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겨, 보다 정확히는 카툰화법을 바탕으로 한 만화/애니 캐릭터 피겨는 참 색칠하기 힘들다. 살색의 배합도 힘들고, 선 하나로 표정이 크게 바뀌는 화법 특징도 그렇고, 그것을 다 지켜나가려면 대단한 집중력과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그런데 capcold는 SF물이나 애니의 모형만 다루는 관계로, 가끔가다가 나름대로 특전이랍시고 미도색 피겨가 들어있으면 무척 난감하다. 다소의 수전증도 있는 입장에서, 중국 공장의 피겨 도색 아주머니들의 실력이 마냥 부러울 따름. 그렇다고 게으름과 미숙 때문에 피겨를 방치하고 버리기에는 아깝기에, 나름대로 묘안을 낸 것이 바로 ‘주석 동상’. 대략 이런 식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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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학살과 스타벅스 불매운동의 효과.
!@#…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며칠전 그나마 유엔에서 휴전 하라고 하니 이스라엘이 학살을 좀 한박자 쉬어가고 있지만, 애초에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동네의 역사적 증오의 타래는 길고, 다양한 구체적인 이권들이 잔뜩 개입되어 있으며, 결국 이스라엘=악 / 아랍=선 그런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데나 폭탄 때려넣고 다 죽여버리는 짓거리는 누가봐도 상당한 문제거리니까. 아 물론 그마저도 ‘collateral damage’라는 매끈한 단어로 상쇄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담론술사들이 21세기를 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참 돌아다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스타벅스 불매 운동하자는 돌림 게시물들. 당신이 스타벅스 한잔 마시는 동안 그게 유대계 자본이라서 그 돈이 이스라엘에 무기 사는 자금으로 흘러들어가고 그걸로 레바논 어린이들 죽이고 다닌다고. 원래 설득이란 것은 1%의 논리와 99%의 공감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죽어가는 어린이 사진 만큼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는 아이템이 드물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기저기 많이도 퍼지더라.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매운동으로서의 실질적 효과 따위, 미미하기가 대략 IMF 금모으기 수준 정도. 자세한 이야기야 이런 곳에서 이미 충분히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생략.
!@#… 무엇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 자체부터가 단지 미국 자본이 유대계 소유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의 외교 방향이 미국의 외교전략과 99.99% 일치하며 (그 악명높은 ‘방어를 위한 선제공격’ 개념이라든지, ‘섞여있을 경우에는 몰살시키기’ 전술이라든지, ‘상대방은 모두 테러리스트’ 전략이라든지 기타등등),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중동에서 이익을 지켜내는 것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중동이 ‘제어가능한 불안정 상태’에 있는 것이야 말로 미국, 아니 정확히는 미국의 석유 재벌들의 석유 무역 정책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스타벅스와는 참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 그런데, 사실 이 운동의 정작 중요한 것은 한 단계 너머에 있다. 운동이 표방하는 바야 스타벅스 안마시면 세계평화에 도움된다는 엄청난 비약이지만, 그보다 이 운동이 실제로 이루어내는 바는 다른 방향에서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냐 하면, 바로 스타벅스가 유대계 자본이고, 유대계 자본이 미국의 경제권, 나아가 정치를 움직인다는 하나의 시스템에 대한 인식틀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나아가 덤으로 계속 달라붙는 타임워너니 코카콜라니 하는 수많은 일상적인 미국적 상징이 곧 모두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연결되도록 한다. 