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유 라이센스와 Creative Commons Korea, 그리고 카피레프트.

!@#… 허무한 중복인가 건전한 경쟁인가. 정보공유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Korea. 둘 다, 저작권자가 융통성을 가지고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사용방식을 제한/장려한다는 점에 있어서 같다. 얼추, 카피레프트 개념의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한 템포 먼저 출범한 정보공유 라이센스가 cc를 모델로 해서 한국식으로 응용한다고 하며 만들었으니 비슷할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런 때, ‘원조’ CC를 들여온 것이다. 정보공유 라이센스는 정보운동 시민단체인 정보공유연대가, 그리고 최근의 cc-korea는 사단법인 한국 정보법학회에서(원조 cc와 2003년에 협약 체결, 그리고 05년 3월 21일에 cck로 정식출범). 안그래도 진보적 저작권 인식에 대한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 노력들이 이런 식으로 이원화되어 버린 것에 대해서 좀 거시기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까닥 잘못하면 어느 한쪽이 ‘삽질’ 취급당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이원화되어 있는 것, 서로 차별점을 개발해서 각각의 장단점을 지닌 선택형 건전 경쟁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 capcold의 경우 이런 운동을 당연히 지지하고 있지만, 아직 특정한 라이센스를 채택해주고 있지는 않다. 카피레프트 개념의 원형이 지니는 근본적 융통성에 좀 더 기대를 걸고 지켜보는 입장이라서. GPL이니 CC니 정보공유 라이센스니 하는 규격화된(!) 라이센스류들과는 달리, 카피레프트는 비정형의 운동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피레프트도 원래는 GNU진영에서 만든 일종의 라이센스고 그것도 꽤 극단적으로 모든 수정변형을 공개하는 쪽으로 주창된 것이기는 하지만, 워낙 애매하고 수많은 변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유동적이다.  일반명사화된 카피레프트는 더이상 GNU의 틀에 묶여있지 않는, 카피라이트에 대항하는 진보적 저작권 활용 시도 전반을 나타내는 개념에 가까워진 것이다. 정보공유 라이센스나 cck도, 결국 카피레프트라는 이념 아래에 있는 특정한 발현 형태다.  

다시 말해, 아직 이쪽 라이센스들이 충분히 나에게 그때그때 맞을 정도로 융통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진화할 때까지는, 여전히 이곳은 구식이고 맘대로 이거저거 가져다 붙이느라고 사실 애매하기까지 한 상위개념인 copyleft 이념을 지지하는 선에 머물고자 한다.

핵심은 무어냐 하면, 이런 라이센스 류들은 편의상 항상 ‘모 아니면 도’로 패턴을 나눌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리 허용/불허용. 영리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무진장 어려울터인데, 그걸 허용하냐 마냐로 이분법 나눈다는 것은 뭐랄까, 순진한 이상론이다. 21세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카피레프트 등 운동으로서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규정하는 건 일종의 도의적 부탁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영리성 여부을 새로 재단하고 그때그때 융통성있게 판단/합의할 수 있다. 아니 영리성의 종류 역시도 세부적으로 나눠서 생각해줄 수 있다. 하지만 라이센스는 법적 강제력을 발휘하겠다는 발상이 들어있는 것인 이상, 도의적 융통성이 아닌 ‘법적 효력이 있는 사용계약 규정’을 수반한다. 수많은 미개발 중간영역들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저작권 영역에서 과연 이들 라이센스라고 해서 충분히 그 속도와 변화범위를 지속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좀 비관적이다(저작권 친고죄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핵심적 이유이기도 하다).

