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라도 여전히, 만화를.

!@#… 쿠루쿠루님의 무더위 만화로 식히자!! 에서 트랙백.

연휴에는 종종, 만화 리스트를 써달라고 요구받곤 한다. 역시 만화는 방에서 즐기는 여가의 강자라는 기본 컨셉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해야할지도. 게다가 요즘은 무진장 덥기까지 하다. 무더위가 만화로 식을 리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에어컨 강하게 틀어놓은 공간 (카페, 은행, 사무실 기타등등) 에 찾아가서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지극히 포터블한 즐거움이니까 말이다. 이건 지난 주, 부산일보 기자분 통해서 부탁받은 리스트 + 재미있게 읽는 팁. 어차피 기사화되면 꽤 모양새가 달라질 것 같기는 하지만. 매니악하거나 장르만화에 대한 집착이 적은, 일반 일간신문 독자를 위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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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읽어볼만한 만화 20선

– 여름이라면, 역시 공포

 아파트(강도영 / 문학세계사) : 다양한 사람들의 엇갈리는 시점이 매력적.
 두 사람이다(강경옥 / 시공사) : 진짜 정체를 놓고 벌이는 심리 서스펜스.
 드래곤헤드(미네타로 모치즈키 / 서울문화사) : 재앙물의 정점.
 펫숍 오브 호러스(마츠리 아키노/ 서울문화사) : 욕심의 인과응보를 그려내는 옴니버스.
 기생수 (이와아키 사토시 / 학산문화사) : 인간에게 포식자 천적이 생겨난다는 것.

– 선 굵은 드라마의 세계

 타짜 1-4부 (허영만, 김세영 / 도서출판 채널) : 도박은 인생의 축소판.
 바람의 파이터 (방학기 / 길찾기) : 최배달의 강함을 추구하는 직선 돌파 인생.
 불의 검 (김혜린 / 대원CI) : 굴곡 넘치는 드라마틱한 대하서사시.
 용주골 (김성모 / 도서출판 청솔) : 비장한 성인정서.
 리얼 (타케히코 이노우에 / 대원 CI) : 장애인 농구를 다루는 감동 드라마.

– 즐기면서, 교양도 좀 쌓아보자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 / 길찾기) : 현대 문명과 전쟁의 진짜 이유를 찾아나선다.
 만화 십팔사략 (고우영 / 애니북스) : 고전 속에서 배우는 현대적 교훈들.
 마법천자문 (시리얼 / 아울북) : 어른들도 한자 교육에 만점.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 휴머니스트) : 충실함과 재미를 겸비한 조선사 읽기.
 식객 (허영만 / 김영사) : 식문화의 기본을 찾아서.

–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들

 트라우마 (곽백수 / 애니북스) : 변박자 개그의 매력.
 한국일본 이야기 (정구미 / 안그라픽스) : 교포 2.5세대가 들려주는 두 나라 이야기.
 마린블루스 (정철연 / 학산문화사) : 20대의 또래 취향의 유쾌한 생활사.
 룸펜스타 (고리타 / 시공사) : 백수의 왕.
 순정만화 (강도영 / 문학세계사) : 신파는 아직도 감동적이다.

…덤으로, 여름 휴가철에 만화를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몇가지 소개한다.

 첫째 만화의 내용에 따라서 읽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떤 장르의 만화는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휘리릭 넘겨야 제 맛이고, 또 다른 만화들은 하루에 한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진짜 감동이 오는 것도 있다. 만약 책을 몇 페이지 넘겼는데 빠르게 읽기에는 너무 복잡해 보인다고 한다면, 재미없다고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이야기 정서에 몰입할 수 있을까 한번 따져보는 것이다. 다들 재미있다고 하는 어떤 작품이 잘 이해조차 안된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만화의 장르법칙이나 문법이 너무 낯설어서 그럴 것이다. 마치 고전 서부극에 익숙한 이 땅의 중년들이 <매트릭스>를 즐기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해결방법은? 그냥 그런 작품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 장르를 더욱 더 의식적으로 열심히 즐겨서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함께 읽는 것이다. 책이란 기본적으로 혼자 읽도록 만들어진 매체이기는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 자체는 모일수록 재밌다. 가족이 모여서, 각각 좋아하는 만화를 읽자. 연인이 같이 읽자. 그리고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킥킥대며 웃고, 감동받을 부분에서는 확 감동하는 표정을 지어서 옆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자. 가만히 앉아서 보는 영화와는 달리, 따로 또 함께 같이 읽어나가는 사이에 만화의 즐거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 자유/영리불허 —
 

만화 쿼터제에 대한 회의론, 그리고 대안.

