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를 통해서 기자의 전문성을 생각하다

!@#… 뭐! ‘모에’가 이렇게 건전무쌍한 개념인 줄, 처음 알았다.

건전한 뉴스 읽기(클릭)

…이왕 모에를 소재로 기사를 쓴다면, 아무리 마감이 바쁘더라도 최소한 모에가 뭔지 한번 제대로 알아보는 정도는 했으면 좋겠는데. ( 단지 신문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이 설명이 ‘모에가 뭐에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표준 대답으로 스크랩되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참 세상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 기자에게 있어서, 속보와 흥행이라는 공명심의 불길 속에서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것은 바로 전문성. 하기야 기자 뿐만이 아니겠지만.

—(3번째 리플까지 보고 보충설명 추가)—

!@#… 그럼 모에가 뭐냐고?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히로스에 료코가 귀여워서 좋아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좋아하는 것일 뿐. 하지만 히로스에 료코라는 인물보다, 영화 <철도원>에서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는 미소녀의 이미지가 눈앞에  집착한다면 뭔가 좀 다른 경지다. 아니 한발 나아가서 철도원이고 료코고 뭐고 간에, 아예 “단발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집착적으로 불타오른다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모에. 모에는 특정 요소들에 대한 , 그리고 그 요소들의 조합에 대한 애정적 집착. 그 과정에서 개개 인격체나 캐릭터 자체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날수도 있고. 그리고 그건 세부 요소로 환원될수록 확실해진다. 예를 들어서 미소년모에라고 한다면, 그다지 모에라고 명함 내밀기도 뭣하다. 안경모에, 고양이귀모에, 방울모에… 이 정도는 되야 좀 체면(?)이 산다. 위에서 어설픈 기자양반이 대충 쓴 것 마냥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에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귀여운 것이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어떤 특정한 요소(세라복이라든지, 안테나 머리라든지, 뾰족한 덧니라든지)에 집착을 하는 것이 모에다.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모에’. 이 사람은 아마도 수많은 만화, 애니, 게임 등 장르 대중오락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중 붕대를 맨 소녀 캐릭터를 찾아내며 애착을 보낼 것이다. 아마 그리고 붕대소녀는 자고로 이래야해(3분에 한번씩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려야 하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활약을 벌이려다가 아픔으로 한번 넘어져 줘야 하며, 머리에 붕대를 맬 경우 머리카락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되고 이마와 한쪽 눈 정도까지만 덮어야 한다는 등…), 하는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당연히 붕대소녀를 묘사한 각종 피겨와 게임, 만화책들을 긁어모으고 (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빌자면, ‘데이타베이스적 소비’). 만화/애니/게임이라는 서브컬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으로 비대해진, 기호와 상징의 홍수인 일본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현상. 페티시즘적 쾌락과 집착적 대중문화 소비의 화려한 만남.

설명이 어렵다면, 이렇게 쉽게 요약할수도: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팬’이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

나중에 또 덤으로 추가:

1) ‘모에’라는 단어를 감탄사로 쓰면, “나는 지금 맹렬히 모에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뜻의 약칭이 된다. 왠 오타쿠 캐릭터가 아이돌 콘서트장에 가서, “모에~!!!”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모에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모에~?”라고 귀엽게 한마디 불러준다면? 그건 “나에게 모에해주시지 않을래요?” 라는 말의 약칭이 된다. -_-;

2) 리플에서 pseudorandom님이 지적하셨다시피, ‘모에’ 행태는 실체를 획득할 수 없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면 가서 얻어내면 되는 것이지, 관련 굿즈를 사모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냥 팬으로서 상대의 전체를 동경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특정 요소 단위로 집착할 필요도 없고. 만화, 애니의 2차원 캐릭터(의 특정 요소들)에 모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하지만 인기 없는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3차원 물질계의 여성들도 이미 실체를 획득할 수 없는 먼 세상 신비의 대상이다.

3) 참고로, ‘모에’라는 단어는 “싹트다, 움트다” 라는 용어와 “불타오르다”라는 용어의 동음이의어 말장난이다. 오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불타오른다 쪽이 훨씬 적합.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연재중단의 논리.

!@#… 김은희의 <더칸> 연재중단 건과 관련해서.

http://jumosee.egloos.com/504110

http://www.manhwain.com/main.html?no=120

http://blog.naver.com/johnsilver9/20015555098

!@#… <더칸>이라는 작품을 특별히 좋아한 적은 없지만, <윙크>를 현재 구독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재중단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가의지든 편집부 의지든.

