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심사평과 잡담

!@#… 공식 발표되었고 시상식도 끝났으니 올려도 무방하겠지. 2005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심사평. 이런 자리들이 보통 그렇듯, 결국 심사평 쓰는 작업은 결국 ‘위원장’보다는 ‘글쟁이’에게 돌아간다;; ‘공모전’이 아니라 기성 작품들을 가지고 하는 평가라면, 총평과 각각 작품별 평을 분리해서 써줘야 한다는 소신으로 이렇게 썼다. 다음번에 이어받으실 필자도 이런 식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보통, 실제 만화 자체는 읽지도 않는) 기자들이 기사쓰기도 이게 훨씬 편하거든. 파란 글씨는 추가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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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총평]

특정한 컨셉을 가지고 접근하는 다른 상 또는 공모전과 달리, ‘오늘의 우리만화’는 다양한 모호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줘야 한다. 대중성, 작품적 완성도, 그리고 만화계 안팎에 대한 영향으로 보는 현재성 등 여러 보편적 가치를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점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동시에 심사대상으로 오르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에서 선택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뒤집어보자면 여전히 만화는 역동적으로 다양한 길로 발전해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며, 오늘날의 만화작품들에 대한 능동적인 평가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의미다. 이번에 선정된 3개 작품은 주류 소년만화, 극화체 단편집, 아동 지향 순정 모험물 등 각각의 영역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며 향후의 발전 가능성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마지막까지 수상후보작으로 고려되었으나 최종 선정되지 못한 작품들 역시 적지 않았던 만큼, 수상자들 역시 이 상을 작품에 대한 최종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 정도로 인식하였으면 한다.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비록 우수하였으나 탈락한 여러 작가들에게도 더욱 좋은 작품 활동을 희망한다.

(* 앞부분은 오늘의 우리만화라는 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의문 그 자체 – 마치 올림픽에서 모든 종목을 없애버리고, 그냥 ‘세계 최고의 운동가’를 뽑는 것과도 비슷한 발상이다 – 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사실은 말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다.)

<풍장의 시대>
대원CI의 <영챔프>에서 연재중인 작품. 십이지 수호신과 함께하는 시골 양반 소년 ‘목이’가 겪는 개화기 시절의 사회적, 영적 격변를 소재로 한다. 동양과 서양, 한국적인 영과 일본의 영, 기계문명과 자연이 혼란스럽게 대립하는 모습들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신인들답지 않은 철저한 세계관 구축과 내용 전개가 돋보이며, 소년만화의 장르적 재미를 잘 살리고 있다.

(* 개인적으로, 꼭 한 작품만 꼽으라면 이걸 꼽았을 것이다(기현씨 미안;;). 뭐랄까, 순정만화에서 ‘도깨비신부’가 주었던 장르적 재미 + 토속성에서 오는 이질적(?) 즐거움 + 만만치 않은 시선 을 소년만화 장르에서 느끼게 해준 물건. 한가지 불안한 점은, ‘바로 그’ 영챔프에서 연재중이라는 것. 잡지의 낮은 지명도 문제도 있지만, <그의 나라>, <맘보 파라다이스> 등 석연치 않은 연재중단 당한 수작 소년만화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로또 블루스>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화풍과 이야기 전개로 각종 전시회와 단편 프로젝트를 통해서 주목받고 있는 신인 변기현의 단편들을 모은 작품집. 다양한 시각기법으로 만화의 표현적 자유를 한껏 활용하며, 단편 극화 특유의 극적 스토리 전개를 구사하는 능숙함이 돋보인다. 팬시한 측면은 부족하지만, 서사의 대중적 재미가 잘 갖추어져 있다.

