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팝툰 27호]

!@#… 국내에서 체포전담조 부활 논란과 해외에서 티벳 시위가 한창일 때 쓴 글. 하기야 이제 총선 결과에 따라서 더욱 온 힘을 다해 막아내야할 사안들은 많아지고 세상은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으니(마땅히, 시끄러워져야만 하니) 앞으로도 계속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러브 앤 피스.

 

폭력은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니까
(실제 게재 제목: 그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폭력은 여하튼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항상 배우곤 하지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제3자들에게 메시지를 홍보하기 위한 폭력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재단하기 힘든 면이 더러 있다. 당장 메시지를 홍보하려는 대상들에게 직접 행하는 폭력이 아니라서 말이다. 물론 그런 폭력이 다른 폭력과 달리 대단히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고, 폭력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대피해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폭력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그것에 대한 억제책으로 상대방의 폭력을 부르며, 또한 폭력에 대한 사람들 반응의 역치가 점점 올라가기에 한 층 강한 자극을 준비해야 하는 등 항상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력이란 강력한 화제성을 지니고 있기에,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누구라도 쉽게 동원하고 싶어진다. 강자는 그럴 힘이 있으니까, 약자는 다른 선택이 별로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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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질주는 브레이크부터 [팝툰 26호]

!@#… 사실 이 비유는 왜 capcold가 사회발전에 관한 방향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닥치고 돌파력이 아니라 바로 성찰과 시스템이라고 강조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마침 이런 타이밍이라서 이쪽 칼럼에 써먹었다.

 

전력질주는 브레이크부터

김낙호(만화연구가)

자고로, 자동차의 본분은 앞으로 힘차고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긴 거리를 많은 것들을 싣고 이동한다는 것의 실용적인 효과는 따로 말해봤자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기능적인 것뿐만 아니라, 엔진의 회전에서 나오는 고속의 움직임이 주는 쾌감은 실로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한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뭇 청년들의 로망인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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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팝툰 25호]

!@#… 헉, 벌써 팝툰이 1년이 되어버렸다니. 잡지 창간을 목전에 두고 응원 기사를 써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다. 마감 한 이십몇번 하면 1년인 것이 격주간지의 페이스. 여튼, 앞으로 더욱 번창하고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를.

생일 축하합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풍습이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땅히 축하받아야할 일이라고 취급하는 엄청난 낙천성의 발현이랄까. 혹은 그런 낙천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세상은 살만 하다는 인식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생일을 축하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오히려 축하받지 못하면 비참해지는 쪽이 된다. 뭐랄까, 인생 별 것 없다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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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보다 한 표 [팝툰 24호]

!@#… 이미 1억불 부동산 내각, 표절이라도괜찮아주의 같은 차기 정부의 최신 특급 야매질에 묻혀서 누가 아직 “전봇대 뽑는 대통령” 같은 떡밥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전봇대, 천만 영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실제 게재 제목: 한 방보다 한 표)

김낙호(만화연구가)

작년 여름의 국내 흥행작 괴수영화 『디워』의 만듦새에 관한 숱한 혹평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개념이 있었으니,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 용어는 진중권의 글에서 작품의 스토리가 지니는 갈등해결 방식의 황당함을 지적하기 위해 동원되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이것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꼬이고 꼬인 운명으로 도저히 해결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갈등상황이 고조되었을 때, 난데없이 기계장치를 타고 신(의 역할을 맡은 배우)이 내려와서 후딱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 무대는 끝나고 이제 집에 돌아 가세요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캐릭터들의 의지나 사회의 규칙 등 작품 속 세계관과 이야기의 내적 동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초월적 개입으로 대충 덮어버리는 간단명료한 방식이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는 굳이 신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급박하게 초월적 개입으로 적당히 마무리지어버리는 방식 전반에 적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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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국만화사의 숨겨진 대가를 찾아서[무크지 ‘거짓말’ / 0709]

!@#… 작년 하반기에 나왔던 만화 무크지 ‘거짓말’에 실린 글. 원래는 한국만화판 ‘포가튼 실버‘ 혹은 ‘스파이널탭‘ 혹은 ‘무슈 페라이으‘같은 녀석을 목표로 하고 확 써버렸으나, 문제는 사이사이에 숨겨놓은 개그는 고사하고 한국만화의 역사에라도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한 100명은 되려나… 결과적으로 도를 넘어서게 매니악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대중적 개그의 장착이 무척 절실하다. -_-; 여튼 capcold가 추산하는 그 100여명에 자신이 포함된다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스크롤의 압박을 선물로 드립니다.

 

발굴! 한국만화사의 숨겨진 대가를 찾아서

김낙호(만화연구가)

사실, 한국 만화의 역사는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다른 어느 나라의 만화계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변화의 과정과 세대간 분절이 넘쳐난다. 해방 후 잠깐 있었던 고급 양장본의 히트와 저렴한 대여문화의 좌판 떼기 만화가 공존했던 시절에서 만화방으로 갑자기 판도가 바뀌었고, 만화방의 융성 십 수년 만에 잡지나 신문이 새로운 주류로 들어서고, 만화방 자체도 장편 극화와 무협물 위주로 완전히 세대 교체되어버렸다. 여기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잡지판, 작가 세대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런 상시적 격변의 와중에서 한국의 만화사 연구는 항상 남겨진 자료의 부족에 시달렸다. 단편적인 구술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료 수집 속에서, 중요한 작가들이 종종 현재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분들의 증언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 또는 아예 묻혀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때로는 새로운 발견의 놀라움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한다. 청공만화문화연구소에서 몇 가지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 수년간 전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을 찾아다닌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만화사의 흐름을 하나로 관통하면서도 완전히 숨겨져 있던 역사적 발견을 하고 말았다. 한국만화의 배후의 스승, 진정한 아버지였던 김자설 화백을 이번에 재발굴하여 본 지면에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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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유대, 소통 [팝툰 23호]

!@#… 저번에 출간된 설 특집호용 원고라서 가족 특집으로 후딱. 모두들 -너 -이어 되시길. 인수위의 랜덤 정책안 생성기님들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져서 진정한 삽질형 1당 독재를 완성시키겠다고 미리 굳게 다짐을 하고 있는 과반수 국민 여러분들도 모두.

 

유전자, 유대, 소통

김낙호(만화연구가)

신기하게도 어느 문화권에서나, 가족이라는 개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척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만 수행할 수 있었던 여러 기능들, 예를 들어 육아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주거생활이라든지 심지어 이성간 사랑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 울타리 바깥에서도 상당 부분 충족 가능해진 오늘날의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말이다. 기능적 이유로 떨어져 살다가도 일 년에 한 두 차례씩은 집결을 하는 대가족들의 문화가 익숙한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을 이루는 핵심요소로 흔히들 착각하기 쉬운 것이 ‘피붙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혈연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족이라는 관계 구성의 첫 관문인 결혼만 하더라도 그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근친혼 금지니 하면서 유전자 공유를 적극적으로 뜯어말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법제도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법으로 가족을 규정하던 시절 이전부터 가족이라는 단위가 오래도록 존재해왔다. 그렇듯,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족 성원 사이의 관계 그 자체에서 시작하고, 혈연이고 법제도고 하는 것은 그것을 약간 더 합리화하기 위해서 붙인 요소들에 불과하다. 특수할 정도로 가까운 유대관계, 합리적 필요성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곤 하는 상호 의지적 인연의 끈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말이다. 당연히 이 속에는 가족관계의 편안함과 오지랖에서 비롯되는 피곤함도 같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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