!@#… 하지만 솔직히 <해와달>이 아이큐점프에서 연재중단 밀려났을 때보다 더 가슴아프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안타깝지만, 그 결정에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반대했지만, 그래도 납득은 갔습니다. 잡지니까요. 연재니까요. 고료가 들어가는 작업이니까요. 그나마 예고라도 있고 반항할 여지라도 있지, 영챔프에서 <맘보 파라다이스>, <그의 나라>가 사라졌을 때에는 참… 당혹스러웠죠. 하지만 납득은 합니다. 작품의 수준이 어떻든, 편집부와 ‘주독자층’의 수준이 모든 것을 결정할 따름입니다. 극단적인 비유로, 신일섭씨의 <코믹스> 웹진에서 연재하는 마고딕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난데없이 <팡팡>에 연재된다고 칩시다. 당연히 밀려날 겁니다. 물론 애초에 장기적 포석을 못하고 근시안적이었던 편집부의 실수가 큽니다. 하지만 결국 밀려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작품이 좋든 나쁘든, 잡지는 자신의 성향을 가지고 다른 것을 밀어내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화적 종 다양성, 저는 200% 지지합니다. 하지만 일개 잡지가 그것을 맡아서 해줘야할 의무나 책임감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입니다. 그런 희생이 어디있습니까. 만화사랑의 이름으로 희생해야 하는겁니까?

!@#… 만화 팬 여러분, 만화 좀 그만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열기는 좀 덜 해도 되니까, 대신 차갑게 지갑을 여십시오. 10대 팬클럽들이 지갑을 열고 보이밴드들의 음반을 사재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모든 꽃미남들은 가수로 데뷔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생들이 부모를 시켜서 학습만화를 빙자한 아동 오락만화에 지갑을 열었습니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그쪽으로 달려들었고, 너도나도 제2의 그리스로마신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더칸>을 살리고 싶다면 <더칸>에 지갑을 여십시오. 그 중에서도, 시장성을 과시하는 쪽으로 여십시오. 예를 들어, 빌려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빌려보는 것으로 증명되는 종류의 시장성은 용도가 제한되어 있어서, 적어도 잡지연재를 지속시켜주지 쪽에는 써먹지 못합니다. 돈은 없지만 사랑은 한다구요? 그렇다면 작가분도 돈은 없지만 사랑을 하시기를 – 즉 연재비를 포기하고 단지 만화사랑만으로 작품을 완간시켜주기를 간절히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 많은 팬들의 당혹스러운 점이, ‘만화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고, 또 ‘만화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바란다는 겁니다. ‘사랑과 분노’가 아닌, ‘시장성’을 보여줘야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전설처럼 인용되곤 하는 말인 “일본의 어떤 출판사에서 500부 팔릴 내용이라도 만든다더라”라는 건, 그 500부로도 돈을 뽑을 만큼 운영을 짜게 하고 책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곳은 한국에도 넘쳐납니다. 만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시장성이 열악한, 시집들을 보세요! 비록 마이너하지만 나의 취향을 즐기고 싶다, 라면 그 취향이 산업적으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소비해줘야 합니다. 완전히 오타쿠화되어버린 일본의 만화/애니 시장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오타쿠들이 목숨 걸고 돈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지킬 – 즉 물질적 투자를 할 – 각오도 없으면서 나무에서 모든 것이 떨어지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겁니다. <더칸>이 나이대 때문에 윙크에서 밀려난다면, 나이대에 맞는 지면으로 옮기면 됩니다. <허브>라는 성인 순정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자칭 만화팬들이 태반이지만. 나이대는 맞지만 장르 성향이 안맞는다면, 또 다른 방법들을 모색해야 되겠죠. 단행본 단위로 가든, 웹 연재로 돌리든, 사전 주문 동인지나 이슈 형태로 가든… 쉬운 길은 아니죠. 하지만 특정 지면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사라져버릴 만한 작품이라면, 사라질 만한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 뿐입니다. 독자층이 확고하고 그 독자층이 바로 시장층이 되어준다면, 어떤 형태로 가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 서명운동으로 10만명을 모으는 것보다, 단행본 판매부수 1만권을 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만. 아니, <윙크> 구독 부수를 단 5000부만이라도 더 늘려주고, “<더칸>때문에 윙크를 사봅니다! 화이팅!”이라고 한마디라도 게시판에 남겨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요. 별로 어렵지도 않고 귀찮을 것도 없습니다. 윙크 항의 서명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연재를 못하게 될 5-10권까지가 담긴 박스세트를 사전예약 판매를 하십시오. 애장판 가격으로 해서, 1000세트만 사전판매 달성한다면 연재지면이 생길 겁니다. 이런 것이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운동’ 입니다. 서명운동보다 불매운동, 불매운동보다는 구매운동, 구매운동보다는 자연스러운 구매활동이 필요하다는 무지하게 간략명쾌한 논리를 좀 효과적으로 설파하고 싶습니다.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한국만화는 볼 것이 없다고 하는 바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 주모씨님의 글에서 트랙백. “한국만화 볼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별 문제없이 제가 즐길만한 ‘우수한’ 한국만화들을 잘만 읽고 있는데. 현재 출간중인 것들이든, 과거의 명작들이든. 한국만화가 일본망가에 비해서 우수하다 또는 열등하다? 그런 대단한 전체 차원 같은 건 알 길이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만큼이나 철학적인 질문.

