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새로운 리더, 만화독자의 재발견 – 제3차 청강국제만화세미나

!@#… 재미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행사 하나 곧 열린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이름하여 제3차 청강 국제만화 세미나, 대중문화의 새로운 리더, 만화독자의 재발견. (제목 그럴싸한 것으로 뽑아내느라 아주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습니다) 자세한 정보 및 사전등록은 여기에서:

http://www.comicstudy.co.kr  (예, 3년만에 드디어 열렸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

오전은 강연식, 오후는 판넬 자유대담. 오후가 꽤 흥미진진할 것으로 추정. 테마는 바로 ‘독자’. 재작년의 1회 당시 문화권이나 표현속성들의 다양성과 교류를 이야기했고, 작년의 2회 행사 당시 출판과 기획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논했다면, 이번 3회에서는 그 모든 것을 결국 향유해서 하나로 합쳐주는 ‘독자’ – 아니 ‘향유자’ 라는 존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비록 행사 주관자는 중간에 청강대에서 한겨레신문으로 바뀌었으나 3년 연속으로 콘텐츠진흥원의 공공 지원 예산까지 받아낸 나름대로 유서깊고 품질 높은 행사. 아니, 품질에 대해서는 국내 어떤 다른 이 분야의 관련 심포지엄 행사보다 경쟁력 있다고 자부한다.

!@#… 이번 행사는 capcold에게 있어서도 좀 특이한 위치에 있다. 프로그램도 짜놓고, 출연진도 다 세팅해놓고, 보도자료도 만들고서는… 정작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_-; 여기 읽어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다시피 해외로 장기 일정으로 날라버려서. 무척 무책임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푸훗.  

!@#… 이 행사 역시 청강 국제만화교류연구소 기획. 뭐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사실 청강의 박모인하 교수와 capcold라는 이상한 사람이 진행하는 투-맨 프로젝트팀(2003년부터). 다행히도 팀웍이 꽤 잘맞는 편이라서 이리저리 계속 굴러가는 중.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같이 일할 사람은 따로 결합시키고. 비록 청강 학교측에서 지원금 한푼 안나와서 월급이나 수당을 받는 건 아니지만, 대학교 이름을 하나 업고 갈 수 있어서 각종 연구 기획 프로젝트를 따오기 용이하다(비록 2년제라서 그것 나름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뭐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연례 세미나만 하더라도, 계속 capcold가 기획해오다 보니 얼추 연속성을 가지고 틀을 짜볼 수 있는 것. 기획자가 계속 바뀌는 다른 1회성 행사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2004년 시카프의 클로버문고 향수전 기획 같은 전시 행사 큐레이팅도, 부천 만화규장각 중장기 발전계획 같은 순수 연구과제도, 연구소 이름을 업고 사사삭 진행.  뭐 혼자 두보CMC라는 이름으로 2003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기획이라든지 이향우 개인전이라든지 하는 것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학이름을 업고 가야 발주고 진행이고 더 깔끔해진다. 청강연구소는 투맨팀이지만, 따지고 보면 청강 만창과 학장으로서 여러 발주 루트를 가진 박교수보다 역시  capcold가 더 요긴하게 이 단체를 써먹어온 듯 하다 (물론 이렇게 학교 이름 팔아주는데 지원금 한푼 없는 청강대 학교측은 항상 섭섭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행사 – 즉 이런 행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행사 – 를 진짜로 하나씩 만들어 내는 성취감은 확실하니까. 최종목표는 이런 행사들이 확실한 참조모델이 되어서 다른 행사들의 품질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인데, 어찌될지 아직 모름. 뭐 여하튼 학력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서 약간 반박자 쉬어가고 있는 지금와서 돌아보자면, 고작 99년에 알바생으로 만화 관련 일거리를 시작한 주제에 정말 별별 일을 다 벌여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번 정리해봐야지).

!@#… 여튼 잡설은 뒤로 하고, 이번 행사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만화-기반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것을 배워갈 수 있을 듯.