모 아니면 도 식 발상에 관한 또 한가지 예는 이동 자유에 관한 것. 자유로운 정보 공유를 위해서 이동 자유는 이 라이센스들에서는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유는 원하지만 아주 맘대로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건 싫어할 수도 있거든. 그 경우 예를 들어 ‘어디어디의 극우 파쇼 사이트에는 가져가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제한을 걸 수 있고 싶단 말이다. 혹은 요새 한참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있는 공간’의 경우라면 어떨까. 인터넷의 넓은 매체적 가능성을, 개인 일기장이냐 전국방송이냐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만드는 발상은 곤란하다. 물론 법적 라이센스와 도의적 부탁을 동시에 결합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벌써 엄청나게 복잡하고 각박해질 것이 눈에 훤하지 않은가.

!@#… 도의적 개념의 카피레프트에 대한 나름대로 성공적 모델은 사실 이미 존재한다. 학계의 학술논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공유와 인용, 혼성 발전, 영리적 활용과 비영리적 공유의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의 오랜 관행 속에서 정착해온 것이다. 다른 분야에도 이와 같은 것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의와 관행에 의한 해결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융통성이야말로 최고의 목표이자 원동력이다. 각종 법제나 라이센스들이 그것을 더욱 장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목표를 향해서 정보공유 라이센스와 cck가 창의적인 경쟁을 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써놓고 보니 꽤 어려운 글이 되어버렸군-_-; 한줄 요약:

– 내가 내 저작물을 내 꼴리는 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융통성 만땅의 제도가 최고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개작허용/영리불허 —
(… 이게 바로 현재의 ‘capcold’식 카피레프트, 즉 capcold 콘텐츠 활용에 대한 도의적 부탁이다.)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 [기획회의 050320]

만화와 소설,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

공식기관에서 ‘명작’ 한국 만화를 꼽아야 할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대중적인 인기로 세상을 휘어잡은 것도, 희대의 컬트로 숭배받은 것도 아닌데 거의 예외가 없어서, 최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를 위해 선정된 100대 도서에도 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작품집이다. 80년대 <만화광장> 류의 성인만화잡지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던 진지한 사회발언과 만화양식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가 꽃을 피웠던 모범사례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 창작되어 나왔던 오세영의 단편 작품들이었다. 성인만화를 휩쓸던 리얼리즘 풍 이야기와 민중문화 담론 에서 열심히 주장해온 민중적 시각의 사회참여의식 등 다양한 시대정신의 영향을 소화해낸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90년대 초에 묶여져 나온 이 작품집에서 또하나 즐거운 발견은 바로 월북작가 단편소설 작품선이었다. 두고두고 오세영의 최고작 중 하나로 인용되고 있는 안회남 원작의 <투계> 등이 특유의 집요하게 토속적인 화풍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최근 <오세영 -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단편소설 원작의 오세영 만화 단편들을 묶어낸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마치 수록 작품들의 문학적 권위를 형상화라도 하는 듯, 한 권의 묵직하고 커다란 800페이지짜리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나와서 책장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작품들은 <부자의 그림일기. 작품집에도 실렸던 월북 작가 단편선, 이후에 작업되어 단편문학선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바 있는 여러 작품들이 고루 집대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메밀꽃 필 무렵> 같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원작도 있고, 문학 전문서 귀퉁이에서조차 찾기 힘들었던 것도 (예를 들어 월북 작가) 많다. 이 책에서 원작으로 선택된 작품들은 주로 1900년대 전반의 단편소설에 집중되어 있는데, 생각해보자면 그 당시 많은 작품들이 바로 고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살아나가는 민중들의 삶을 비정할 정도로 생생하고도 비극적으로 그려냈던 경향이 있었다. 바로 80년대식 리얼리즘/민중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감수성을 확실하게 재현하고 싶은 작가적 욕구에 충실하게, 오세영이 재창조한 만화들은 적극적인 재해석보다는 충실한 재현에 무게를 두고 이루어진다.

