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저널리즘의 새로운 다크호스

!@#… 밑바닥 따위는 없다. 계속 떨어질 뿐이다.

 KBS “황우석 ‘줄기세포 특허’ 지켜야” (한국일보)

 KBS’생방송 시사중심’ 전용길 PD 말씀하신다: “이번 방송은 언론의 맹목적인 팩트주의를 반성하는 내용을 담을 것“. 이럴때는 대략 어이가 은하철도999타고 안드로메다로 직행해서 메텔과 쎄쎄쎄하신다. 지존급 개그언론인으로 발돋움하셨으니 축하.

 !@#…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의 “때로는 국익을 위하여 진실을 덮자“(MBC 100분 토론) 발언 이래로 최강의 개그.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팩트보다는 직관이다” 발언과 같은 패밀리 계열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포스가 남다르다. 자타 공인 황빠 KBS 홍사훈 기자와 함께 우석갈비를 먹다가 탈나서 광우병이라도 옮으신 것 아닌가 사료된다. 빠른 쾌유를 빈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오랜만에 발견한, “개념글“.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외로움과 함께 사는 일상 – <그와의 짧은 동거> [기획회의051230]

!@#… 지난 호 <기획회의>에 들어간 원고. 장모씨 이야기 연작 가운데 가장 이야기로서 완성도가 뛰어났던 파트가 책으로 나오니, 대략 흡족. 하지만 성찰적이고 비유력 깊은 작품이 대형히트를 치기에는 출시 타이밍이 다소 애매. 미디어 노출도 그리 많이 되지 않은 듯 하고… 음. 아쉽다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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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함께 사는 일상 – <그와의 짧은 동거>

김낙호(만화연구가)

바퀴벌레라는 존재는, 인간들의 사회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룰에 의해서 자연계를 멋대로 바꾸어버렸고, 대다수의 동물들은 내쫒기거나 또는 인간에게 식료품이나 노예로 이용당하는 입장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생태 규칙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인간 세계와 공존한다. 물론 인간들로서는 그런 낯선 존재들을 반길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바퀴벌레가 병균을 옮긴다고는 하지만, 사실 인간들이 옮기고 다니는 병균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소탕’하려고 하지만, 지금껏 빈번히 실패해왔다. 굳이 말하자면 바퀴벌레라는 종은 인간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셈이다. 인간세상의 일부지만 조금은 다른 존재.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은 내면에 귀중함을 감추고 있는, “언젠가는 백조가 되어 날아오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다. 벌레는 다르면서도 그냥 범속한 존재다.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냥 일상적인 무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벌레는 심지어 어떻게 되든 동정조차 가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문학에서는 바퀴벌레, 또는 실제로 바퀴벌레를 지칭하지만 그냥 ‘벌레’라고 표현되는 존재들은 아주 흥미로운 비유로 활용되고는 한다. 벌레로서의 인간은 범속하면서도 범속 이하인 처지, 또는 세상 속에서 가치가 없음에 대한 자기 환멸의 표현으로 활용하기 좋은 것이다. 세상 속의 부조화, 부조화의 결과인 외로움에 대한 자학적인 변명의 수단으로서 이보다 더 강력한 비유를 찾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주의 체코 사회 속에서 카프카가 “어느 날 일어나보니 커다란 벌레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최근 출간된 <그와의 짧은 동거>(장경섭 / 길찾기)는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작가의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자아의 충돌, 일상화된 소외에 대한 성찰 등을 핵심주제로 삼으며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장모씨 이야기> 연작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바퀴벌레와 동거하게 된다.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젊은 남자의 집에 바퀴벌레가 공존하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어느 날 진짜로 본격적인 룸메이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같이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먹으러 가고, 청소도 분담하는 사이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장모씨와 바퀴벌레의 짧은 동거생활을 따라가며, 사람이 만나고 우정을 발휘하다가 다른 인간관계 속에서 소원해지기도 하며 결국 갈라서고는 여운이 남게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어떤 마법의 계기가 있거나 갑작스러운 놀라움이 있기 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인간 사이즈의 바퀴벌레와 함께 해도, 주인공은 특별히 놀라지 않는다. 아니 사실 특별히 놀라는 것은 전 작품을 통틀어 주인공의 여자친구 한 명 밖에 없는데, 그녀마저 사람 사이즈의 바퀴벌레라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장모 씨가 진짜 바퀴벌레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따름이다. 다르고 비속해도, 어차피 이 세상의 일부다.

