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 vs 바람의 나라, 현재 스코어 1:0

!@#… 법원, “‘태왕사신기’는 ‘바람의 나라’ 표절작이 아니다” 판결. 도대체 만화판 쪽은 변호사를 어떻게 고르길래 뭐 하나 이겨보는 일이 없는지 모르겠다.

!@#… 물론 시놉시스 단계는 실질적 침해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야 이미 처음부터 알려진 법적 구멍 이었으니 사실 당장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결국 ‘역사‘와 ‘역사를 바탕으로 한 창작‘ 사이를 구분 못하는 전형적인 “보통 이하의 문화적 식견을 가진” 판사가 내린 어찌보면 예상 가능했던 판단. 바람의 나라가 ‘역사’라면, 여러명의 눈동자도 ‘역사’고, ‘모레시계’도 ‘역사’겠지. 여하튼 항소심 들어가고, 대법원 가고 앞으로 더욱 갈 길이 멀 것이다. 김진 씨가 중도에 지쳐 포기하지 않으시길 빌 뿐.

(7.4. 약간 추가)

!@#… 게다가 이번 판결은 애시당초 중재 시도에서 나왔던 결론 그대로일 뿐. 법적 판단으로 보자면 심지어 그다지 잘못된 것도 아니다. 완성된 만화와 드라마 시놉시스를 법적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 당시에 판단이 내려진지 오래니까. 다만 이해가 안가는 것은, 어째서 원고측이 단순히 유사성에 의한 저작인격권 침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었는지 하는 것. KBS와의 드라마화 진행 무산이라든지 하는 등의 “시놉시스 발표로 인하여 입은 물질적 피해”를 강조해서, 유사한 내용의(내용 유사성에 대해서는 법원도 인정하였고) 시놉시스 발표가 지니는 사건 정황의 의도성을 부각시키고, 바람의 나라 드라마화 무산 등 구체적인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서 손해배상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텐데.

‘표절’은 법적 개념도, 판단기준도 아닌 그냥 도덕적 잣대일 뿐이다. 법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저작권 침해를 “했느냐” 아니면 “했다고 판단할 수 없느냐”일 뿐.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저작권 침해를 하지 않았다’ 라고 민간 뉴스 보도에서 해석되어 뿌려진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고. 표절 여부를 증명하는 것과 법정에서 저작권 침해를 가리는 것은 서로 연동되어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별개의 사안이다.

!@#… 만화계와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리니지 저작권 사태가 어떻게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는지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시 사안에서 신 작가가 법적으로 명백히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분쟁이 지속되는 것이 엔씨소프트측에 있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상당한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합의를 본 것이다. 표절이라고 베꼈다고 백번 천번 사실을 증명해봐야 소용없다 (아니 사실 증명할 것은 이미 오래전에 다 증명하지 않았던가). 피해를 끼쳐줘야 상대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김종학 프로덕션이 도저히 협상에 응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흔들어라. 태왕사신기가 상정하는 타겟층에 고추가루를 뿌려라. 퓨전사극에 재미 붙인 젊은 층 뿐만 아니라, 역사사극을 좋아하는 아저씨 세대들까지 포섭하라. 한류 붐(…)을 노리고 있는 것인 만큼,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해서 하염없이 뿌리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이 모든 것에 있어서, 김종학 프로덕션의 (아니 송지나 작가의) 부도덕함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태왕표절기는 물론 김종학표절덕션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드라마들의 시청율이 안나와서 쫄딱 망할 전망이 명백해지도록 하라.

!@#… 여하튼, 현재 스코어는 태왕표절기 1:0 바람의 나라. 전통의 강호가 심판의 유리한 오심 속에 오프사이드를 무시하고 핸드링으로 한 골 넣었다. 하지만 아직 전반전도 채 안 끝난 상태인 만큼, 조속히 추스려서 역전의 물꼬를 열어내기를 희망한다.

PS. 그러고보니 capcold 네이버 분점에 올라왔던 고리짝 이 사안 관련글에, 왠 사람이 악플을 남기고 도망갔다(여기 백업한 글의 원본). 알바가 의심되나, 세상에는 대단히 강한 자의식으로 대단히 희박한 지능을 열정적으로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히 적지 않다는 것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니 관대하게 패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만화언론 등대등 토론으로부터 1주년.

