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 만화규장각 웹진의 2006년 지면개편 첫호에 나갔던 글 (게재 버전 클릭).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까지 꺼내려면 아예 기획연재를 해야겠지만, 우선 그런 것을 위한 간단한 인트로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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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 부천 만화규장각 웹진의 2006년 지면개편 첫호에 나갔던 글 (게재 버전 클릭).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까지 꺼내려면 아예 기획연재를 해야겠지만, 우선 그런 것을 위한 간단한 인트로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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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광을 보며 성장하기 – 『하나오』
김낙호(만화연구가)
야구라는 스포츠는 자고로 수많은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많이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분명히 야구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고, 열정과 극적인 드라마가 가득하다. 비록 축구도 공은 둥글다며 격동의 승부를 강조하지만, 시간 제한으로 움직이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소위 ‘9회말 투아웃 끝내기 만루 홈런 1점차 승리’가 가능한 야구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팀 스포츠이면서도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1대1 승부가 게임의 기본 룰이기 때문에, 통계적 수치화라든지 기타 등등 팬들이 광적으로 좋아해줄만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야구만큼 뻘쭘한 스포츠도 영 없다. 규칙에 익숙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지 별로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세한 규칙을 몰라도 적들을 피해서 공을 그물에 넣기만 하면 되는 여타 구기 종목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강렬한 열정의 대상이 되지만,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열정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기 십상인 종목이다. 그렇기에 야구 경기 자체는 열정적인 드라마적 대결의 장이지만, 야구를 ‘바라보는’ 이야기로 간다면 열정과 이해의 충돌을 만들어주는 좋은 소재가 된다.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보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은 소재로 활용하여 결국 꿈을 꾸는 것의 즐거움, 즐길 줄 아는 것의 즐거움을 서로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좋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완간된 『하나오』(전3권 / 마츠모토 타이요 / 애니북스)는 야구광 아버지와 야구에 관심 없는 아들 사이에 이해의 고리가 생겨나는 과정을 그린 유쾌한 성장물이다. 일본 최고 프로팀의 4번타자가 되겠다는 꿈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모범생으로 살며 야구에는 관심 가지지 않고 살고 싶은 초등학생 아들이 같이 살게 된다. 그리고 여러 좌충우돌 속에, 역시 꿈을 꿀 줄 아는 것의 미덕에 아들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황당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향해 간다. 동네야구에 열 내며 프로 최강을 꿈꾸는 아버지가 오히려 소년스러우며,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여 합리적 인생설계만을 목표로 하는 초등학생이 어른스럽다. 그러나 그 애어른은 결국 나름의 오해와 성장통을 거치면서 꿈이 있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배트와 공, 글러브의 힘이다.
『하나오』의 작가 마츠모토 타이요는 한국의 여러 젊은 작가주의 만화 지망생들에게 필수 참조 작가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만화라는 매체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젊음’이라든지 ‘자유분방함’의 이미지를 내용도 연출도 만화 특유의 방식으로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해낼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간 한국에는 『핑퐁』이라는 탁구만화 한 편만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좀 더 발랄하고 대중적인 또다른 대표작으로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핑퐁』이 작가의 성향 가운데 보다 리얼한 묘사법을 추구하는 방향에 있다면, 『하나오』는 유희적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두 작품, 아니 나아가 작가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핵심 모티브들이 효과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세계의 핵심 키워드는 청춘, 유희, 그리고 광각렌즈다. ‘청춘’은 작가의 핵심 주제로, 주로 성장통이라는 모티브로 발현된다. 그런데 그 청춘은 바로 지리한 세상과 강렬하고 자유로운 자극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의 시기다. 그 청춘의 끝(?)에, 작가는 마지막에 슬며시 자유로움의 손을 들어주곤 한다. 때로는 확실히 희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때로는 세상에 대한 적응을 하면서도 속에는 자유의 희망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말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유희’는 자유의 연장선상이다. 그것은 장난의 재미, 노는 것의 희열, 그것을 묘사하는 낙서의 즐거움이다.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도피적 행위에서, 때로는 아예 동화적 상상으로 비틀어지고 기묘하게 여로 요소들이 제멋대로 혼합된 살짝 왜곡된 가상 세계로 나타난다. 낙서를 하고 공상을 하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광각렌즈’다. 광각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과장된 앵글과 원근법은 앞서 이야기한 주제와 감수성들을 표현해내는 시각연출 방식이다. 이 기법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를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공간으로 만들며, 무언가를 단번에 뛰어넘고 싶어 하는 역동성의 이미지를 만든다. 