이런 막강한 틀짓기(업계 용어로 ‘프레이밍’)가 바로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지니는 진짜 효과, 즉 담론 구성의 힘이다. 물론 미국이 사실은 모두 유대계라는 식의 믿음이 이 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깨달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막연한 가정을 구체적 공포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다지 비밀이었던 것도 아니고 약간만 찾아보면 다 나왔을 법한 자료라도, 일반 사람들에게 당장 정서적으로 와닿도록 만든 것이니까.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대해서 그것이 효과적이냐 아니냐, 그 것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토론이 오가는 와중에서, 이미 “미국은 곧 유대계나 다름없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주어 학살이 양산된다”는 가정은 어느 쪽 입장이든지 간에 기정사실화된다. 레바논 어린이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안되겠지만, 안그래도 나쁜 미국의 이미지가 좀 더 나빠지는 쪽으로는 탁월하다. 게다가 온라인 상에서 소문만 퍼트리고 있지, 스타벅스에 조직적 테러를 가하느라 돈과 인력을 낭비하지도 않았으니 나름대로 이미 남는 장사. 이런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의도하지 않고도 효과가 생기는 경우 역시 적지 않지만)
!@#… 사회 운동은 단순히 자체적으로 표방하는 목표의 달성 자체뿐이 아니라, 기저에 깔리는 담론적 힘을 만들어나가는 의사소통행위다. 목숨걸고 삼보일배를 하고 단식을 하며 어떤 곳의 개발을 일시적으로 막아내도, 환경보호 담론 자체의 유통은 못해내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안습 상황, 또는 지문날인을 열심히 거부하며 불편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그냥 잊혀지기만 하는 상황들을 벗어나고 싶다면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 (결국은 중동 이야기가 아니라 이쪽이냐…)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리볼텍 킹게이너 (카이요도 리볼텍 시리즈)
!@#… 개러지킷과 피겨의 명가 카이요도가 올해 늦봄부터 토이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겠다는 듯 내놓은 신개념 액션피겨 시리즈, 리볼텍. 고정성이 높은 전용 플라스틱 관절부를 일반적인 조형성 높은 PVC로 만든 부품 사이에 결합한 제품군이다. 게다가 뽀대나는 역동적 포즈를 위해서라면 ‘올곧은 차렷자세’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해도 좋다는 진퉁 액션피겨 마인드의 소유자이자 ‘야마구치식 관절’이라는 조어의 주인공인 야마구치 카즈히사가 조형. 이 정도 조건이라면 다소 마이너한 제품군(특히 조형상 양산이 힘들었던 물건들이라든지)도 문제없이 출시할 수 있어서 틈새시장 공략도 가능. 그래서 카이요도에서 공격적 마케팅으로, 리얼로보 슈퍼로보 액션피겨 등 3개 부문으로 나누어 매월 15일 한 개 이상씩 꼬박꼬박 신제품 출시 선언.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공식 홈피는 이곳.
!@#… 아아. 무슨 제품 광고처럼 시작해버렸다. 여하튼 리볼텍 시리즈의 지난달 라인업이 바로 이녀석, ‘오버맨 킹게이너’. 턴에이건담을 통해서 새로운 면모로 부활한 토미노 감독 Mk.II의 호쾌한 모험활극(…) 시리즈의 주역 메카. 시리즈는 최고! 였으나 모에 요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대중적으로 큰 반향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듯 하여 관련 토이가 참 부족한 비운의 작품. 나아가 프라모델화하기에는 지극히 부적합한 ‘코트’식 디자인도 한 몫하여(물론 시베리아 횡단이라는 작품 테마에는 더할 나위없이 적합했지만), 폼나는 가동 모형을 만들기 참 힘든 물건. 그런데 이 녀석이 리볼텍 라인업으로 결국 출시된 것이다! 예약은 6월에 이미 했으나, 배송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의 샵을 이용하는 관계로 최근에야 배송. 말이 길었다. 말 그만, 사진 시작.
