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장할, 나중에 백업은 어떻게 하라고 계속 눌러앉아 있는거냐…-_-; 여튼 어느틈에 블로그 포스트 200개 돌파. 네이버는 제대로 된 백업 서비스라도 하나쯤 도입해줄 생각이 과연 있을까(프리챌의 전례처럼 배째라로 나갈 확률 90%지만).
(주: 이전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백업해온 것임…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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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 카나가와 현에 있는 한 폐교가 갑자기 다시 학생들로 붐볐다. 이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스포츠 속에서 우정과 성장을 나누던 멋진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만화 작품 한편을 기리기 위한 이벤트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붐을 몰고 온 바 있는 농구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타케히코)고, 이번 이벤트는 1억권 판매 돌파를 자축하기 위한 팬서비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작품, 자기 작품과 그 속의 주인공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낸 작가. 여하튼 30여권의 시리즈로 단행본 1억권을 돌파한 것은 만화시장이 거대한 일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척도인 셈이다.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작가가 시작한 작전의 첫번째는 바로 일간지 전면광고였다. 어느날, 일본의 주요 종합일간지에 주요 캐릭터들이 각각 한 명씩 신문 한면을 통째로 채우며 멋진 모습의 스케치로 등장해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통 큰 팬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 두번째 이벤트는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주인공들의 농구경기 장면이 펼쳐지고, 관중석에는 관중이 가득하다. 그리고 팬들은 사이트에 등록해서, 자신만이 아바타를 관중석에 앉히고 응원 메시지를 띄울 수 있도록 했다. 즉 북산(쇼호쿠) 고교 농구부 경기의 하이라이트에 직접 가서 응원을 하는 기분을 만끽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난주의 폐교 이벤트였다. 폐교에 들어가서, 23개 학급의 칠판에 만화를 그린 것이다! 작품에 등장한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23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칠판위에 분필로 그려냈다. 그것도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그 동네에서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이미지,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나아가 칠판위의 분필 낙서가 가지고 있는 그 자유분방한 에너지까지. 뭐랄까, <슬램덩크>라는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공식 사이트에서 제작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며, 만화 내용은 칠판색 그대로 편집한 특별 한정판 엽서세트로 소량 상품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간의 ‘꿈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칠판을 지우는 마무리까지.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일맥상통한다.
만화라는 장르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라면 바로 독자와의 긴밀한 호흡이다. 이번 슬램덩크 이벤트는 그 점을 명확하게 짚어준 최고의 사례다. “1억권 팔렸으니 이런 이벤트도 하지” 라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이벤트를 할 정도의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1억권 팔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독자들과 작품에 대한 사랑으로 따지자면 10억권이라도 부족할 한 만화 작가의 성의에 박수를 보낸다.
[경향신문 04.12.17]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이야기의 이야기 – <천일야화>(전진석/한승희)
‘이야기’라는 것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방식들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우리에게 왜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올 수 있겠지만, 크게 바라보자면 한 가지는 공감의 재미, 즉 주인공들의 감정과 활동상에 이입을 해서 같이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는 듯한 쾌감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외성의 재미, 즉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과 “나라면 결코 했을 리 없는 선택”을 내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얼마나 잘 배합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이야기의 재미가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모든 것을 다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고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복잡하고 큰 대하 서사극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로 묶여져 있으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는 구조로 끌고 간다는 말이다. 작은 이야기들이 각자 자신만의 매력과 기승전결, 이입과 의외성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이야기들이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묶음으로 뭉쳐진다. 이런 구조 덕분에 세월의 흐름 속에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쉽고, 각각의 세부적인 디테일 역시 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이야기’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베스트셀러라면 역시 기독교의 “구약성서”겠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고르자면 큰 이견 없이 아마도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츠)”가 꼽힐 것이다. 연소된 그림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결국은 이야기로 승부하는 장르인 만화에서,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때로는 통째로, 때로는 몇몇 작은 이야기들만 뽑아서 만화로 만들어져왔고, 성공도 실패도 있었지만 그 시도만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좋은 반응을 얻은 <아라비안 나이트>(신일숙), 인터넷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온라인 연재만화 <1001>(양영순),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천일야화>(전진석/한승희) 등이 좋은 사례다.
<천일야화>는 <라스트 환타지>,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등 소년향 만화의 기반 위에서 익숙한 장르적 규칙을 비틀어 내는 것을 특기로 삼고 있는 스토리 작가 전진석의 글과, <연상연하>, <웰컴 투 리오>등 사건 위주의 드라마성이 강한 순정만화 계열 작가인 한승희씨의 그림이 만난 작품이다. 이질적일 수 있는 두 창작자의 성향이지만, 원래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용광로로 녹여내는 이야기인 천일야화의 세계 속에서 이 만남은 의외로 썩 어울린다.