그냥, 만화라는 커다란 풀 속에서 볼만한 것을 뽑을 때, 한국 만화가 상당 비율 들어간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당연하다. 한국 독자이다 보니, 한국 특유의 요소들에 대한 코드 공감도가 높으니까. 예를 들어 <츄리닝>이나 <트라우마>의 군대개그들은 어느 다른 나라 만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중한 문화적 종 다양성이다. 아 물론 한국이라는 현실사회 – 아니 현실 자체를 별로 안 느끼고 사는 사람들은 경우가 다르겠지만.

물론 장르에 따라서 일본망가가 압도적으로 더 강세인 경우도 있고, 미국만화가 강세인 경우도 있다. <드래곤볼>의 유구한 전통위에 서있는 ‘점프식 스펙타클 격투 성장물’이나, 요리만화류 같은 소위 ‘전문소재 만화’가 일본의 주류 잡지연재 시스템에서 가장 효과적/효율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상식이다. 적어도, 만화가 어쩌느니 떠들 수 있으려면 그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겠지. 미국이 수십년간 고안한 이슈 단위 분업화 제작시스템보다 더 슈퍼히어로물을 효과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예외적인 개별 작품들은 나올 수 있지만, 하나의 ‘경향’은 그렇지 않다. 비록 만화가 상대적으로 덜 자본 소모적인 대중문화장르라고 할지라도, 시스템의 힘이란건 그런거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장점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기회에 따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런데 “생각없이 때려부수면서 괜히 지적인 풍미도 살짝 넣어주는 SF액션 영화” 라는 장르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우위를 지닌다고 해서, 미국영화 이외의 것들은 모두 ‘볼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생각없이 때려부수면서 괜히 지적인 풍미도 살짝 넣어주는 SF액션 영화”만 보는 것은 뭐 취향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영화의 전부라고 주장하면 그건 그냥 미친놈일 뿐. 심지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아아…한국영화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면서 짐짓 걱정해주는 제스쳐까지 나오면 그건 정말 구제불능일 뿐. 뭐랄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단히 좁고 특정적인 취향을 성급하게 판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인정해주지 않아버리고. 이런 부류를 일반 용어로는 ‘초딩’이라고 하기도 하고, ‘찌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현재 한국 – 아니 세계 인구의 95.3204%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가설을 세워본다. 통계적으로 검증할 생각은 당연히 없다.

식당에 비유를 하자면… 오로지 햄버거만을 세상 음식의 전부로 생각하면서, “이 동네에는 먹을 것이 없어”라고 투정하는 회사동료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동네는 사실 바지락 칼국수 전문이다! 그렇다면 보통은 이렇게 말해주기 마련이다: “야 그런 것도 좋지만, 맨날 편식만 하지 말고… 이 동네는 바지락 칼국수가 죽여주거든? 한 번 먹으러 가자!”. 그 결과 그 친구는 어쩌면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뜰지도 모른다.

!@#… 칼럼이나 리뷰 등의 저널리즘으로서 만화 글쟁이들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배가본드>가 일본에서만큼 안팔린다고 해서 한국만화판이 존내 망해간다고 확신하는 바보들에게 제발 만화 선택의 폭을 좀 넓혀주는 것. “한국만화 사랑하자!”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제발 만화 좀 제대로 즐겨봐라, 사실 너 같은 생활이면 이런 만화가 훨씬 더 재밌을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고 한번 시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마, 뭐 그런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참 여러 장르와 취향의 만화들에 익숙하고 또 즐겨야만 한다. 편협한 미식가가 소개하는 편협한 맛집소개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 그래도 결국 열쇠를 쥔건 독자들 자신이다. 한국만화가 볼 것이 없다는 엄청난 주장을 남발하기 전에, 만화라는 거대한 카테고리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어떤 취향 장르라는 작은 카테고리로 줄여서 생각하는 법을 좀 익히기를. 햄버거가 지겨우면 밥먹는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떡라면으로라도 바꿔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 떡라면이 바로 신이 내린 궁극의 떡라면일수도 있다.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 자신에게 가장 맞는 맛있는 물건일 수 있다. 사랑의 실의에 대해서 느껴보고 싶다면  30대 1 구도의 주류 하렘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애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단편집을 골라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한국이라는 이 현실공간의 정치적 현실에 분개하고 싶다면 <쿠니미츠의 정치> 같은 경파물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지 않는다> 같은 스릴러가 더 효과적이다. 전문만화를 통해서 전문 지식을 쌓는다고? 그럼 아예 교양 정보만화를 보면 될 것 아닌가. <십자군 이야기>가 <마스터키튼>보다 덜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적어도 나라는 독자에게는). 한국만화가 볼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일본 주류 장르만화가 아니면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아예 만화가 아니다 라고 먼저 굳건하게 가정을 세우고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안얹어도 된다) 생각해보기를.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단언하고 스스로 재미를 포기해버리지 말고, 재미를 좀 적극적으로 추구해보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 capcold가 글쟁이로서 도와줄테니.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만화 불법스캔에 관한 잡설.

