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한국어판 출시… 그리고 만화번역에 관한 약간의 잡설

!@#…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출시. 4권짜리 불어판이 아닌 2권짜리 영어판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커버아트 등도 영어판을 소스로 하고 있다. 뭐 capcold한테도 꽤 사연이 있는 작품인데, 여튼 한국어판이 나왔으니 많은 한국독자들에게 어필해줬으면 한다. 내용은 한 이란 여성의 성장담. 1권은 성장기, 아직 출시안된 2권은… 2권도 성장기. 1권은 이란에서 겪는 일들, 2권은 청소년이 되자 유럽으로 유학와서 겪는 일들. 여성성, 정치현실, 자유의 의미, 가치관의 충돌… 등등 여러 굵직한 테마들이 대단히 담담하고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흡입력을 발휘한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특히 1권(불어판 기준이면 1,2권)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비견할만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2권은 현대 유럽이라는 별로 치열할 것 없는 공간에서의 경험에 더 초점이 강하게 맞추어져서, 아무래도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뭐 나중에 나오면 알아서들 보시기를 바란다.

!@#… 에에, 아직 한국어판을 못읽어봤지만(출판사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미리보기 챕터 하나만 빼고는), 그런데 뭔가 제목부터 약간 불안하다: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라… 원래 영어판 1권의 부제는 “The Story of a Childhood”, 즉 “어떤 어린 시절 이야기” 라는 뉘앙스. 작가라는 개인의 어린시절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찌보면 평범하고 흔한 당대의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나의 어린시절’이 되어버리면 그냥 단순히 작가의 개인적인 개인사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게다가 영어판 2권의 부제가 1권과 세트를 이루는 “The Story of a Return”, 즉 “어떤 귀환 이야기” 인데, 그것마저 혹시 “나의 귀환 이야기”로 해버리면 김이 정말로 팍 새지 않는가.

주인공의 말투도 꽤 민감한 문제다. 알다시피, 내가 번역을 맡으면 메인 주인공의 기본 말투는 capcold화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만화의 이해>의 스콧 아저씨야 원래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잘 맞아떨어진거고, <다르면서 같은>의 경우 역시 주인공 사이먼의 정신세계나 만담정신이 일맥상통하니까 그럭저럭 어울렸다. 하지만 이란계 여성 작가가 자신의 성장담을 회고하면서 capcold식 말투를 구사한다면?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영화에서 더빙 성우를 고르는 것 이상의 험난한 과제다. 그래서 좋은 문학 번역 – 특히 만화 번역을 위해서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문체를 다듬고 다듬어야 하는 법(대량으로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1주일에 한권씩 통통 번역해내는 주류 코믹스계 일본어 단행본은 이야기하기도 싫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 1화 샘플을 본 결과… 아아… 이 이란 처자의 말투는 새만화책 편집인이자 만화작가인 김대중씨의 목소리 그대로다. 그것이 강력한 위화감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작품 속에 녹아들어갈지는 책의 나머지 본문을 읽어봐야 알겠다.

번역시의 뉘앙스 문제에 신경쓰이는 건 capcold의 직업병(혹은 성격?)이니까 아무래도 일반 독자들보다 훨씬 민감해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하튼 본문의 번역은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센스를 잘 옮겨주었기를 바란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나도 영어판으로 봤으니, 원래 원작인 불어판에서 옮겨오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소실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_-; 중역이 가지는 원죄라고나 할까.

!@#… 여튼, 알라딘US를 쓰든지 어쩌든지, 한번 구해보긴 해야겠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다시.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만화가 박봉성 선생 별세.

!@#… 박봉성 작가 별세. 고우영 선생 당시와는 달리 지병으로 인한 것도 아니라, 산행중 돌연사라고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 이렇게 해서 남성 성인극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이 한결 더 실감난다. 솔직히 비평적인 이유와 산업적인 이유 때문에 고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반발감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장르를 장악하고 일구어낸 대가로서의 위업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제 만화사의 일부로만 남게된 그의 작품들이, 꾸준한 생명력으로 그들의 독자들과 만나주기를.