!@#… 내년에는 과연 뭘로 프로그램을 짜서 어디서 예산을 받아오지…?  OTL

PS. 이번 행사의 틀짜기는 「아시아문화콘텐츠포럼[ACCF; Asian Culture Contents Forum]」(자세한 이야기는 mirugi님의 엮인글 참조)를 염두에 두고 들어가서, 꽤 수월했다. 아예 ACCF 차원에서 이런 행사도 한번 만들어봐도 재미있을 듯.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만화로 상 받으면 어디 쓰나: 만화상에 대한 제안 [만화규장각웹진 0510]

!@#… 이번호 만화규장각 웹진에 커버스토리로 들어간 내용. 만화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전에 이쪽 지면에서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는 나갔던 적이 있어서(내가 쓴 건 아니지만. 공모전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는 2000년에 웹진 두고보자에서 이미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했었으니 별로 아쉬울 것도 없지만), 가능한 한 공모전 이야기보다는 사후평가로서 내리는 상에 대한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뭐 그리 잔소리꾼 같이 할 말이 많았는지, 원고량이 졸라 많아지고야 말았다. 보통 이쪽에 글을 쓸 때는 1) 개념과 분류 등 시스템적 측면, 2) 현실 역사와 데이터, 3) 대안 등 3단계 풀코스를 다 해주기 때문에(커버스토리가 보통 한꼭지를 잘 넘어가지 않는 지면이다보니, 좀 그런 이상한 책임감이 생긴다… 혹시 나만 생기는건가? -_-; ) 길어진다. 게다가  온라인이라서 방심했나보다. 특히 역대 수상작들에 대한 데이터를 한번 긁어모아보자, 라고 스스로 다짐한게 화근이었다. 이벤트에 따라서는 자료가 절망적일 정도로 체계적 보존이 안되어 있다. 심지어 이전에는 제대로 언론에서 보도조차 안해줬다… OTL  여튼 한 두어 항목 빼고는 거의 다 채워넣었다. 한번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아마 아무도 안 알아주겠지만.

!@#… 야속(;;;)하게시리, 원고에 그림을 하나도 안지정했더니 정말로 웹진 편집에서도 그림이 하나도 안들어간 새까만 글 투성이 글이다. 여튼, 사진이 많아서 로드용량 쇼크일때만 원래는 접지만, 이번에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여차저차 하면 원고지 100매 쯤…) 글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접는다. 요새는 사람들의 글 읽는 수준이 좀 그래서, 글 쓸 때 논리와 자료를 집어넣고 그 결과 길어지면 내가 다  막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분들은 알아서 클릭.

!@#… 아마 본문 내용에서 ‘만화’라는 말을 ‘음반’이나 ‘소설’ 이나 기타 대중문화 장르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굳이 재활용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PS. 97년 만화대상 저작상은 김진/숲의 이름. 에에… 웹진에는 김진의/숲의 이름으로 나갔다. (하이개그^^?) 사실 그것 말고도 웹진 버젼에서는 왠지 편집실수가 더러 포진해있다(이전 호 특집글의 한 문단이 뜬금없이 들어가 있다든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데이터가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없다.덕분에 필자인 나까지도 여러모로 비웃음을 사게 생겨서 무척 난감하다. 뭐,언젠가는  수정해주겠지. 하지만 여기 올린 것은 ‘깨끗한’ 버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여하튼 먹고 사는 생활 – <습지생태보고서> [기획회의051016]

!@#… 앞으로는 여기에 글을 올릴때 기본적으로 본문중의 작품에 링크를 걸어서 구매 사이트와 연결되도록 할까 한다. 어디가 가장 좋을까? 리브로? 예스24? 이왕이면 나한테 적립금도 쌓이는 곳이면 더 좋고. (과연 몇백원쯤 쌓이기는 할것인가? -_-; )

!@#… 하지만 마지막회의 희망찬 메시지는 좀 닭살이다. -_-; 전체 분위기에서도 튀고. 하지만 책소개 비평글에서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를 넣는 건 역시 범죄겠지(식스센스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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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먹고 사는 생활 – <습지생태보고서>

김낙호(만화연구가)

