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낙천주의자의 도시 잡상: 『올드독』[기획회의060201]

!@#… 이번 호 원고는 책내 서평용으로 쓴 글을 약간만 개조했음. 같은 원고의 부분적 재활용은 별로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라서 나름대로 양심선언. -_-; 올드독의 네이버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hhoro 에 가면 있음.

 (나중에 추가) 에에에엣! 이런 실수를. 단행본에는 경향신문의 ‘고충상담실’ 부분 미포함. 이게, 책이 완성되기 전에 미리 읽고 쓰는 글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영화로 치자면 러프편집본으로 시사회보고 평했다가 최종본이 결론이 바뀌는 격이라고나…-_-; 여튼 참 송구스러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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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낙천주의자의 도시 잡상: 『올드독』

김낙호(만화연구가)

눈에 확 들어오는 개성적이면서도 간명한 그림체, 작가의 자화상격인 동물 캐릭터, 일상에서 발굴하는 소재들, 대중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 순간의 잡상들로 가득한 에피소드. 아,  『스노우캣』. 이쪽 분야의 선구자 중 하나. 그럼 개인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휩쓰는 팬시적 인기까지 누린다면? 이런, 그러고 보니 『마린블루스』가 있다. 아예 작가가 이 만화를 그리다가 팬시 전문업체에 취직해서, 회사생활까지도 다시금 만화 소재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음, 하지만 여기에 지리멸렬한 인간사를 가로지르는 묘한 통찰력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아마 자칭 ‘늙은 개’ 한 마리가 소심한 표정으로 살짝 걸어나올 듯 하다. 

사실 이름만 늙은 도시형 청년 견공(이라고 해도, 설정상 작가의 14살이나 먹은 실제 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인 올드독은 시사만화계를 거친 정우열 작가의 페르소나로, 현대 도시 생활에서 겪는 일상적 경험들과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이 특기다. 『올드독』(정우열/거북이북스)는 일상만화 컨셉으로 작가의 개인블로그에서 연재중인 『일일꼼지락』과 경향신문 만화섹션 <펀>에서 연재되었던 바 있는 『올드독의 고충상담실』을 위주로 묶인 첫 단행본이다. 올드독식 세상읽기의 극치를 보여주며 온라인 <씨네21>에 연재중인  『TV감상실』 시리즈가 빠진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만큼 일상만화로서의 특징이 강조되어 있는 셈이다. 책으로서의 만듦새 역시, 페이지 귀퉁이에 플립북 애니메이션 효과를 부록처럼 삽입하는 등 소소한 숨겨진 재미를 강조한 점이 작품의 컨셉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래 일상만화, 또는 생활만화라는 장르는 극적인 드라마 구조보다는 생활 속의 일상적 에피소드와 단상을 독자들과 공감해 나아가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 유머러스한 사건들을 꽁트로 꾸미거나, 친숙한 평범한 생활을 새로운 눈으로 재발견해주곤 한다. 올드독의 이야기들은 명백하게 후자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각종 일러스트에서 보이는 화려한 필치에서 추론할 수 있을 법한 ‘감상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각종 잡생각으로 상황을 풀어나간다. 그런데 올드독식 잡생각의 주제는 흔히들 그렇듯 자기 취향에 대한 함몰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어디 커피가 맛있었다, 어떤 장난감이 멋있었다는 것보다, 이사 온 새 이웃에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엉뚱한 질문을 나눌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잡상의 대상인 것이다. 편협한 감상주의와 자기감정 토로의 울타리에 갇혀버리기 쉬운 이 장르에서, 이러한 인간사에 대한 통찰은 올드독의 중요한 미덕이다.