바퀴벌레는 이 사회에서 비루한 처지에 있는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 자다. 실제로 <장모씨 이야기> 연작 가운데 인권만화 모둠 <십시일반>에 실린, 동남아 노동자와 동성애 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작품에서 보여준 작가의 세계관을 고려할 때, 이 부분에 대한 섬세한 비유력과 묘사는 경탄할만 하다. 하지만 동시에, 바퀴벌레는 일상화된 외로움을 살아 나가고 있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이미 무덤덤해진 자기 자신의 좀 더 비속하지만 나름의 생활 패턴이 있는 또 다른 파트너, 가상의 생활 상대 말이다. 뜨거운 우정이나 불타는 애정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룸메이트. 적당히 배려해주고, 적당히 무관심해지는 그런 사이. 필요 이상으로 개입해서 내 생활을 바꾸어 놓지도 않지만,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남을 대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어떤 일면을 대할 때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것을 ‘일상’이라고 불러 왔다. 기묘하게 현실적인 판타지이자, 단절된 자아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매력 말이다. 스스로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화된 외로움이 있는 어떤 자아가,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일상화된 비속함과 소외를 지니는 어떤 자아와 만나서 서로를 보충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외로움의 해소가 아니라, 외로움과 함께 사는 법을 좀 더 부드럽게 터득해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모씨와 바퀴벌레의 생활은 무언가 버디무비와도 같은 티격태격거림과 달리 은근슬쩍 시작하고 은근슬쩍 끝난다. 그 이별은 슬프기 보다, 자연스러운 성장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상징의 무게에 짓눌린 무겁고 우울한 작품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드럽고 열린 선의 흑백 그림이 전해주는 풍부한 감성은 이 작품의 균형감각을 대변해준다. 이러한 필체 속에서 공간의 묘사는 현실의 남루함이 과장되지도 은폐되지도 않는 정도의 수위로 조절된다. 장모씨와 바퀴벌레가 동거하는 자취방 공간에 베어 있는 생활의 냄새는 어떤 자세한 사진으로도 따라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이야기의 연출 역시 적당한 반전과 효과적인 시간 이동이 돋보이는 극적 구조를 활용하면서도 특유의 담담함을 잃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섞여 들어가며, 오랜 시간 공들여 구상해낸 작품이라는 흔적이 역력하다. 책에 같이 실려 있는 다른 짤막한 단편들과 비교할 때 이러한 요소들은 더욱 돋보인다.  

만약 <그와의 짧은 동거>가,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히트를 기록하던 수년 전에 나왔더라면 아마 대형 히트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연재지면이 없어지는 바람에 거의 5년여를 너무 늦게 출간한 템포 늦게 출간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환상적 비유를 생활의 남루함 속에서 활용하여 일상 속의 성찰을 이야기했던 감수성이 지니는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외로움에 대해서 청승을 떨기에는 너무 그 상태에 오랫동안 처해있던 이야기.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았다느니 하는 과장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어딘가가 비어있는 것 말이다. 바퀴벌레와의 동거 속에서, 약간은 그 생활에 더 능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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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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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명랑 기자회견, 그리고 잡상.

!@#… 한줄로 웃겨주마:

저는 줄기세포 배양해본적도 없고, 줄기세포를 볼 안목도 없었습니다” (황우석, 기자회견중 답변)

!@#… 여튼 오늘 기자회견은, 수염기르고 병원에 누운 것 이래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음.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 난 그냥 속은거지만 나한테 화살을 돌려라, 라는 막강 클라이막스까지. 안되겠다. 황우석씨를 언론학과로 모셔야겠다. 이 사람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자기 수족처럼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어차피 이제 검찰조사 불려나가는 것 빼고는 할 일도 없을텐데, 수능보고 언론학부에 입학할 것을 권한다.

