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다 – 『내가 살던 용산』[기획회의 268호]

!@#… 말미의 북콘서트 홍보는, 실제로 게재되었던 내용이라서 이미 지난 행사지만 그냥 남겨둠(물론 잡지 자체가 23일 이전에 출간). 얼마전 전자신문 글과 내용상 한 세트, 사태 당시 썼던 글들의 연장선(클릭, 클릭, 클릭, 클릭).

 

사람이 있다 – 『내가 살던 용산』

김낙호(만화연구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해 개최된 민가협이 주최하는 ‘인권콘서트’라는 행사가 있었다. 원래 처음 행사가 시작했을 때의 명칭인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그 취지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텐데, 행사가 거듭될수록 꽃다지나 안치환, 정태춘 등 소위 운동권 인기스타들 뿐만 아니라 크라잉넛, 김종서, 전인권(짐작하시듯, 공연하면서 매번 이름으로 말장난했다) 등 한층 대중적인 스타들도 함께 하는 굵직한 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콘서트에서 항상 주요 출연자들이 하는 멘트가 바로 “내년에는 이 행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다. 양심수도 석방하고 인권 의식도 마구 올라가서 더 이상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어떤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자신들이 출간하려는 신간 작업과정을 소개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책 만들지 않을 수 있었으면” 이라고 말이다. 그 책의 제목은, 『내가 살던 용산』(김홍모 외 / 보리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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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이라는 프레임. 무상급식. 무상무선인터넷.

!@#… 진보진영에서 꽤 초창기부터 항상 애용해온 개념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무상‘이다. 사회가 어떤 서비스를 하나의 기본권으로 제공해줘야 한다는 정책을 부르짖을 때 의례껀 “무상***”으로 조어를 만들곤 한다. 하지만 이미 예전부터 종종 지적되어 왔듯,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을 베는 방향의 날이 훨씬 더 날카로운. 최근 많이 거론되는(혹은 거론되었으면 하는) 두 가지 키워드 “무상급식“과 “무상무선인터넷“을 통해서 무상이라는 표어 말고 실제로 유통되어야 내용들에 대해 약간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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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기억투쟁 – 『내가 살던 용산』[전자신문 100326]

!@#… 간만에 돌아온 전자신문 원고 차례. 기획회의(아직 여기 안올렸지만), 시사인(그 부분 잡지에선 잘라냈지만)에 이어 이쪽에도 ‘내가 살던 용산’이다.

 

역사라는 기억투쟁 – 『내가 살던 용산』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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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만화의 세계 [시사인 131호]

!@#… 용산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내가 살던 용산’을 계기로 르포만화라는 용어가 표면화되고 있는데, 그 일환인 시사인 131호의 특집에 들어간 글. 기사 묶음의 메인 꼭지와 겹치는 관계로 잡지버전에서는 마지막 두 문단 한국을 다루는 부분을 잘라내고 이런저런 축약. 여기야 원고버전이니까 마음껏 풀버전. 기사화 제목은 “르포만화에 퓰리처상을 주는 이유“.

 

르포만화의 세계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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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고대문화 99호]

!@#… 고대문화에 기고한 정치글과 만화글 사이의 그 무언가임.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시리즈화하기도 용이한 컨셉인데, 과연 이런 방식의 글을 원하는 지면이 나와줄지는 미지수(…). 제목은 편집부에서 지어준 예쁜 제목. 그런데 생각해보니 글은 대중서사문화’를’ 바꾸는게 아니라 대중서사문화로 사회를 바꾸는건데 OTL

 

대중서사문화를 바꿔낼 힘,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만화로 얻어보자

김낙호(만화연구가)

사회적 내러티브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우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집단생활 습성 정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지 인간들이 이미 턱없이 복잡하고 거대해진 현대사회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의 인지능력 진화속도보다 훨씬 빨리 사회 속 여러 구도와 관계들은 복잡해져왔고, 덕분에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매번 새롭게 이해하느라 고생이다.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제도까지 히트를 치면서, 각각 신경을 써야 한다고 요구되는 영역이 만만치 않다. 무려 사회의 주인라면, 사회 돌아가는 방식들에 대해서 뭘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에서 그냥 정신줄을 놓고 노예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야, 복잡한 세상을 최대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순화시켜서 받아들이는 기술이 은연중에 발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방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적 내러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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