 만화가 곧바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퍼져나간다는 흔한 오해는 다소 현실과 다르다. 일본에서 히트작의 일반적인 성공 패턴은 인기를 검증받은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특히 텔레비전 장기 방영 시리즈)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애니메이션 작품이 실제로 다양한 문화상품의 성공을 견인해나가는데, 그 속에는 역으로 만화 원작 자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단적으로 2001년부터 월간지 ‘소년 강강’에 연재중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단행본 권당 20만부 가량 판매되던 중형 인기 만화이었다가, 2003년에 애니메이션 방영개시된 이후 수요가 급증, 2004년 7월 현재 발매중인 단 7권만으로도 누적판매 1200만부라는 어마어마한 히트로 피드백되었다.

만화가 좋은 원작을 얻는 곳이고 애니메이션이 산업적 확장을 위한 허브로서 기능하는 이러한 모델의 진정한 함의는, 성공에 대한 보장이 힘든 대중문화의 속성상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우수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선별해서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캐릭터 아이템으로서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마시마로>의 경우, 한 평범한 대학생이 온라인 만화 웹진에 연재한 재미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발탁되었던 것이다. 대중적 지명도를 얻고 있는 자신의 인터넷 일기만화를 자신이 취직한 캐릭터회사를 통해서 상품화한 <마린블루스>, 만화잡지들이 스러져가는 시장불황 속에서 오히려 새로 창간하여 적극적으로 성인 여성 취향의 이야기들을 발굴해내는 <월간 허브>…등 다양한 시도들이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많은 시도 가운데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매력이 곧 성공의 바탕이라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제가 정부지원이나 산업 시스템 일반에 확실하게 반영이 된다면, 그 시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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