그런데 잡생각이 많으면 기본적으로 소심하기 마련이다. 소심하기에 자꾸 상황을 다시 끄집어내고, 잡생각을 한다. 게다가 인간사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다분히 성찰적이며 냉정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독이 냉소주의자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삶에 대한 자세에 있다. 이 장르의 선배격인 스노우캣이 게으름의 외피와 신경질적 까다로움으로 도회적 감수성의 공감대를 자아냈다면, 올드독은 소심함의 외피를 쓰면서도 특유의 낙천성으로 정반대 지점에서 같은 목표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올드독은 좋아하는 가수인 노라 존스 콘서트장 맨 끝에 줄에 앉아 곤혹스러운 땀을 흘리며 목을 주욱 빼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면서도, 그 와중에서도 같이 음악을 흥얼거리는 모습의 낙천성을 지니고 있다. 소심하기에 곤혹스럽지만, 낙천적이기에 비굴하지 않다. 위대한 광대로 치자면 우디앨런보다 찰리채플린에 가깝다고나 할까. 올드독의 또 다른 미덕은, 그 구김살 ‘있는’ 낙천성인 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올드독 최고의 매력은 바로 앞의 모든 미덕들을 효과적으로 감싸 안는 확실한 재미다. 이제는 부담스럽기까지 한 무리하게 둥글고 깔끔한 팬시 캐릭터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독특한 화풍이 재미있고, 완전히 낙서체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마치 솜씨 좋은 친구의 연습장 마냥 자유롭게 흘러가는 배치와 연출도 재미있다. 극적이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머리 속 망상을 살짝 끄집어내서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강조하기에는 이쪽이 훨씬 적합하다. 다만 아무래도 생각의 분량이나 시각연출의 밀도가 은근히 높다 보니 한꺼번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기에는 아무래도 다소 부담이 있고, 하루에 한두편씩 들춰본다는 느낌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가장 적합한 독서 방식일 듯 싶다.

소소한 상황에 대처하는 소심함, 이내 이어지는 통찰력 있는 잡생각, 그리고 의기양양한 낙천성으로 이야기를 맺어내는 연쇄작용이 재미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수다이면서도, 정작 수다스럽지 않아야 할 때를 잘 아는 이야기 솜씨가 재미있다. 덕분에 무엇보다 올드독은 재미있는 만화로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고, 지금 여기 여러분의 손에 안착한 것이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미덕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일기체 만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에피소드별 질적 편차도 있고, 개별 에피소드의 시기적 맥락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확실한 통찰이 통렬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피상적 개그에 안주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미 올드독의 매력에 빠져본 결과, 소심하게 일일이 단점을 지적할 때는 하더라도 작품의 총체적 재미와 통찰을 낙천적으로 즐기는 쪽을 택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시에는 인간사에 관심 있는 소심한 낙천주의자들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만약 이 책을 즐겼다면, 독자 여러분들도 어느 틈에 그 대열에 합류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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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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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미디어 아트의 대가, 백남준 별세

!@#… 미디어 아트의 거두, “비디오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백남준 씨 별세. 항상 동시대에 살기보다는 (많이) 앞선 시대에서 꿈을 꾸던 사람이었건만, 왠지 스러지고 나니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2005 세계 두고보자대상 결과 발표

!@#… 만화 웹진 두고보자(http://www.dugoboza.net)에서 선정한 “2005 세계 두고보자대상” 결과 발표. 2005년, 기억해둘 만한 여러 만화에 대한 촌평들.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 그 동네 성향이 원래 좀 그래서, 다소 길다. -_-; 원문은 두고보자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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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황랩사건과 capcold블로그…

!@#… capcold 블로그, 황랩 관련 포스트 인덱스.

1) 네이버 블로그 당시에는 워낙 후져서 공지 사항 기능이 없는 고로, 수동으로(즉 매번 맨 위로 억지로 다시 포스팅;;; 그러나 지금은 그냥 고정해놓고 태그나 바로가기 인덱스를 통해서 연결중.

2) 라이브 진행형인 관계로, 항상 글이 작성된 시점을 주목해가면서 살펴주시길. 큰 입장이나 시각은 바뀌지 않아도, 팩트 관계는 계속 추가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정되어오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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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고소하다

!@#… 맞춤형 보도의 종가, YTN에서 큰 거 한건 하셨다.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에 명예훼손 등으로 10억짜리 손배소.
http://www.mediatoday.co.kr/news/read.php?idxno=43518&rsec=MAIN

!@#… 우선 5초 동안만 웃고 시작하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오우, 멋져버렸다. 사실 이런 구도, 무척 마음에 든다. 그래, 수세에 몰리면 차라리 확 깨물어버리기라도 해야지. 이럴 때 가만히 있다가는 평생 우석갈비 먹은 맞춤형 줄기보도의 대가들로 낙인찍힐 것 아닌가. 게다가 노사합동 진상조사를 했다는 것도, 알고보니 고작 9일만에 다 끝냈었고 그 결과 역시 완전 공개 안하고 대충 뭉겠다. 사보에만 살짝 내용이 언급이 되어있는데, 누가누가 어디까지 개입됐다 자세한 이야기고 책임소재고 없이 대충 “원래 경비 카드로 긁으려고 했는데 황팀이 먼저 다 계산 끝내서 어쩔수 없이 나중에 줬어요”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표사장이 직접 보도지침을 내렸다는 내부 유출 문건의 진위 결론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음은 물론, 자세한 보도 경위 등등 뭐 알 길이 없다. 노사합동이니 진상규명이니 하는 명패가 엉엉 울어버릴, 아주 쪽팔리는 노릇이다.  