!@#… 6월 30일은 ‘만화 언론’ 논의가 시작한 날입니다 (만화언론 ‘만’) 에서 트랙백.

!@#… 아하, 등대등 토론으로부터 어느 틈에 한 돌. 한겨레21에 기사화도 시켰고, 그 동안 ‘만’이 만들어졌고, 계간만화 팀은 코믹뱅으로 새 얼굴을 선보였고, 부천 만화규장각도 개편하여 소식 부문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이렇게 말하니까 꼭 등대등 토론의 결과로 다들 이렇게 한 듯 하지만, 세상은 항상 우연과 필연의 미묘한 결합). 당초 사람들이 토론하며 예상했던 바는 ‘만’의 운영과정 속에서 실현된 것도, 어긋난 것도 있다. 만화언론이 돈은 별로 안될 것이라는 예상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대로 실현 중이고, 돈 받는 고정직 없이는 한 줌의 열혈한들이 뒤집어 쓰며 고생할 것이라는 예언 역시 현실이 되었다. 좋은 방향으로 어긋난 예상이라면 ‘만’이 신기하게도 활기차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뉴스박스나 구글 뉴스에 신디케이트하기, 부천 만화규장각과 콘텐츠 제휴 등으로 지속적 확장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 나쁜 방향으로 어긋난 예상이라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capcold를 포함해서 등대등 토론에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참여의 폭이 당초 우려한 것 보다도 더 낮다는 것. 여하튼 또 한 해가 시작되며 만화언론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역시 가장 시급한 것은 관심있는 필자들의 자발적 참여. 정신 온전한 업계 담당자들의 보도협조. 독자들의 열띤 소문 내기. 그것이 되면 슬슬 굵직한 기획기사들을 시작할 수 있을테고. 여튼 지금껏 상당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엄청난 길을 걸어가야할 만화언론에 격려의 박수와 질책의 채찍질이 가열차게 떨어져 주기를 마냥 희망할 따름이다.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한겨레21/615호]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괴짜 주인공의 엽기적 유머, 라이트 노블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 만화·애니메이션의 감수성으로 향유자의 취향 클러스터에 눈높이 맞추다

– 김낙호 (만화연구가)

최근 인터넷을 돌면서 대중문화 관련 포스트들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스즈미야 하루히’다. 알라딘이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 전체 판매순위에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3권이 100위 안에 포진해 있고, 인기검색어 순위에서도 이 이름이 종종 출몰한다.

각종 동영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속칭 ‘하루히즘’이라고 불리는 패러디 영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팬들이 시리즈의 1권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엔딩의 ‘하루히 댄스’를 따라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붐은 일본은 물론 한국, 나아가 북미나 유럽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각종 대중문화 관련 블로그와 포럼에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오르내려서, 이른바 “하루히는 세계 대세”라는 장난 섞인 말이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다.

각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인기

그 이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스타일의 감성적 현대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히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원작소설은 다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토 노이지 일러스트, 대원씨아이 펴냄)의 주역인 미소녀 여고생 캐릭터를 칭한다. 하루히는 자기소개 시간에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이라고 ‘뒤집어지는’ 인사를 하는 괴짜. 소설의 내용은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이 괴짜 미소녀 여고생이 SOS단이라는 온갖 특이한 활동을 추구하는 동아리를 만든 뒤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다. 이 황당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내레이션을 하는 남학생 ‘’. 하루히의 앞자리에 배치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는 죄로 동아리의 창립에 관여하는 은, 하루히에게 ‘반강제로’ 끌려온 ‘평범한’(이상하긴 하나 현실 수준에서 수용 가능한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음) 학우들과 함께 부조리한 코미디의 세계로 빠져든다. 알고 보니 실제로 주변에는 외계인과 초능력자 등 기이한 존재들이 우글거렸으며 또한 우주는 하루히가 지루하면 지루한 데 맞춰, 재밌어하면 재밌어하는 데 맞춰 재편되는 ‘하루히의 매트릭스’였다. 이렇게 일면 엄청난 스케일로 발전해나가지만 여전히 작품은 가벼운 학원 코미디물의 외향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기에, 묘한 불균형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런 지극히 장르 대중오락 성향, 그것도 이른바 ‘오타쿠’ 취향의 소설이 그 정도까지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히 시리즈’는 속칭 라이트 노블로 분류된다. 거칠게 정의내리자면, 라이트 노블은 만화·애니·게임 등 일본에서 흔히 ‘서브 컬처’라고 부르는 대중문화 장르들과 감수성이 연동돼 있는 장르소설을 칭한다. 하지만 장르라고는 해서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SF)처럼 특정 소재와 사건들을 다룬다는 개념으로 묶이는 것은 아니고,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매체의 주류 대중문화 영역을 장르문화라고 부를 때의 그런 의미다. 라이트 노블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대본을 소설화한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만큼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감수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커서, 매체 이식이 쉽게 일어나기도 한다.