판도라의 상자라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신들이 인간 세상의 여러 근심걱정들을 상자에 봉인해놨는데, 어떤 호기심 많은 처자가 그것을 칠칠치 못하게 열어버린 덕분에 그것들이 인간세상으로 모두 뻗어져 나왔더라, 라는 이야기다. 그 후 수 천년 동안, 갖가지 인간들이 그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 교훈들을 나름대로 주장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그래 역시 호기심이 문제의 근원이야, 라고 이야기하며 무지의 행복을 설파하곤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왜 자꾸 그리스 신화고 기독교 창세기고 간에 여자들이 호기심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하고 난리인가, 라고 XY염색체 소유자들의 역사 깊은 남존여비의 반증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교훈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과 관련되어 있다: 걱정이니 질투니 노환이니 하는 오만가지 인간사의 부정적 문제들이 우루루 다 쏟아져 나온 뒤, 상자 맨 아래에 몰래 있던 마지막 하나. 바로 ‘희망’이라는 녀석이 남아있었기에 결국 아무리 험난한 세상이라도 희망을 가지면 대략 살만하다는 나름대로 낙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 영화에서 열심히 설파한 “카르페 디엠!(오늘을 불잡아라)” 하는 교훈을 훨씬 더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지만, 오랜 인류역사 속에서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듯 하니 나름대로 인정해 주기는 해야 하겠다. 

최근 출간된 <습지생태보고서>(최규석 / 거북이북스)에는 이런 희망에 대한 약간 다른 접근,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 담겨있다. 따지고 보면 굳이 희망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낙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보람찬 것이다. 현실의 무게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공상으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무게 그대로를 여하튼 짊어지고 가야할 대상이다. 익숙해지면 좌절 같은 것은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갑자기 해탈의 경지를 논하고 있는 것이냐고? 해탈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당장 우리들의 일상이고 생활이다. 그것을 만화적 재미라는 양념을 쳐서 살짝 직면시켜주는 작품인 것이다. 이미 전작인 단편집 <공룡둘리>를 통해서 남루한 현실의 무게와 만화적 표현력의 재미를 효과적으로 실험해온 작가다운 행보다.

<습지생태보고서>는 <경향신문>의 만화 전문 주간 섹션에서 연재되었으며, 디씨갤러리를 통해서 인기를 모으는 등 이미 연재 당시부터 팬층을 결집시켰던 작품이다. 내용은 한 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네 명의 그다지 풍요롭게 생활하지 못하는 대학생들과, 이런 방 일수록 하나쯤 생겨나기 마련인 빈대 식구 한명(한 마리?)의 생활 속 에피소드들이다. 아하, 대학생들의 청춘의 고뇌와 우정이 다루어지겠구나, 어쩌면 연애 문제, 취직 걱정 등이 소재로 들어가겠구나, 라고 대충 머리 속에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실제로 이 모든 것들이 이 작품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들 위에 서있는 중요한 대 전제가 이 작품에서는 무척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먹고 사는 것”이다. 방세도, 학비도, 식비도 모두 먹고사는 문제로서 해결을 해야 할 대상이다. 자취생활의 여러 습관들은 여타 작품에서처럼 단순히 하나의 ‘취향문화’ 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겨울 난방을 하면 등은 타고 코는 얼어 붙는 옥탑방을 무슨 ‘펜트하우스’ 처럼 묘사한 <옥탑방 고양이> 같은 드라마가 좋은 예다), 진짜로 먹고 살기 쓸 돈 빼면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만들어진, 생활의 때가 묻어있는 패턴들이다.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살아가는 필연적인 방식인 ‘생태’이며, 그 곳은 폼나는 양지도, 위악적인 어둠과 비참함의 음지도 아닌, 적당히 구질구질한 ‘습지’다.