중력이나 관성 같은 물리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힘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 키워드는 『하나오』에 대단히 뚜렷하게 발현되어,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물론 아들은 변하지만 아버지는 사실상 변하는 게 없다는 점이라든지, 부자의 뜨거운 유대관계 속에 어머니는 별 역할이 없다는 것이라든지 이야기상의 허점을 찾아나서는 것이 어렵지는 않겠지만, 작품의 재미를 즐기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판된 『하나오』의 소장 가치 역시 높다.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95점 이상은 줄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번역, 좋은 인쇄품질과 멋진 제본이 그 핵심이다. 게다가 원래 작품 자체도 분량이 3권으로 마무리되어, 중간에 늘어지는 일 없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만족감을 준다. 반드시 짧은 만화가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하게 시작했던 만화 작품이 적당히 높은 인기 속에서 연재를 하며 줄거리 무한 엿가락 늘이기라는 함정에 빠져버리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특히 캐릭터성과 에피소드 방식 전개로 되어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말이다. 작가의 밥벌이는 보장하나 작품으로서는 무너지는 연재물들의 바다 속에서, 자기 작품을 완전히 관리할 줄 아는 귀중한 참조 사례이기도 하다. 작가에게도 출판업계에도 독자들에게도, 문자 그대로 ‘모범적인’ 만화로 널리 추천할 만 하다.
하기야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장점을 찾고 주변에 추천을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은, 만화라는 문화의 재미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마치 야구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설파하는 야구광의 모습과 진배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가 이 즐거움의 세계, 꿈을 꾸는 즐거움에 한사람이라도 더 입문시킬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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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설문조사: “여러분들은 야오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www.mahn.co.kr/marsheaven/survey_yaoi/
!@#… 자신이 야오이에 대해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필히 위의 설문을 풀어보시길. 자신은 야오이에 대해서 조금 알고 싶을락 말락하다 하는 분들도 위의 설문을 풀어보시길. 나는 야오이가 뭔지 모르지만 주변에서 자꾸 떠들어대서 짜증난다는 분들도 여하튼 풀어보시길. 브로크백 마운틴과 왕의 남자에 평범하게 열광하기보다는 열 몇번씩 보며, 항상 므흣한 분위기의 남자들이 서로 뜨겁게 응시하는 표지의 만화책을 들고다니는 이상한 족속들을 목격한 바 있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설문에 대답해 보시기를. 물론 추첨에 의한 상도 있음…레어아이템.
!@#… 인권위의 인권만화 2탄. 원래 이 프로젝트는 초창기에 기획 참여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냥 지나간 경우. 뭐 계속 10탄이고 20탄이고 진행되다보면 또 다시 연이 닿을 일이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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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있는 세상 이야기 – 『사이시옷』
김낙호(만화연구가)
인권 보호를 위한 공식 기구로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광범위한 임무 범위 만큼이나, 정부 기관 가운데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대중 홍보 활동을 할 줄 아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여기에는 정부기관지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기획 컨셉과 완성도를 자랑하는 <월간 인권>, 의식 있는 영화감독의 인권에 대한 단편영화를 묶어내는 인권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그리고 만화 단편과 에피소드들을 묶어서 책으로 발간하는 작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단지 허울만 좋은 것이라면 또다른 의례적인 공무원 행사에 불과하겠으나, 다행히도 작품 자체로서 어느 수준 이상의 재미를 담보하고 있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홍보와 소통의 기능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특기할만한 점이다. 특히 공공기관이 의례 빠지기 쉬운 단발성 이벤트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기조 속에서 최근 발간된 『사이시옷』(손문상 외 7인 / 창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두 번째 만화 작품집이다. 첫 번째였던 『십시일반』이 불러온 기대 이상의 대중적 호응 덕분에 큰 문제없이 2집의 기획이 수월하게 착수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새로운 작품집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사이시옷』은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부제와는 달리 사실 차별 있는 세상에 대한 고발이 주종을 이루어, 사실상 『십시일반』의 컨셉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장차현실의 『여배우 은혜』와 이애림의 『그는…』이 차별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한 권 만으로 차별의 모습을 다 보여준 후 다음 권에서 벌써 극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사회 속 차별의 양상이 너무 다양하고 뿌리 깊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비극적 정서가 지배적이다. 여덟 개의 작품들은 각각 비정규직 차별 문제부터 비혼모 출산에 대한 차별까지 넓은 차별의 스펙트럼 속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다. 각 작품들이 해당 소재에 접근하는 방식은 진중하며, 주제에 대한 전달력 역시 그다지 오해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확보되어 있다. 각각 차별의 이슈들을 소개한다는 목표에는 충분히 합격점을 얻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이런 컨셉으로 이런 기획으로 계속 출간이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생기는 만화책 시리즈이기에 이런 점들은 더욱 소중하다.