!@#… 만화 불법스캔에 관한 capcold식 잡설. 주모씨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 뭐가 왜 불법이다, 하는 식의 이야기는 굳이 꺼내기도 피곤하니까 넘어가겠습니다. 지금의 대처방식이 엉터리다, 라는 이야기는 주모씨님이 이미 했으니 그것도 넘어갑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불법스캔도 사실 그 속에서 여러 범주로 나누어지고, 각각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기에 약간 실용적 잡설.

1) 출판물 스캔본: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불법스캔 층과 실제 만화 독자층이 크게 겹친다고 믿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대표적인 근거없는 두려움일 뿐입니다. 연령대나 장르 취향 정도는 겹칠지 모르지만 말이죠. 첫째, 스캔 하는 사람들은 제가 관찰한 바로는, 자기 책 사다가 스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스캔하면 어차피 책이 거의  망가지니까요. 결국 어딘가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을 쓰죠. 즉 어차피 불법 스캔하는 사람들을 고소해도 책 사는 사람이 위축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둘째, 그렇다면 불법스캔을 보는 사람들은 불법 스캔본이 없어지면 책을 사볼 독자들인가? 그건 반반, 모르는 일입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불법스캔본을 못본다고 화를 내며 길길이 뛸 사람들은 어차피 ‘굳이’ 서점에 나가고 인터넷 주문을 해 가면서 그 만화책을 사볼 수고를 하는 사람들과는 무척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즉, 두려움을 버리고 열심히 법대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유통은 단속하고, ‘제작’한 사람은 고소하는 겁니다. 다만 고소의 경우, 고소함으로써 뭔가 물질적인 수익이 있어야 파파라치든 법무사든 뭐든 움직입니다. 적발시 상금, 고소를 할 때 요구할 합의금에 대한 기준, ‘누구를’ 고소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등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죠. 아 또한 합의금을 받아낸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것도 필요합니다. 그 대상이 중고생들이 대부분이라서 애매하다는 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중고생도 충분히 위법할 수 있고, 따라서 합의금을 낼 수 있습니다. 형사처벌이 아니면 사회적 물의랄 것도 없죠.

2) 연재 번역: 국내에 아직 안들어온 외국 연재본을 받아서 번역하는 사람들도 불법적이기는 마찬가지. 매니아들이 자국에 금지된 문물을 어떻게든 접하기 위해서 자행하는 불법이야 낭만적 동정표라도 얻을 수 있지만 4-5주만 있으면 어차피 국내 잡지에서, 두어달만 있으면 단행본으로도 볼 것이 확실한 내용들을 공개적으로 뿌리는 것은 확실히 좀 이상하죠. 보통은 그 작품에 대한 애정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조급증을 키울 뿐. 이쪽은 단순 스캔과는 달리 상당한 고급 두뇌노동(?)과 포샵질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니만큼, 정중한 단속안내를 날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제재효과가 있습니다.

3) 원서: 번역하지 않고 유통되는 연재분의 경우는 어차피 외국에서 만든 불법자료들이기 때문에 제작을 금할 방법따위는 애초에 없고, 국내 저작권 홀더의 권한 역시 한국어판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단속권 없음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차피 그 해당 외국어(주로 일어)를 할 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제한적이죠.

!@#…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들은, 원래 그쪽(모 단체)에서 월급받고 내야하는 겁니다. 또는 월급 받는 사람들이 내주거나. -_-; 왜 ‘쥐뿔도 아닌’ 제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만화 쿼터제에 대한 회의론, 그리고 대안.

!@#… 만화저널 토론에서 중요한 곁가지로 제기되어버린 만화 쿼터제. capcold는 만화쿼터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취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쿼터제는 안된다!!!라는 입장이기보다는 만화에서 쿼터제의 적용 현실성이나 효과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출판사들의 일본만화 과잉수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한지는 벌써 4년도 넘었고 지금 쿼터제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취지에는 천번만번 동의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인가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제게 확신을 심을 수 있는 논리라면 누구에게나 통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한번 제 회의론의 근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 쿼터제에 대해서, 몇가지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지점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다른 매체에서 운용중인 쿼터는 유통에 관한 쿼터지, 제작에 관한 쿼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의 경우 방송 편성 시간에 한국산 애니를 특정 비율 집어넣기지, 제작이나 유통사에게 만화를 어느정도 직접 국내산으로 만들어라, 해외 수입을 이 정도만 해라,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작사나 유통사에게 쿼터를 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방송국에 쿼터를 거는 것이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사나 배급업자에게는 쿼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쿼터는 어디까지나, 극장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실제로, 66년 처음 시작되었던 당시와 70년대에는 영화 쿼터가 배급업자에게 직접 부과되었습니다. 즉 외화 수입추천 1편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편수의 한국영화를 제작해야만 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다들 쉽게 짐작하시다시피, 날림 새마을영화의 범람이었습니다(-_-;). 그래서 결국 쿼터제는 유통의 가장 말단, 극장으로 내려옵니다. 1년 중 일정일 이상을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틀어주기.

