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만화, 펌질 열풍! [한겨레21/534호/041111]

!@#… 이번주 한겨레21 기고글. 다행히도 3면이나 할애해줘서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었음.  하지만 독자층을 고려해서, 마지막에 작품 소개 파트는 무척이나 일반적인 것 위주로 소개. 개인적 기호가 듬뿍 담긴 매니악한 아이템을 소개하고 싶은 욕구는…그냥 참았다. 블로그에는 투고글 그대로고, 게재 버젼은 여기에 (아마 로그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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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인터넷에 자리잡다
 – 만화는 어떻게 온라인에서 새로운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대중문화의 각 장르 가운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온라인 영화관의 붐은 일어나기도 전에 져버렸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분쟁의 와중에서 지지부진한 고착상태에 빠졌다. 온라인에서는 “자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아티스트들이 향유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발표의 장이 펼쳐진다”는 옛 희망들은 이제는 좀처럼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움직임을 볼 때, 아직도 예의주시할 만한 분야로 꼽히고 있는 것은 바로 ‘만화’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계 전반의 불황, 특히 애초부터 제작 유통망이 부실했던 만화 분야에 대해서 들려오는 여러 암울한 전망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만큼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수많은 커뮤니티와 개인 홈페이지에서 너도나도 유명 만화를 돌려보고 있으며, 대형 포털 사이트들은 만화 연재 지면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된 강도영의 <순정만화>가 매회 연재가 갱신될 때마다 1일 200만회라는 기록적인 조회수를 올렸다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온라인 만화는, 고작 수천부의 판매고를 올려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현 출판만화 업계의 현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호황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온라인 만화의 인기는 단지 온라인에 머물지 않고 만화계 전체로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다. 이미 작년에, 인터넷 연재 만화인 <마린블루스>이 독자만화 대상과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동시에 석권한 바 있다. 또는 고우영의 <삼국지> 무삭제 복간본이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처럼 온라인 연재를 통한 인기몰이를 바탕으로 단행본을 출판하여 히트하는 경우도 이제 전혀 낮설지 않다. 더욱 주목할 만한 현상은, 온라인이 전통적인 종이만화까지도 흡수해 나아가는 경향이다. 현재 가장 널리 ‘펌’(또는 ‘펌질’. 특정 사이트의 그림이나 글을 다른 홈페이지로 ‘퍼 나르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 당하는 작품인 <츄리닝>이나 <트라우마> 등은 원래 스포츠 신문의 일간 연재물이지만 온라인 상에서 더 큰 독자층을 누리고 있다.

만화, 온라인에서 인기몰이를 하다

  만화가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시도는 비교적 일찍부터 있었다. PC통신의 온라인 만화방 서비스를 필두로, 인터넷 보편화가 막 이루어지고 있던 99년에 이미 ‘이코믹스’, ‘N4′, ’코믹스투데이‘ 등 대형 만화 포털 사이트가 독자몰이에 나섰다. 하지만 만화방이라는 표어대로 해당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유료결제를 하면 기존 종이만화의 스캔본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방식에 그쳤고, 그 결과 일부 성인 에로 만화를 제외하고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인쇄를 전제로 하는 장편 만화 작품들을 모니터 화면으로 온전히 즐기기에는 해상도 문제, 독서 자세의 불편함 등 기술적 난맥상이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만화를 본다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소리를 넣거나, 작은 움직임을 부여하는 식의 시도도 일부 있었지만, 만화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온라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키워준 것은 바로 독자 자신들이었다. 인터넷 메일과 게시판을 통한 소통이 생활화되면서 서로 온라인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만화 작품을 1-2개짜리 첨부 파일로 올려주는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 것이었다. ‘N4’에서 연재되었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품인 <마시마로 숲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엽기토끼‘라는 별명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카툰 연재물 역시 각광받았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스노우캣>을 필두로 하는 인터넷 상의 일기체 만화들이 특히 주목을 모았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짦막한 이야기를 며칠 간격으로 올리는 방식을 통해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독자층에게 거의 중독적인 흡입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아마추어 만화 작가들이 유사한 작업을 시도했고, 하나의 장르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펌’과 취향 공유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확산에 의해서 온라인 만화는 삽시간에 거대한 독자층을 확보해 나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나 돌아다니는 폭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서, 온라인 만화 역시 한층 깊숙하게 독자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그것에 잘 어울리는 특정한 양식의 만화들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우선, 펌질을 중심으로 확산되다 보니 수십 수백 페이지로 이루어진 장편 보다는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만화들이 쉽게 주류로 부상했다. 또한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의 스캔본 보다는, 개인이나 포탈, 언론사 사이트 등을 통해서 온라인 연재 중인 작품들이 선호된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만화 작품들 역시 온라인에서 효과적으로 감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종이의 페이지 넘김에 해당되는, 스크롤이라는 화면 이동 기능이 온라인 만화에서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양영순의 <1001>의 한 화에서는 주인공들이 물 속에서 재회하는 모습을 긴 세로 칸 한 개로 그려냈는데, 이것을 위아래 크기의 제한이 있는 컴퓨터 화면 창 속에서 스크롤해서 내리면 자연스럽게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느낌과 함께 장면이 전환되는 효과가 만들어지도록 연출했다. 물론 이것은 기존의 종이만화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을 연출방식이지만, 온라인으로 만화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위 ‘무한 캔버스’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창틀 효과 이외에도 하이퍼링크 기능이라든지, 선택형 스토리, 다방향 만화 등 다양한 온라인 특유의 표현방식들이 이미 독자들에게 자연스러운 독서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온라인 만화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현상은, 전자게시판의 활성화 덕분에 독자와 작가 사이에 다양한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편집부를 거쳐야 했던 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전혀 걸러지지 않고 매 연재분량마다 덧글로 달리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즉 독자의 취향에 한층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독자-작가 간 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온라인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하는 연례 자선 콘서트 ‘러브콘서툰’ (http://www.lovetoon.co.kr)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올해 초에 여러 온라인 작가들이 서로 돌아가며 한 화씩 그려나간 <탄핵반대 릴레이 만화> 역시 이러한 커뮤니티적인 결집력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만화 창작 동호회, 취향 공유 만화 동호회들이 온라인 상에 수도 없이 많이 활동중이다.