‘하루히 시리즈’는 라이트 노블 계열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이다. 이 작품은 당대의 여타 소설 문학의 성과에서 자양분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라이트 노블로서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만화·애니·게임 쪽의 장르적 규칙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괴짜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클럽을 만들어 평범한 학우들을 엽기적 유머의 세계로 물들인다는 구성은 순수문학이나 영화보다는,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르 규칙이다. 알고 보니 평범한 일상의 주변이 사실은 우주적 음모의 소용돌이였다는 식의 과장 역시 SF 애니메이션에서는 친숙하다. 또한 미소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특정한 구성 요소- 메이드복, 고양이귀, 유아 취향 얼굴과 큰 가슴의 결합, 무표정 등- 들을 분류, 각각의 항목 단위로 열광하는 현상인 속칭 ‘모에’ 취향에 대한 집착은 90년대 중반 이래로 그쪽 계열에서 폭발적으로 발달시켜온 것이다.

장르의 힘, 취향의 힘!

라이트 노블이기에 ‘하루히 시리즈’는 단순히 소설 애호가들을 불러모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즐거움에 대한 총합으로서 만화·애니·게임 분야의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규합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장르의 힘이다.

그리고 ‘하루히 시리즈’가 히트한 두 번째 이유는 취향의 힘이다. 이것이 진짜 핵심이다. 양적 과잉으로 규정되는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즐기는 것은, 매체나 작품에 대한 집착이 아닌 특정 취향의 묶음이다. 말하자면 ‘취향 클러스터’다. 예를 들어 만화를 즐긴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만화의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세부 취향을 즐긴다. 그리고 그 선호하는 취향의 정체성이 선명할수록, 취향과 연동되는 다른 매체, 작품, 상품으로 자연스럽게 향유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미소녀 연애물 만화에 심취하게 되면 다른 만화인 예술만화와 학습만화로 애정을 키워나가기보다는, 애니메이션·게임·모형 등 여러 인접 분야에서 미소녀 연애물의 취향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취향을 깊게 파고들수록, 여러 매체와 향유 방식을 포괄하는 취향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하루히 시리즈’의 히트는 이런 취향 클러스터의 대표적 성과다.

이런 취향 클러스터가 작동했기에 올 4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소설로 피드백되고 그 인기가 증폭되었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80, 90년대의 혁신적 작품들에 비하면 전복적 에너지를 연성화한 정도에 불과하고, <멋지다 마사루>만큼 마음먹고 막 나가지도 않으며,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큼 그럴듯하게 우주적 음모론을 전개하지도 않지만 폭발적인 힘을 얻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뿌려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다른 경쟁 작품들보다 높은 품질의 미소녀 영상을 제공했으며, 줄거리에서도 원작 이상으로 모에 취향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던지면서 팬들을 감동시켰다.

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원작의 사건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내용상으로는 5화의 외전 정도에 해당할 에피소드를 아무 설명 없이 1화로 편성해 방영하는 등 파격적 연출을 사용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팬들의 참여의식에 더욱 불을 붙였다. 팬들은 패러디 동영상 공유는 물론, 소설의 설정에 대한 각종 정보 교류와 아마추어 동인지 창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발적인 붐을 조성하고 있다. 즉 ‘하루히 시리즈’는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기보다, 여러 향유 양식을 효과적으로 혼용해 성공한 셈이다.

당신의 ‘모에’는 무엇입니까

장르와 취향의 힘은 작품 자체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취향을 가진 자신의 향유자들과 얼마나 가깝게 동조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히 시리즈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의 현재 향유자들과 눈높이와 입장을 맞춰주고 있음을 밝힌다. “모에 요소가 더 필요하니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특정 미소녀 캐릭터를 동아리에 강제 가입시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작품의 향유자들이 지니는 취향과 동일시된다.