쿼터제도는 향유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통로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의 또다른 전제는, 그만큼 그 통로가 좁고, 확장이 어려우며, 독점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극장에는 쿼터가 있지만 비디오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디오는 극장과는 달리 통로가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장 창고 용량이야 물론 한계가 있지만). TV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죠. 텔레비젼 방송국은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고, 어디로보나 자원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쿼터제가 의미가 있는 셈이죠.

그런데 만화의 최종 소비 통로는 극장이나 TV방송국의 모델보다는, 비디오의 모델에 더 가깝습니다. 통로가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그러니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렇게 엄청난 고무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많은 종수를 찍어서 곤란한 것은 제작의 차원에서 그것을 담당할 인력과 마케팅 능력이 잠식당하고, 독자의 판별력이 떨어지게 되어서인 것이지, 통로 자체가 독점화되어 버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통로 점유의 측면에서 일본만화를 놓느라고 한국만화를 못 놓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용의 측면에서 한국만화를 상대적으로 안 만들고 못 띄워주기 때문에 한국만화가 안보이는 겁니다.

자, 이제 문제입니다. 쿼터를 ‘어디에’ 적용해야 할까요? 쿼터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박인하님이 글에서 지적하셨다시피 일본만화 종수 줄이고 이성적/상식적 시장구조를 회복하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 제작(=출판사)에 쿼터제 도입: 이것은 출판사의 전체 만화 출판 종수 가운데 특정 퍼센트 이상의 한국만화를 제작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입니다. 70년대 영화에서 생긴 쌈마이스러운 일이 그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히트작 하나를 수입하기 위하여, 졸속 어거지 함량미달 찌라시 책을 10종, 한 50부 정도씩만 찍어서 대충 묶어버리고 다음주에 파지처리해버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수가 아닌 발행 부수로 쿼터제를 한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명백한 시장 침해. 이 경우 당연히 한국만화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우수한 외화와, 허접한 ‘방화’로 인식이 이분화되었던 그 시절 영화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처럼 말입니다.

출판사가 그런 자기 이미지 깎아먹기를 할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연간 1000종을 내는 출판사들은, 자사 작품들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는 거리가 멀죠. 게다가 한 회사 내에서 출판 라인의 브랜드만 다르게 해서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고. 이것은 위반시 과징금제도로 하든, 준수시 지원금으로 하든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꽁수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한국 번역판 제작을 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판 수입추천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겁니다. 즉 어느 출판사는 전년도 전체 출판 종수의 60% 이상 가는 수의 수입추천을 신청할 수 없다, 라고 못박는 겁니다. 이 경우도 이 꽁수를 여전히 쓸 수 있습니다(사실, 양적인 개념에서는 항상 쓸 수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들이 capcold보다 사악한 잔머리를 덜 굴려보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2) 유통에 쿼터제 도입: 영화나 TV애니 같이 유통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궁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통의 최말단인 개별 서점. 하지만 예를 들어서 “매장에 한국 만화 진열 비중이 종수 기준으로 30% 이상이어야 한다”, 라고 강요하기는 정말 애매합니다. 앞서 말했듯, 한정된 통로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단보다는 좀 더 위에 있는 총판은 어떨까요. ….(10분 경과)… 옙, 총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머리아파집니다. 총판 구조는 쉽게 어떻게 뭘 새로운 원칙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쪽 이야기는 나왔으니 패스.

그럼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총판으로 가기 전의 ‘배급’ 단계. 얼마나 국산을 만들고 얼마나 수입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유통망에 뿌릴 때 쿼터를 걸고 견제하기. 아까 1)에서 한 이야기와 차이가 없어집니다. 아니면, 만화에서 아예 수입과 제작을 같은 출판사에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즉 수입 및 유통 전용 출판사와 한국만화 제작 전용 출판사의 역할분리. 마치 영화에서 제작사와 배급사가 분리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하나의 모기업에서 양측을 모두 소유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소규모 제작사로부터 가능성 있는 영화를 사들여서 배급하는 바람직한 경우도 많죠. 실제로 유통력을 가진 확고한 메이저와 소규모 제작사들이 나뉘어 있는 미국 만화계의 경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유통사의 단계에서 쿼터를 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산업판이나 개별 출판사들의 영세한 구조상, 이런 식으로 전체 판을 뜯어고쳐버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요원한 아이디어입니다. 게다가 산업적 필요성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간다면 모를까(사실, 산업적으로는 이미 필요합니다), 법적으로 강요하기는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 즉 제 회의론의 핵심은 이겁니다: 쿼터 제한을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_-;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볼 겁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쿼터제도의 효과를 지닐 수 있는, 좀 더 우회적인 방식들을 찾아볼 수 밖에요.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모씨님이 일종의 ‘자발적인 쿼터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연재만화 잡지의 경우, 사실은 일본 만화 수입시 단행본 계약과 연재 계약이 따로 들어가야 하는 계약상의 번잡함과 추가적인 비용부과가 상당부분 작용하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잡지에서 수익을 못내는 기이한 구조상, 굳이 아주 특A급의 독자동원력이 아니라면 수입 작품들을 연재를 해넣어야할 이유도 별로 없는 셈이고. 산업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론 그보다는 훨씬 제도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종수에 의거한 ‘쿼터’가 아닙니다. 총체적 경영 투자 자료에 의거한 ‘창작 출판사’와 ‘수입배급사’의 분류고(물론 이 평가는 매해 새로 갱신되어야 합니다), 각각에 합당한 지원책과 규제책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입위주 출판사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수가 아니라 국산 창작에 대한 투자비중 자체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각 출판사에 자료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판독해내는 문광부/콘진 담당부서의 전문성이 역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죠. 아니, 애초에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연구용역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역시 선결과제입니다.