토론방 개설: “해외만화 출판쿼터제, 다시 불타오르는 만화정책”

!@#… 지난번 만화언론 등대등 토론과 같은 방식의, 메타-토론방 열었습니다. 당연히 이번 주제는:

“해외만화 출판쿼터제, 다시 불타오르는 만화정책” (클릭)

!@#… 주변에 널리 홍보하고, 중요한 내용이다 싶은 건 그쪽에 주소를 등록 시킵시다… 참고로 그곳은 글 등록 게시판이 아니라, 사람들이 쓴 글을 링크 시켜놓는 메타-토론방입니다. 각자 자기가 말하고 싶은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메타토론방에서는 그 논의의 흐름과 요점을 살펴보도록 도와주는 기능. TGP 같은 겁니다(이 용어 아시는 분들은 나쁜 분들;;)

!@#… 위 토론방은 궁극의 카레 탐구 사이트 만화인(manhwa.in)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만화저널 <만> 창간 준비의 사전작업 일환이기도 합니다.

불 붙은 쿼터제 논의에 찬물 끼얹기.

!@#… 해외 만화 쿼터제 도입 제안에 대한 뉴스가 나간 뒤로 여기저기서 반발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어차피 대부분은 그냥 그 기사만 달랑 읽고 0.5초만에 분노, 0.94초만에 욕설이나 대충 갈겨버린 것들이니 무시. 아주 소수는 그나마 좀 더 현실적으로, ‘그러다가 공멸한다’라는 이야기를 함. 다만 이해가 전혀 안가는 부류들은, “그러다가 공멸한다고! 그러지 말고 대여점이나 없애!”라고 주장하는 부류. 대여점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것이 차라리 더 공멸의 지름길이라는 정도는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지만 뭐 그건 몇년째 이야기하고 나니 피곤해서 패스.

!@#…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capcold는 쿼터 반대론자는 아니지만 회의론자. 쿼터제 도입만이 살길이다!가 아니라 쿼터 배분의 효과를 지닌 우회로를 만들자, 라는 지극히 현실주의적 입장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https://capcold.net/blog/?p=593 에서 했으니 생략.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수입배급업자와 창작출판사를 따로 분류한 후 문화산업 지원을 후자에게 몰아주는 것).

…한마디로, 찬쿼터/반쿼터로 단순하게 나누어버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아니 그렇게 나눠버리는 순간, 건설적인 발전방향과 실천은 20억 파섹 너머로 날라가버린다. 반쿼터를 부르짖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다못해 왜 이런 정책제안을 하는지 자료를 좀 찾아보기나 할 것이며(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쿼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좀 열정과 의지를 잠시 가라앉히고 현실적으로 머리를 식혀가며 현실적 방안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법을 제안하는 것은 원론 수준에서의 문제제기가 아니니까. 너도나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안을 다듬어내고 밀어붙이자는 말이다. 민병두 의원측에서 제시한 안은 분명히 그 구체적인 듯한 이미지에 비해서 아직 너무 거칠다. 문제의식만 있지, 도입방법에 대한 현실적인 조율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아직 발표할만한 단계의 물건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래서 정말 아쉬운 건, 미숙한 이슈메이킹이다. 원래 쿼터제의 도입취지가 무엇이든 간에, 뉴스보도는 어디로보나 한국만화 확보가 아닌 수입규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50%니 1%당 벌금 100만원이니 하는 비현실적 수치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보도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다. 이렇게 해서야 결코 도입의 본래 취지가 전달되는 일이 없이, 다만 “정부가 엄청난 뻘타를 날린다!”(보통,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든 뭐든 다 정부라고 생각한다) 고 생각하게 될 뿐. 대형 출판사로 하여금 종수를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것 역시 이면의 기획이어야지, 드러내놓고 수입규제로 비추도록 하면 역효과를 일으킬 뿐. 그보다 애초에 이해가 안가는 것이, 만화판의 현재 상황 – 특히 대형 출판사들의 무분별한 종수경쟁과 그에 따른 과다물량 – 에 대한 개요와 여러 종합적 대안 등이 담겨있는 종합보고서, 내지 하다못해 공식 보도자료의 형식으로 먼저 기사화를 하면서 그 후에 공식 제안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이슈메이킹 과정이어야 할 텐데… 어째서 먼저 쇼크!부터 터트린 후 그저 아무도 서로 말을 안듣고 시끄러워진 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것인가. 건설적인 담론형성과 정책입안에 해가 되면 해가 되었지, 결코 득될 것이 없는 미숙한 언론전략이다. 또한 다양한 종합 발전 정책을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그 취지 속에서 이런 것을 추진한다는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쿼터 이야기만 툭 꺼내면 누구라도 반발심이 생길 수 밖에. 규제책이란 그런 것이다. 아, 정책제안서에 여러 개념들이 언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대여권이 추진되다가 고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현실적 재검토 없이 곧바로 ‘역시 대여권은 필요하다’라는 원론을 반복하는 식으로는 그다지 현실감이 없다. 정확한 통계, 공공 출판 시스템… 이미 몇년 전에 다 제시되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제대로 진행이 안된 것들 투성이(자세히 소개하자면 길다). 그런데 쿼터제 이야기만 새롭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부분만 부각될 수 밖에. 또한 쿼터제가 대여권이나 다른 정책들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될지에 대한 제시보다,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는 수평적 요소 나열으로는 더욱 설득력이 부족하다. 각각의 요소들은 멋진 말이지만, 합쳐놓고 볼 때 인과성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아직 베타버젼, 아니 알파버젼의 제안서다.

