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 부러워.

!@#… 가끔 가다, 참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 만화 이대로 안 된다 – 손영미 원광대 영문과 교수

!@#… 기사 밑에 한마디 주절거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런 걸 하나하나 지적해주고 있는 게 오히려 낯간지러워서 혼났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바보에겐 약도 없다”.

!@#… 교양과 학식이 이 따위 수준이라도 용케 교수자리 꿰차고 떵떵거리며 잘만 살고 있구나. 부러워 죽겠다. 내가 뭐하러 지금 이런 수련과정을 거치며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 만담난무 카테고리에 봉한다.

PS… 아니 뭘 그리 흥분하나. 사실 따지고 보면 더 형편없는 ‘교수’들도 이미 여럿 목격했으면서;;;

오늘, 인터넷 문화의 화두 잡상.

!@#… 문득 잡상들. 좀 더 이야기를 발전시켜볼만한 화두들. 하지만 시간없고 귀찮으니까 다이제스트 버전만.

*저작권*

한국에서 저작권교육은 성교육과 비슷하다. 초딩 때부터 일상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기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서 이상한 오해와 민간신앙들이 난무한다. 그 결과, 막나가는 사회. 이제 교육과정을 제발 성장과정과 일상 생활에 부합하는, 좀 현실적인 커리큘럼으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인터넷 실명제*

대형 포털들의 실명인증 의무화 방안. 지금은 가입시 실명인증 안해서 그런 쓰레기가 넘쳐나나? 스팸이든 불법자료든 물의를 일으킬 경우 아이디를 자르고 같은 인적 정보로 1년쯤 모든 해당 업체 관련 서비스 재가입 불가, 아이템 몰수 및 블랙리스트 공개를 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해결책은 실명이 아니라 일관된 기준의 ‘정화의지’ 니까. 책임감 부여는 실명인증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생각없는 찌질한 짓을 하면 크게 손해본다는 단순한 공식이 사람들에게 와닿으면 된다.

*정부, 사이버 폭력죄 신설 추진*

바보 앞에는 약도 없다. 특히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바보 앞에는 더더욱 약이 없다. 명예훼손의 반의사 불벌죄, 모욕죄의 친고죄 조항을 없애서 어쩌려고??? 아니 애초에 왜 그런 조항들이 들어가 있는지 한번 법 공부 정도는 미리 해보지 좀. 필요한 것은 절차와 기간이 간략화/합리화된 고소 절차. 중재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주는 경우도 좋고. 하지만 여하튼 자기에게 피해를 준 그 상대방에게 확실한 손해를 입힐 수 있어야 한다. 자꾸 정부가 나서서 뭘 하려고 하지좀 말았으면 좋겠구나. 잘 하지도 못하면서.

*p2p*

문제는 p2p라는 기술이 아니라, p2p가 주로 불법유통에 쓰인다는 사회적 활용 아닌가. 불법에 대한 징계야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p2p의 기술력과 문화적 파급력을 합법적 경제수단으로 활용할 궁리에 집중해야 할 것 아닌가. 만화책 스캔본이든, mp3든, DivX든. 돈을 벌려면 머리를 굴리든지.

*개인정보 유출*

딜레마: 개인정보 유출의 케이스로 꼽히는 대부분은, 결국 자기가 직접 노출한 것들이다. 싸이에 프로필과 사진들 올린다든지… 사립탐정이나 흥신소가 아니라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제는 정보 자체의 유출보다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그 개인을 개인적으로 매장시키러 우루루 몰려가는 개떼 근성이다. 그것 말고 기업체가 유출한 경우는 기업체를 고소하면 되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자유 / 영리 불가 —

탄생석 점 보기…

!@#… 최근 블로그계에서 유행하는 탄생석 점 보기.

http://fortune7.daum.net/birthstone/index.jsp 

!@#… capcold는 무려 토파즈.

토파즈(Topaz)
우정, 인내, 결백, 희망, 행복
   
님은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으로 식복과 식탐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살이 찌는 것이 좋은 체질로 마른 형보다는 약간 통통한 것이 오히려 운이 따르는 경우 입니다. 청개구리 형으로 잔소리를 싫어합니다. 내버려두면 잘하지만 간섭하면 행하기 싫어지니 반항심이 있습니다. 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존심이 강합니다. 창의성이 강해 남들이 행하는 평범함보다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심술이 많아서 억지를 잘 부리며 질투 또한 많습니다. 창의적인 머리는 좋으나 끈기가 부족하고 즉흥적인 일에 강합니다. 지적인 것을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여 예민합니다. 욕심이 많아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며, 경쟁이 붙을수록 능력발휘를 잘하는 형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엉뚱한 행동으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욕심이 많아 매사에 만족도가 적은 편으로 불평불만이 많고 음탕한 기질 또한 다분하고 비밀을 좋아합니다.
 