아라비안 나이츠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바로 왕과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진 왕이 온 나라의 처녀들을 섭렵하며 다음날 아침 참수하는 횡포 속에서, 대신의 딸 세헤라자드가 들어가서 매일 밤 왕에게 진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1000일(혹은 1001일)동안 공략, 결국 왕을 제정신으로 돌려놓고 해피엔딩. 첨삭의 자유를 누리는 이야기인 만큼, <천일야화>에서 작가는 아예 세헤라자드를 남자로 설정해버린다. 연인이자 가족인 여동생을 대신해서 끌려가는 것이다(여성향 만화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야오이 코드, 근친애 코드 등의 도입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아직 좀 더 두고볼 일이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침대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옥 골방에서 유언처럼 읊조리는 이야기가 되어 비극적 처절함의 분위기가 좀 더 부각되고 있다.
첫 번째 날의 이야기로 푸치니의 오페라로도 유명한 투란도테 공주 이야기를 꺼낸 것 역시 꽤 파격적인 발상이다. 초반에는 짧고 교훈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복잡한 인생사와 애정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기대하는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첫 주자부터 이미 장엄한 이미지의 비극으로 시작해버리는 것이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은 푸치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선택 자체로 인하여 이미 <천일야화>가 지니는 독특성을 선전포고한 셈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구체적인 형상의 선은 사건의 전달에 깔끔한 소화력을 주고 있으며, 남성향 장르와 여성향 장르에 익숙한 독자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중성적인 칸 연출방식 역시 작품의 독서에 큰 도움이 되어준다.
물론 아직 1권만 발간된 상태이기 때문에 섣부른 칭찬도 비판도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아라비안 나이츠를 모태로 하는 재해석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잡다한 이야기들의 일관성 없는 모음”이라는 함정을 어떻게 피해갈지, 아직 판단 내리기 힘들다. 원래 아라비안 나이츠의 다양한 이야기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미덕, 지혜와 현명한 판단의 중요성 등의 교훈을 남겨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건과 진기한 세상 문물들이 소재로서 동원되고 있을 뿐이다. 설정 자체가 “왕에게 사랑과 지혜를 깨우쳐줘서 정상으로 돌려 놓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말이다. 그런 목표의식이 좀 더 희미했던 이야기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든지 “알라딘과 마술램프” 등은 사실 나중에 서양인들이 끼워넣은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비록 <천일야화>에서 첫 이야기로 사용한 것은 아라비안 나이츠의 설화 ‘칼라프 왕자와 중국공주 이야기’ 보다는 그것을 서양식으로 각색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모습에 가까웠지만, 상당히 모험활극스럽게 시작한 이 작품의 전체적 스타일이나 주제면에서 잘 어울리고 있다. 첫 단추는 잘 들어간 셈인데, 이런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계속 천일어치 동안 지속시키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이런저런 수식어나 분석 이전에, <천일야화>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만화 독서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바로 만나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남성향과 여성향 독자들 모두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재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독자들의 많은 호응,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작품 자체도 계속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이후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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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밀리터리(군사) 매니아라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젊은 남성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탱크, 전투기, 총기, 제복 등 군대 및 전쟁과 관련된 아이템에 지대한 관심과 지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살상용 병기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상황에 대한 애정이라니, 혹시 잔학하고 반사회적인 인간들의 집단이 아닐까?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뚜렷한 대결구도와 그 대결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발달한 각종 기술과 전략들을, 하나의 취향이자 오락으로서 관심 있게 즐기고 있는 것 뿐이다. 마치 평범한 사람들도 전쟁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전략 놀이인 장기나 바둑이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들의 관심사를 잘 반영해주는 장르가 바로 ‘밀리터리물’, 즉 군사대결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교양필독서라고 항상 칭송받는 ‘삼국지’ 역시 큰 의미에서는 밀리터리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보통 밀리터리물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1차 대전 이후의 현대전을 다룬다. 인데, 이 장르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단지 전쟁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전략 대결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병기 아이템의 먹이사슬 관계를 세밀한 디테일로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인기요소인 다양한 현대적인 병기가 일거에 발달해버린 시기는 바로 1차 대전 이후다. 전황을 일거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비밀의 신형탱크 등장, 그것에 맞서기 위한 또다른 특급 돌격 장갑차, 장갑차 위주의 전략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전투기의 도입… 이렇듯, 병기 아이템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종종 밀리터리물은 사람보다 병기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더욱 더 매니아 위주로 흘러가고,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경지에 도달하기 쉽다.