하지만 소위 소포모어 징크스의 조짐이 보이는 구석도 여럿 있다. 앞서 말했듯 이전 『십시일반』의 컨셉에서 크게 발전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여전히 특정한 이슈 소재를 소개하는 것에 전체적으로 머물러 있고, 그것은 홍보활동 그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장벽이 된다. 즉 인권 홍보물으로서의 의의가 아닌 “작품”집으로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요소들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가시적이고 뚜렷한 차별이라는 외관 속에 담겨 있는 훨씬 복잡하고 상호 모순되는 단면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품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핵심이고, 교과서적 설명이 아니라 현실적 감동과 깨달음의 힘을 부여해주는 요소다. 무엇보다, 우리네 사회와 인생 자체가 원래부터 복잡 미묘하고 모순된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현실속의 차별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항상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또한 그 속에는 우리 자신들의 습관과 의지,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적 문제가 동시에 작용하는데 때로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때로는 모순된 방향으로 일어난다. 인권 매뉴얼로서 차별에 대해서 학습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감동을 통해서 차별에 대해서 스스로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런 점들에 더욱 집중해야한다고 본다. 나아가, 만화라는 미디어를 택한 이상 그것이 만화 특유의 표현력 및 대중 친화력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줄 것인가에 대한 것 역시 더 고민해야할 숙제다. 반드시 과장과 희화화를 해야 한다는 식의 일차원적 이야기가 아니라, 만화 양식이기에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도록 만드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작품’으로서의 기준에서 볼 때, 개별 단편들 사이에는 분명히 편차가 존재한다. 마치 십시일반에서 마지막에 실린 작품인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가 그랬듯, 이번에도 마지막에 실린 최규석/연상호의 『창』이 가장 발군의 수준을 자랑한다. 사실 젊은 남자 작가들이 가장 진중하고 섬세하게 삶과 사회의 단면들을 붙잡아내곤 하는 소재가 한국 성인 남성 공통의 트라우마인 군대 생활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의 씨줄 낱줄로 얽힌 엄격한 차별구조는 누구도 완전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될 수 없게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흑백의 현실적 모습의 거친 연필화로 그려내는 한 ‘모범군인’과 한 ‘고문관’의 관계 속에서, 복합적인 피해 – 가해 관계가 솜씨 좋게 독자들의 성찰을 자극한다. 군대라는 소재 자체보다 이러한 미묘한 모순들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기에, 단연 이번 작품집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유승하의 『축복』도 누구에게는 축복이고 누구에게는 사회적 따돌림의 원천인 생명 잉태에 대한 모순된 시각들을 대치시키며, 이를 위해서 비혼모 임신을 강간이 아닌 합의 방식의 성에 의한 것으로 그렸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눈여겨볼 작품이다. 그에 비해서 손문상의 단편들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라는 지극히 모순된 피해-가해 관계를 지닌 중요한 소재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정규직은 차별받는다는 단일한 명제를 주장하는 선에서만 소화해내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다른 작품들 역시 크고 작게 장점과 단점들을 지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차별이 있다는 것을 교과서적으로 알려주겠다는 의지가 아무래도 앞서서 오히려 더 큰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이시옷』은 무사히 두 번째가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높은 평가가 불가피한 시리즈의 일원이다. 그리고 아쉬움은 토로했지만 여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한 만화책이다. 다만 앞으로 나올 3탄,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일정한 선택이 필요하다. 교과서적인 학습의 효과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적 교육효과는 줄이더라도 차별 양상의 현실적으로 모순된 미묘함에 매진하여 자발적 성찰을 유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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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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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최근, 여차저차 한겨레21의 해외통신원단에 합류(그래서 직함도 만화연구가나 미디어평론가 같은 식으로 하지 않고 ‘해외’를 강조한 것;;). 첫 기사로 좀 재밌으면서도 뼈있는 소식을 골라보고자 투고해 본 내용. 그래서 한겨레21 제600호에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주: 로그인 필요)이라는 제하에 게재…되었는데, 정작 해외통신원 코너가 아니라 문화면에서 픽업해 감. 여기 공개하는 버전은 늘상 그렇듯, 편집부를 거친 최종버젼이 아닌 capcold 투고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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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를 잡는 배트맨? – 유명 만화작가, 정치홍보물 제작을 선언하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과정)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라다니는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슈퍼히어로들과 맞서는 슈퍼 악당들이다. 