!@#… 살이 찌는 것이 좋을 체질…-_-; 질투 많음…-_-;; 끈기 부족…-_-;;; 음탕한 기질 다분…-_-;;;;  도대체 이 점의 정체는 무어냐! (뷁)

당신도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21_050823]

!@#… 저저번호 한겨레21(574호)에 올라간 기사. 까먹고 여기 백업을 안했다. 하기야 원고는 일찌감치 보냈는데, 서찬휘님 인터뷰와 같이 나가느라고 예정보다 늦게 나왔던 탓이지만;;; 여튼 인터뷰와 같이 묶은 기사는 여기.

!@#… 그리고 만화언론 논의는, ‘만’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제작 순항중이다. 훌륭한 일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화인(http://manhwa.in) 에서 보시길. 참고로 인도 사이트다. 카레다.

!@#… 항상 그렇듯, 여기는 원래버젼. 기사는 소제목 등 다양한 편집을 거친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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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 만화 독자들, 즐거운 실험에 나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는 온라인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최근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라는 도발적 카피가 출몰하고 있다. 만화 산업도, 잡지 출판도 불황과 침체를 호소하는 이런 시기에 상당히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다. 게다가 그냥 만화 잡지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라 만화에 관한 지면을 만들자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묘한 울림에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특정 출판사에서 “만화 저널을 만들었으니 열심히 구독해주십시오”라는 광고가 아니라, 이제부터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이 다른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같이 머리를 모아 지면을 창간해보자고 초대하고 있다. 거창한 운동도 대형 사업도 아닌, 즐거운 풀뿌리 실험에 시동이 걸렸다.

만화 언론 토론, 따로 또 같이

시작은 만화/애니 이야기 사이트 ‘만화인’(http://manhwa.in)의 운영자 서찬휘 씨가 <한국에서 '만화 언론'은 가능한가> 라고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담론’의 형성을 넘어 정보의 지속적인 공급, 홍보 창구로서의 역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언론’은 분명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은 사회적 반향을 이끌 수 있는 운동이나 행사의 기반이 되기도 하죠…”라는 문제제기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현존하는 만화단체 소식지나 무거운 정론지와는 다른, 대중적 지면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여기에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대감, 우려, 현실 인식 등을 내놓기 시작했고, 빠른 시간 내에 수많은 장문의 토론 글이 축적되어갔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반 독자와 만화가 지망생도 있지만, 만화잡지 편집자, 평론가, 프리랜서 기획자 등 실제 종사자들도 여럿 포함되었다. 이들은 모두 특정 회사나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등한 만화 독자의 입장에서 토론에 가세했고,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서 만화언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가능하고 또는 어려운지 하나씩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 와중에서 한국 만화산업의 여러 난점들도 자연스럽게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만화 점유율 문제와 쿼터제 제안이라든지, 효과적인 창작 지원책 문제 등이 구체적인 업계 자료를 가지고 논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토론의 와중에서 왜 만화언론이 없는가 분통을 터트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실제로 그런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 실질적인 기획회의마저도 실시되고 있다.

토론과정의 또다른 재미있는 점은, 토론이 하나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 블로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트랙백으로 엮여진 블로그 댓글은 순서가 명확하지 않아서 논의의 맥락을 놓치기 쉬운 반면, 만화언론 토론은 관련 게시물의 리스트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만화인’ 사이트에서 유지함으로써 마치 하나의 게시판처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덕분에 토론에 기여한 각 글들은 분량과 논조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토론의 전체 맥락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이 자기 공간에서 긴 감상을 늘어놓기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서로 공유하기 갈구하는 대중 서사문화, 특히 만화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만화 독자의 힘

사실, 대중문화의 건설적 발전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돌았던 90년대 초중반에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두 개념을 합성한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르 상품화가 일반화되어버린 가요 분야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경우 소비의 방식이 훨씬 정교화되었을 뿐이었다. 프로슈머 개념은 생산자와 감상자 사이의 진입장벽이 한없이 낮으며, 보편적 접근성과 매니악한 세부취향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다수 대중문화 분야는 산업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 반대방향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만화다. 만화는 90년대 중반 이후 이루어낸 산업적 체계화와 급성장의 물결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 더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매체로 발전해왔다. 가요의 청취자들이 팬클럽을 만들고 음반을 소비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만화의 독자들은 한단계 더욱 적극적으로 ‘판’에 개입해왔다. 우선 이미 청소년층에서는 주류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각종 만화 동인 축제 행사를 들 수 있다. 독자들이 만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 직접 아마추어 회지를 만들어서 유통시키고, 아예 만화분장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직접 되어본다. 그 에너지는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프로 작가들도 종종 이런 활동에 참여하곤 한다. 이는 프로와 아마, 독자와 창작의 경계선이 낮기 때문인데, 온라인 상에서 자기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연재를 하다가 스타가 되는 사례들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준다.