교양만화의 선택지 –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기획회의060801]
교양만화가 나아갈 세 갈래 선택지 –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김낙호 (만화연구가)
한국에서 만화는 ‘공부를 방해하는 저질 오락거리’로 취급받아온 억울한 과거가 뼈에 사무쳐서 그런지, 교육과 학습에 사실은 도움이 많이 된다는 사실을 상당히 강조하기 위해서 아예 별도의 장르를 발달시켰다. 그것이 바로 학습만화다. 만화를 학습적 목표를 위해서 활용하는 사례라면 세계 어디에나 적지 않게 있지만, 아예 하나의 개별 장르 취급을 하고 유통 측면에서나 독서 문화 측면에서나 독립적 위치를 부여해주는 것은 아직 한국과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 와중에서 (필자를 포함) 종종 평론가들이 강변하는 논리가 바로 학습만화가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지식을 전수하는지 알아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만화라는 매체가 지니는 장점과, 장르로서의 학습 교양만화는 반드시 연동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말로 설명하는 것은 강력한 표현력을 지니고, 약호화된 도상이 주는 이입의 폭은 넓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성이 올라간다고 해서, 어려운 내용이 저절로 쉬워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쪽 계열 만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적 장점은 키워드와 핵심 개념들의 효과적인 압축인데, 그 결과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묘한 요점정리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층 난해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어려운’ 학습 교양 만화의 딜레마다. 이런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서 많은 학습교양만화들은 애초부터 어려운 지식보다는 ‘쉬운’ 부분들만 골라서 다루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우회로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아이콘 총서』시리즈 같이 난해한 지식을 더욱 난해하게 요약한 책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미학이라는 괘 굵직한 인문학적 토양을 주제로 다루고자 한다면 어떨까. 게다가 아예 이미 널리 대학생 이상의 교양서로 자리 잡고 있는 그 분야의 명실상부한 ‘교과서’를 원작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출판 기획자들이 내놓은 하나의 대답이 바로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진중권 원작 / 현태준, 이우일, 김태권 만화 / 휴머니스트 / 전3권)에 들어있다. 이 작품의 원작이 되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의 고대부터 탈근대까지 인간이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인식틀의 발전과정을 친근한, 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운 개념을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만하게 설명하려 노력한 책을, 다시금 한 단계 더욱 이해할만하게 하려고 만화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역시 삼인삼색이라는 작가 시스템의 특이함이다. 원시와 근대,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각각 그 해당분야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작가들에게 나눠준 후, 비교적 자유롭게 개성을 발휘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 결과 원시와 근대를 다루는 1권은 키치적 감수성으로 장난감과 잡다한 취향에 확고한 위치를 다진 바 있는 현태준이 맡았다. 평소 하던 방식 그대로, 초지일관의 유치함으로 오히려 하나의 경지에 도달하는 말장난, 그리고 가식에 대한 정면도전이 돋보인다. 원시와 근대 미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시대의 ‘디오니소스적’인 정서를 스스로 펼쳐 보인 느낌에 가깝다. 이성적 세계관에 기반한 모더니즘의 시대를 다룬 2권의 경우, 체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전달하는 것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설명적인’ 학습만화나 일러스트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활약한 바 있는 이우일이 임무를 맡았다. 한쪽에서는 엽기적 낙서체 개그만화로 유명해졌으나, 『노빈손』 시리즈의 삽화 작업 등 오히려 스트레이트한 분야에서 안정적 작업을 해온 경력 그대로 2권은 착실히 원작의 명제들을 그대로 읊어낸다. 전개 형식 역시 설명하는 박사와 그것을 듣는 두 꼬마라는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3권의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탈경계성과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만화화해 줄 작가를 필요로 하며, 게다가 가장 어려운 개념들이 난무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아예 미학 전공자인데다가, ‘어려운’ 학습교양만화 경력이 있는 김태권에게 주어졌다. 3권은 아예 설명보다는 극의 형식을 지니는데, 만화가가 각종 미학개념들의 바다에 뛰어들어 모험을 겪는 과정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틀 위에서 펼쳐진다.