작품보다는 장르와 취향을 향유하고자 하는 시대에, 하나의 작품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려면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루히’ 소설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변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중심 장르문화의 미소녀·학원 코미디·우주 음모론 취향을 즐긴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적합한 대중문화론은 단순한 작품론이 아니라 장르와 취향을 수용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한 라이트 노블의 히트로 한층 힘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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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한겨레21에 실린 글 (정간지 발표원고의 경우 다음 호가 배포 또는 마감되어갈 즈음 – 즉 해당 지면이 충분한 유통을 마칠까지 기다린 후 블로그에서도 공개한다는 개인적 원칙). 원래는 생활면에 들어갈 가벼운 흥미성 기사였는데, 여차저차 쓰다보니 의도보다 하드해져서 결국 또 문화면으로 배치되었다. OTL 그런데 역시 한참 이쪽 계열 사람들의 대세라서 그런지, 무려 잡지 기사 페이지가 스캔되어 올라오는 상황까지 발생. 이번 건을 담당하신 구** 기자님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계실 듯.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언급한 ‘취향 클러스터’라는 개념을 다른 기회에 좀 더 깊숙하게 개념화시켜볼 욕심이 있음. 나머지 사족은 수시아님 블로그에 남긴 것으로 대신한다.

“…주인장님 말씀대로, 한겨레21과 뉴타잎 독자들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니까요. ‘팬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그 팬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루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마치 일년전쟁 팬이 시드를 바라볼 때 느끼는 부족함 같은 것이죠.”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장르만화 시스템의 르네상스를 꿈꾸는가 [만화규장각웹진0603]

!@#… 부천 만화규장각 웹진의 2006년 지면개편 첫호에 나갔던 글 (게재 버전 클릭).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까지 꺼내려면 아예 기획연재를 해야겠지만, 우선 그런 것을 위한 간단한 인트로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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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설문조사: “여러분들은 야오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설문조사: “여러분들은 야오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www.mahn.co.kr/marsheaven/survey_yaoi/

!@#… 자신이 야오이에 대해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필히 위의 설문을 풀어보시길. 자신은 야오이에 대해서 조금 알고 싶을락 말락하다 하는 분들도 위의 설문을 풀어보시길. 나는 야오이가 뭔지 모르지만 주변에서 자꾸 떠들어대서 짜증난다는 분들도 여하튼 풀어보시길. 브로크백 마운틴과 왕의 남자에 평범하게 열광하기보다는 열 몇번씩 보며, 항상 므흣한 분위기의 남자들이 서로 뜨겁게 응시하는 표지의 만화책을 들고다니는 이상한 족속들을 목격한 바 있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설문에 대답해 보시기를. 물론 추첨에 의한 상도 있음…레어아이템.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 [한겨레21/060309]

!@#… 최근, 여차저차 한겨레21의 해외통신원단에 합류(그래서 직함도 만화연구가나 미디어평론가 같은 식으로 하지 않고 ‘해외’를 강조한 것;;). 첫 기사로 좀 재밌으면서도 뼈있는 소식을 골라보고자 투고해 본 내용. 그래서 한겨레21 제600호에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주: 로그인 필요)이라는 제하에 게재…되었는데, 정작 해외통신원 코너가 아니라 문화면에서 픽업해 감. 여기 공개하는 버전은 늘상 그렇듯, 편집부를 거친 최종버젼이 아닌  capcold 투고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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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를 잡는 배트맨? – 유명 만화작가, 정치홍보물 제작을 선언하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과정)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라다니는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슈퍼히어로들과 맞서는 슈퍼 악당들이다. 히어로들은 설정이 그 아무리 황당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그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 일반의 사회적 상식과 정의추구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문화권마다 그 가치에 대한 차이는 상당하지만, 최소한의 공감대 정도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슈퍼 악당들은 다르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과 출처가 불분명한 막강한 재력으로 동원해낸 여러 부하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맹목적인 파괴활동을 일삼는다. 아무리 알고보면 불쌍한 사연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 질서 파괴적 행동에 공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슈퍼 악당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속시원하게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화,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만화와 종종 취향 층을 공유하기 마련인 공상과학 또는 환타지 영화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박람회 행사 ‘원더콘’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향후 1년간 이쪽 업계를 크게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들이 종종 베일을 벗는 공개 발표장소로 활용되곤 한다. 그런데 올해 원더콘 발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것 중 하나가 바로 북미 주류 만화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중인 작가 프랭크 밀러의 신작 제작 발표 소식이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Holy Terror! Batman! (‘이럴 수가, 테러라니! 배트맨!’이라는 뜻인데, 초창기 배트맨 만화의 홍보문구로 자주 쓰였던 표현의 패러디)』. 이번에는 배트맨이 조커나 캣우먼, 펭귄 같은 가상의 슈퍼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혼내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발표장에서 이 작품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파간다”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출간은 내년 정도가 될 것이며, 현재 200페이지 가운데 120페이지의 선 그림을 끝낸 상태라고 발표했다.