!@#… 만화저널 토론에서 중요한 곁가지로 제기되어버린 만화 쿼터제. capcold는 만화쿼터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취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쿼터제는 안된다!!!라는 입장이기보다는 만화에서 쿼터제의 적용 현실성이나 효과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출판사들의 일본만화 과잉수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한지는 벌써 4년도 넘었고 지금 쿼터제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취지에는 천번만번 동의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인가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제게 확신을 심을 수 있는 논리라면 누구에게나 통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한번 제 회의론의 근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 쿼터제에 대해서, 몇가지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지점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다른 매체에서 운용중인 쿼터는 유통에 관한 쿼터지, 제작에 관한 쿼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의 경우 방송 편성 시간에 한국산 애니를 특정 비율 집어넣기지, 제작이나 유통사에게 만화를 어느정도 직접 국내산으로 만들어라, 해외 수입을 이 정도만 해라,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작사나 유통사에게 쿼터를 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방송국에 쿼터를 거는 것이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사나 배급업자에게는 쿼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쿼터는 어디까지나, 극장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실제로, 66년 처음 시작되었던 당시와 70년대에는 영화 쿼터가 배급업자에게 직접 부과되었습니다. 즉 외화 수입추천 1편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편수의 한국영화를 제작해야만 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다들 쉽게 짐작하시다시피, 날림 새마을영화의 범람이었습니다(-_-;). 그래서 결국 쿼터제는 유통의 가장 말단, 극장으로 내려옵니다. 1년 중 일정일 이상을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틀어주기.

쿼터제도는 향유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통로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의 또다른 전제는, 그만큼 그 통로가 좁고, 확장이 어려우며, 독점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극장에는 쿼터가 있지만 비디오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디오는 극장과는 달리 통로가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장 창고 용량이야 물론 한계가 있지만). TV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죠. 텔레비젼 방송국은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고, 어디로보나 자원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쿼터제가 의미가 있는 셈이죠.

그런데 만화의 최종 소비 통로는 극장이나 TV방송국의 모델보다는, 비디오의 모델에 더 가깝습니다. 통로가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그러니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렇게 엄청난 고무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많은 종수를 찍어서 곤란한 것은 제작의 차원에서 그것을 담당할 인력과 마케팅 능력이 잠식당하고, 독자의 판별력이 떨어지게 되어서인 것이지, 통로 자체가 독점화되어 버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통로 점유의 측면에서 일본만화를 놓느라고 한국만화를 못 놓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용의 측면에서 한국만화를 상대적으로 안 만들고 못 띄워주기 때문에 한국만화가 안보이는 겁니다.

자, 이제 문제입니다. 쿼터를 ‘어디에’ 적용해야 할까요? 쿼터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박인하님이 글에서 지적하셨다시피 일본만화 종수 줄이고 이성적/상식적 시장구조를 회복하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 제작(=출판사)에 쿼터제 도입: 이것은 출판사의 전체 만화 출판 종수 가운데 특정 퍼센트 이상의 한국만화를 제작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입니다. 70년대 영화에서 생긴 쌈마이스러운 일이 그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히트작 하나를 수입하기 위하여, 졸속 어거지 함량미달 찌라시 책을 10종, 한 50부 정도씩만 찍어서 대충 묶어버리고 다음주에 파지처리해버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수가 아닌 발행 부수로 쿼터제를 한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명백한 시장 침해. 이 경우 당연히 한국만화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우수한 외화와, 허접한 ‘방화’로 인식이 이분화되었던 그 시절 영화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처럼 말입니다.