시각적 묘사에 있어서도 이 작품은 탁월하다. 남루함이 과장되지 않게 묻어나는 ‘습지스러운’ 생활 공간과 사람들을 제대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극화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지나친 기교나 딱딱함을 배제한 화풍, 그리고 원색의 화려함이나 파스텔톤의 감상주의를 모두 비껴난 탁한 질감의 컬러링 등에서 드러나는 필력 역시 이야기의 내용과 좋은 조화를 이루어주고 있다. 페이지 연출에 있어서 아직 4페이지 단위라는 짧은 호흡에 익숙하지 않은 듯 마무리 임팩트 타이밍이 슬쩍 어긋나는 에피소드도 초반에 더러 있지만, 작가의 첫 고정 연재작이라고 도저히 보기 힘들 정도로 이내 능숙한 페이스를 찾아나간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생활만화다. 하지만 생활 속 감상을 적당히 감상주의적으로 포장한 소위 ‘에세이툰’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 작품은 4페이지짜리 짧은 호흡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하며 (나름대로) 개그 만화다. 그런데 <츄리닝>이나 <트라우마> 같은 다른 히트 ‘넌센스반전패러디개그만화’들과는 뭔가 방향이 많이 다르다. 남루한 현실이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얼리즘과 비극으로 점철된 작품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도 생활 속 위트와 히트급 개그와 현실적 공감대로 가득하다. 그 이상한 원동력은 바로 솔직함이다. 풍족하지 못한 자취생활이지만, 솔직하게 그렇게 궁하게 그냥 산다. 하지만 폼나는 것들을 한번 걸쳐볼 기회가 생긴다면, 비굴해질 필요도, 마다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낙관적으로 실실거리는 따듯한 낭만이 살아 숨쉬어야할 대목이 올 듯 하다가도, 당장 이번달 생활비를 계산해봐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처음에는 주인공 최군의 복잡한 머리 속과 다른 3명의 괴짜 룸메이트들의 티격태격 거림 속에서 주로 표현되다가, 나중에는 숫제 현실의 비열함과 욕망을 응축시킨 전용 캐릭터의 등장으로 더욱 고조된다. 자취방의 제 5의 주민, 작품 자체의 흥망과는 별개라도 대형 히트를 기록함이 마땅한 걸작 의인화 사슴 캐릭터 ‘녹용’이 바로 그 존재다. 가장 비현실적이고 나름대로 희망찬(?) 외모를 지닌 녹용이, 나름대로 낭만과 감성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현실의 무게를 줄이며 희망을 이야기해보려는 주인공들에게 차가운 현실을 깨우쳐주곤 한다. 최소한의 비굴함도 미안함도 없이, 생활의 사사로운 욕망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또 룸메이트들에게 그 교리를 설파하는 명언 제조기인 셈이다. 단지 현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뜬금없을 만큼 솔직하게 던져준다는 것, 그것이 유머의 원천이고 공감대의 핵심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주는 진짜 교훈은, 불확실한 미래형인 ‘희망’이라는 것 정도만으로도 그 많은 삶의 고난들을 마음 속에서 억지로 상쇄시켜버릴 정도로 인간의 사고회로가 멍청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 아름다운 것은 찬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여하튼 살아갈 만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습지’는 반지하 단칸 자취방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 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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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페르세폴리스 한국어판 출시… 그리고 만화번역에 관한 약간의 잡설

!@#…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출시. 4권짜리 불어판이 아닌 2권짜리 영어판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커버아트 등도 영어판을 소스로 하고 있다. 뭐 capcold한테도 꽤 사연이 있는 작품인데, 여튼 한국어판이 나왔으니 많은 한국독자들에게 어필해줬으면 한다. 내용은 한 이란 여성의 성장담. 1권은 성장기, 아직 출시안된 2권은… 2권도 성장기. 1권은 이란에서 겪는 일들, 2권은 청소년이 되자 유럽으로 유학와서 겪는 일들. 여성성, 정치현실, 자유의 의미, 가치관의 충돌… 등등 여러 굵직한 테마들이 대단히 담담하고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흡입력을 발휘한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특히 1권(불어판 기준이면 1,2권)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비견할만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2권은 현대 유럽이라는 별로 치열할 것 없는 공간에서의 경험에 더 초점이 강하게 맞추어져서, 아무래도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뭐 나중에 나오면 알아서들 보시기를 바란다.

!@#… 에에, 아직 한국어판을 못읽어봤지만(출판사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미리보기 챕터 하나만 빼고는), 그런데 뭔가 제목부터 약간 불안하다: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라… 원래 영어판 1권의 부제는 “The Story of a Childhood”, 즉 “어떤 어린 시절 이야기” 라는 뉘앙스. 작가라는 개인의 어린시절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찌보면 평범하고 흔한 당대의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나의 어린시절’이 되어버리면 그냥 단순히 작가의 개인적인 개인사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게다가 영어판 2권의 부제가 1권과 세트를 이루는 “The Story of a Return”, 즉 “어떤 귀환 이야기” 인데, 그것마저 혹시 “나의 귀환 이야기”로 해버리면 김이 정말로 팍 새지 않는가.