… 민 의원 진영에 냉철한 담론 전략가가 개입되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앞으로 갈 길이 천리만리길인데, 첫 걸음부터 벌써 똥을 밟아버리면 곤란하다. 다만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 갈 길의 종착지는 한국만화판에서 한국만화가 안정적인 양적/질적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며, 쿼터제는 그곳으로 가는 작은 길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곤란하겠다 싶으면 당연히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맞지, 그 앞에서 주저 앉아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이미 대여권 도입 시도와 올해 입안 실패에서 겪은 일 아닌가.

!@#…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쿼터제는 좋든 싫든 규제책이다. 쿼터제라는 규제책이 아닌, 의도한  긍정적 효과와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지원책에서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입사에는 배급업자로서의 세금을, 창작사에는 창작지원의 혜택을.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상상의 자유와 발언의 무게 사이: 만평의 책임 [인물과 사상 0510]

!@#… 인물과 사상 2005년 10월호 수록(원래는 9월호용이었으나, 마감 시간의 문제로 – 편집부 잘못 1%, capcold 잘못 99% – 10월호에 들어감). 인물과 사상에서 하고 있는 ‘시사만화’ 이야기는  아무래도 통일된 주제를 상정하다보니 각론과 총론을 배합해가면서 쓰는 중. 그런데 개별 시리즈/작가를 해부하는 각론과는 달리, 종합적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는 별로 인기가 없다. 이번에는 후자쪽 부류인데다가, 왠지 단행본으로 치면 결론 챕터에 들어가야할 듯한 내용… -_-; 하기야, 조선일보 곤란하다!라고 하면 다들 맞아맞아 하면서도, 신문의 책임은 이런 것이야!라고 하면 어려워하는 것이 사람심리.

!@#… 앞으로도 각론 분야에서는 뉴스툰이라든지, 시사뒷북 등으로 대표되는 서사형 시사만화, 박순찬의 장도리를 위시한 90년대 이후 동향… 등등, 그리고 총론 분야에서는 포털과 시사만화, 프로파간다로서의 만화, 만화와 사회참여, 한국 시사만화의 흐름(단순히 자료로서의 ‘역사’가 아닌, 진짜 변화과정) 등등 여러가지를 건드릴 생각. 확실한 틀을 좀 더하면 언젠가 단행본화할수 있을지도(누가 사본다고…;;).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당신도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21_050823]

!@#… 저저번호 한겨레21(574호)에 올라간 기사. 까먹고 여기 백업을 안했다. 하기야 원고는 일찌감치 보냈는데, 서찬휘님 인터뷰와 같이 나가느라고 예정보다 늦게 나왔던 탓이지만;;; 여튼 인터뷰와 같이 묶은 기사는 여기.

!@#… 그리고 만화언론 논의는, ‘만’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제작 순항중이다. 훌륭한 일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화인(http://manhwa.in) 에서 보시길. 참고로 인도 사이트다. 카레다.

!@#… 항상 그렇듯, 여기는 원래버젼. 기사는 소제목 등 다양한 편집을 거친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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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 만화 독자들, 즐거운 실험에 나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는 온라인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최근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라는 도발적 카피가 출몰하고 있다. 만화 산업도, 잡지 출판도 불황과 침체를 호소하는 이런 시기에 상당히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다. 게다가 그냥 만화 잡지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라 만화에 관한 지면을 만들자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묘한 울림에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특정 출판사에서 “만화 저널을 만들었으니 열심히 구독해주십시오”라는 광고가 아니라, 이제부터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이 다른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같이 머리를 모아 지면을 창간해보자고 초대하고 있다. 거창한 운동도 대형 사업도 아닌, 즐거운 풀뿌리 실험에 시동이 걸렸다.