3년전 출범한 독자만화대상(http://www.comicreader.org)은 만화에서 독자가 차지하는 위상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존 만화상들의 구태의연함을 독자들이 직접 타개하고자, 순수하게 독자 투표에 의한 새로운 상을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장기 운영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독자들이 다시 직접 나서서 대중적인 만화 정보 저널을 만들어서 유통시키겠다는 포부가 결코 뜬구름 잡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독자들이 독자들을 위한 만화저널을 고민하다

물론 난점도 적지 않다. 중심 주체가 없는 상태의 기획이기에, 실제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자금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온라인/오프라인의 선택, 광고주 설득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또한 기존의 만화 관련 잡지들이 지녔던 ‘그들만의 잔치’ 식의 대중성 부족을 극복하고 만화 ‘언론’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열혈 만화 매니아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집중적인 매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불특정 다수의 집단적 의견교환 과정에서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십수년전 모든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간 영화 언론이라는 형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씨네21>도 하나의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씨네21>이 영화를 핵심 소재로 삼되 영상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대중성을 확보했듯이, 논의중인 만화저널 역시 만화를 매개로 하여 독자들에게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을 포괄하는 하나의 취향 문화 전반을 접하게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제지적도 대안 도출도 모두 그 집단 토론의 과정에서 하나씩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모로,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토론은 재미있는 실험이다. 만약 현재 논의 방향이 계속 진전되어 결국 창간이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경우, 아마도 유례없이 크고 아름다운 잡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듯 하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자유 / 영리불허 —

전화번호.

!@#… 011-****-****. 공식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00년부터 수고 많았다.  

(에에… 한국에서 쓰던 전화가, 이제 완전히 해지되었다는 말입니다. -_-; 정지만 시켜놓고 번호를 유지하려면 월 얼마씩을 계속 내야 해서 아예 확 끊었습니다)

키덜트: 유아회귀? 새로운 성장! [연합르페르 0509]

!@#… 연합뉴스 사내잡지(사내들의 뜨거운 땀과 불끈대는 근육과 열정!!! …이 아니라, 社內. 같은 계열 개그로는, ‘사내 동호회’ 등이 있다)  <연합르페르> 9월호 특집에 들어가는 글. 오랜만에, 나름대로 심리학적인 기반으로 접근. 심리학, 문화, 미디어 등을 엮어내는 건 역시 capcold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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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유아회귀? 새로운 성장!

키덜트라는 용어가 있다. 아이(Kid)와 어른(Adult)를 기계적으로 합성한 말인데, 흔히 대중문화의 취향에서 “어른들이 어린이가 되고 싶어하는 환상을 담은 문화 형식들”을 지칭한다고 한다. 약간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분명히 ‘아직도’ 프라모델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놓는 이상한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남사스럽게도 커다란 아톰이나 둘리 얼굴이 그려진 티를, 다 큰 처자가 스스럼없이 입고 다니는 모습도 흔하다. 이 세상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인가?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심리학적 설명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 가지는 키덜트 문화가 소비문화 마케팅이라는 점에 착안하는 것인데, 워싱턴대 심리학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말을 인용하자면 “생산자들이 성인 소비자들에게 어린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가 하는 허위 기억들을 창조하도록 만들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향수 이미지를 상품 형식으로 사용한다”. 좀 더 키덜트 족 자신의 심리를 듣고 싶다면,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의 발언도 있다: “청소년기의 취향을 서른이 넘어서까지 유지하는 것은 성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며, 현대인들이 피폐해져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함으로써 활력소를 얻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하, 그렇군요. 즉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절어 사는 사람들이며, 유년으로 회귀하고 싶은 심리의 일환, 그리고 그것을 공략하는 자본의 마케팅에 휘둘려버린 것이군요.

심히 곤란하다. 이런 인식들은, 만화를 좋아한다, 오락성 모험물을 좋아한다, 모형을 만든다, 귀여운 것을 즐긴다… 이런 취향들을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규정하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시금 어린이/성인 사이에는 패러다임적 경계선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적 성장과정 모델을 분절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오류다. 한 마디로 아이와 어른이 당연히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편의주의적 세계관, 마치 만 18세 이상은 에로영화를 봐도 좋다는 사회적 규정 같은 것이다. 사실은 18번째 생일이 지나는 그 순간 갑자기 사람들의 심리발달 상태가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대변신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 성장을 마치 땅강아지에서 번데기를 거쳐서 매미로 변신하는 ‘변태 모델’로 보는 셈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성인’이라는 막연한 기준에 의해서 미련 없이 버려버린 취향을 계속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신들은 그것을 이미 버려버린 이유를 심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미성숙한 종족으로 폄하할 것이다. 심리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인지부조화’라는 현상이다. 이해불가능한 현상을 보면서 느끼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인지구조를 살짝 틀어버리는 것이다.

성장단계의 모델은 편의적 구분일 뿐, 사실 심리적 성장은 연속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오늘부터 나는 만화를 싫어할래!” 라기보다, 그 나이와 성장단계에 맞는 만화를 골라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만약 그 나이대의 소비수준과 사회적 인식능력에 적합한 작품을 찾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분야로부터 취향이 멀어지는 것 뿐이다. 적합한 작품을 찾는다면? 어차피 좋아하던 취향이니, 계속 추구한다.

키덜트 현상은, 취향이라는 심리적 인지구조가 만18세니 20세니 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서 정해지고 일탈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상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가/영리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