최근 출간된 <강철의 대지 - 어나더 월드워2>(문효석/길찾기)는 이런 의미에서 밀리터리물의 기본 뼈대를 간직한 채, 아기자기한 대중적 요소들이 결합된 좋은 사례다. 작품의 제목이 시사해주듯 무대는 2차 세계대전인데(원래 밀리터리물의 최고 인기 배경이 바로 2차 대전이다; 인류의 전쟁 역사상 신병기와 그것을 운용하는 전략이 가장 급격하게 발달해 나아갔던 시기 아닌가), 페이지를 펼쳐보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우락부락하고 험악한 군인들 대신, 군복을 입은 북실북실한 동물들이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림체 자체도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컬러로 되어있어서, 딱딱한 놋쇠의 질감보다는 프라모델로 만든 디오라마를 연상시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각종 탱크와 장갑차들이 난데없이 로봇으로 변신한다든지 하는 자유로운 시대착오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이들이 벌이는 소동 역시 처절한 살육과 파괴 보다는, 신형 탱크로 경주를 하는 등 어쩐지 ‘생각보다 건전한’ 경연장이 되어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철의 대지>가 밀리터리물로서 조금이라도 부실하다는 말은 아니다. 미국군, 독일군 등 기본 진영은 현실 그대로 남아있고, 전략 개념에 대한 접근이라든지 병기에 대한 세심한 설정 등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전쟁에 관한 작품이라면 흔히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중후장대한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의인화된 동물 주인공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웰즈의 <동물농장> 같은 사회풍자극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또는 전쟁 이야기라고 해서 헤밍웨이의 소설들 같은 드라마틱한 인생역정과도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 단지 다양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병기 경연과 대결구도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이 장르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 – 전략과 병기에 관한 상상력을 통한 오락 – 을 더욱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것을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도 없지는 않겠지만, 장점이라면 이것만큼 확실한 장점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부담을 잔뜩 덜어내고 보다보면, 이 작품의 재미에 본격적으로 눈뜰 수 있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람(그러니까, 동물)들이라기보다는, 변신 탱크 등 다양한 병기들이다. 이런 덩치 큰 주인공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책의 판형 역시 큼지막하게 나와 주었으며, 긴 서사 모험담이 아닌 짦막한 에피소드 여러 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치 각종 캐릭터 소개를 따로 하듯이, 맨 뒤에는 병기들에 대한 설정자료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어떻게 이 탱크가 로봇으로 변신하고, 목적은 무엇이며, 언제 개발되어 활용되었는지 등등, 무한한 애정으로 뒤덮여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수많은 소년들이 태권브이와 마징가의 대결을 꿈꾸었듯이, 그 과정에서 “사실은 팔꿈치 뒤에서 미사일이 나간단 말이야”라고 주장을 하고 그 억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팔 속에 미사일이 장착되어 발사되는 과정을 그림으로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그런 즐거움과 같다.
<강철의 대지>는 밀리터리물이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것인지 호기심이 들었지만, 딱딱한 군대의 이미지가 주는 거부감이라든지 지나치게 매니악한 세부설정을 강요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접근이 힘들었던 사람들이 입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상상력으로 점철된 병기 대결구도가 주는 신기함과 시각적 쾌감은 그 자체로서 이미 훌륭한 오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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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추신: 여담이지만, “진정한 병기 매니아는 전쟁을 반대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왜냐고? 전쟁이 일어나면 그 사랑스러운 병기들이 모두 부서지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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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 – <루쿠루쿠>
정의의 주인공이 사악한 악당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선과 악이 명백하게 잘 나누어져 있고 그 중 결국 선이 승리하기를 바라며, 그 ‘선’이 하필이면 자신들을 위해주는 자들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선악 구도를 가장 확실하게 상징화시킨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 천사와 악마, 각각의 군단의 대격돌, 그리고 예언되어 있는 천사군의 승리. 이야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동안 사랑받아온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 궁극적인 구현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풍속도는 이런 명쾌한 이야기와는 꽤 거리가 멀다. 선악의 경계선은 어디며, 선은 과연 어떤 경우라도 선인가? 뭐, 꼭 머리를 쥐어뜯으며 엄청나게 철학적으로 접근해야할 필요는 없다. 위트와 풍자, 뼈있는 농담으로 이런 지점들을 꼬집어내는 것이 더 핵심을 짚어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일본 작가 아사리 요시토의 <루쿠루쿠>(3권 발행중 / 북박스)가 좋은 사례인데, 여기서는 ‘지옥의 공주’로 불리우는 강력한 악마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남자주인공의 집안일을 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지옥이 너무나 과밀인구가 되어버려서, 악마들이 나서서 인간들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선도해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저의를 수상하게 여기는 천사들 역시 인간계로 내려와서 이들과 맞서려고 하는데, 스님의 몸에 빙의되어 인간계로 내려온다든지 하는 등 좌충우돌 투성이다. 악마들이 쓰레기를 줍고 할머니가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데 천사들이 악마의 ‘계략’을 막으려면? “쓰레기를 버리고 할머니를 넘어트려야지! 에에…자, 잠깐만!” 이런 식으로 말문이 막히는 천사의 모습이 주는 촌철살인의 블랙유머가 일품이다. 학원 코미디물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할 법한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연출 속에 담겨져 있기에 그 울림은 더욱 크다.