히어로들은 설정이 그 아무리 황당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그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 일반의 사회적 상식과 정의추구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문화권마다 그 가치에 대한 차이는 상당하지만, 최소한의 공감대 정도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슈퍼 악당들은 다르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과 출처가 불분명한 막강한 재력으로 동원해낸 여러 부하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맹목적인 파괴활동을 일삼는다. 아무리 알고보면 불쌍한 사연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 질서 파괴적 행동에 공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슈퍼 악당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속시원하게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화,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만화와 종종 취향 층을 공유하기 마련인 공상과학 또는 환타지 영화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박람회 행사 ‘원더콘’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향후 1년간 이쪽 업계를 크게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들이 종종 베일을 벗는 공개 발표장소로 활용되곤 한다. 그런데 올해 원더콘 발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것 중 하나가 바로 북미 주류 만화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중인 작가 프랭크 밀러의 신작 제작 발표 소식이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Holy Terror! Batman! (‘이럴 수가, 테러라니! 배트맨!’이라는 뜻인데, 초창기 배트맨 만화의 홍보문구로 자주 쓰였던 표현의 패러디)』. 이번에는 배트맨이 조커나 캣우먼, 펭귄 같은 가상의 슈퍼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혼내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발표장에서 이 작품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파간다”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출간은 내년 정도가 될 것이며, 현재 200페이지 가운데 120페이지의 선 그림을 끝낸 상태라고 발표했다.
작품의 내용은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 시티(뉴욕시를 모델로 하고 있는 가상도시)에 알카에다가 주모한 테러가 일어나고, 배트맨이 그것을 막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왜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정치적 선전물을 자처하고 나서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인지, 작가의 대답은 분명하다: “슈퍼맨은 히틀러를 두들겨줬어요. 캡틴 아메리카도 그랬죠. 그게 그들의 당초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죠. 그들은 우리 국민, 우리 나라의 상징입니다. 민속 영웅이라구요. 알카에다가 활보하고 다니는데 ‘리들러’나 뒤쫒고 있는 것은 너무 바보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는 87년 『어둠의 기사의 귀환』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정체기에 빠져있던 배트맨 시리즈에 완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작품에서 그는 당대의 미국 현실을 살아가는 완고하고 어두운 성격의 중년 배트맨을 창조해냈고, 이 작품의 히트는 이후 90년대에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현실적인 재해석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밀러는 레이건 시대의 비합리적인 보수성과 관료적 국가 통제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연방 정부 기관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슈퍼맨과의 대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패한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통제해주지 못하는 악의 세력이 뒷골목에 넘치는데, 강고한 완력을 지닌 히어로가 그 상황을 직접 하나씩 타파해 나간다는 ‘자경단’ 정신은 이후 『신시티』 연작 등을 통해서도 더욱 공고하게 다져진 프랭크 밀러의 핵심 정서다. 특히 전 세계와 나아가 우주까지도 보호하는 절대적인 영웅인 슈퍼맨과는 달리, 배트맨은 고담시티라는 ‘자신의 동네’를 지키는 존재이기에 자경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테러가 어디에서나 일어나서 당신의 일상을 덮칠 수 있고, 정부는 그것을 제대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는 불안감이 꿈틀대고 있는 9/11 이후의 미국에서, 이러한 정서는 더욱 많은 공감대를 자아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사실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의 악당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작품들은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차대전 당시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히틀러와 일본군을 열심히 문자 그대로 두들겨 패 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을 좋아하는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전쟁 후원금 모금운동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초능력과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왜소하고 사악하게 묘사된 히틀러와 일본군들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굳이 분석적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너무나 극명한 상징을 보여주고자 한 프로파간다였다. 