(* 권말 추천평까지 써준 작품이라서, 적극적으로 심사에서 밀어주기가 입장 애매했던 물건. 하지만 애초부터, 당연히 뽑힐만 하다고 생각한 작품이 뽑힌 것이라고 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거기서 했으니 생략;;)

<월요일 소년>
달나라 토끼라는 모티브를 학원 판타지물의 형식으로 들고 온 작품. 대상 독자층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매력적인 캐릭터 및 세계관 설정, 매끈한 전개 등 장르적 완성도가 최근의 작품들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다. 저연령층 대상 순정 모험물의 양적/질적 강세를 잘 반영하는 작품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향후 전개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심사장에서 읽어보기 이전에는 아예 접해본 적이 없었다. -_-;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런 상을 심사하면서 가장 쪽팔리는 작태가, “심사위원으로 불려온 나름대로 전문가라는 작자가 그 작품을 원래의 발표 맥락에서 먼저 접해보지 않고 고작 당일 ‘심사테이블’에서 처음 접한 주제에 이러네 저러네 평가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부끄럽다 (즉 다시 말하자면, 평소에 그만큼 열심히 현재 출간중인 만화들을 봐오지 않은 사람은 애초부터 심사위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경우가 사실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개탄중이다). 한국만화를 실시간으로 꽤 읽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하고는 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 크게 지지하지도, 크게 반대하지도 못한 작품. 하지만 다른 여러 심사위원분들의 지지에 힘입어 결국 당선. 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 특별히 부족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2005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심사위원 일동

 

— Copyleft 2005 by capcold. 검은 글씨는 어차피 공식보도자료. 파란 글씨는 이동/영리 자유, 수정불가. —

만화계 몇가지 사소한(?) 소식들.

!@#… 개인 홈피를 빙자한 대형 커뮤니티, 대형 커뮤니티를 빙자한 개인 홈피(…). 뚝심의 개인 만화애니 정보 종합 포털(?). 여하튼 만화독자, 애니 감상자에게 귀중한 곳. 만화인(http://manhwa.in)에서 700백만 방문객 돌파 축하 이벤트. 여러가지 공모 이벤트와 축전 모음 등이 있으니 관심있는 모든 이들은 가보길. http://www.manhwain.com/main.html?no=102

!@#… <풍장의 시대>, 2005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만협 홈피에서 공식 공지했으니 이제는 이야기하고 다녀도 되겠지(다른 두편은 <로또블루스>, 그리고 <월요일 소년>). 심사평은 그쪽 사이트에 올라갔으니 여기서는 생략. 그보다, 풍장의 시대의 스토리 작가 ‘가리’가 스탠바이 청춘의 ‘김영빈’님과 동일인물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약간 충격. -_-;

!@#… 계간만화 2005 여름호 발간.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제작비 지원으로는 마지막 호(야속할 따름이다). 앞날이 잘되기를. 아니, 편집위원 주제에 남의 일처럼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지. -_-; 뭐 여튼 2004년 봄호부터 이어진 커버스토리 집필 개근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봄.

!@#… 아이큐점프 격주간 전환. 야심찬 신연재 예정.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현실적이고 좋은 쪽으로의 개혁이다. 적자를 줄이고 품질 좋은 잡지를 만드는 길로 한발짝 다가간 셈. 하지만 9년만에 처음으로 질적인 피크를 이루자 마자 일방적으로 폐간 당해버린 <영점프>의 전례가 떠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_-;

도망가는 자들에 관하여: <로또 블루스>[책속해설]