출판사가 그런 자기 이미지 깎아먹기를 할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연간 1000종을 내는 출판사들은, 자사 작품들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는 거리가 멀죠. 게다가 한 회사 내에서 출판 라인의 브랜드만 다르게 해서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고. 이것은 위반시 과징금제도로 하든, 준수시 지원금으로 하든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꽁수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한국 번역판 제작을 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판 수입추천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겁니다. 즉 어느 출판사는 전년도 전체 출판 종수의 60% 이상 가는 수의 수입추천을 신청할 수 없다, 라고 못박는 겁니다. 이 경우도 이 꽁수를 여전히 쓸 수 있습니다(사실, 양적인 개념에서는 항상 쓸 수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들이 capcold보다 사악한 잔머리를 덜 굴려보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2) 유통에 쿼터제 도입: 영화나 TV애니 같이 유통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궁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통의 최말단인 개별 서점. 하지만 예를 들어서 “매장에 한국 만화 진열 비중이 종수 기준으로 30% 이상이어야 한다”, 라고 강요하기는 정말 애매합니다. 앞서 말했듯, 한정된 통로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단보다는 좀 더 위에 있는 총판은 어떨까요. ….(10분 경과)… 옙, 총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머리아파집니다. 총판 구조는 쉽게 어떻게 뭘 새로운 원칙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쪽 이야기는 나왔으니 패스.

그럼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총판으로 가기 전의 ‘배급’ 단계. 얼마나 국산을 만들고 얼마나 수입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유통망에 뿌릴 때 쿼터를 걸고 견제하기. 아까 1)에서 한 이야기와 차이가 없어집니다. 아니면, 만화에서 아예 수입과 제작을 같은 출판사에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즉 수입 및 유통 전용 출판사와 한국만화 제작 전용 출판사의 역할분리. 마치 영화에서 제작사와 배급사가 분리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하나의 모기업에서 양측을 모두 소유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소규모 제작사로부터 가능성 있는 영화를 사들여서 배급하는 바람직한 경우도 많죠. 실제로 유통력을 가진 확고한 메이저와 소규모 제작사들이 나뉘어 있는 미국 만화계의 경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유통사의 단계에서 쿼터를 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산업판이나 개별 출판사들의 영세한 구조상, 이런 식으로 전체 판을 뜯어고쳐버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요원한 아이디어입니다. 게다가 산업적 필요성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간다면 모를까(사실, 산업적으로는 이미 필요합니다), 법적으로 강요하기는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 즉 제 회의론의 핵심은 이겁니다: 쿼터 제한을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_-;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볼 겁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쿼터제도의 효과를 지닐 수 있는, 좀 더 우회적인 방식들을 찾아볼 수 밖에요.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모씨님이 일종의 ‘자발적인 쿼터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연재만화 잡지의 경우, 사실은 일본 만화 수입시 단행본 계약과 연재 계약이 따로 들어가야 하는 계약상의 번잡함과 추가적인 비용부과가 상당부분 작용하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잡지에서 수익을 못내는 기이한 구조상, 굳이 아주 특A급의 독자동원력이 아니라면 수입 작품들을 연재를 해넣어야할 이유도 별로 없는 셈이고. 산업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론 그보다는 훨씬 제도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종수에 의거한 ‘쿼터’가 아닙니다. 총체적 경영 투자 자료에 의거한 ‘창작 출판사’와 ‘수입배급사’의 분류고(물론 이 평가는 매해 새로 갱신되어야 합니다), 각각에 합당한 지원책과 규제책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입위주 출판사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수가 아니라 국산 창작에 대한 투자비중 자체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각 출판사에 자료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판독해내는 문광부/콘진 담당부서의 전문성이 역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죠. 아니, 애초에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연구용역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역시 선결과제입니다.

쿼터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업은, 지들 맘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영업의 결과로 ‘수입 배급사’로 분류되어버린다면, ‘창작 출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제도적 혜택에서는 제외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당연히 그 분류결과는 일반 대중에게도 전면 공개되어야 하고.

사실, 박인하님이 언급한 각종 제도적 지원에서 특정 출판사를 제외시키는 것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좀 더 발전시켜 볼 만한 발상입니다. 다만 시상식 등 작품에 주는 상을 거부할 경우 창작자만 피해를 보게 되니까 그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해야죠. 어디까지나 출판사에 대한 자금지원에서만 상대적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 수입배급사가 창작을 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다만 창작사로서의 혜택을 못받을 뿐. 창작사에는 없고, 수입배급사에게 돌아오는 혜택? 그런 거 없습니다. 왜 필요합니까. -_-;

!@#… 물론 이 정도 제도장치로 인하여 그 출판사들이 난데없이 일본만화 출판을 팍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수입 원자재 고갈이라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여튼, 국산 창작에 대한 지원이 정말로 국산 창작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정비를 해보자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만화계에 대한 ‘쿼터의 효과를 지닌’ 제도적 제안입니다.