사실 영화나 여타 대중 매체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넘쳐나지만 그 중 특히 만화는 희화화와 과장에 있어서 워낙 자유로운 표현력을 발휘하며, 나아가 당시 가장 ‘대중적인 대중오락’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돋보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력과 대중성이라는 만화의 장점이, 오히려 만화가 선전도구로 악용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또한, 2차대전 당시의 정치 홍보성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사례에서는, 선악 구도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극도의 인종 차별적 희화화가 성행했다. ‘우리’의 결속을 위하여, ‘남’들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되고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오는 여러 문제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당시 사회의 일방적 잣대를 적용한, 표현의 자유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덮어버리곤 했다. 비록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일간의 『혐한류』, 『혐일류』 만화책 출간이라든지, 점점 더 파국을 향해 확대되고 있는 마호메트 만화 파문 역시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이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 밀러가 그려내는, 알카에다를 혼내주는 배트맨의 모험이 과연 어느 정도의 표현수위를 지니고 있을지 아직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혹시 정치적 공정성이 사려 깊게 배치되어 있으면서, 슈퍼히어로 장르의 현실성을 또 한번 재발명하는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보수층이 지니고 있는 타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지를 고려해볼 때,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년 이맘 때, 이 작품이 제2의 마호메트 만화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박스—
2차 대전 당시,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나치와 일본군을 혼내주며, 동시에 전쟁 모금도 모아주느라 바빴다. 그들의 분주한 활동상을 몇가지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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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첫 시리즈가 시작한 바람에,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부터 나치와 연관이 많았다. 붉은 해골머리의 숙적 ‘레드스컬’이 바로 나치 테러리즘 부대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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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나치 병사와 싸우면 싸움이 시시하게 끝나므로, 종종 강력한 힘을 지닌 괴물로 변모하기도 했다. 장르적 즐거움과 정치선전의 효과를 겸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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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에 의지하며 어쩔 줄 모르는 칙칙한 녹색의 나치 적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화사한 슈퍼맨의 대비는 특히 전형적인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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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들은 때로는 압도적으로 약해진다. 정의의 슈퍼히어로가 전형적인 외계 침략자의 구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역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PS. 영미권 만화에 대해서 항상 주옥같은 덧글을 달아주시는 Dreamlord님의 추가 정보+지적. 행여나 퍼가실 분이 있으면 같이 묶어서 읽으십사 본 포스트에 같이 묶어넣음.
Dreamlord: “Holy ***, Batman!”이라는 표현은 배트맨 만화책이 아니라 1960년대의 배트맨 TV시리즈에서 유래된 구절이죠.
“Holy Terror, Batman!”은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닙니다. 만화계에서는 밀러의 The Dark Knight Strikes Again이 종결되었던 2002년경에 처음 이 만화의 소식이 나왔었는데, 이번에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진것 뿐이죠. 작년까지만 해도 “Batman Vs. The Terrorists”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고, 작년 7월에 All Star Batman And Robin The Boy Wonder와 관련해서 나온 인터뷰에서도 200페이지중 120페이지를 그렸다고 말했었는데, 설마 그후 지금까지 한페이지도 더 그린게 없다는 말인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랭크 밀러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만화 300 이후 맛이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300 이후에 나온 Sin City 미니시리즈 Hell And Back, DKSA, ASBARTBW 등등의 만화들은 그림이나 대본면에서 모두 예전의 밀러 작품보다 훨씬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본만 맡은 ASBARTBW의 경우 인터넷 팬들의 반응을 보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는 것처럼, 한때 훌륭한 만화를 내놓던 밀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배트맨의 캐릭터를 망쳐놓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사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밀러의 황당한 대본을 충실하게 만화로 옮기고 있는 이용철씨의 그림이 없었다면 읽지 않을 만화입니다.)