!@#… 황 사건에 대해서, 아직도 똥오줌 못가리는 사람들이 많다. 원천기술이 있네 없네, 바꿔치기 당했느니 말았느니… 뭐 이제는 적어도 논문 조작 만큼은 적어도 확고부동한 만큼 과학자로서 생매장 당하는 것은 다들 어쩔 수 없이라도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황우석의 이번 기자회견은, 솔직히 말해서 일본 수상이 역사 사과 하는 것들과 비슷한 삘이었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서 사과를 하기는 하지만, 도대체 뭘 사과한건지는 도저히 아리송한 것 말이다. “잘못은 없지만 여하튼 다 내 책임이다”라는 가식.

!@#… 그런데, capcold는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아무리 아무것도 몰랐다는 황의 말에 또 한번 속아주더라도, 어느 특정 시점 – 아무리 늦어도 PD수첩 취재 도중 자기들의 ‘자체검증 결과’가 나왔다는 11월  중순부터는 논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뒤에 한 작업이 뭐게? 피디수첩 죽이기. 거짓말로 속이고 사태를 모면하려 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진실규명  노력 자체를 죽여버리려고 한 것. 아직도 원천기술 타령이나 하는 탓에 여기에 초점 맞추는 사람들 별로 없지만, 나는 이게 가장 주목해야할 문제고 또 커다란 죄과라고 본다. 거짓말을 한 정도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사회 원칙 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숴버리고자 했다는 것. 숨겨놓은 원천기술이 넘쳐나서 알고보니 황우석 연구팀이 전부 황우석의 클론이라고 드러날지라도 이 죄과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처벌도 안받고 지나갈 듯한 불길한 분위기다. 심지어 도덕적 비난도 별로 안받고 있으니.

!@#… 이게, 비유하자면 이런거다.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 선수가 카메라맨들 눈 피해서 존내 대범한 파울을 저질렀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근처에 있던 심판이 와서 누런 카드 하나 꺼내들고는 휘슬을 분다. 그런데 그 선수가, 심판을 오히려 졸라 패버린다. 이봐, 그러면 당연히 레드카드에, 장기적인 선수 징계에, 잘못하면 게임도 몰수패에, 덤으로 국제적인 개망신이라고! 나쁜 짓을 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룬다. 하지만 그 댓가를 거부하면 훨씬 더 큰 댓가를 치뤄야 한다.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아무도 곱게 처음부터 댓가를 치루려고 하지 않을테니까. “음주운전 하다가 단속에 걸려도, 경찰을 치어죽이고 달아나면 대략 오케이~” 인 곳은 지옥에 다름아니다. 제발, 최소한의 사회정의 정도는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한국사회가.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아까의 축구 비유로 돌아가보자. 무엇보다 이번 건에서 capcold가 가장 어처구니 없는건, 왜 한국팀이 이기고 있는데 휘슬 불고 지랄이냐며 우루루 경기장에 난입해 들어오는 관중들. 그리고 “심판이 앗아간 승리”라고 떠들어댔던 찌라시 언론들, 그리고 그것은 모두 강대국의 음모라면서 가슴만 치고 앉아 있었던 우리네 ‘평범한’ 시민들. 기억하라. 잊고 싶을 수록 기억하라. ‘평범한 시민’인 우리들 자신들의 이런 부끄럽고 치졸한 치부일수록, 더더욱 기억하라. 이런 광기의 늪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묵인함으로써 일조했던 쪽팔림을 기억하라. 기억은 성찰의 시작이다.

결과.