쿼터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업은, 지들 맘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영업의 결과로 ‘수입 배급사’로 분류되어버린다면, ‘창작 출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제도적 혜택에서는 제외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당연히 그 분류결과는 일반 대중에게도 전면 공개되어야 하고.

사실, 박인하님이 언급한 각종 제도적 지원에서 특정 출판사를 제외시키는 것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좀 더 발전시켜 볼 만한 발상입니다. 다만 시상식 등 작품에 주는 상을 거부할 경우 창작자만 피해를 보게 되니까 그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해야죠. 어디까지나 출판사에 대한 자금지원에서만 상대적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 수입배급사가 창작을 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다만 창작사로서의 혜택을 못받을 뿐. 창작사에는 없고, 수입배급사에게 돌아오는 혜택? 그런 거 없습니다. 왜 필요합니까. -_-;

!@#… 물론 이 정도 제도장치로 인하여 그 출판사들이 난데없이 일본만화 출판을 팍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수입 원자재 고갈이라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여튼, 국산 창작에 대한 지원이 정말로 국산 창작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정비를 해보자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만화계에 대한 ‘쿼터의 효과를 지닌’ 제도적 제안입니다.

 

PS.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대여권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언젠가 다시한번…;; 엉망진창으로 결단난 후 한참 뒤인 지금 난데없이 불타오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 대안’으로서 좀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PS2. 이노무 네이버블로그는, 네이버 바깥의 블로그에 트랙백 걸어놓은 건 제대로 엮인글 표시조차 안되는군요. -_-;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자유/동의없는 수정 불가/영리자유 —

[등대등 토론참여] 1. 대중 만화언론, 내용 범위의 문제

!@#… 자, 이제 풍덩하고 뛰어듭니다. 만화인 등-대-등 릴레이, <한국에서 '만화 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capcold 제1타, [대중 만화언론, 내용 범위의 문제].

!@#… 만화언론. 만화에 관한 잡지. 옙, 필요와 당위성, 명분 등에 대해서는 당연히 꽤 오래전부터 공감했고, 미력하나마 여기저기 개입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두고보자> 웹진을 만들어서 나름의 의지를 관철해보았다가 지속성의 문제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오즈>에도 참여했고, 부천만화정보센터 웹진 <고구마> – 현 규장각 웹진 – 도 창간 및 재창간하고, <계간만화>(아시는 분들은 알지만, 이쪽에는 좀 더 많은 사연이 있죠) 편집위원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 열심히 했으니 ‘참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세요” 하는 게 아니라(-_-;;;), capcold가 만화언론 창간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생각이나 문제 접근법이 어떤 뿌리에서 나와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에 대한 약간의 배경입니다. 한마디로, 대중의 포섭보다는 주로 “만화계에는 이런 담론이 제기되는 ‘좋은’ 지면이 필요하다” 라는 차원의 지면들 투성이였고, 반대급부로 대중적 인기를 못누린 공간들이었죠. -_-;

!@#… 한국에서 만화언론은 가능한가? 라는 이 토론의 첫 질문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 이미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패배주의에 빠져서 궁상떠는 것을 항상 질타해왔던 입장이기도 하고. 만화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것이 만화계에서 해줘야할 역할… 등등 당위와 명분에 대한 논의는 선수들끼리는 그다지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만화언론, 만화저널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 만화언론’입니다. 전문가용, 업계용 언론이라면 지금도 이미 여러개 돌아가고 있고, 대중을 표방하지만 결국 전문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지면들도 또한 있습니다(이미 이전 논의에서 나온 정보들은 과감하게 스킵). 지금 굳이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위한 대중의 눈높이와 필요에 맞춘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중적으로 히트하는 만화언론. 오로지 그것입니다. 대중은 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재미있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예측이 뒤집어지곤 하죠. 하지만 대중은 대중이기 때문에 분명히 ‘경향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명분이나 당위보다도, 처음부터 실무적인 전략이 관건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질문을 제기해봅시다.