밀러가 2차대전 당시의 만화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수 없군요.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Timely/Marvel 캐릭터들은 만화책 안에서도 적국 군인들과 싸우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 맞지만, 수퍼맨과 배트맨 등의 National/DC 캐릭터들은 만화책 표지에서만 전쟁노력을 독려했었고, 만화책 줄거리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었죠. 기껏해야 클라크 켄트가 잠깐 종군기자로 활동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었고, 수퍼히어로들이 초능력을 사용해서 전장에서 적군과 싸우는 만화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클라크 켄트가 징병검사를 받는데, 시력검사를 할때 벽을 뚫어볼수 있는 엑스레이 눈을 지닌 클라크 켄트가 실수로 옆방 방 벽에 붙어있는 시력검사표를 읽어서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내용의 만화도 있었을 정도로, National/DC 만화책의 내용에서는 자사의 캐릭터들을 2차대전과 멀리하려고 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에 나온 만화 All-Star Squadron에서는 2차대전동안 히틀러가 운명의 창을 발견하고, 일본의 군사지도자 Dragon King이 성배를 발견해서, 이들이 이 2개의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서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지대를 감싸는 일종의 보호막을 펼쳤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왜 수퍼맨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는지를 해명했습니다. 본래 수퍼맨의 약점중 하나가 마법에 약하다는 것인데, 수퍼맨이 이 보호막 안에 들어가면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기편을 공격하기 때문에, 수퍼맨을 비롯한 National/DC의 대표적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전쟁지대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야만 했고, 2차대전은 Sgt. Rock처럼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싸워야만 했다는 설정입니다.) 2차대전중의 만화책에서 수퍼맨과 배트맨은 밀러가 말한것처럼 리들러나 뒤쫓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가지 간과할수 없는 것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당시 미국 만화계에서 활동하던 상당수의 만화가들은 이민 1.5세대나 2세대 유태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당시 만화 표지 그림들의 상당수는, 유럽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친척들이 나치수용소에 감금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미국정부는 참전을 주저하고 있는 현실에 참지못한 이들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죠. 유태인인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해낸 직접적인 이유도, 유럽전쟁의 참상에 관한 소식을 그냥 듣고만 있을수 없어서였죠. 미국정부가 9/11 테러를 구실로 삼아서 자국을 공격한적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니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밀러가 과거에도 독자들의 반응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상당히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경우가 많았고 (Give Me Liberty에 나왔던 “남자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백인 우월주의 집단” Aryan Thrust, 영화 RoboCop 2에 나왔던 어른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어린 소년 범죄자), DKSA와 ASBARTBW 등은 사실 패러디인데 독자들이 잘못 해석했다는 변호를 하면서, “Holy Terror, Batman!” 역시 테러전의 승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를 가장했지만 사실은 패러디가 될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머리속에는 독립만화가 크리스 웨어가 최근 강연회에서 했다는 말만 생각나는군요. “모든 만화가들은 결국은 미쳐버리고, 화판 앞에 앉아서 죽는다.” (2006/03/17)
!@#… 참고로, 블랙잭님이 “사람들이 대안만화 잡지를 사는 것은 독창성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때문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120%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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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읽게 만든다는 것 – <격월간 새만화책>
김낙호 (만화연구가)
사람들이 잡지를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잡지라는 읽을거리는 최신 사항을 빠른 기간 안에 널리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문과, 진득하게 한 가지를 파고들게 만드는 단행본 서적의 중간에 있다. 즉 하나의 긴 것 보다는 다양한 짧은 내용물들을 조합하여 일정한 기간 안에 발간하며, 다소의 현재성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뉴스가 아닌 창작 문화예술을 다루는 잡지의 경우는 어떨까. 시의적으로 출간되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대략, 그 장르를 일상적으로, 항상 정기적으로 즐기는 생활을 하도록 함이라면 좋을 성 싶다. 10년 동안 작업한 방대한 작품을 10년 동안 기다리게 한 후 읽히는 방식도 있고 1년마다 단행본 1권씩 쪼개서 출시해서 1년 주기로 10번 즐기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예 잡지에 ‘연재’를 해서 10년 내내 일상적으로 즐기게 하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즉 잡지는 작품을 생활의 일상성에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다. 또한 여러 작품들을 같이 묶어서 제시한다는 점 역시 대단히 중요한데, 하나의 작품에 심취하도록 하기보다는 일련의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취향으로 감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창작 문화예술 잡지가 그런 기능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바로 잡지의 작품들이 일상적으로 즐기고 싶어할 만큼의 지속적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하나의 문화적 취향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색깔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1920년대의 문예동인지들 이래로 항상 그것이 좋은 창작 잡지와 쉽게 잊혀지는 잡지들의 가늠쇠가 되어왔다.