원작에 있는 대사는 토씨 하나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기본이며, 각 장면의 풍광이나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행동거지 또한 대단히 자연스럽다.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 처럼 그리는 작가” 등의 찬사 처럼 시각적 장면묘사의 충실함은 특히 한국의 근대나 토속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원작자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 보다도 더욱 원작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작품들의 원작 충실도는 대단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사진집이나 영화 스틸컷 모음 같은 느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88올림픽 전후를 무대로 하는 단편 ‘부자의 그림일기’에서 선보인 그림일기 + 무성극 만화의 교차편집이라는 형식실험이 보여주었듯, 오세영은 만화형식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결코 문외한이 아니다. 칸 간 시선흐름을 고려한 화면구도라든지,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만화적 전개방식 등은 원작소설 만화화 작품에서도 충분히 사려깊게 활용되고 있다. 다만 원작의 유려한 흐름에 거스르지 않도록 명백하게 파격적인 쾌감을 극도로 자제할 뿐이다.

이 작품들에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로 작정한 접근의 장점은 명확하다. 문학적 평가가 높은 소설들을 애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적당히 마음대로 단순화시켜온 대다수의 ‘명작만화’ 류들이 쌓아온 만화에 대한 편견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문학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쌓아온 섬세미묘한 다층적 의미와 감성의 서술구조들을 과연 만화에서도 해낼 수 있을까라는 폄하는 ‘투계’ 같은 작품을 보면 확실히 날려버릴 수 있다. 영화화 등 다른 매체이식에서 항상 문제시되는 원작의 문제의식이나 감수성의 왜곡이라는 부분 역시 이 정도의 재현 충실성 앞에서는 내밀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단점은? 쉽게는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비난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작의 선정에서 이미 작가의 자의식이 개입되고 충실한 재현이 바로 창작의 의도라면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단점으로 제기할 만한 보다 중요한 지점은 이 책에 묶인 작품들이 상당수가 90년대 및 그 이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0년대의 작품 또는 당시의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이나 민중문화 개념이 항상 강조해온 것이 바로 현실참여이라는 측면을 놓고 생각해볼 때, 오늘날의 세상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80년대식 경향의 프리즘으로 투과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이라는 척추가 빠지고 ‘순수문학’의 예술지향적 자아도취에 빠질 위험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작품에 투여된 노력과 재능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짜 고민이다.