 

PS.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대여권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언젠가 다시한번…;; 엉망진창으로 결단난 후 한참 뒤인 지금 난데없이 불타오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 대안’으로서 좀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PS2. 이노무 네이버블로그는, 네이버 바깥의 블로그에 트랙백 걸어놓은 건 제대로 엮인글 표시조차 안되는군요. -_-;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자유/동의없는 수정 불가/영리자유 —

[등대등 토론참여] 1. 대중 만화언론, 내용 범위의 문제

!@#… 자, 이제 풍덩하고 뛰어듭니다. 만화인 등-대-등 릴레이, <한국에서 '만화 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capcold 제1타, [대중 만화언론, 내용 범위의 문제].

!@#… 만화언론. 만화에 관한 잡지. 옙, 필요와 당위성, 명분 등에 대해서는 당연히 꽤 오래전부터 공감했고, 미력하나마 여기저기 개입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두고보자> 웹진을 만들어서 나름의 의지를 관철해보았다가 지속성의 문제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오즈>에도 참여했고, 부천만화정보센터 웹진 <고구마> – 현 규장각 웹진 – 도 창간 및 재창간하고, <계간만화>(아시는 분들은 알지만, 이쪽에는 좀 더 많은 사연이 있죠) 편집위원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 열심히 했으니 ‘참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세요” 하는 게 아니라(-_-;;;), capcold가 만화언론 창간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생각이나 문제 접근법이 어떤 뿌리에서 나와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에 대한 약간의 배경입니다. 한마디로, 대중의 포섭보다는 주로 “만화계에는 이런 담론이 제기되는 ‘좋은’ 지면이 필요하다” 라는 차원의 지면들 투성이였고, 반대급부로 대중적 인기를 못누린 공간들이었죠. -_-;

!@#… 한국에서 만화언론은 가능한가? 라는 이 토론의 첫 질문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 이미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패배주의에 빠져서 궁상떠는 것을 항상 질타해왔던 입장이기도 하고. 만화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것이 만화계에서 해줘야할 역할… 등등 당위와 명분에 대한 논의는 선수들끼리는 그다지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만화언론, 만화저널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 만화언론’입니다. 전문가용, 업계용 언론이라면 지금도 이미 여러개 돌아가고 있고, 대중을 표방하지만 결국 전문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지면들도 또한 있습니다(이미 이전 논의에서 나온 정보들은 과감하게 스킵). 지금 굳이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위한 대중의 눈높이와 필요에 맞춘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중적으로 히트하는 만화언론. 오로지 그것입니다. 대중은 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재미있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예측이 뒤집어지곤 하죠. 하지만 대중은 대중이기 때문에 분명히 ‘경향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명분이나 당위보다도, 처음부터 실무적인 전략이 관건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질문을 제기해봅시다.

“누가 이 잡지를 보며, 왜 보며, 그 결과 어떤 만족감을 느낄 것인가?”

1) 여기서 ‘누가’에 만화팬, 만화독자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꽝. 논의 과정에서 halim님이 주신 수치에서 볼 수 있듯, 지면 운용에 그다지 도움되는 규모의 집단이 아닙니다.

2) ‘왜’에 만화 관련 정보(내용소개, 미리보기 등등)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꽝. 만화 독자들 가운데 심지어 관련정보까지 미리 섭렵해서 자신의 만화를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소수. 동호회를 만들수는 있지만, 매스미디어를 만들기는 거시기합니다. 특히 한국은 어림반푼 매니아들, 다시 말해서 오로지 취향만 매니아이지 향유와 소비의 패턴은 전혀 매니아스럽지 않은(즉 소비를 안하는) 목소리만 큰 허수 군중들이 많다는 점을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3) ‘어떤 만족감’에 “좋은 만화 정보를 얻어서 좋은 만화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를 넣으면… 유감스럽지만 또 꽝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좋은 책을 추천받기 위하여 출판 전문 저널인 <기획회의>나 <페뎀> 등을 정기구독하거나 읽고 계신 분? 좋은 책을 추천받고 발견하는 것은 여러 결과 중 하나 정도지, 잡지 자체의 목적이 되면 지극히 비대중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노골적으로 훈계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식당 메뉴판이라고 할지라도).