온라인 만화의 향후 전망

  하지만 온라인 만화의 앞날이 현재의 액면 인기만큼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수익성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콘텐츠가 무료 공개 서비스 위주로 배치되어 있는 국내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수십 수백만 번의 열람이나 펌질은 수익증대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온라인 만화 작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현재는 포탈 사이트나 언론사에 연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원고료, 그리고 만약 종이책으로 출판했을 경우 얻는 인세가 전부다. 유명세에 비해서 실익이 적은 셈인데, 대중문화라는 영역에서 이 점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대중문화는 재능 있는 인재의 신규 진입이나 활동 중인 창작인력의 유지, 다양한 장르의 실험과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산업적 성공과 문화적 활력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만화의 인기를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익모델을 고안해내지 못할 경우, 온라인 만화의 대중적 인기는 물론 질적인 발전 역시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일상화된 조급증이다. 일일 또는 격일 단위로 신작 연재분량이 나오는 짧은 호흡의 일기 만화나 일간지 사이트 연재물에 익숙해진 온라인 만화 독자들에게, 종이로 된 기존의 월간 잡지 마냥 다음 화를 위해서는 다음 달까지 기다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미 무리가 되어버렸다. 창작의 측면에서는 장기적인 사전 준비라든지 연재 진행 과정 중에 성찰이 필요한 작품을 시도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며, 특히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개인 홈페이지 연재물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결과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못해서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다시금 독자들 자신이다. 이미 현재 <1001> 같은 극히 소수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온라인 만화들이 짦막한 에피소드 방식의 개그물로 수렴되고 있는 불길한 징조가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만화의 향후전망을 종합해보자면 적어도 한동안은 계속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설득력 있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이 온라인의 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고, 그림들과 글들이 효율적으로 결합한 표현 방식인 만화는 그곳에서 무척 효과적인 장르다. 게다가 출판시장의 장기적인 불황 덕분에, 작가와 기획자들은 온라인에서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이만화를 완전히 대체해 줄 것이라든지, 온라인에 한국만화계의 미래가 달려있다든지 하는 근거 없는 과도한 희망을 걸지만 않는다면, 온라인 만화는 앞으로도 충분히 기대해볼만한 영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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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특기할 만한 국내 온라인 만화 5선

– 1001 (양영순) : ‘아라비안 나이트’의 독창적인 재해석. 장편의 호흡으로 연재중.
http://news.paran.com/scartoon
– 순정만화 (강도영/완결) : 이야기성과 온라인 만화로서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연애드라마.
 http://cartoon.media.daum.net
– 츄리닝 (이상신, 국중록) : 온라인 상에서 더 지명도가 높은 스포츠 신문 연재 개그만화.
http://cartoon.stoo.com
– 스노우캣 (권윤주) : ‘귀차니즘’, ‘혼자놀기’ 등 일련의 트렌드를 촉발한 작품.
http://www.snowcat.co.kr
– 마린블루스 (정철연) : 작가 자신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의인화-해물-개그만화.
http://www.marineblu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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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만화, 한국을 방문한 이후의 이야기들 [만화규장각 웹진/0410]

!@#… 부천 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http://www.kcomics.net) 웹진 커버스토리용으로 기고한 글. 기고 버젼은 밑의 주소 (로그인 필요). 당연히 다른 꼭지들과 맞물려서 좋은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게다가 도판도 있고) 가서 읽기를 추천함.