최근, 창작 만화지 <격월간 새만화책>(새만화책 발간)의 창간호가 출시되었다. 주류 장르공식을 따르는 만화보다는 작가의 개성적인 작품 성향을 중시하는 단행본을 위주로 작업했으며 지난 2003년 <계간만화> 1,2호를 제작한 바 있는 출판사답게, 이 잡지는 명시적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 창간호에 실린 작품들은 장르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실상 표준화되어 있다시피 한 미형 그림체를 벗어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역시 삶의 거친 측면들을 소설의 문예사조로 치자면 ‘리얼리즘’내지 ‘자연주의’에 해당될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총 12편의 작품과 하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작품들은 대체로 한 호흡으로 끝난다. 절반 이상이 단편이며, 연재물 역시 다음호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방식보다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내적 완결성을 지닌 것이 보통이다. 한국 작가가 주가 되지만, 해외 작가 가운데 잡지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작가의 작품들도 네 편 포함시켰다.
작품들은 자전적 느낌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작품들 (열아홉, 내 어머니 이야기, 푸른 끝에 서다 외), 또는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캐릭터로서 직접 활용한 ‘정신적인 자전 에세이’ (미스터 워터멜론의 오류, 나 그리고 얌전한 고양이의 동거 외) 가 대부분이다. 극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를 꾸며낸 작품(불행한 뱃사공, 도쿄 고려장 외)들이 오히려 전체적 분위기에서 뜨는 느낌이 강할 정도로, 그 분위기는 일관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통일된 컨셉을 통한 뚜렷한 취향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자전적 느낌의 이야기는 작가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것에 용이한 장르다. 새로운 극적 창작물의 경우 뚜렷하고 일관성 있는 ‘작중 현실성’을 구축하기가 훨씬 어렵지만, 자전적인 느낌의 이야기의 경우 자기 삶의 경험이라는 뚜렷한 참조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향유를 하고 싶게 되는 지속적 매력, 즉 넓은 의미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사실 잡지란 결국 여러 작품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에, 각 작품들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격월간 새만화책> 역시 보다 뚜렷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 확실히 한 장르를 개척했다 싶을 정도로 이미 검증 받은 고전 명작 등이 한쪽에 분류될 수 있는가 하면, 재능은 보이지만 아직 덜 다듬어진 티가 나는 작품들이 다른 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 수준에서 볼때, 시각적 만족이라는 명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계간만화> 1,2호의 경우와는 달리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상당히 준비되어 있다. 즉 잡지의 작품으로서 읽을 만한 매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몇몇 작가들이 자신이 받아온 다른 해외 유사 장르 – 즉 ‘작가주의’ – 작품들의 영향을 스스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은 명백하게 지적받아야 옳다.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와 감수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변용하고 수용해내는가 아니면 아직은 단지 모습을 쫒아가는 것에 불과한가, 라는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어머니 이야기』는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에 출시한 바 있는 『페르세폴리스』(사트라피 저)의 시각 스타일과 연출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하지만 『페르세폴리스』는 아이의 맹랑한 천진함과 난해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충돌시키기 위해서 흑백 아이콘화된 그림체를 활용한 것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차용해온 시각스타일과 자신의 이야기가 서로 녹아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외의 몇몇 작품들에서도 보두앵의 붓터치, 체스터 브라운의 방백 연출 등이 채 소화되지 못하고 거칠게 원용되고 있다. 이런 지점들은 반드시 편집자의 역량으로 적절한 조율을 해 나아감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잡지의 진짜 매력과 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발간의 지속성이다. 부디 <격월간 새만화책>이 창간호의 포부를 잘 이어가서, 뚜렷한 취향과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만화지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
약간의 사족: 하지만 <격월간 새만화책>이 ‘대안만화를 다룬 최초의 잡지’라느니 ‘본격적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느니 하는 식의 언론 보도들 앞에서 필자는 곤혹스러움을 거두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화끈>이나 <히스테리> 등 걸출한 사례들을 90년대 한국 인디만화의 성과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자는 것인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의미부여와 칭찬은 그 자체의 절대적인 우수함과 매력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여기까지 오도록 기반을 닦아준 기존의 모든 성과들을 부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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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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