!@#… 이쯤 오면 이상하게 느껴지실겁니다. 만화언론은 그럼 ‘만화’언론이면 안된다는 말이냐? 만화언론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냐? 이놈은 역시 만화계의 적이고 구데기(P모 작가에게 부여받는 영광스런 호칭)냐? …그렇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겠고, 스스로도 삽질하지 않을터.

제 이야기는, 대중적인 만화언론을 만들려면 애초부터 ‘만화’라는 경계선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하나씩 짚어보죠.

1) 누가? 만화팬이 아닌, 일반 대중입니다. 일반 대중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상 만화에 별 관심 없습니다. 나쁜 편견도 그다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돼지 같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만화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중은 뭘 하고 사는가하니,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뭐 그렇습니다. 즉 (물론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만화언론으로서 잘 만드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오만 분야의 매체들을 다루는 다른 지면들과 직접적으로 독자 확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왜? 미디어 콘텐츠 자체가 아닌, 그것에 관한 정보가 담긴 저널을 왜 볼까요. 전문가들이야 자기 분야니까 그렇다쳐도, 상대는 대중입니다. 그들은 한국 만화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 것을 볼 하등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문화의 종다양성 같은 것은 저같은 학바리들이나 내뱉는 개념입니다. 대중이 저널을 보는 것은, 그 정보 자체가 (1) 재미있고 (2)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없고 비실용적이면서 단지 ‘좋고 옳기만 한’ 내용은 비대중적입니다. 만화의 경우 대중에게 재미있고 실용적인 정보는 이 만화는 이런 내용이다, 좋은 만화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만화를 보면 너는 대단히 멋진 놈이다, 이 만화도 안보면 너는 유행에서 뒤쳐지는 거다, 이 만화를 보면 너는 이성친구 앞에서 자랑할 수 있다, 이 만화를 보면 이 만화도 꼭 같이 봐야한다… 등입니다. 대중은 선동 당하는 것을 즐깁니다. 정확히는,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선동당해버린 상태를 즐깁니다. 그 미묘한 2중전략을 잘 짜는 것이 모든 성공한 대중저널의 비법이죠. 그것을 위해서는 특정한 전문분야로서가 아닌, ‘총체적 문화‘로서의 세팅이 필요합니다.

3) 어떤 만족감을 얻는가? 누가, 왜의 질문을 대답하다보면 결국 여기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들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대중은 특정 분야에 대한 심취보다는, 총체적 문화를 소비하며 그 속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도달했다, 라는 자아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을 때에 그들은 충직한 독자가 되어줍니다. 주간지라는 위험을 품었던 <씨네21>은 성공하고, 야심찬 도그마의 월간지 <키노>는 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키노는 영화라는 분야를 자신들의 본업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울타리로 박아버렸습니다. 90년대 중반, 영화 고급담론 붐이 일어났을 때는 키노가 돋보였지만 이후 2000년대로의 전환과 함께 영화가 점차 대중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영화 담론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키노 노선의 몰락은 유감스럽지만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그에 비해서 씨네21은 제호와는 달리 영화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영상문화’라는 큰 틀을 상정했습니다. 심지어 만화 특집도 몇번 있었죠. 출판물이지만 영상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만화라는 매체도 이들의 포섭대상이었습니다. 나아가 영상문화와 관련된 도서, 음반은 기본이고, 인터넷 탐방이나 게임평론 등의 선진적 시도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즉 영화를 중심으로 하되, 영상문화라는 큰 차원으로 융통성을 두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대중 독자에게는 어떤 만족감으로 나타날까요. 키노를 보는 사람은 영화매니아, 학도, 또는 업계 종사자의 이미지를 풍깁니다. 하지만 씨네21을 보는 사람은, ‘영상문화를 제대로 향유할 줄 아는, 나름대로 교양있는 도회적 현대인’의 이미지가 됩니다. 아니 좀 더 가깝게 생각하자면, 90년대 초중반 만화잡지 전성기 당시 중고등학교에서 야자시간에 줄서서 잡지 돌려보던 추억을 상기해도 됩니다. 그때의 잡지들이 지금보다 특별히 더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잡지가 그때 중고생들의 생활 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작용했기 때문이죠.