!@#… 다만, 그 후 일어날 일들에 대한 각오라든지, 책임 정도는 확실하게 지워줘야 예의. 자 YTN이 칼을 먼저 뽑았으니,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도 가만 있으면 안된다. 무고 및 명예훼손 맞고소 해야지. YTN이 자신들이 당한 ‘명예훼손’이 10억어치라고 주장했으니, MBC는 YTN에게 최소한 100억 어치는 손배소할 명분이 충분하다. 여기에 YTN의 왜곡보도 대상이 되었던 피츠버그 이형기 교수라든지 여타 인터뷰 당사자 등도 같은 차에 올라타면 금상첨화다. 덤으로 ‘찌라시성 보도에 분노한 일반시민’도 몇명 더 YTN 고소의 물결에 끼어들면 구도는 완벽해진다. 뭐 사실 큰 주류 회사인 MBC 정도면 YTN과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미디어오늘과 오마이 정도는 여기에서 확실한 전투 근성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발 그렇게 좀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끝장 보는 분위기로 갔으면 좋겠다. 큰 권한을 남용한 큰 잘못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심플한 교훈이 통용되는 시스템이 좋다.  

!@#… 책임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판은 왜곡된다. 도덕률이니 윤리니 하는것은 방향을 제시해주기는 하지만, 구속력이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재 한국의 저널리즘에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윤리강령이 잘 짜여져 있어도, 그것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어떤 사회 시스템에서 특정한 윤리가 지키는 것은 그 것을 지켰을 때 이익이 나오고, 어겼을 때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돌아보자. 추측성 찌라시 보도를 내더라도, 충분히 선정적이면 사람들은 우루루 와서 읽는다. 과학적 근거고 사실검증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황교수 만세!”라고 부르짖어도, 독자들은 열렬한 호응을 보낸다. 즉 확실한 이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 물론 “그런게 누적되면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언론계 전체의 불이익이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신문 부수가 떨어지고 신뢰도가 바닥을 기더라도, 당장 독자를 확보하지 못해서 당하는 불이익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득은 즉각적이고, 손해는 먼 나중의 일이다. 그 손해는 그때가서 또 어떻게 비비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겠지. 바로 그것이 황 사건에서 여실히 증명되지 않았던가: 근거도 없이 피디수첩은 야매라고 굳게 주장할 정도로 언론을 불신하지만, YTN과 조선일보의 속보는 챙겨본다. 각 언론사의 신뢰도는 어찌되든, ‘뉴스’라는 것 자체의 영향력은 더 강해질 따름인 것이 현대 ‘정보화 사회’의 생활패턴 아닌가.  

!@#… 책임은 강제해야 책임으로서 효력을 발휘한다. 아주 간단한 시스템이다: 잘못 했을 경우 책임지는 의미로 손해를 입도록 강제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거부할 경우, 가중책임 즉 더 큰 책임을 물린다. 바로 이런 시스템이 사실 언론 판에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민언련에서 백날 “언론은 이러면 안된다”고 성명서 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언론이 개판이라고 한탄하며 ‘여론’을 규합해봐야 실제로 구체적인 불이익(구독자나 시청률 급락이라든지)이 돌아가지 않는 한은 언론사들로서는 눈 깜빡할 이유조차 없다.

그렇다면 불이익은 어떻게 해서 부여될 수 있는가. 방법은 두 가지다. 원래 받던 이익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구체적인 손해를 보도록 만들거나. 그런데 전자의 경우, 언론판에서는 사실상 힘들다. 이익을 원래 준 것이 있어야 박탈하든 말든 하지. 기자협회에서 제명시킨다? 애초에 기자협회 회원으로서 어떤 이익을 누리고 있었나. 게다가 혹시나 이익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인맥관리라든지 하는 식으로 ‘대체’ 가능한 것이면 말짱 황.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바로 후자다. 구체적인 손해를 보게 만들기.