“누가 이 잡지를 보며, 왜 보며, 그 결과 어떤 만족감을 느낄 것인가?”

1) 여기서 ‘누가’에 만화팬, 만화독자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꽝. 논의 과정에서 halim님이 주신 수치에서 볼 수 있듯, 지면 운용에 그다지 도움되는 규모의 집단이 아닙니다.

2) ‘왜’에 만화 관련 정보(내용소개, 미리보기 등등)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꽝. 만화 독자들 가운데 심지어 관련정보까지 미리 섭렵해서 자신의 만화를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소수. 동호회를 만들수는 있지만, 매스미디어를 만들기는 거시기합니다. 특히 한국은 어림반푼 매니아들, 다시 말해서 오로지 취향만 매니아이지 향유와 소비의 패턴은 전혀 매니아스럽지 않은(즉 소비를 안하는) 목소리만 큰 허수 군중들이 많다는 점을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3) ‘어떤 만족감’에 “좋은 만화 정보를 얻어서 좋은 만화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를 넣으면… 유감스럽지만 또 꽝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좋은 책을 추천받기 위하여 출판 전문 저널인 <기획회의>나 <페뎀> 등을 정기구독하거나 읽고 계신 분? 좋은 책을 추천받고 발견하는 것은 여러 결과 중 하나 정도지, 잡지 자체의 목적이 되면 지극히 비대중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노골적으로 훈계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식당 메뉴판이라고 할지라도).

!@#… 이쯤 오면 이상하게 느껴지실겁니다. 만화언론은 그럼 ‘만화’언론이면 안된다는 말이냐? 만화언론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냐? 이놈은 역시 만화계의 적이고 구데기(P모 작가에게 부여받는 영광스런 호칭)냐? …그렇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겠고, 스스로도 삽질하지 않을터.

제 이야기는, 대중적인 만화언론을 만들려면 애초부터 ‘만화’라는 경계선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하나씩 짚어보죠.

1) 누가? 만화팬이 아닌, 일반 대중입니다. 일반 대중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상 만화에 별 관심 없습니다. 나쁜 편견도 그다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돼지 같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만화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중은 뭘 하고 사는가하니,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뭐 그렇습니다. 즉 (물론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만화언론으로서 잘 만드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오만 분야의 매체들을 다루는 다른 지면들과 직접적으로 독자 확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왜? 미디어 콘텐츠 자체가 아닌, 그것에 관한 정보가 담긴 저널을 왜 볼까요. 전문가들이야 자기 분야니까 그렇다쳐도, 상대는 대중입니다. 그들은 한국 만화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 것을 볼 하등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문화의 종다양성 같은 것은 저같은 학바리들이나 내뱉는 개념입니다. 대중이 저널을 보는 것은, 그 정보 자체가 (1) 재미있고 (2)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없고 비실용적이면서 단지 ‘좋고 옳기만 한’ 내용은 비대중적입니다. 만화의 경우 대중에게 재미있고 실용적인 정보는 이 만화는 이런 내용이다, 좋은 만화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만화를 보면 너는 대단히 멋진 놈이다, 이 만화도 안보면 너는 유행에서 뒤쳐지는 거다, 이 만화를 보면 너는 이성친구 앞에서 자랑할 수 있다, 이 만화를 보면 이 만화도 꼭 같이 봐야한다… 등입니다. 대중은 선동 당하는 것을 즐깁니다. 정확히는,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선동당해버린 상태를 즐깁니다. 그 미묘한 2중전략을 잘 짜는 것이 모든 성공한 대중저널의 비법이죠. 그것을 위해서는 특정한 전문분야로서가 아닌, ‘총체적 문화‘로서의 세팅이 필요합니다.

3) 어떤 만족감을 얻는가? 누가, 왜의 질문을 대답하다보면 결국 여기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위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들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대중은 특정 분야에 대한 심취보다는, 총체적 문화를 소비하며 그 속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도달했다, 라는 자아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을 때에 그들은 충직한 독자가 되어줍니다. 주간지라는 위험을 품었던 <씨네21>은 성공하고, 야심찬 도그마의 월간지 <키노>는 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키노는 영화라는 분야를 자신들의 본업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울타리로 박아버렸습니다. 90년대 중반, 영화 고급담론 붐이 일어났을 때는 키노가 돋보였지만 이후 2000년대로의 전환과 함께 영화가 점차 대중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영화 담론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키노 노선의 몰락은 유감스럽지만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그에 비해서 씨네21은 제호와는 달리 영화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영상문화’라는 큰 틀을 상정했습니다. 심지어 만화 특집도 몇번 있었죠. 출판물이지만 영상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만화라는 매체도 이들의 포섭대상이었습니다. 나아가 영상문화와 관련된 도서, 음반은 기본이고, 인터넷 탐방이나 게임평론 등의 선진적 시도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즉 영화를 중심으로 하되, 영상문화라는 큰 차원으로 융통성을 두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대중 독자에게는 어떤 만족감으로 나타날까요. 키노를 보는 사람은 영화매니아, 학도, 또는 업계 종사자의 이미지를 풍깁니다. 하지만 씨네21을 보는 사람은, ‘영상문화를 제대로 향유할 줄 아는, 나름대로 교양있는 도회적 현대인’의 이미지가 됩니다. 아니 좀 더 가깝게 생각하자면, 90년대 초중반 만화잡지 전성기 당시 중고등학교에서 야자시간에 줄서서 잡지 돌려보던 추억을 상기해도 됩니다. 그때의 잡지들이 지금보다 특별히 더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잡지가 그때 중고생들의 생활 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작용했기 때문이죠.