!@#… 즉, 대중 만화언론을 하기 위해서는, 만화를 중심축으로 하되 다양한 연관 문화현상을 넓게 포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만화 전문을 하면서 다른 것도 한꼭지 정도 끼워넣어주자는 식의 단순한 기계적 발상이 아니라, 잡지의 기본 컨셉 자체가 애초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해서 문화를 이야기하겠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 현재 사람들이 폭넓게 대중적으로 관심이 형성되어 있는 저수지여야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본식 표현이지만) ‘서브컬쳐’ 전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 그쪽 계열을 포괄하는 것이죠.

이렇게 놓고 보니 애니메이션을 중심축으로 해서 이런 것들을 포괄하고자 한 <한국판 뉴타입>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어떨까요. 문자 그대로 너무 ‘서브’하죠. 매니아시장을 노리는구나, 라는 인상이 대단히 강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그 자체로서 매니악한 장르들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매니악한 취향만 다루고 있으니까 문제인 것이죠. 씨네21에서 맨날 무슨 유럽 거장만 다루고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삽니까. 때로는 헐리웃 스타들에 대한 새로운 소식과 분석, 블록버스터에 대한 나름의 좋은 평가, 어리석은 영화들이라도 여하튼 다루어주면서 비판하는 융통성이 있으니까 팔리는 겁니다.

대중 만화언론이라면 훨씬 더 폭넓게 주류를 포괄하는 취향을 포섭해줘야 합니다. 대본소 극화를 외면하지 말 것이며, 학습만화를 ‘만화가 아니다’라고 내치지 않으며, 고전 명랑만화들을 다시 캐내어 현대 엽기 유머와 견주어 볼 줄 아는 등의 내적인 조율이 필요합니다. 만화와 게임과 영화를 대등하게 비교하며, 특정 만화의 취향을 지닌 이들이 즐겨들으면 좋을 만한 음반과 책들을 소개하며,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만화 특유의 화법으로 재해석하며, 이 세상 모든 미디어 곳곳에 침투해 있는 만화언어를 탐방 발굴하여 그것들을 만화적인 방식으로 읽어낼 때 얼마나 더 훌륭하게 향유하는 멋진 교양 문화인이 될 수 있는지를 역설해야 합니다.

!@#… 우선 간단히 다시 요약합니다.

1) 목표는 대중입니다.

2) 만화로 울타리지워지기보다는,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 저널이 되어야 합니다.

3)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잡지를 읽는 나는 뭔가 문화인이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합니다. (‘역시 나는 매니아다, 전문가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 다루는 내용에 대한 기본 컨셉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떤 열혈 청년들이 헌신하고 어떤 비지니스 모델을 내세워도 쉽게 망합니다. 막연하게 만화정보지가 아닌, 히트치는 대중 만화저널을 만들자면 반드시 순서대로 밟아야 할 고민들인 셈입니다. 실제 기획안을 만들 때 들어가는 기본순서도 이런 식입니다: (1) 이런걸 만들어주마!하는 문제제기 및 전체 내용 초간단 요약  (2) 현재 판도, (3)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그 속에서 돋보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핵심 컨셉, (4) 세부 내용 정리, (5) 여타 위협요소와 장기적 대응방안, (6) 소요 예산과 제작 진행표, 마케팅 홍보 유통 등등.  이 가운데 (1)이야 그렇다치고, (2)는 다른 글들을 통해서 주로 할 내용들이고, (3)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 음… 가능하면 그때끄때 써내려가겠지만, 앞으로 몇가지 제 생각들을 뱉을 주제들은 이런 겁니다:

2타: 수익성의 문제

    – 온라인의 한계
    – 광고주는 바보가 아니다
    – 돈주고 사게 만드는 방법들    … 외.