!@#… 최근 출간된 변기현 단편집 <로또 블루스> 책내 서평. ‘이쪽 계열 작가들’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선호가 좀 있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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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자들에 관하여: <로또 블루스>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 오락문화로서의 만화는 종종 “현실도피”라고 폄하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 분야가 누려온 폭넓은 인기를 상기해볼 때, 아마도 사람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무척 꿈꾸고 있음이 틀림없다. 때로 그 도피행은 장미빛 희망으로 가득한 가상세계로 향하거나, 소심한 현실에서는 엄두도 못낼 멋진 모험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만약 압박을 주는 현실과, 그것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도망자의 모습 그 자체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도피는 현실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어떤 가상적 비유를 통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변기현의 만화에서 반복적으로 채용되는 모티브는, 도망치는 주인공이다. 커다란 시스템의 아래에서 오랫동안 충실하게 ‘적응’하며 살아왔던 듯한 주인공이 있다. 요쿠르트로 감정을 통제하는 도시든(요쿠르트 도시의 사랑), 식용인간을 길러내는 가상세계든(FOOD), 위선적 착실함을 강요받는 교회든(로또 블루스), 과장된 남녀 연예관계든(레이디 앤 젠틀맨) 말이다. 그런데 그는 어떤 작은 계기를 통해서 자기 생활세계의 이상함을 느낀다. 결코 근본적이고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마치 선악과를 탐하고 낙원에서 추방된 인류의 조상들 마냥 이제는 더 이상 그 시스템 속에 속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도망친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에 대한 반항이라든지 개혁을 위한 내딛음 보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기현의 단편들을 단순히 염세적이라고 치부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여하튼 살아남고자 달려가는 사람들의 생명력 덕분이다. 주인공들의 도피 자체가 적어도 독자들에게 만큼은 삶의 의지이며 희망이 되어 주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결과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의 현실”에 대해서 한번 더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정도로는 충분하다.

이 책은 변기현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발표맥락의 편차가 있기 때문에 서로 이질적인 느낌도 있고, 가끔 표현이나 이야기솜씨가 덜 다듬어진 구석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근 발표작으로 올수록 빠른 속도로 자기 작품색과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명확하게 각인시키고 있으며, 이미 ‘유망주에 대한 기대’라는 수준을 가볍게 넘어선다는 점이다. 변기현의 작품들은 찰나적이고 인공적인 에피소드들 또는 진부한 대중문화 코드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환타지 세계가 지배하는 젊은 만화 창작 풍토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세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극화풍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극화풍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는 역시 극화풍 그림체다. 변기현의 그림은 동글동글한 미형 캐릭터들이 얄팍한 감성을 설파하며 돌아다니는 근래의 유행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80년대 극화마냥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 아니라, 거칠게 과장된 듯한 모습 속에 숨어있는 탄탄한 기본기와 확고한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인간군상은 표정이 살아있으며(특히 좌절과 난감한 상황에서 일그러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그렇기에 담담한 무표정의 순간 속에서마저 확실한 감정상태, 즉 내면의 이야기가 전달된다. 다양한 시선 각도라든지 역동적인 칸 진행 역시 이러한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춤을 춘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필체와 채색방식을 시도해서 극의 흐름에 가장 적합한 시각연출을 찾아나서는 모습 역시 이 젊은 작가의 만화에 대한 집념을 가늠하도록 해준다.

비록 작품집으로서는 첫 출간이지만, 변기현은 이미 최규석, 석정현 등 일련의 젊은 작가군과 함께 극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스타일리쉬한 화풍을 구사하면서도 단순한 시각적 실험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의 서사성을 고집하며, 만화 특유의 시각적 비유를 애용하면서도 리얼리즘적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신랄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블랙코미디의 유희성을 버리지 않는다. 이 만화들은 이전 세대 리얼리즘 극화의 모습들을 단순반복하지 않고, 일본 장르만화들과 인터넷 만화들과 시각실험들이 난무했던 90년대 이후의 만화유산들을 고스란히 흡수 및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리얼리즘 사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감수성을 중심축으로 하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혼합적인, “하이브리드 리얼리즘” 만화라고 감히 부를 수 있을 듯 하다(아마 후세의 사람들이 좀 더 적합하고 매끄러운 명칭을 새로 발명해주리라고 믿는다). 만화가 지니는 본연적인 혼합성과 자유로움을 정면으로 소화해내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에 좋은 결과가 오기를 바란다. 사실, 이미 좋은 조짐이 넘실대고 있는 셈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어차피 이미 작품들을 모두 감상한 후, 말미에 한번 곱씹어보기 위한 글에 불과하다. 이런 글은 닫아버리고, 다시 한번 변기현의 ‘야쿠르트’와 ‘로또’와 ‘닭다리’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자유 —