!@#… 떴다.

http://www.snu.ac.kr/ICSFiles/afieldfile/2006/01/10/report.pdf

!@#… 찬찬히 다시 한번 읽고 한마디 해야 하겠지만, 요점만 말하자면: 2005 구라, 2004 구라, 원천기술은 지랄, 스너피는 대략 세이프 인정. 뭐 대략 추정되던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팩트로서 정리를 해버리니 대략 아스트랄. “코스모가 보여요”(by 왕자님 from 괴혼).

PS. 참 사람들이 벌써 까먹었을 거라고 확신하는데… 그나마 진짜라고 인정받은 스너피를 만든 건 황우석이 아니라 이병천(황랩 소속이긴 하지만). 2005년 8월 초 기사들 한번 찬찬히 살펴보길.

PS2. 피디수첩 4탄, 황랩의 언론쇼  특집. 키워드는… “고기“. 코스모가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코스모가 되어버렸다…;;; 조만간 좀 더 이쪽 팩트들이 모이면, 내 필히 ‘고기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선보여주리라고 여기서 다짐하는 바다.

(나중에 약간 추가) 아 그리고 검찰조사에서, 제발 그 황랩의 ‘고기 리스트’도 좀 공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언론사의 어떤 인물들이 고기 커넥션으로 사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지, 학문적 견지에서도 무지 궁금하다(사실 웃겨서 반쯤 쓰러지고 있다).

확인사살: YTN은 미즈메디급 공범이다

!@#… 황우석의 ‘제 3의 언론사’ – 라기보다는 ‘사립 황우석 통신’ – YTN, 자체 조사위의 1차 결과 발표…가 아니라, 우선 사과글 세 꼭지만 공개.

http://www.ytn.co.kr/news/news_view.php?s_mcd=0104&key=200601031859454529
http://www.ytn.co.kr/news/news_view.php?s_mcd=0103&key=200601031848010820
http://www.ytn.co.kr/news/news_view.php?s_mcd=0103&key=200601031848010799

(MBC를 증오한 나머지 YTN을 응원하기로 결심한 무뇌 황빠들이 달고간 리플들, 가관이다)

!@#… 결국 시인한 팩트에 의하면 줄기세포 검증도 참여하고, 심지어 영롱이까지도 검증. 검사 결과는 물론 불일치 및 판별불능. 근데 이쪽은 피디수첩이 아니라서, 황우석 말에 따라서 착실하게 검증결과 은폐. 다른 건 이미 알고 있었다쳐도, 영롱이는 새로운 팩트. 도대체, YTN이 개입 안한게 뭐가 있나 궁금하다(그리고 또 윤교수까지도 따로 검증한 게 있었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실 은폐에 공범 역할 한거야?).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어느 선까지 개입됐다’라는 건 밝히지 않고 있다. 조사가 예정보다 오래 걸리는 것으로 보아, 당초 생각보다 너무 윗선 + 많은 인원이 연루되어있을 가능성도 농후. 하기야 대통령이랑 독대하는 황우석이 고작 보도국장 하나 정도만 상대하고 놀았으리라는 상상이 너무 순진한 거겠지만. 참 그런데 피디수첩에 협박질이나 하고 줄기 신도들 선동해서 조직적 업무방해를 이끈 미스테리윤 아저씨는 같이 용의선상에서 조사하고 있기는 하는 지 모르겠다.