!@#… 즉, 대중 만화언론을 하기 위해서는, 만화를 중심축으로 하되 다양한 연관 문화현상을 넓게 포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만화 전문을 하면서 다른 것도 한꼭지 정도 끼워넣어주자는 식의 단순한 기계적 발상이 아니라, 잡지의 기본 컨셉 자체가 애초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해서 문화를 이야기하겠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 현재 사람들이 폭넓게 대중적으로 관심이 형성되어 있는 저수지여야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본식 표현이지만) ‘서브컬쳐’ 전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 그쪽 계열을 포괄하는 것이죠.

이렇게 놓고 보니 애니메이션을 중심축으로 해서 이런 것들을 포괄하고자 한 <한국판 뉴타입>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어떨까요. 문자 그대로 너무 ‘서브’하죠. 매니아시장을 노리는구나, 라는 인상이 대단히 강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그 자체로서 매니악한 장르들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매니악한 취향만 다루고 있으니까 문제인 것이죠. 씨네21에서 맨날 무슨 유럽 거장만 다루고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삽니까. 때로는 헐리웃 스타들에 대한 새로운 소식과 분석, 블록버스터에 대한 나름의 좋은 평가, 어리석은 영화들이라도 여하튼 다루어주면서 비판하는 융통성이 있으니까 팔리는 겁니다.

대중 만화언론이라면 훨씬 더 폭넓게 주류를 포괄하는 취향을 포섭해줘야 합니다. 대본소 극화를 외면하지 말 것이며, 학습만화를 ‘만화가 아니다’라고 내치지 않으며, 고전 명랑만화들을 다시 캐내어 현대 엽기 유머와 견주어 볼 줄 아는 등의 내적인 조율이 필요합니다. 만화와 게임과 영화를 대등하게 비교하며, 특정 만화의 취향을 지닌 이들이 즐겨들으면 좋을 만한 음반과 책들을 소개하며,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만화 특유의 화법으로 재해석하며, 이 세상 모든 미디어 곳곳에 침투해 있는 만화언어를 탐방 발굴하여 그것들을 만화적인 방식으로 읽어낼 때 얼마나 더 훌륭하게 향유하는 멋진 교양 문화인이 될 수 있는지를 역설해야 합니다.

!@#… 우선 간단히 다시 요약합니다.

1) 목표는 대중입니다.

2) 만화로 울타리지워지기보다는,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 저널이 되어야 합니다.

3)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잡지를 읽는 나는 뭔가 문화인이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합니다. (‘역시 나는 매니아다, 전문가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 다루는 내용에 대한 기본 컨셉이 확실하지 않으면, 어떤 열혈 청년들이 헌신하고 어떤 비지니스 모델을 내세워도 쉽게 망합니다. 막연하게 만화정보지가 아닌, 히트치는 대중 만화저널을 만들자면 반드시 순서대로 밟아야 할 고민들인 셈입니다. 실제 기획안을 만들 때 들어가는 기본순서도 이런 식입니다: (1) 이런걸 만들어주마!하는 문제제기 및 전체 내용 초간단 요약  (2) 현재 판도, (3)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그 속에서 돋보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핵심 컨셉, (4) 세부 내용 정리, (5) 여타 위협요소와 장기적 대응방안, (6) 소요 예산과 제작 진행표, 마케팅 홍보 유통 등등.  이 가운데 (1)이야 그렇다치고, (2)는 다른 글들을 통해서 주로 할 내용들이고, (3)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 음… 가능하면 그때끄때 써내려가겠지만, 앞으로 몇가지 제 생각들을 뱉을 주제들은 이런 겁니다:

2타: 수익성의 문제

    – 온라인의 한계
    – 광고주는 바보가 아니다
    – 돈주고 사게 만드는 방법들    … 외.

3타: 지속성의 문제

    – 시작은 감격, 유지는 고생
    – 조직과 인력
    – 인재와 이념     …외

4타: 기여의 문제

    – 정책적 영향력? 
    – 산업적 기여? 
    – 창작에 기여?    …외

5타 이후: (추후에…-_-;;)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수정불가/영리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