작가가 서로 다른 실질적으로 3개의 작품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낸 것이니 만큼, 당연히 각각의 권은 따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1권의 경우 친근하다 못해 그 비속함에 공감하고 킬킬거릴 수 있는 점이 장점이라면, 단점은 몰입해가며 읽기 어려운 산만함이다. 생활 속의 일상적 미감에 대한 사진 정리 등 원작 이상의 재해석이 독서에 도움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매니악한 느낌이 강해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남아있다. 표준적인 학습만화의 틀을 따라가고 있는 2권의 경우, 장점이라면 그 표준성 덕분에 학습적 읽기가 가장 수월하며 원작의 내용을 직접 전달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이왕 만화로 읽는 맛이 특별히 더한 것도 뺀 것도 없이 심심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저 무난하게 읽기에는 작가의 재능이 아깝기도 하다. 가장 만화가의 재해석이 강력하게 개입된 3권의 경우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소설『소피의 세계』가 철학과 성장소설을 결합했듯, 미학의 세계를 환상문학의 양식에 넣어 만화로 소화해내는 재기가 돋보인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읽고 나면 오히려 더욱 개념들에 대해서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하기야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그런 성향이 있지만 말이다). 즉 개념들을 간명하게 요약 설명해준다기보다는 다양한 복잡한 현상과 모순들을 독자들에게 접하게 해주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지적 자극으로 인한 교양에는 도움이 되지만 학습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의 세 권은 모두 다른 접근, 따라서 다른 종류의 독서경험을 준다. 단적으로, 1권을 읽고 마음에 들어서 전3권 세트를 사는 구매 방식은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다. 다양한 접근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득이 되지만, 한 가지 방식의 일관된 설명을 원하는 독자들은 그냥 원작을 다시 한 번 읽는 쪽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어떤 권이든 나름의 지적 재미를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니 만큼 책장 한 켠을 차지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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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각각의 권이 모두 컨셉이 다르다는 점은 마케팅 면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본다.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서 만족을 주기 힘들다면 누가 세트로 사겠는가. 그리고 본문에서는 비교적 점잖게 말했지만, 학습만화 분야를 공략하면서 정작 학습성이 좋지 않다는 것 역시 큰 마이너스. 시장의 반응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나와줄지, 자못 궁금할(걱정될) 따름.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대사면 쑈 잡상.
!@#… 올해도 예외 없는 한국 사법체계 최대의 이벤트, 광복절특사. 작년에 눈치때문에 넘어갔던 안희정 어쩌고 하는 노무현 측근들의 사면 때문에 참 시끄럽다. 사실 무슨 고스톱판에서 개평주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무슨 황제나 신도 아니면서 무슨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한 해에 2-3회 정도 꼬박꼬박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다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에 의아해하던 터. 이 사회의 ‘원인과 결과’의 책임관계, 즉 법적 정의를 과감히 무효화할 수 있는 궁극의 치트 코드.
노무현의 심복들이 풀려나게 되자, 한나라당은 노발대발. 물론 자기네 팀도 꽤 에이스들이 풀려나게 되었으나 (그 정도 거래 균형도 안해놨을리가 없지), 여하튼 법적 정의를 외치며 규탄. 재계는 재벌 총수들이 거의 포함이 안되어 있다고 항의. 수많은 일반인들은 이놈의 세상, 권력 있는 것들은 다들 쫌만 있으면 풀려나는구나 하면서 다 노무현 탓이라며 불만.
그런데, 한나라당은 작년에 똑같은 규탄을 똑같은 시점에서 똑같은 논리로 했었지, 아마. 그런데 정작 특별사면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법안은 1년 동안 그냥 처리도 안하고 놀고 있었다. 하기야 특별 사면 대상은 생계형 서민 범죄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기업인이어야 한다고 주장, 상호배타적인 대척점에 있는 두 대상(기업인이 들어가면 권력형 뇌물비리나 대형 탈세 사건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니)을 하나의 논리로 감싸안는 궤변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자들이니 뭐 할 말 다했다. 재계 역시 사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논리가 아니라, 당장 활동해야할 자기네 대장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할 뿐이고. 일반인들은? 솔직히 애초부터 사면권에 대해서 굳이 공개적으로 여론의 중심의제로 들고 오지도 않는다. 뉴스에 리플 두어개씩 다는 거라면 모를까. 아니 사실 한 이틀쯤 그것가지고 이야기가 되었으려나, 지금은 이미 다른 사안들에 모두 묻혀버렸다. 된장녀 논쟁에 쏟는 정성의 100분의 1만이라도 쏟는다면 우리사회 좋은사회.