3타: 지속성의 문제

    – 시작은 감격, 유지는 고생
    – 조직과 인력
    – 인재와 이념     …외

4타: 기여의 문제

    – 정책적 영향력? 
    – 산업적 기여? 
    – 창작에 기여?    …외

5타 이후: (추후에…-_-;;)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수정불가/영리자유 —

만화를 잡지로 읽는다는 것의 어려움 [만화규장각 0507]

!@#… 만화인에서 진행중인 등-대-등 만화언론 토론에 본격적으로 같이 뛰어들기 전, 약간의 준비운동 격으로 먼저 올리는 글. 사실은 부천 만화규장각 웹진에 기고한 글(당연히 직접 가서 봐야 예쁜 편집이 된 버젼을 볼 수 있음)으로, 만화잡지에 대한 현재 생각들을 정리해본 물건. 핵심은, 만화산업의 논리니 문화와 예술의 의미니 하는 거창한 것들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슨 메리트가 있기에 이들을 독자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만화잡지든 만화언론이든 만화의 세상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온갖 미디어와 비 미디어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그냥 세상이 바로 상대다. 그것을 용어 좀 발명하면서 약간 더 길게 말하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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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 장르 오락 상상력 – <풍장의 시대> [기획회의 050705]

!@#… 현업 완전 복귀는 아직 반나절쯤 남았지만, 여행가기 전에 써놓고 간 것들은 창고방출. 우선, 지난 호 기획회의 원고.

!@#… 개인적으로는 이 만화 읽어라/읽지마라고 품평을 해주는 것 보다는, 경향 <펀>의 <만화풍속사>에서 격주로 연재했던 것 같은 컨셉 – 즉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만화작품을 자연스럽게 소재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지면은 현재 <인물과 사상>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는 또 항상 너무 헤비하게 힘들어가서 탈이다. 뭔가 좀 더 가볍게 통통튀는 (고료 나오는) 연재코너가 필요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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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의 장르 오락적 상상력의 해답 – <풍장의 시대>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황동규 詩 <풍장> 중

예술적 상상력의 특효약이자 대중오락문화의 보고는 바로, 오래된 가치와 새로 들어온 다른  가치들이 어지럽게 충돌하는 시대에 대한 기억이다. 오래된 가치를 지키려는 자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며 변혁을 부르짖는 자.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충돌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부딪히며, 오해와 화해의 다양한 드라마들이 저절로 탄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정반합 작용에 의하여 잉태되는 무언가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통하여 시대의 희망을 볼 수 있는 단서까지. 이야기 예술을 만들어냄에 있어서 이것보다 더 확실한 공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이라는 곳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는 완전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민주화 시민세력과 독재세력, 인권을 부르짖는 노동자와 개발 자본가의 충돌, 이념을 빙자한 무의미한 동족상잔인 한국전쟁, 일제의 압제와 한국의 독립의지 등, 숱하게 사용되고 또 사용되어온 배경 소재들이다.

그런데 항상 의외로 별로 많이 활용되지 못한, 또는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시대가 바로 그 직전에 있었다. 그 시대가 바로 ‘개화기’인데, 전통문화와 서구적인 가치, 신분제도의 극복을 위시한 내부적 근대화를 꾀하는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근대화를 통해서 식민지배의 야욕을 품는 외세의 가치충돌이 부글거리던 역사의 단편이다. 본격적인 전쟁 또는 식민지화 등으로 파국을 맞이하기 이전, 복합적인 긴장관계가 팽팽하던 시절 말이다. 실제로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이러한 개화기 시절의 긴장이 가장 인기 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다. 메이지 유신 직전을 무대로 하여 신센구미(신선조)니, 유신지사니, 사카모토 료마니 하는 키워드들이 무척이나 친숙하다. 그에 비해서 사실 한국에서는 이 시기가 아쉽게도 그렇게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실제 역사상의 개화기가,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라는 최악의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생기는 엄숙한 조심성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재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결말을 알기에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모험을 더욱 강렬하게 그려낼 수도 있지 않는가. 그것을 증명해주는 최근 작품이 바로 <풍장의 시대(가리 글/이성규 그림, 대원CI>다. 이 작품은 시골의 양반 소년 목이가 십이지 수호신의 보호를 받으며 상경,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개화기의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는 내용이다. 현재 격주간 <영챔프>에서 연재중이며 아직 단행본으로 2권까지 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녹록치 않은 구도들이 여럿 드러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기계와 자연, 그리고 일본의 영적 가치와 한국의 영적 가치를 주요 축으로 하여 이미 독자들을 완전히 끌어들이고 있다.

