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기획회의 070615]

!@#… 하지만 거꾸로 소시민 정서 위주의 작품들만 남발되면, 짜증이 난다는 단점도 있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다양한 선택권.

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

김낙호(만화연구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한 때는 너도나도 세계정복이니 세계평화니 하다못해 남북통일이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멀리 있는 커다란 것에 대한 동경, 자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정상적인(?) 경로로 나이를 먹고 세상에 적응하며 사회인이 된 사람이라면 목표의 거리 범위가 더 짧아지고 자신의 성장 속도가 어느 선을 넘지 못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품었던 것과 지금 품고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한다면 몰라도, 만약 스스로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는 특별히 아깝거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평화에서 아파트 이웃 간의 평화로 목표가 옮겨가고, 세계정복은 직장의 철밥통 자리 정복으로 이동했을 뿐. 호연지기니 야망이니 어쩌니 교육받으며 자라난 교육환경과는 달리, 세상은 대부분 소시민적 가치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바로 그 속에 훨씬 더 많은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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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의 만화들에 관하여 [판타스틱 0706]

!@#… 2회로 끝난 초단명 칼럼(!)의 마지막회. 평론적 해석을 줄이고 거의 약력 위주로 설명해도 지면이 부족했다는;;; 하기야 바로 그런 것이 이 칼럼란을 정리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만. 칼럼 속성상, 최근 각광받는 소설가로서의 게이먼보다는 본업인 만화스토리 쪽의 게이먼을 다뤘다. 본래의 탈고버전 + Dreamlord님이 잡아주신 정보 오류수정 반영.

현대 신화에 심취한 셰익스피어 – 닐 게이먼의 만화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집안의 반대로 어긋난 연인들이나 미쳐버린 왕, 복수에 목숨걸다가 결국 주연 인물들 몰살 같은 장중한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멋진 본질이 드러나는 것은 상상력 넘치는 환타지 작품 『한여름밤의 꿈』이다. 신화속의 요정들이 인간 세상과 위화감 없이 상호작용하며, 평범한 일상은 기이한 현상으로 가득해진다. 당대 현실의 인간사와 신화적 상상력의 연결, 그것을 통해서 꿈과 현실, 욕망과 허망함을 넘나드는 한바탕 소란을 벌이는 이야기.

그런데 만약 그런 이야기 만들기와 정서를 현대의 작가가 이에 맞먹는 완성도로 구사한다면 어떨까. 최근에는 환타지 소설가로도 명망을 떨치는 영국 출신 만화스토리 작가 닐 게이먼Neil Gaiman의 작품들이 바로 그렇다. 그의 작품들에는 셰익스피어적인 화려하고 섬세한 대사가 넘치며, 신화적 원형들이 현대 인간사에 대한 거울 역할을 하며 촘촘히 배치된다. 덕분에 그가 주도한 작품들은 문학적 완성도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곤 해서, 그는 만화 『샌드맨 Sandman』연작의 성공과 최근작 베스트셀러 소설 『아난시 보이즈 Anansi Boys』까지 축적된 명성을 기반으로 현재 영미권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환타지 작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CS루이스나 톨킨, 르귄 등 정통파 환타지 작가들의 진한 영향을 보이며, 그 위에 DC코믹스 류의 현대 슈퍼히어로의 장르법칙들을 녹여넣고 또 비틀어 나가며 심오한 고민까지 풀어나가는 솜씨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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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 『26년』[기획회의 070601]

!@#… 하지만 따지고보면 지금은 27년. ‘서평’이라는 것은 종이책으로 단행본 출간된 후에야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좀 불편하다. 이 정도 레벨의 물건을 정작 작년에는 한국만화 전반 추천이나, 그냥 개인 포스팅에서 밖에 다뤄주지 못했으니 원… 연재중인 웹만화를 바로 평가하고 추천할 수 있는 공식 지면도 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결국, 없던걸 새로 만들어내야겠지만.

현재진행형 – 『26년』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오래된 명언을 다시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나간 일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양분이 되어주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과거에 배운 것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주고, 과거에 겪었던 어려움은 현재의 조건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의 정리되지 않은 사건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도록 종용하곤 한다. 만약 그것이 개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큰 차원 – 사실 국민이니 민족이니 나라니 하는 범주들을 동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 이라면, 한 사회의 현재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온통 해방 후 현대사가 워낙 인과응보를 깨끗하게 무시한 닥치고 전력질주를 일삼아온지라, 그 결과 참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현재를 살고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지다시피, 그런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물론 법적인 평가도 끝났고 책임자 처벌과 사면도 이루어졌다지만, 가해자의 반성도 자숙도 없는 이상은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그저 ‘비극’으로 치부되고 끝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가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낼 마감시간은 점점 임박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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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기획회의 070515]