!@#…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세포를 미즈메디가 바꿔치기 한거고 황은 아무것도 모르다가 속은 것이라면 황도 ‘피해자다’라는 인식.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황은 세포에 이상이 있다는 모든 사실을 아무리 늦어도 11월 18일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피디수첩 및 기타 진실 규명 움직임을 총력 미디어전으로 철저하게 짓밟았다(이미 이전 글에서 분석했듯). 난자 불법 사용, 논문 세포 개수 의도적 조작 그런건 과학(윤리)적 차원에서 단죄한다고 치자. 하지만 진실을 짓밟은 행위는 사법적으로 엄하게 다스려서 일벌백계함이 마땅하다. 논문조작의 파트너가 황랩-미즈메디라면, 미디어전에 의한 진실탄압의 명백한 파트너는 황랩-YTN이다. YTN은 이번 건에서 그냥 찌라시 언론이었던 것이 아니라, 미즈메디 급의 공범이라는 말이다. YTN의 자성? 그거야 뭐 어떻게 되었든, YTN은 처벌을 좀 받아야 겠다. 민언련 같은 곳에서, 맨날 성명서만 내지 말고 이럴때 한번쯤 정식으로 소송을 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진실을 폭로할 권리와 자격을 스스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에 미래 따위란 없다. 아니 오늘도 없다.
PS. YTN 김진두 기자가 황랩 맞춤형 청부 취재 당시 비행기 값을 황랩에 그나마 사후지불이라도 했다고 만들어줬다는 수령증을 미디어오늘에서 입수, 공개했다. 어떻게 이런 문서 하나하나마다 야매의 포스가 철철 넘쳐흐르냐… OTL 불가사의한 일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read.php?idxno=42957&rsec=MAIN&section=MAIN

PS 2. 최근, 피디수첩의 최승호cp가 줄기세포 존재할수도 있다고 말했다면서 또 찌라시업계(와 찌라시들에 의존하는 신도들) 술렁인다. 아니, 피디수첩측에서 세포 검증한 건 2005년 논문이자나. 2004년 것은 그렇게까지 완전 검증 안했다고. 그럼 당연히 세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해야지, 소신만으로 없다고 말해야 하나? 그런데 그걸 찌라시 보도에서는 완전히 피디수첩이 줄기세포의 존재를 인정했다느니, 한발 빼기 시작했다느니 별의별 지랄발광을 떨고 앉아있다. 도대체 이 사회의 언론/여론 기능이 어디까지 바닥을 칠지, 그 하한가가 심히 우려스러우면서도 기대된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야매 외신은 계속된다: 유럽 라이벌들이 한국을 제쳤단다

!@#…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구나, 찌라시 언론들의 지조때로 외신 짜깁기. 황우석의 사기가 만천하에 폭로되고 있는 틈에도, “이러는 사이 외국이 자꾸 한국을 추월하고 있어!”라는 골때리는 채찍질은 그치지 않는다. 사실 언론사의 입장에서, 이따구 논지가 가져다주는 몇가지 확연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뭐냐하면,

1) 독자 일반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건드려줌으로서 공감대 형성

– 심지어 ‘진실’보다도, 독자와의 공감대가 더 중요시된다는 것이 이번 건에서 누차 증명되었으니 뭐. 조선일보가 황을 감싸고 오보를 남발하고 진실규명 노력을 짓밟았지만, 황이 사기꾼으로 판명되었으니까 이제 조선일보 구독 끊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심지어 강단있는 반골 이미지로 자신을 구축해온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조차도 피디수첩의 진실규명 노력을 “재수없다”고 치부하는 판에.

2) 선진국을 따라잡자라는 현대사 이데올로기

– 여하튼 한국은 전후 현대사 내내 잘살아보세를 암묵적 국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잘살아보세의 내막은 정말로 행복한 삶을 꾸린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선진국, 특히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즉 한국 자체를 판단 기준으로 신뢰하고 싶지 않고, ‘선진국’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그러니까 미국의 영어테스트인 토익따위가 한국에서 입사 시험의 준거틀이 되지 않던가). 선진외국과의 비교는 아주 근본적으로 잘 먹혀든다. 재밌는건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독자들이 외신을 준거틀로 삼고자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 그 외신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필터링되서 들어오는 건데 말이지. 참 골때리는 일이다.