구체적인 손해라는 것은 다시금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물어내도록 만드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들의 보도지면/시간을 사과와 정정보도로 낭비하도록 강제하는 것. 이것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바로 법적인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중재 신청하든 고소하든 한다는 거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바로 바른언론운동이 나아가야할 진짜 방향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중재신청과 고소 유도하기 및 보조해주기. 강제로 벌금을 물게하고 강제로 사과를 하도록 만들어야 비로소, 윤리를 어겼을때 얻는 이익보다 당하는 손해가 더 크다는 사실이 눈에 보이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 언론사 상대로 손배소 한 것 치고 끝까지 가서 확실히 벌금 다 물고 개망신 당했다는 사례를 거의 접한 적이 없다. 대부분 중간에서 여차저차 합의하고 끝. 그렇게 해서야 언론이 정신 차리겠나.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를 봐야 “아하, 윤리를 어기려면 막대한 각오를 해야하는구나”라고 깨닫는다.

!@#… 이번 건으로 YTN이 끝까지 강제로 책임지는 모습 보고 싶다. 시청률 저하니 그런 애매한 것 말고, 잘못에 대한 벌금을 물고 구체적인 사과 보도와 책임자 처벌을 보고 싶다. MBC의 피디수첩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취재상 과오에 대해서 수없이 세부적으로 짚어가며 사과하고, 감봉과 프로 방출이라는 결단을 보였다. 그 수위가 너무 낮다 높다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짚고 넘어갔다. 최소한 그정도, 아니 그 이상의 뚜렷한 책임을 바라는 것이 사치가 아니길 빌 뿐이다. YTN이 걸어놓은 손배소는 잘하면 이런 결과까지 가는 멋진 도화선이 되어줄 수도 있다. 고소당한 측의 멋진 대응 기대한다. 잘하면 바로 여기서부터 진정한 언론개혁 시작될 수 있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하지만 사실 capcold가 진짜로 바라는 바는, 판이 이렇게 굴러감으로써 검찰 조사 들어가고, 그 결과 ‘자료’들이 드러나 줬으면 하는 것. 황랩의 홍보참모 미스테리윤(=전 YTN 기조실장 윤태일 = 알럽황 운영자 빈주)이 수행한 역할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우석갈비의 언론 장악 네트워크는 어떻게 뻗어있으며, 맞춤형 줄기취재의 메커니즘은 정확히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지만 가장 진상규명이 등한시되고 있는 부분인 ‘저널리즘의 역학’이라는 측면을 채워줄 수 있는 귀중한 사건 데이터를 얻어냈으면 하는 것이다. 직업병?

PS2. 댓글 여론의 힘이란… 0.06%가 25%, 0.25가 50%. 대단한 집중현상이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더 뚜렷한 수치가 무척 흥미롭다. NHN에서 배포한 원본 보도자료와 로 데이터를 보고 싶어라.

일상적 인간사의 수취 관계 -『왕비님 이야기』[기획회의 060115]