인간성의 조건 –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 [기획회의 050605]

!@#…지난호 기획회의.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에 씨네21(507호)에서도 리뷰가 올라왔던데… 비교하며 읽어봐도 재밌을지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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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조건 –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

꽤 옛날, 한 왕이 있었다. 그 때 왕들이 의례 그렇듯이, 어디론가 남의 땅에 들어가서 말달리고 싸우고 이김으로서 ‘정벌’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뭐가 그리 속에 불길이 타올랐는지, 정벌을 하고 나서 그 다음 그곳을 지배하고 가꾸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다. 정벌하고 정벌하고 또 정벌한 결과, 어느틈에 지중해 연안에서 아시아 전역을 다 휩쓸고 다녔다. 뭐 그러다가 결국 죽었지만, 그의 정벌 자체에 대한 그 무한한 집착과 성과는 어째서인지 후세에서 높이 평가받아,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불렀다. 여하튼 그저 끊임없이 정벌을 반복하는 모습은 단순한 권력이나 지배욕과도 뭔가 다르며, 오히려 마치 병정개미와도 같은 순수한 본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냉정하게 지켜보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사회적 명분을 뒤로 하고, 사실상 생물학적 특성인 듯한 그 행위들을 주욱 따라간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알렉산더의 파란만장한 시대를 다루는 만화 <히스토리에>(이와아키 히토시 / 서울문화사 / 2권 발행중)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알렉산더 본인이 아니라 그의 개인 서기관이었던 에우메네스다. 에우메네스는 서기관이라는 입장에서 알렉산더의 기행(奇行)을 지켜보았으며, 총명한 두뇌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알렉산더 사후에 군대의 전권까지도 얻게 되는 인물이다. 물론 완전히 돋보이기 전에 결국 배신당해서 사망하지만, 확실히 특이한 경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아키 히토시라는 작가가 과연 누구였던가. 인류가 사실은 생태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종족이며, 그래서 먹이사슬을 복원하러 정체불명의 포식자들이 나타나서 인간의 몸에 기생, 인간으로 둔갑하여 들어간다는 충격적인 세계관으로 90년대 고품격 일본만화의 정점을 이루었던 <기생수>의 작가다. 그 작품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모티브는 인간 바깥의 시선으로 인간을 냉철하게 바라보건데, 사실 인간이란 것이 별 것 없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관찰담이다, 말도 안되지만 너무나도 순수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본능적인 기행을 냉정하게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에우메네스에게 그 접근법과 문제의식이 그대로 계승된다.

그 문제의식이란 바로 인간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히스토리에> 초반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그리스권 도시국가들을 아크로폴리스니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니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모든 시민은 평등하지만, 시민이라는 계급은 전혀 평등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의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그들과 다른 종족들을 바바로이(야만인)라고 부르며 폄하하며 노예로 삼아버렸다. 여성과 아이는 물론 정치적 참여권을 가진 일반 시민이 아니며, 게다가 혈통이 중시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바바로이와 문명인의 경계, 즉 시민과 노예의 경계는 도대체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 사실 전혀 명확하지 않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일 뿐, 그리 선천적이고 절대적인 기준 따위는 없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성숙함의 경계선 역시 사실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와도 같다. 그럼에도 자꾸 자신들을 ‘인간’으로 자처하게 만드는 이성과 감성의 기준을 만들어 내며 자족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에 우선하는 것은 바로 생물로서의 본능 그 자체다. 그 중 하나는 개체의 생존본능, 또 다른 하나는 그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정복이나 복수 등 외적 공격성향이다. 고리타분한 고대 모험담이나 신화 섞인 전쟁이야기나 나오기 쉬운 이 시대와 역사를 배경으로, <히스토리에>는 인간에 대해서 논한다. <기생수> 당시보다도 더욱 진하고 집요하게.