어이없이 웃다보면, 뜨끔해진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아!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지!”라는 천사의 대사가 이상하게도 낯익기 때문이다. 전쟁을 입에 물고 다니는 어떤 미국 침팬지를 떠올리든, 아직도 좌파공세 따위가 잘만 통하는 어떤 후진 사회를 떠올리든, 인터넷 게시판에서 뛰노는 악플러들을 떠올리든 말이다. 선과 악을 나누고, 하필이면 자신이 서있는 쪽이 선이라고 굳게 믿는 자들. 사실관계 확인과 토론이나 근거제시에는 인색하면서, 타인비방과 자기미화에는 놀라운 정열을 보여주는 자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 하나 확실한 ‘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을 악으로 몰아붙이는 행위 그 자체다. 바로 그런 악이 뿌리 뽑히는 권선징악 정도는 꿈꿔 보아도 좋지 않을까.
[경향신문 04.12.03]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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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쌓인 원고 창고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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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 <러브콘서툰>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뉴미디어’라는 단어만큼 진부한 것이 또 있을까. ‘뉴’미디어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한껏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인터넷 (및 그 이전부터 있었던 컴퓨터 통신 일반)과 그것이 만들어낸 의사소통 시스템의 세계인 온라인은 이미 단순한 기술적 용어가 아닌,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쌍방향성에 기반한 참여니 원본과 카피의 경계 상실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매체 이론가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담당구역으로 넘어와 버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반 사용자들과 가깝게 살을 맞대고 있는 대중문화라는 분야에서,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향유 양식들을 진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대중문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커뮤니티성이다. 온라인 세상의 향유자들은, 온라인을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에 열심히 퍼나른다. 메일로 보내고,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고, 블로그에 올린다. 그리고 올라온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감상을 올리거나, 아니면 올린 사람에 대한 창찬/비난을 하면서 더욱 커뮤니티의 내적 소통이 강화된다. 창작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온라인 동호회 결성을 통한 정보 및 노하우 교환, 공동 프로젝트 진행 등이 프로와 아마투어의 경계선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여러모로 상성이 상당히 좋은 매체인 만화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003년에 시작된 ‘러브콘서툰’(http://www.lovetoon.co.kr)라는 자선 콘서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인데, 온라인에서 만화연재를 하거나, 그리고 비록 스포츠 신문 등 종이지면에서 연재를 하고 있지만 (언론사 홈페이지를 거치면서) 사실상 온라인에서 더욱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며 시작했다. 러브콘서툰은 사실 원래는 젊은 작가 몇 명이 한바탕 유쾌한 음악 공연을 펼치면서 불우이웃 돕기 같은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온라인 입소문 등에 힘입어 독자와 작가 양쪽으로 모두 높은 호응을 얻어, 행사 직전에는 참여 멤버가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에도 커뮤니티의 결속력은 계속 유지되어, 어느 틈에 젊은 만화가들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올해 11월 21일, 이 커뮤니티가 준비한 두 번째 행사인 <2004 러브콘서툰>이 펼쳐질 예정인데, 이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릴레이 만화와 홍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열심히 온라인에서 ‘펌’ 당하고 있다. 이미 사전홍보 단계부터, “만화라는 것의 매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작년 행사보다 한층 발전한 모습이다.
대중문화는 창작이든 향유든, 결국 취향으로 의기투합하여 같이 즐기는 자의 몫이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그것이 좀 더 명확해진 셈이다.
[경향신문 04.11.19]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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