일상적 인간사의 수취 관계 -『왕비님 이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여느 다른 매체보다도 특히 만화라는 분야에서, 독자들은 강하다. 독자라는 수용자와 작가라는 창작자 사이의 경계선은 영화나 대중음악 등의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으며, 오랜 저평가의 역사 속에서 만화 독자들은 강한 취향 결속력을 다져왔다. 하지만 단순히 만화광들이 결국 만화가가 된다든지 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출판이나 제작 등에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작년 『먹통X』(고병규 / 코믹팝)라는 작품의 복간의 경우, 어떤 독자가 한 출판사와 일종의 조건을 걸고 진행했던 재미있는 사건이었다. 그 독자가 캠페인을 벌여서 복간되었을 때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특정 인원수의 사람들을 모아오면, 복간본을 출간하겠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진짜로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퍼트리고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긁어모은 결과, 결국 조건을 충족시키고 책은 출간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회사’도 정식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독자 자신들의 결속력과 파워가 실제적인 제작 프로세스에 작용할 힘이 크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왕비님 이야기』(권교정 / 절대교감) 역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다. 작품은 만화 전문지 <계간만화>에 게재되었던 24페이지짜리 단편인데, 잡지의 휴간과 다른 단편들이 축적되어 단행본을 만들기가 애매하다는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해답은 엉뚱한 방향에서 도출되었다. 그냥 24페이지짜리로 책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할 출판사가 어디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답은 또 금방 나와 버렸다. 독자들이 출판사를 하나 만들어서 내버리자, 라는 것이다. 기존의 독자 세력화가 독자들이 모여서 출판사에 압력을 가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그냥 직접 출판을 했다. 그것도 ‘동인지’ 또는 ‘자가출판’의 형식이 아니라, 정식 유통망의 정식 출판물로서 말이다. 이러한 발상 속에서 탄생한 출판사 ‘절대교감’은, 어디까지나 여성향 만화에 대한 독자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곳이다. 잡지의 폐간으로 갈 곳을 잃어버린 연재 작품들이 다른 식으로라도 계속 지속되었으면 하는 시도였던 ‘드림서명운동’, 잡지 <오후> 휴간 당시 작가 팬클럽에서 제기되었던 만화출판 아이디어 등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회사라는 형식으로 보자면 다른 ‘정식 밥벌이’가 있는 소수 인력과 지원자들로 이루어진 가내수공업적 구성이지만,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물론『왕비님 이야기』라는 작품 자체의 매력이, 단지 출판의 과정이 특이하다고 해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24페이지 하드커버라는 형식도 만화책이라는 범주에서는 이질적이지만, 그림책 분야에서는 그리 낮선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실제로 이 작품을 좋아하고, 책을 사줄 것인가가 관건일 뿐. 사실 원래부터 권교정이라는 작가가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지닌 팬층을 지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짧은 단편 하나로 책을 만들어 독자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비님 이야기』는 충분히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줄만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동화적인 설정에, 인간관계의 깊은 질문에 대한 알레고리를 넣어주는 작가 특유의 접근법을 능숙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왕비는 원래 마을의 인기 처녀였는데, 말을 하면 주위에 소박한 꽃들과 보석이 생겨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눈에 들어와서 왕비가 되고, 왕비를 독점하고 싶은 왕의 독점욕 때문에 궁 안에만 머물게 된다. 그 결과 마을은 꽃과 보석이 없는 곳으로 변모하고, 사람들은 왕에게 항의한다. 그런데 왕을 사랑하는 왕비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능력을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독점시켜주는 것은 과연 잘못된 행동인가? 좋아하는 대상을 독점하고자 하고, 상대도 동의한다면 그것은 문제일까? 그런 능력의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히 계속 요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하는 걸까? 사실 꽤 복잡한 인간사의 문제다.

이 작품 속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그것은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런 구도가 지니는 다층적인 감성 자극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흥미롭다. 왕비의 능력을 작가라는 존재의 창작 능력으로 바꿔도 되고, 아니면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냥 우리가 주변에 행사하는 일상적인 사회관계 속 매력으로 대입해 봐도 좋다. 사회적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그런 관계가 오고가는 것이고, 사실 우리는 이야기 속의 왕비, 왕, 마을 주민의 입장에 동시에 처해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발산하고, 무언가를 독점하고 싶어 하고,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한다. 모순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복합성이다. 물론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 속에서 내리는 각 등장인물들의 선택, 즉 결론에 동의할 필요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지적당하고는 스스로 자극받는 감상행위 그 자체다.

시각 연출은, 『매지션』등 당시 작가의 작품 경향을 반영하는 듯 다소 황폐한 느낌이 강하다. 화사한 풍경을 묘사한 장면에서도 건조한 분위기를 풍기며, 인물들의 표정은 무심하다 못해 공허한 느낌까지 주고 있다. 마치 왕비가 떠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량한 마을의 들판이 이 작품의 핵심 정서라는 지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듯, 일관성 있게 그 분위기가 유지된다. 사고를 자극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자, 평소 권교정을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기억하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질감을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24페이지짜리 짧은 작품이니, 독서는 짧게 감상의 여운은 길게 가져가고자 하는 본래 목적에는 충실한 선택이다.

작가라는 마을처녀는 마을 사람들이라는 대중 독자들에게 창작능력이라는 보석과 꽃을 뿌린다. 받는 것만 익숙하던 마을 사람들은 왕이 그녀를 독점하자 화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을사람들은, 왕비가 재능을 다시 그들에게 베풀어 주도록 출판사까지 차리고 책을 만들어낸다. 작품 속 사람들의 구도와는 다소 다르지만, 인간사의 수취관계라면 나는 이러한 현실 쪽의 사례를 훨씬 더 선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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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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