인간(들)의 본질을 캐내기 위하여, 바깥의 자가 인간 활동 패턴을 관찰한다는 감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캐릭터들의 무심한 표정 덕분이다. 사실 이 작가는 그다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만한 팬시 느낌 강한 미소년 미소녀를 묘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표정묘사 역시 지극히 부족하다. 아니 사실 데생이나 그림체 자체가 뭔가 ‘끌리는 맛’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지극히 야만적이고 잔인한 제도들을, 당연한 문명의 꽃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쪽 세계의 괴리감에는 그런 멍하고 무표정한 모습들이 오히려 확실한 효과를 준다. 그에 비해서 일반적인 연출방식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아서 긴장 넘치는 복선은 물론, 난데없는 상황 반전 내지 급진전이라는 강력한 작품 통제력을 자랑한다. 특히 트라쿠스가 오랜 노예생활에서 풀려나서 햇살을 움켜쥘 듯 하늘에 손을 대는 희망의 모습과, 바로 그 다음 두 페이지를 장식하는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의 대비는 이 만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각 연출의 백미다.

항상 그렇듯이, 티 없는 옥은 없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잔학성은 작품의 내적 리얼리티와 ‘인간이란 게 다 그런거지’ 식의 시니컬한 메시지를 잘 살려주지만 독자층을 좁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히스토리에>의 경우 가장 큰 잠재적 문제는 연재 작업 그 자체다. 일본 현지에서도 월간지 연재작인터라 단행본 발간주기에 특별히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우선 내용 전개가 확실히 느리다. 현재 발간된 2권까지의 분량에서는, 에우메네스의 현재 모습과 유년기 경험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알렉산더의 부하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장편시리즈이기 때문에 엿가락 늘리기식 지속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요소까지 겹치면, 정말 난감해진다.

사실 말이 옥의 티지, 사실은 투정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에우메네스의 모험담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서 그런 셈이다. 그 멍한 청년과 함께,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에우메네스는 모르겠지만, 사실 작가는 이미 자신의 견해를 꽤 명확하게 표출을 해버리고 있다. 2권 마지막 페이지, 어린 에우메네스가 감정과 생존본능의 무게중심을 비견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대목을 보며 작가에게 마음 속으로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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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상상력 없는 사람들, 만화를 상상력 없게 읽다

!@#… enterani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주간동아 488호(05년 6월 7일자) 커버스토리 기사, <만점논술비법> 가운데 한 꼭지, “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에에…우선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30초 동안 큰 소리로 웃어주고 시작하자.

(30초 경과)

…자, 웃느라 눈에 고인 눈물을 좀 닦아내고, 좀 이야기를 시작하자. 희대의 개그를 해주신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그리고 별로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은 담당 편집장님께 감사. 여러분들의 천박하고 시대착오적인 문화감각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논술공부의 존재이유를 ‘만점’에서 찾는다는 그 엄청난 커버 스토리 컨셉 자체부터 이미 참 경악스럽지만, 굳이 말을 꺼내기도 귀찮으니까 생략. 전에도 말했듯이, 간판을 얻기 위한 입시경쟁을 무려 교육열로 포장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이 수십년동안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나. 여기서는 그냥 편의상, 그 중 한 꼭지만 씹자. 긴 글 읽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엑기스만 뽑아보자면 이런 거다(아니 사실 제목 자체가 엑기스다):