!@#… 보통 그렇듯이, 여기 올리는 건 애초에 기고한 버젼. 사실 벌써 일이년전에 했어야 할 이야기인데 자꾸 미루고 미루다보니 이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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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만화, 한국을 방문한 이후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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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힘에 관한 오락 – <데스노트>[기획회의041102]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뭐랄까, 하늘을 날아다닌다든지 순간이동을 한다든지 괴력을 발휘한다든지 하는 소박한 초능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막강한 권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과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최근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 그대로 바둑을 소재로 하는 만화인데, 이 작품이 연재된 일본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바둑 붐을 일으켰을 정도로 큰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뭐든지 한번 히트하면 확실하게 붐이 일어나는 일본이라지만, 젊은이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확실하게 쇠퇴하고 있던 일본 바둑을 다시 일으킨다니… 범상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 내용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펼쳐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바둑이라는 분야) 스스로도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소년이, 다듬어진 천재인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면서 각성, 뜨거운 우정과 경쟁의 관계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는 주인공 소년의 각성과 성장을 지도해주는 트레이너(이 경우는 과거 바둑의 명인이었던 유령)가 존재한다.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든 것은, 결국 두 주인공 사이의 팽팽한 긴장관계다. 서로 완전히 대조되면서도 사실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적대 관계이면서도 서로 우호적이며, 라이벌이자 서로의 성장의 원동력. 바둑이라는 상당히 정적인 활동인데도 불구하고, 두뇌싸움을 넘치는 박진감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했던 것이다.

바로 그 작가, 오바타 타케시(스토리: 오오바 츠쿠미)의 신작이 최근 발간되었다. <데스노트>라는 작품인데, 무려 고등학생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다. 저승사자(사신)들은 공책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그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히는 사람은 죽는다. 염라대왕의 명부라는 오래된 테마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셈인데, 사신 중 하나가 인간계에 그 노트를 떨어트리고 주인공이 노트를 주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름대로 끔찍한 도구를 손에 쥐고 고뇌하고 갈등해야할 주인공…을 기대하겠지만, 이 작품은 약간 다르다. 하필이면 그 주인공은 천재 고등학생이었고, 이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세계의 범죄자들의 씨를 말려서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곳의 지배자로 군림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세계 최고의 탐정, 가칭 ‘L’이 달려드는데…

전작과는 다른 스토리 작가 덕택에 소재는 완전히 하드하게 바뀌어버렸지만, 작가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인 두 천재 사이의 두뇌싸움을 들고 왔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즉 범인과 탐정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트레이너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전히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대결이 이루어지고, 대부분이 대화와 표정연기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주면서 히트작으로 등극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리 소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불리우는 일본의 주류 만화판이라 할지라도 유수의 대중적인 소년만화 잡지에서 무려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만화를 연재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모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소재 선정의 특이성에 특화되어 있는 일본만화계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경우지만, 동시에 적지 않게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몇몇 천재소년들이 아니라, 바로 ‘데스노트’라는 도구 그 자체다. 절대적인 힘이 주어질 때,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바로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다. 공책을 주운 주인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자들을 일방적으로 살인한다는 설정이 주는 부도덕한 쾌감도 잠시에 불과하다. 곧 그가 살인 대상을 그의 정체를 추적하는 수사관들까지 확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섬뜩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를 추적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희생을 전혀 개의치 않는 추적자 탐정의 행동 역시 즐기기 힘든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불쾌함이 극에 달하는 부분,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두 명이 서로 다른 곳에서 “내가 바로 정의다”를 외치는 장면까지 오면 이 기이한 소년만화의 사악한 재미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특별히 어떤 성찰적이거나 교훈적인 무언가를 표방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 주류 만화판의 소재 중심 제작방식의 첨단에서 나온,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주류 오락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합적인 심경을 느끼고야 마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로서의 입장에서 지어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전혀 갈등하지 않는 확신에 찬 – 마치 야구에서 우승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다짐을 하며 좀 더 효율적인 살인에 매진하는 주인공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무언가 모를 찝찝한 자극을 느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이유가 없다. 나도 그런 힘이 주어지면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감의 능력이 발동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공감’이야말로 대중 오락에서 생성되는 재미의 근원이 아니던가.