만화 언론 토론, 따로 또 같이

시작은 만화/애니 이야기 사이트 ‘만화인’(http://manhwa.in)의 운영자 서찬휘 씨가 <한국에서 '만화 언론'은 가능한가> 라고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담론’의 형성을 넘어 정보의 지속적인 공급, 홍보 창구로서의 역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언론’은 분명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은 사회적 반향을 이끌 수 있는 운동이나 행사의 기반이 되기도 하죠…”라는 문제제기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현존하는 만화단체 소식지나 무거운 정론지와는 다른, 대중적 지면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여기에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대감, 우려, 현실 인식 등을 내놓기 시작했고, 빠른 시간 내에 수많은 장문의 토론 글이 축적되어갔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반 독자와 만화가 지망생도 있지만, 만화잡지 편집자, 평론가, 프리랜서 기획자 등 실제 종사자들도 여럿 포함되었다. 이들은 모두 특정 회사나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등한 만화 독자의 입장에서 토론에 가세했고,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서 만화언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가능하고 또는 어려운지 하나씩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 와중에서 한국 만화산업의 여러 난점들도 자연스럽게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만화 점유율 문제와 쿼터제 제안이라든지, 효과적인 창작 지원책 문제 등이 구체적인 업계 자료를 가지고 논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토론의 와중에서 왜 만화언론이 없는가 분통을 터트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실제로 그런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 실질적인 기획회의마저도 실시되고 있다.

토론과정의 또다른 재미있는 점은, 토론이 하나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 블로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트랙백으로 엮여진 블로그 댓글은 순서가 명확하지 않아서 논의의 맥락을 놓치기 쉬운 반면, 만화언론 토론은 관련 게시물의 리스트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만화인’ 사이트에서 유지함으로써 마치 하나의 게시판처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덕분에 토론에 기여한 각 글들은 분량과 논조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토론의 전체 맥락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이 자기 공간에서 긴 감상을 늘어놓기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서로 공유하기 갈구하는 대중 서사문화, 특히 만화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만화 독자의 힘

사실, 대중문화의 건설적 발전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돌았던 90년대 초중반에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두 개념을 합성한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르 상품화가 일반화되어버린 가요 분야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경우 소비의 방식이 훨씬 정교화되었을 뿐이었다. 프로슈머 개념은 생산자와 감상자 사이의 진입장벽이 한없이 낮으며, 보편적 접근성과 매니악한 세부취향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다수 대중문화 분야는 산업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 반대방향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만화다. 만화는 90년대 중반 이후 이루어낸 산업적 체계화와 급성장의 물결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 더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매체로 발전해왔다. 가요의 청취자들이 팬클럽을 만들고 음반을 소비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만화의 독자들은 한단계 더욱 적극적으로 ‘판’에 개입해왔다. 우선 이미 청소년층에서는 주류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각종 만화 동인 축제 행사를 들 수 있다. 독자들이 만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 직접 아마추어 회지를 만들어서 유통시키고, 아예 만화분장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직접 되어본다. 그 에너지는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프로 작가들도 종종 이런 활동에 참여하곤 한다. 이는 프로와 아마, 독자와 창작의 경계선이 낮기 때문인데, 온라인 상에서 자기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연재를 하다가 스타가 되는 사례들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준다.

3년전 출범한 독자만화대상(http://www.comicreader.org)은 만화에서 독자가 차지하는 위상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존 만화상들의 구태의연함을 독자들이 직접 타개하고자, 순수하게 독자 투표에 의한 새로운 상을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장기 운영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독자들이 다시 직접 나서서 대중적인 만화 정보 저널을 만들어서 유통시키겠다는 포부가 결코 뜬구름 잡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독자들이 독자들을 위한 만화저널을 고민하다

물론 난점도 적지 않다. 중심 주체가 없는 상태의 기획이기에, 실제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자금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온라인/오프라인의 선택, 광고주 설득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또한 기존의 만화 관련 잡지들이 지녔던 ‘그들만의 잔치’ 식의 대중성 부족을 극복하고 만화 ‘언론’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열혈 만화 매니아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집중적인 매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불특정 다수의 집단적 의견교환 과정에서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십수년전 모든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간 영화 언론이라는 형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씨네21>도 하나의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씨네21>이 영화를 핵심 소재로 삼되 영상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대중성을 확보했듯이, 논의중인 만화저널 역시 만화를 매개로 하여 독자들에게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을 포괄하는 하나의 취향 문화 전반을 접하게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제지적도 대안 도출도 모두 그 집단 토론의 과정에서 하나씩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모로,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토론은 재미있는 실험이다. 만약 현재 논의 방향이 계속 진전되어 결국 창간이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경우, 아마도 유례없이 크고 아름다운 잡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듯 하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자유 / 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