‘학습만화’를 경계하라

어린이 독서사이트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는 “부모가 만화의 함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유식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명심보감이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복잡한 가계도도 아주 쉽게 기억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건 뭐든지 쉽게, 조금이라도 일찍, 지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는 설명이다. 글로 된 책, 진지한 책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만화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삼국지’를 익힌 아이들에게 책의 주인공과 배경은 ‘만화에서 본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부모가 나서 ‘만화가 아니어도 만화만큼 재미있는 책’을 골라 함께 읽고 독려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이 되어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를 보고 확실하게 동의한 점이 있다면, 어릴때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릴때 만화는 물론 책과 문화 전반에 대한 그릇된 편견만 잔뜩 주입받으니까, 커서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거다(그러면서 심지어 기자라고 월급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똑같은 말을, 꽤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도 종종 듣곤 한다. 한마디로, 특별히 몇몇 개인들의 천치스러움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과 문화적 수준의 문제인 듯 하니까 좀 심란하기는 하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 만화가 마음에 안드는거다. 애들이 독서를 안한다, 큰일이다, 라고 나름대로 한탄하고 싶은데, 실제로 애들은 독서를 하고 있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야 한다. 그래, 애들이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게 만화책이다. 그러니까 만화책이 나쁘고 저급한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명쾌한 논리. 그 기저에는 물론 ‘훌륭한 문자서적’과 ‘저급한 만화’라는 꽤 전형적인 이분법적인 인식이 깔려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만화가 나빠서 싫은 것이 아니라, 만화가 싫기 때문에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가 사실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그런 방식으로 ‘적을 만들고 싫어해 줌으로써’ 작동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만화가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정말 너무나 아스트랄해서,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참 괴이하다. 아니 그럼 비비안리와 클락 게이블로 이미지가 고정되니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다윗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누드 젊은이로 이미지를 고정하니까, 미술품 감상을 하지 말아야 할까?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면 고등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받게 되니까 고등어는 무조건 시장에서 사서 날로 먹어야만 할까?

…이런 상상력 제로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상상력은, 무정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들을 구현화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주마. 오히려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같이 서로 공상을 나누고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다고, 문자로만 되어있어야 ‘진지한 책’이고 뭐고 장땡이라고? 저기, 만화책에는 문자가 안들어가나? 무언극인가? 아니면 당신들은 그림으로 된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가? 그 수많은 도표들로 가득한 전문서적들은 다 쓰레기인가? 교과서에 만화로 설명을 하는 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인가? 인터넷의 ‘웹’이 글과 그림, 기타 멀티미디어로 다양하게 융화되는 것은 진지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주간동아’에서 사진과 그림들을 전부 빼버려야 하지 않을까?

오진원씨라는 분의 멘트도 압권이다. 무려, ‘만화의 함정’이란다. 저기, 이 기회에 엄청난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바로… 애들이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그리스로마 신들의 족보라든지)만 줄줄 왼다고 애가 유식해졌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바로 함정 그 자체다!!! 그건 글로만 된 책을 읽는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아마도 주간동아 이나리 기자 같은 상상력 없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말겠지.

!@#… 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지고 비트 수를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만화는 그 자체로서 상상력을 키워주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만화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 그런데 그것은 만화가 아닌 어떤 매체라도 마찬가지고. 근거없는 저급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해악이다(그러니까, 바로 당신들이 해악이라는 말이다). 문자로만 된 책은 좋고 만화는 나쁘다… 좀 더 가면 실사영화는 좋고 애니메이션은 나쁘다… 좀 더 밀어붙이면 백인은 훌륭하고 검둥이는 더럽다, 자본주의 만세고 빨갱이는 죽여버려야 한다, 박정희 만세고 요즘 젊은 것들은 방종에 취해서 저 지랄인 것 뿐이다,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저급한 이분법이 완전히 무르익어 버리면 또다른 해악을 자연스럽게 잉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비론과 패배주의다. 뭐랄까,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이라서 지겹디 지겹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방향에서 길게 다룰법한 이야기니까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 나는, 사실 굳이 만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 속 여러 구성원들의 일상속에 뿌리 내린 한심한 문화적, 사회적 인식 수준을 즐겁게 비웃기 위해서 한 마디 건네는 것에 불과하다.
 
(2006.12.12. 추가: 위의 해당 기사에 인용되신 오진원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간동아와 인터뷰한 적 없고 내용 역시 원래 주장하고 다니셨던 바와 크게 다르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많이 강조하고 다니신 분.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정말, 야매스러운 기사내용은 야매스러운 취재방식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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