3) 저널리즘의 ‘전문영역’을 자랑하기

– 솔직히 요새는 누구나 다 자기 소식이 있고 특종이 있다. 즉 누구나 기사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극단적인 예는 오마이뉴스, 개인 블로그들이고. 즉 특별한 소식을 발굴해서 전한다는 저널리스트들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다. 그런데 아직 ‘일반인’들이 손대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해외 언론들을 통한 소식, 즉 “외신”이다. 언어장벽이 있거든. 그리고 외국 언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왠만해서는 잘 모르고(잘 알 필요도 없고). 그래서 외신 보도를 하면 아주 전문적 저널리즘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다만, 실제로는 대다수의 저널리스트들도 그렇게 외신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 전담 취재자들이 가져온 소스를 가지고 서로 돌려가며 베껴가며 비스무리한 내용들을 양산하지만.

!@#… 게다가 이번 건에 한정시켜 놓고 보자면, 한가지 이점이 더 있다:

4) 지난 과오 묻어버리기

– 알다시피, 찌라시들로서는 참 이번에 밑바닥을 드러냈다. 아니 밑바닥을 파고 천연암반수까지 도달했다고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 소재를 우려먹고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추리꺼리’도 슬슬 떨어지는 만큼 어서 봉합하고 넘어가고 싶은 구석도 있다. 어떻게 하면 너무 속보이지 않게 다른 이슈로 넘어갈 수 있을까. 간단하다. “소모적인 논쟁을 이제 슬슬 접고 발전을 바라보자”라는 명제를 주입시키는 거지. 이런 패턴 한두번 본 것 아니지 않나. 가깝게는 2004년의 대통령 탄핵건에서도 화려하게 선보였던 담론 구성방식. 소모적 논쟁을 하면 안된다는 당위성을 주는 확실한 방법은? 이러는 동안 남들이 우리를 추월한다는 것. 명쾌하다.

!@#… 여튼, 그래서 이런 보도들이 나오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실족, 유럽 라이벌 학자 활개친다
[연합뉴스 2006-01-02 01:05]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기사클릭)

스위스의 유력지이자 세계 우수 저널리즘 톱텐 안에 항상 들어가는 신문,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의 1월1일 일요일자판에서 외신 인용. 선정적인 제목에서 볼 수 있듯, 황우석이 낙마하니까 다른 외국 학자들이 활개친다, 뭐 그런거지. 아 이거 위기감 고조. 한국인들이 이러고 있어도 될까, 하는 위기의식이 절로 샘솟는다.

!@#… 자 여기서, 슬슬 원문 뒤져볼 때가 되었지. 무료 기사 공개되어 있는 온라인판이 아닌, 유료 서비스라서 눈물 머금고 기사 단위 결재. 아아, 졸라 비싸다. 여튼 어디보자. 1면에 있는 기사 예고 제목은 “Weiter klonen“. 즉 “복제는 계속된다“. 59면(즉 그만큼 과학 기사는 무척 비대중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에 있는 본문 기사 제목은 “Europas Klonpionier“. 유럽의 복제개척자. 자세한 내용은 좀 줄이고, 그냥 1면에 소개된 예고글 그대로 옮기자. 움라우트는 코드 깨지니까 생략.

Der Falschungsskandal um den sudkoreanischen Klonpionier Hwang hat die Stammzellforscher erschuttert. Jetzt ruhen die Hoffnungen auf den Wissenschaftlern in Europa. Einer von ihnen ist der in Newcastle tatige Miodrag Stojkovic. (by Mark Livingston, 1.1.2006)

남한의 복제개척자 황의 조작 스캔들이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뒤흔들었다. 이제 희망은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놓여졌다. 그들 중 하나는 뉴캐슬에서 활동중인 미오드락 스토이코비치다.

대략 여기까지만 봐도 원문의 뉘앙스 짐작가지 않나? 스토이코비치 소개 기사다. 황우석 이야기는 그냥 양념일 뿐. 그것도 전체 기사는 줄기세포 연구의 제도적 어려움에 대한 것, 줄기세포 연구가 복제인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 등의 내용이다. 스페인으로 간다는 것도 고액연봉 스카웃 그런게 아니라 복제 연구 제한이 덜한 곳으로 가는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기사는 스토이코비치를 통해서 줄기세포 연구가 무슨 만능 치료약이 아니라는 것, 당장 내일이면 모두 벌떡 일어나서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잇다. 즉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 거품을 오히려 깨버리고자 하는 기사라는 말이다. 유치하게 무슨 국제 경쟁이 어쩌느니, 유럽이 세계최고니(아니 도대체 유럽이 한 나라냐?) 하는 기사가 아니란 말이다.