소재의 힘이라는 것은 강력하다. 시골 양반 자제인 주인공이, 시천의 하늘을 기억하는 선택받은 영혼이며 십이지신의 수호를 받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쓸만한 소년 모험만화의 기본 구도를 품고 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혼과 백의 균형이 깨져가는 개화기를 살아나가며 이상한 일들을 극복해내야 한다면, 흔한 모험물과는 다른 차원의 재미가 저절로 더해지는 것이다. 십이지신이라는 존재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다양한 미소년 미소녀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부리며 주인공을 수호해주는 것으로 설정하기만 해도 소년만화 장르의 기본공식을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그들이 영적 격변기를 살아나가야 하는 입장이고, 돼지머리와 술과 담배에 욕심을 내는 지극히 한국 무속적인 속성을 지닌 정감어린 신들이라면 이야기는 새로운 독창성을 부여받는다. 품격과 재미를 겸비한 대중오락물을 위한 모범적인 접근인 셈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렇게 선택한 소재들을 제대로 작품으로서 요리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훌륭한 설정과 재앙스러운 전개로 독자들을 경악시킨 작품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다행히도, <풍장의 시대>의 작가 콤비는 무리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듯 하다. 수호신들은 정체불명의 무협기술을 외우며 하늘을 날라다니는 과장법보다는 투박한 돌격을 구사하고, 주인공은 실눈에다가 땅딸막한 꼬마다. 격투질에 집착하기보다는 시대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사건 전개, 어설픈 무게잡기 보다는 세심한 내면묘사와 캐릭터구축에 힘쓰는 접근이 바로 이 작품의 우수성을 지탱해주는 생명줄이다.

분명히 <풍장의 시대>는 비교적 신인급인 작가들의 경력에 비하자면 놀랄 정도로 원숙하다. 하지만 원숙함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원수간 장르적 상상력이 쉽게 빠져들어갈 수 있는 길들, 즉 일본이 한국을 영적으로 지배하려고 한다는 식의 음모론, 대등한 능력의 영능력자간의 일대일 대결, 맥락 없는 로맨스 등으로 대표되는 인스턴트식 흥미유발 요소에 빠져드는 ‘해탈’이 바로 그 위험요소들이다. 그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덜 원숙한’ 자세를 꿋꿋이 유지해주기를 작가들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서양 역사를 모태로 한 서양 판타지를 업어온 일본 서양 판타지를 다시금 주술 등 동양적 소재로 뒤범벅한 일식 퓨전 판타지를 다시 한국에서 적당히 긁어모아온 판타지 세계” 에 매달리는 수많은 만화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그 길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더. 걱정인 것은, 이 작품이 연재중인 <영챔프>가 <그의 나라>(박흥용), <맘보 파라다이스>(윤승기)의 연재중단이라는 과거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좋은 만화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지면과는 거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업계 최고 경사 중 하나인 2005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식에 출판사 사람이 작가들 기념사진 찍을 때 꽃다발 하나 안겨주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이 불안은 언제 사실로 바뀔지 모른다. <풍장의 시대>가 출판사의 방만함으로 이나여 억지로 풍장을 당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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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성인만화, 버린 것인가 버림받은 것인가 [계간만화 2005 여름]

!@#… 계간만화 2005 여름호 원고. (항상 그렇듯이) 커버스토리의 일부. 원래는 본격적으로 에로만화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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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만화, 버린 것인가 버림받은 것인가

김낙호 (만화연구가 / 본지 편집위원)

90년대 초 한국만화가 소년만화와 순정만화 전문지의 도입으로 급격한 체질변환을 겪을 때 가장 먼저 도태된 ‘기성 잡지’들은 성인만화잡지였다. 그리고 90년대 말 한국 만화잡지의 불황이 닥쳐왔을 때, 다시금 가장 먼저 판을 접은 것은 성인만화잡지였다. 한국만화판은 도대체 왜 이렇게 성인만화잡지와 궁합이 안 맞는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성인만화잡지에 대한 시도는 항상 새롭게 계속되고 있는가. ‘버려진’ 성인만화잡지지만 버림받게 내버려둘 수 없는 매력을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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