앞서 말했듯, 책의 출판상태는 그야말로 성의있는 프로듀싱의 결실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만화책들은 각각의 실제 내용에 어울리는 책 모양새가 아니라 일괄적인 저가 대중오락물의 모양새라는 틀을 강요당했다. 자가 대중오락물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만화의 폭넓은 세계를 그 범주안에 다 우겨넣을 수 있을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세영 작품집은 고전 문학의 깊이와 만화작품의 진지한 접근의 무게에 걸맞는 무게의 책으로 나왔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옥의 티는 오히려 과잉 프로듀싱이라는 부분인데, 말미에 순 우리말 용어에 대한 해설집을 첨부한 것은 좋지만  본문내용에 각주표를 달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기게 했다든지 하는 등의 과유불급성 결과가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은 소설 원작 만화 작품을 모은 만화책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싫어서 쉽게 슬쩍 줄거리만 훑어보려는 게으름증을 해소하기 위한 만화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오히려 소설을 읽어보고 그것을 만화로도 다시 한번 읽어보거나 또는 반대 순서로 읽어서, 그 감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에 가깝다. 만화와 소설의 대등한 만남, 그리고 독자에게는 그 화학작용에서 오는 몇갑절로 증폭된 감상을 주기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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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으뜸과 버금 0503]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늦어도 80년대에 만화를 즐겨 본 세대까지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를 기억한다. 순진발랄한 주인공들, 특히 아동들이 벌이는 유쾌한 모험담 말이다. 명랑만화는 ‘전체관람가’ 만화의 대명사격인 장르였으며, 그 내용은 이상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소시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나머지 절반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차피 모험물로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후자야 말로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친근한 폭소를 띄위줄 수 있는 명랑만화 본연의 필살기인 셈이다. 하지만 점점 자극적인 소재나 서정성 과잉의 강한 맛에 길들여져온 90년대 이후의 만화판도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감수성은 묻혀져만 갔다.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대원CI/3권 발매중)은 여러모로 명랑만화의 이런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유쾌한 최근 작품이다. 주인공은 6살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 ‘네잎’이라는 이름풀이 그대로 항상 머리를 4개의 꽁지로 묶고 다니고 커다란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는 그냥 이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동네에서 살면서 겪는 하루하루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들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설정, 감정의 미묘한 애증, 또는 반대로 (속칭 ‘에세이툰’ 계열에서 종종 드러나는 폐단인)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마저 없다. ‘요츠바’는 이런 장르에서 애용되는 위악적인 애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한 순진함의 상징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그냥 6살 아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그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동물원 가서 동물들 구경하면서 장난치는 이야기가 재밌고, 축제에 놀러가서 아빠가 놀려주려고 숨어버려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우는 것이 재밌다.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재미냐고 약간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니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요츠바랑!>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이미 전작인 <아즈망가 대왕>에서 연애이야기도 복잡한 애증관계도 엽기감수성도 사용하지 않고, 뒤집어지게 웃기는 여자고교생 코미디를 만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을 더욱 다듬어낸 것이 바로 <요츠바랑!>이다. 일부러 한 템포 슬쩍 늦게 터트리는 변박자 리듬의 개그 호흡, 과잉자극을 배제하는 단촐하고 귀여운 그림체, 칸이나 페이지 구성에서 다양한 만화적 시각연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 등이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물론 의도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성장중인 작가인지 점점 이야기가 능숙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즉, 간단히 말해서, 만화로서 최선을 다해서 강력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문화 일반이나 90년대 이후 일본만화 특유의 캐릭터 코드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일본식 미소녀만화 취급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심심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신선한 재미가 나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꺼벙이를 즐겼고 심술통이 재밌었고 도깨비감투를 읽었다는 기억이 슬슬 돌아온다. 그렇게, <요츠바랑!>의 재미는 낮설지 않은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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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야근남발의 근원: 유사종교적 경영기법[미러링]

!@#… 한국 기업들의 유사종교적 경영기법의 폐단. 절대공감. 애니메이트 동호회에서 mondain님 소개로 보게된 글인데, 절절하고 명쾌하다…

문제제기: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no=8364 

호쾌한 답: 거기에 달려있는 ‘프리라이터’님의 리플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국가보안법이 구라인 이유.

!@#… 오늘의 작은 깨달음. 국가보안법이 구라인 이유.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국가가 보안된다느니 쌩쑈를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단지 50년 단련된 파블로프의 개들에 불과하다는 하나의 작은 증거.

왜 국가보안법 지지한다는 그 떼거리들 중, 한승원 지만원 조갑제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시켜서  잡아넣자는 사람이 없지?

…말 그대로 한국의 영토주권, 문화적 정체성 전체를 걸고 가는 이적행위인데 말이다.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만화 클래식 콘서트

!@#… 난 이런 식의 아이디어 기획들을 좋아한다. 만화속 클래식 콘서트. 이번 것은 노다메 칸타빌레, KISS 피아노의 숲 등 3작품이군. 노다메 하나만 지져도 좋을텐데.

소개는 이곳: http://blog.naver.com/dfs_v/80010895985

예매는 이곳.

!@#… 음음음… 하지막 북실북실 조곡이 없으니 대략 무효.

PS> http://nodame.moo21.com/ 이곳에 가면 노다메에 등장한 곡들 전체가 정리되어있다(비클래식까지도). 게다가 계속 업데이트중. 하기야 생각해보면, 전에 노다메 스페셜 씨디도 나온 적이 있었지. 물론 지금은 절판, 초레어 상품으로 마구 가격이 뛰고 있는 중. 뭐 그런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