또 덤으로 연합뉴스 문정식 기자는 “최근까지도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확보한 황박사 팀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라고 쓴 대목이 있는데, 원문에서는 “건강하고 젊은 여성의 난자를 쓸 수 있는 남한을 부러워했다“라고 되어있다. 연합뉴스 문정식 기자가 생각하고 싶었던 것 처럼 스토이코비치가 황랩을 시기한게 아니라, 한국의 연구환경을 탐냈다는 거지. 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연구환경을 찾아서 영국으로 갔고, 또 스페인으로 가려는 사람 아닌가. 참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이토록 뼈저릴 수 없다.

!@#… 하지만 지조때로 읽어낸 기사 하나, 한국 찌라시 업계를 한바퀴 도셨다. 아싸가오리 외치면서 이걸 그대로 이어받아서, YTN, MBN, KBS, 해럴드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바퀴 돌아가면서 다 그대로 썼다. 번역이고 뭐고 그대로 베끼다시피 해서. 연합뉴스 기사에서 ‘미오드라’라고 이름을 잘못 표기하니까, 이후 보도들에서 너도나도 미오드라다. 원문에 원어로 쓰여진 본래 이름 안 읽어본거지. 하기야 영어들도 잘 못하는데, 독일어는 오죽하겠나. 게다가 숫제 이전에 국내에 보도되었던 과학 관련 기사들 검색조차 안해본거지. 중간에 “유럽 학자, 줄기세포 선두 주자로”(중앙일보) 같은 문학적인 제목으로 가끔 탈바꿈도 하고. 뭐 굉장하다고 밖에.

!@#… 하지만 진짜 걸작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세계일보, 아주 뒤지게 웃겨줬다.

한국은 죽쑤는데…미국 “배아줄기세포 신기술 개발”
[세계일보 2006-01-02 21:06] 조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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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UW-Madison에서 개발했다는 연구라는 것은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지, 황랩에서 하고 있던 핵치환 배아 줄기세포가 아니라고. 그것도 영양세포 공급법 개량을 통한 배양 효율 개선.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한 녀석은 브레이크 연구 중이고 한 녀석은 트랜스미션 연구중이었다, 라고 보면 되겠다. 나중에 다 취합되면 좋은 자동차가 나오는 것이지, 무슨 동종 분야의 라이벌 연구가 아니라고. 게다가 황빠들이 원천기술이라고 극구 주장하는 황랩의 주력 분야는 배반포 단계까지라며. 아 그리고 이 기사에도 말미에 “미오드라” 스토이코비치 박사 또 등장하신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외신, 아니 그걸 인용한 연합뉴스 기사 적당히 쑤셔넣어서.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는 스포츠고 연예고 정치고 경제고 뭐고 다 뭉뚱그린 ‘국제’ 섹션 전문인지라 과학에는 사전 학습이 좀 많이 부족했나 싶다. 그런데 프로 저널리스트가 그러면 안된다. 특히 전국민(?)이 세포 전문가가 되어가는 한국 현실에서. 너무 쉽게 야매란게 뽀록나잖아.

!@#… 호랑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외국 과학자 라이벌들”이 몰려오신단다. 겁나 죽겠다. 아 뭐 여튼. 저널리즘의 위기는 온전히 저널리스트들의 몫이다. 어디 딴데 이유 돌리고 자시고 그런거 없다. 이런 식의 같잖은 외신 보도는 그런 야매스러움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번 황건으로 한국 과학계의 야매가 마구 드러나는데, 사실은 한 구석에서 언론의 야매도 마구 드러나고 있다. 이쪽에도 나중에 사람들이 관심 좀 가져서, 언론개혁 한번 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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