주인공의 말투도 꽤 민감한 문제다. 알다시피, 내가 번역을 맡으면 메인 주인공의 기본 말투는 capcold화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만화의 이해>의 스콧 아저씨야 원래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잘 맞아떨어진거고, <다르면서 같은>의 경우 역시 주인공 사이먼의 정신세계나 만담정신이 일맥상통하니까 그럭저럭 어울렸다. 하지만 이란계 여성 작가가 자신의 성장담을 회고하면서 capcold식 말투를 구사한다면?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영화에서 더빙 성우를 고르는 것 이상의 험난한 과제다. 그래서 좋은 문학 번역 – 특히 만화 번역을 위해서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문체를 다듬고 다듬어야 하는 법(대량으로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1주일에 한권씩 통통 번역해내는 주류 코믹스계 일본어 단행본은 이야기하기도 싫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 1화 샘플을 본 결과… 아아… 이 이란 처자의 말투는 새만화책 편집인이자 만화작가인 김대중씨의 목소리 그대로다. 그것이 강력한 위화감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작품 속에 녹아들어갈지는 책의 나머지 본문을 읽어봐야 알겠다.

번역시의 뉘앙스 문제에 신경쓰이는 건 capcold의 직업병(혹은 성격?)이니까 아무래도 일반 독자들보다 훨씬 민감해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하튼 본문의 번역은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센스를 잘 옮겨주었기를 바란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나도 영어판으로 봤으니, 원래 원작인 불어판에서 옮겨오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소실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_-; 중역이 가지는 원죄라고나 할까.

!@#… 여튼, 알라딘US를 쓰든지 어쩌든지, 한번 구해보긴 해야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다시.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만화가 박봉성 선생 별세.

!@#… 박봉성 작가 별세. 고우영 선생 당시와는 달리 지병으로 인한 것도 아니라, 산행중 돌연사라고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 이렇게 해서 남성 성인극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이 한결 더 실감난다. 솔직히 비평적인 이유와 산업적인 이유 때문에 고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반발감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장르를 장악하고 일구어낸 대가로서의 위업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제 만화사의 일부로만 남게된 그의 작품들이, 꾸준한 생명력으로 그들의 독자들과 만나주기를.

성인들의 이야기 – <느티나무의 선물> [기획회의051003]

!@#… 사실을 고백하건데, 나는 지로 다니구치의 만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그의 만화들이 만화로서 우수하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 가족관계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향수, 따듯한 인간애로 세상의 모순마저도 통째로 덮어버리는 박애정신은 capcold의 코드에 적잖이 거슬린다. 연출 측면에서도 만화적 공간구성의 장점들을 살리기보다는 ‘영화적’ 미장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너무 틀이 꽉 짜여져있다. 하지만… 중년 (남성) 독자들이 만화책 한권 추천해달라면, 그들의 취향에 맞을 만한 우수한 만화로서 별 망설임없이 추천해주곤 한다. 뭐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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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이야기 – <느티나무의 선물>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든 게임이든 음악이든 대중문화 전반의 특징이 바로 대중적 성공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중 – 즉 나름의 주관에 따라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상품을 소비해줄 수 있는 일반인들의 폭은 갈수록 넓어진다. 특히 연령적인 측면에서, 점차 더욱 일찍 대중문화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대중문화의 코드들 역시 점차 저연령화 되는데, 대략 중학교 1학년의 교양 수준에 맞추는 것이 관례가 된지 오래인(물론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텔레비전 교양/오락 프로그램의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코드에 대한 욕구 역시 커지고 있다. 특히 오랜 역사동안 저연령에 대한 포섭능력이 최대장점인 것처럼 포장되어왔던 만화라는 대중문화 양식에 있어서, 성인들이 ‘자신들만의 코드’에 맞는 작품을 원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성인들을 위한 만화란 무엇일까? 섹스나 폭력 같은 것으로는 턱도 없다. 그것은 성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취향인 것이 아니라, 성인이 아닌 자들에게 사회적으로 그 쾌락을 금지시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단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느티나무의 선물>(다니구치 지로 / 샘터)이다. 읽어보는 사람마다 “아, 이것이 바로 성인의 이야기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 작품의 무엇이 과연 그렇게 성인스럽다는 것인가. 느티나무가 모든 것을 주는 것이 꼭 부모님들의 무한한 사랑 같아서? 글쎄. 그런 식으로 보자면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보고 감동을 받기를 요구하는 동화류들과 기본 메시지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감정이입할 주인공들이 다 중장년이라서?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어른들만 나오는 아동물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성인스러움’은 좀 더 간단하고 쉬운 곳에 있다.