!@#… 논의 초기에 기획 참여했다가 유학차 도망쳤던 물건으로, 결국 2년만에 세상의 빛을 본 케이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꽤 충실한 품질로 나와줘서 반갑고, 당초 기획한 컨셉들의 상당 부분이 잘 녹아들어가서 또한 재미있다. 2권, 3권까지는 후딱 출간되어줘서 상승세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

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수년간은 확연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화는 ‘비교육적’인 것의 대표격으로 종종 어른들의 걱정 속에 동원되고는 한다. 사실 그 어른들이 원하는 아동들의 교육을 저해하는 것은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 인터넷 상의 넘치고 넘치는 잡스러운 정보와 커뮤니티들 등 넘치고 넘친다. 즉 거꾸로 생각하자면 만화가 그만큼 어른들이 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 – 바로 ‘책’의 형식과 가까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만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물론 과장법이 다소 끼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는 언젠가부터 부모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학습’이라는 컨셉을 차용하곤 했다. 아동들에게 오락적 재미를 주어 승부하고 싶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굳건한 벽, 부모의 교육 만능주의 – 솔직히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기보다는 그저 경쟁적 입시준비에 대한 변명이지만 – 를 돌파하기 위한 밑밥인 셈이다. 하지만 밑밥은 종종 멍에로 돌아온다. 학습성을 어떻게든 집어넣겠다고 신경 쓰느라 재미가 없어지거나, 아무리 봐도 전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학습성으로 덮어보려고 하는 얄팍한 술수 말이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것은 결국 아동층을 독자층으로 하는, 재미 그 자체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나니아 전기』, 소설로 따지자면 『해리포터』 연작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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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기획회의 070501]

!@#… 지난 호에 실렸던 ‘푸른 알약’ 리뷰. 에이즈라는 꽤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참 솔직한 생활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인상적인데, 한편으로는 의료복지체계가 잘 발달한 서유럽권의 나라이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

 

사랑의 조건 – 『푸른 알약』

김낙호(만화연구가)

질병이란 참 성가신 것이다. 특히 만성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파서 아무런 대인활동도 하지 못하고 단지 회복에만 전념하기에는 아직 인생을 살만한 정도의 힘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병이 가벼운 것은 아니니 자꾸 신경 쓰이고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주변인들의 시선까지 겹치면 한층 복잡해진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것만으로도 불안해 죽겠는데, 정작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고 호들갑을 떨어서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에 인간 아무개가 아닌, ***환자 아무개로 사회적 위치가 지워진다. 게다가 이 과정에는 병의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가보다는, 병 자체가 어떤 병인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즉 병이 바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존하는 만성적 질병 가운데 가장 사회적 정체성으로서의 ‘힘’이 강한 것은 바로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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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현대사 – 『타짜』[기획회의 070415]

!@#… 왠 뒷북 ‘타짜’냐고 한다면… 영화 덕분에 다시 한번 유명세도 타고, 신판본으로 완결까지 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제 때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사후분석이 아닌 ‘리뷰’를 할만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 듯 하여 4월 초에는 그냥 이걸로 갔다. 앞으로는 한동안 다시 신간다운 신간(?)으로 리뷰 대상을 스위치하고자 (지난호에는 푸른 알약이 들어갔고, 이번호에는 크로니클스 예정) 한다.

 

『타짜』 – 도박의 현대사

김낙호(만화연구가)

도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확률과 보상의 크기를 놓고 서로의 판단력을 겨루는 대결이다. 성공의 확률이 낮을 수록 보상의 크기는 커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얻어냈을 때 일시적으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성취감이 지극히 중독적이라는 것, 그리고 역시 크게 실패할 확률이 애초부터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사례라면 대부분, 재도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붇고 산화하기까지 한다. 정말로 돈을 따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차라리 적금을 붓고 투자 펀드에 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도박은 어디까지나, 돈 자체의 문제 이전에 돈을 매개로 한 스릴에 대한 집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하는 원래의 목적이든 생각이든 뇌리에서 증발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발생한다. 이기는 것, 복수하는 것, 혹은 그냥 ‘손맛’ 그 자체에 힘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극대화된 경쟁에 스스로 도취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자면 비단 도박이라는 극단적인(?) 놀이문화가 아니라도, 정치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가 되었든 한국사회에서 종종 나타난 공통된 패턴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왜 잘 살아보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룰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한국의 현대사다. 성찰과 룰을 생략하고 입시경쟁과 취직시험 경쟁에 몰아넣고, 낮은 확률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각종 족집게 과외와 꼼수들을 머리에 우겨넣는 것이 우리 생활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 말로 목적을 잃은 스릴 중독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 자체가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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