‘권선징악’이라는 명제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기는 자가 ‘선’이고, 진 자는 자연스럽게 ‘악’으로 사후 규정되는 세상이니까. 가끔은 그런 냉엄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대놓고 직면시켜주는 주류 오락물이 나와서 히트치더라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주변에 ‘데스노트’가 떨어져있지나 않은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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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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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만화의 오늘 – <츄리닝> [기획회의041019]

빌딩과 ‘삘띵’의 차이는 뭘까? ‘빌딩’이라고 하면 63빌딩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리지만, ‘삘띵’이라고 발음하면 동네 골목길 어귀에 서있는 4층짜리 상가 건물을 떠올리게 된다. 미묘한 뉘앙스에서 오는 커다란 이미지의 차이. 그런 비슷한 경우가 바로 ‘츄리닝’이다. 우리가 트레이닝복이 아니라 ‘츄리닝’이라고 할 때, 그 어감이 주는 임팩트는 남다르다. 굳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 입는다기보다는 단지 헐렁하게 대충 걸치고 무언가 시시껄렁한 짓거리를 하면서 돌아다니기 위한 복장. 잔뜩 폼 잡고 조깅이라도 할 듯 나왔다가,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나 한모금 빨고 다시 들어가서 TV나 보는 패턴이 어울리는 복장이다.

<츄리닝>(이상신, 국중록 저 / 애니북스)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가운데 하나를 단행본화한 것이다. 애초에 주 2회 연재의 마이너한 코너에 불과했던 시리즈로 시작했다가, 금새 주 6회씩 연재되는 정규 꼭지로 격상되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최근 1년여 동안 가장 좋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연재물 중 하나다. 실제로 신문 판매량 증가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수많은 개인 블로그와 게시판으로 ‘펌질’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인기를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결국 헐렁하게 사는 방식이나 시시한 (하지만 꽤 욕망에 충실한) 결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짧막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흔히 연재물이라고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주욱 연결해서 이야기해주거나, 에피소드 방식을 취할 경우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캐릭터가 겪어나가는 하나의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트라우마>, <애욕전선 이상없다>등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연재물과는 다소 다른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 주류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연재물들은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나 캐릭터를 담아내기 보다는,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에피소드들이 매일 새롭게 펼쳐질 뿐이다. 이 시리즈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주는 것은 캐릭터나 커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의 브랜드다. 하지만 단편 모음집과도 다른 것이, 일간이나 최소한 주 1,2회 이상이라는 빠른 연재 페이스 속에서 분명히 이것이 연속된 연재물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츄리닝>은 바로 이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방식이 개그라는 장르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해진 캐릭터와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가면서 개그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 장점도 많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우스운 이야기를 나눌 때, “…너네들, *** 알지? 아 그 사람이 말이야 지난번에…” 라고 하는 것과, “…참새 두 마리가 전신주 위에 앉았는데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자유도의 폭이 다르다. 웃겨야 한다는 지상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자유롭고 황당한 설정이라도 새로 만들고, 또한 생명력이 다하면 그대로 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중 많이 웃겼던 설정은 나중에 한번쯤 더 써먹으면 그만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세계관이 이 에피소드 다음에도 계속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 한 회를 보고 가볍게 웃고 나면 끝이다.

<츄리닝>은 이러한 전략에 무척 충실한 만화다. 모든 개그는 그 한 회 한 회로 자기 설정을 만들어내며, 네 페이지 안에 확실한 결말을 본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코너에 도전하는 개그맨들과도 같다. 같은 얼굴,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는 약속을 독자들과 이미 공유하고 있다. 물론 연재물 안에서도 연속성을 지니고 반복해서 등장하는 ‘탱구네 가족’ 등의 캐릭터들이 있지만, 그것은 마치 고전적인 우스개인 ‘참새 시리즈’에서 전신주의 참새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덕분에, 어느 한 화를 떼어놓고 따로 읽어도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자기완결적인 호흡이 만들어진다. 쉽게 입문하고,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장편연재의 호흡을 지니는 작품인 <식객>의 하루 연재분량(6페이지)을 자기 블로그에 올려놓고 사람들보고 즐기라고 해봤자 무슨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츄리닝>은 된다.