청소년/아동에게는 아직 없고, 성인에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바로, “과거”다. 지금을 신경 쓰고, 앞으로의 성장을 힘쓰느라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바로 청소년의 고민과 갈등이라면, 성인에게는 뒤돌아볼 과거가 있다. <느티나무의 선물>은 바로 그 과거 돌아보기가 만들어주는 성인적 감수성을 잔뜩 적셔주는 단편들의 모음이다. 우쓰미 류이치로의 원작 단편 소설들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이 작품에서, 다니구치 지로의 중장년 주인공들은 모두 지금의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어른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하여, 그것이 새로 이사온 집의 느티나무든, 오랫동안 못본 동생의 전화든, 그림 전시회든 간에, 과거를 돌아본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한층 인간적이고 따듯한 생활로 다시 방향을 잡아간다는 이야기 구도의 반복이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가 있는가 없는가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다. 청소년 취향 작품에도 나름대로 과거 사연을 지닌 멋진 주인공들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즉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거가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해주는 것인가, 라는 차원이다. 청소년은 과거의 반성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무언가를 더 이루고 싶어 아등바등 노력하는 성장을 하는 미래 지향이다. 과거는 극복의 대상이고, 다음 성장의 ‘이전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인은 과거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가 과연 무엇인가 반추해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는 좋았든 나빴든 간에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다. 이것이 바로 성장 중인지 성장이 이미 끝났는지에 대한 차이다. 성인은 성장에 대한 욕심이 이미 한풀 꺾인 존재들이다. 아 물론 세속적인 출세를 여전히 꿈꾸기는 하지만, 그것조차 나름대로의 현실론 앞에서 스스로 한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성인이다.

미래를 위한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과거의 정서는 때로는 복고 정서와 묶이기도 한다. 과거 “좋았던” 어떤 순간을 되돌아보며, 그다지 좋지 않은 현재와의 낯선 격차에 즐거워하는 감수성의 경향 말이다. 복고정서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과거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현재를 위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잊고 과거에 잠시 칩거하기 위한 과거.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인정서가 아니라 그냥  현실도피일 뿐이다. <느티나무의 선물>은 현명하게도 복고 정서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직하게 사람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사람이 아닌 느티나무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표제작 단편마저도, 정확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거다. 그리고 그 과거의 결과, 계속 느티나무와 함께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새 집주인의 모습이 바로 성인이다.

이러한 정서를 묘사하기 위한 다니구치의 화풍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특별히 역동적인 화면이나 재기발랄한 연출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세밀한 배경 덕분인 것도 아니다. 다니구치는 성인의 표정을 그린다. 말은 안해도 사연이 가득 담긴 표정, 의지보다는 관조가 넘치는 눈빛, 원만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성인들의 세계에서 연마된 듯한 적당히 경직된 딱딱한 표정. 특히 말없이 눈빛을 아래로 내리는 묘사에 있어서 성인의 정서를 연기력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화풍이 완전히 고착되어,  중간중간 드라마틱한 설정의 줄거리가 선보이는 부분에서도 그다지 강렬한 사건의 느낌으로 와닿지 않는 단점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과거 회상 속 아이들마저 어른의 눈빛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성인만화가 다 이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느티나무의 선물>은 담백한 시골 나물반찬 같은 책이다. 물론 성인의 건강에 좋고 성인만이 즐길 수 있는 그립고 반가운 풍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심심한 것만 먹어서야 식사가 즐거워질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끔 이런 풍미를 즐기는 것, 성인의 특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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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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