!@#… 사람들은 법적 정의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상식과 대사면이 수십년간 매년 대규모로 여전히 마구 남발되고 있다는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정말 사람들이 갈망한다면 대사면을 모두들 진지하게 반대해서 결국 법적 정의를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와중에, 오캄의 면도날 원칙에 의거, 가장 간단명료한 가설에 도달. 바로 첫번째 전제를 기각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법적 정의와 기회의 균등 따위,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법적 정의에 대해서 애초에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서 법적 정의의 구멍을 자신들만은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거나. 사면 쑈에 대해서 불만은 툴툴거리지만 그것을 제한하고 막기 위한 진짜 노력은 안하는 이유다. 남들이 모두 원칙에 따라서 처분되기에 나에게 ‘예측가능’ 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나는 그들을 후딱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팀은 모두 발로 축구하는데 나만 손으로 들고 뛰어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정적 사회정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갑갑한 것이고, 마구 나아가고 싶은 내 행보에는 방해가 될 여지가 크기 마련이다.
!@#… 그렇다면 대사면은 이 사회는 그런 식의 야매가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상징, 즉 (자신에게 유리한) 야매를 동경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이다. 무려 ‘사회 대통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따듯하고 인간적이고 결국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이 사회의 성향 자체가 이미 그쪽이니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사회 대통합을 위한 명절 특별 감동 쑈가 아닌, 정당한 죄과를 치룰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는 상식적인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려면 얼마나 더 필요할지 가히 궁금할 따름이다. 뭐 그런 작은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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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 보도한 이상호 기자 무죄 선고.
!@#…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표어로 당선이 된 대통령의 행보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이 시대에, 오랜만에 정말 상식적인 일이 한가지 벌어져서 훈훈한 미담으로 화자되고 있다(어디가?).
[미디어오늘] ‘X파일 보도’ 이상호 기자 ‘무죄’
– 서울중앙지법 11일 선고…김연광 편집장엔 선고유예
(2006년 08월 11일 조현호 기자)
즉 요약하자면, 목적의 공익성과 보도 방식의 신중성이 갖추어질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을 빌미로 하여 정당한 언론보도에 재갈을 물릴 수 없다는 판결.
!@#… 시간이 좀 지난데다가 이건희 8천억 박치기 쑈 덕분에 거의 완전히 담론적으로 상쇄되어버려서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지 오래지만, MBC 이상호 기자가 터트린 삼성 정치자금(이라고 쓰고 장기적 뇌물이라고 읽는다) 근거자료 공개, 속칭 삼성 X파일 건은 한국사회의 근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상호 기자는 불법도청자료 공개 문제를 빌미삼아 완전히 피박을 쓸 지경이었고. 뭐랄까, 황우석 사건때의 피디들에 대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비난, 강도잡은 택시기사가 오히려 보험도 못받고 손해만 본 것 등등 “나서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AS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행태”야 말로 현대 한국의 독특한 문화 유산이 아닐까 한다. 뭐 제대로 된 AS야 아직은 너무나 엄청난 것을 바라는 것이고, 그나마 손해라도 보지 않도록 판단을 내려주는 정도의 상식 조차 긴가민가 하던 차에 이번 이상호 기자 무죄 선고는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 땅에 법과 도리가 아직 존재해서 그런지 아니면 판사가 좀 상식이 박혀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아직 전혀 속단할 수 없지만,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아줘어야 할 멋진 판결임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애초에 도청행위 자체가 정당화되어서는 안되고, 부화뇌동하여 부랴부랴 뒷북을 치며 전문 공개를 해버린 월간조선의 뻘쭘함을 이상호 기자의 보도행위와 같은 레벨로 추켜세워줘서는 안될 것이다. 그저 아주 조금만, 상식적 정의가 아직 통할 가능성을 확인한 정도로 기뻐하는 것 뿐. 약간의 희망만으로도 세상 대다수의 문제점들을 과감히 상쇄시킬 줄 아는 능력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 전설로 상징되는 인간사회의 원동력이니까. 여하튼, 상식적인 무죄판결을 받아내어 한 단계 성숙해질 기회를 잡아낸 한국 언론에 축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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