그 결과, <츄리닝>의 핵심은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능력이다. 비록 통일된 큰 이야기의 흐름이 없더라도 그림이나 개그 센스가(효과적인 분업의 힘이다) 시리즈로서의 구심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그만큼 위태로운 측면도 있다. 순간적인 임팩트의 강도를 위해서, 장기적인 이미지 구축을 상대적으로 게을리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배격인 <누들누드>의 사례처럼, 나중에도 길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식 연재 만화는 단지 순간순간의 빛나는 아이디어만으로 차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일관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 <츄리닝>이라는 작품을 순간의 즐거움 이상의 의미로 만들고 싶다면, 우수한 개그 이상으로 좀 더 명확한 자기 색깔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만약 작가들이 지금의 빛나는 개그 재능이 소진되고 나면, 사람들은 <츄리닝>을 무엇으로 기억하게 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츄리닝>의 개그보따리는 도저히 마를 줄을 모르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출시된 단행본은 순서대로 작품들을 모은 것이 아닌, 베스트 에피소드 선집이다. 큰 흐름보다는 각각의 화에서 보이는 순간의 기지가 핵심적인 이 작품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유쾌할 것이다. 그 성과를 조금이라도 폄하할 이유는 없다. 현재 <트라우마>,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 이 계열의 인기작들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계속 출간 진행중인데, 이들 역시 성공을 거두기를 기원한다. 누구나 자신의 서가에, 언제라도 한번씩 중간에 펼쳐들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웃음창고를 보관해두는 습관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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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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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반 고호를 만나다 <빈센트와 반 고호> [으뜸과 버금 0410]

이발소 그림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 또는 회화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고 그림이 거래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빈센트 반 고호. 하지만 반 고호가 살아 생전에는 전혀 해피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에피소드다. 아무도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격렬한 감수성을 알아주지 않았고, 그 결과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덤으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까지 겹쳐서 고생했다. 그리고 유일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도르와 함께 어느 공동묘지에 묻혀서, 사후에 자신의 그림이 천문학적 액수로 거래되는 상황들을 모두 놓쳐버리고 만 비극적 캐릭터다.

<빈센트와 반 고호>(애니북스 / 글라디미르 스무자 작)라는 만화가 최근 출간되었다. 반 고호의 생애를 다루는 이 만화는 반 고호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거센 붓터치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의 명화 속에서 등장한 – 즉 그가 생전에 보았을 그 다양한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로 녹아들어가 있는데(이러한 자연스럽고 묘한 패러디 / 오마쥬를 가능한 것은 그림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라는 서사장르의 매력이다), 초반에 이어지는 평온한 풍경화 위주의 패러디가 결말에 가서는 주로 강렬한 필치의 환상적인 그림들로 바뀌어 나가는 시각적 연출 역시 전개의 극적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빈센트와 반 고호>는 만화의 매력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것의 유희성을 효과적으로 다루어주는 작품이다. 그것은 전혀 경박하지도, 고인의 진지한 삶 앞에 누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위인전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작가는 안 그래도 매력적인 한 사람의 삶을 더욱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살짝 비틀어준다. 빈센트라는 고양이가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소심한 무명화가 반 고호,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치명적인 유혹인 고양이 빈센트. 고양이 빈센트는 재능이 넘치는 화가이자, 거침없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 만남과 우정은 반 고호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충만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구도는 멀게는 시인 베를렌과 아르튀르, 가깝게는 영화 <베티블루>에서도 숱하게 보아온 익숙한 방식이다. 그리고 결말은 항상, 비극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신선한 활력이었던 그 거친 에너지가, 인간의 사회와 규율 속에서 적응하면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거침없는 천재가 결국 먼저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필자가 불만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좋은 만화책들이 홍보부족 또는 전략미스로 인하여 묻혀지는 것이다. <빈센트와 반 고호> 역시 출간 이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도 자료도 신문 기사도 뭣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어느 날 우연히 예술서적 서가에서 발견했을 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안 그래도 경향신문의 주간 만화섹션에서 소개할 좋은 신간을 매주 선정하는 역할을 맡아서 머리에 쥐가 나던 시기였는데, 이 책을 만남과 동시에 기쁨(좋은 작품이니까!)과 야속함(제발, 보도자료라도 좀 돌리지 그랬는가!)이 같이 밀려들어왔다. 좋은 작품이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못 만나서 무관심 속에 묻혀버려서야, 반 고호의 불운한 일생보다 나아질 것이 없을 테니까.

PS. 여담(내용누설 주의): 유럽만화는 드라마틱한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또는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해서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역시 만화는 애들 수준에나 맞아’라고 푸념을 내뱉는 분들에게는, 마지막 공동묘지 장면에 심어져 있는 ‘식스센스’급 반전을 한번 제대로 즐겨보시기를 권한다. 
[으뜸과 버금 2004. 10.]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