작품의 내용은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 시티(뉴욕시를 모델로 하고 있는 가상도시)에 알카에다가 주모한 테러가 일어나고, 배트맨이 그것을 막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왜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정치적 선전물을 자처하고 나서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인지, 작가의 대답은 분명하다: “슈퍼맨은 히틀러를 두들겨줬어요. 캡틴 아메리카도 그랬죠. 그게 그들의 당초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죠. 그들은 우리 국민, 우리 나라의 상징입니다. 민속 영웅이라구요. 알카에다가 활보하고 다니는데 ‘리들러’나 뒤쫒고 있는 것은 너무 바보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는 87년 『어둠의 기사의 귀환』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정체기에 빠져있던 배트맨 시리즈에 완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작품에서 그는 당대의 미국 현실을 살아가는 완고하고 어두운 성격의 중년 배트맨을 창조해냈고, 이 작품의 히트는 이후 90년대에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현실적인 재해석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밀러는 레이건 시대의 비합리적인 보수성과 관료적 국가 통제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연방 정부 기관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슈퍼맨과의 대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패한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통제해주지 못하는 악의 세력이 뒷골목에 넘치는데, 강고한 완력을 지닌 히어로가 그 상황을 직접 하나씩 타파해 나간다는 ‘자경단’ 정신은 이후 『신시티』 연작 등을 통해서도 더욱 공고하게 다져진 프랭크 밀러의 핵심 정서다. 특히 전 세계와 나아가 우주까지도 보호하는 절대적인 영웅인 슈퍼맨과는 달리, 배트맨은 고담시티라는 ‘자신의 동네’를 지키는 존재이기에 자경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테러가 어디에서나 일어나서 당신의 일상을 덮칠 수 있고, 정부는 그것을 제대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는 불안감이 꿈틀대고 있는 9/11 이후의 미국에서, 이러한 정서는 더욱 많은 공감대를 자아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사실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의 악당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작품들은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차대전 당시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히틀러와 일본군을 열심히 문자 그대로 두들겨 패 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을 좋아하는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전쟁 후원금 모금운동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초능력과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왜소하고 사악하게 묘사된 히틀러와 일본군들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굳이 분석적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너무나 극명한 상징을 보여주고자 한 프로파간다였다. 사실 영화나 여타 대중 매체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넘쳐나지만 그 중 특히 만화는 희화화와 과장에 있어서 워낙 자유로운 표현력을 발휘하며, 나아가 당시 가장 ‘대중적인 대중오락’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돋보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력과 대중성이라는 만화의 장점이, 오히려 만화가 선전도구로 악용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또한, 2차대전 당시의 정치 홍보성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사례에서는, 선악 구도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극도의 인종 차별적 희화화가 성행했다. ‘우리’의 결속을 위하여, ‘남’들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되고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오는 여러 문제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당시 사회의 일방적 잣대를 적용한, 표현의 자유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덮어버리곤 했다. 비록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일간의 『혐한류』, 『혐일류』 만화책 출간이라든지, 점점 더 파국을 향해 확대되고 있는 마호메트 만화 파문 역시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이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 밀러가 그려내는, 알카에다를 혼내주는 배트맨의 모험이 과연 어느 정도의 표현수위를 지니고 있을지 아직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혹시 정치적 공정성이 사려 깊게 배치되어 있으면서, 슈퍼히어로 장르의 현실성을 또 한번 재발명하는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보수층이 지니고 있는 타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지를 고려해볼 때,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년 이맘 때, 이 작품이 제2의 마호메트 만화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박스—
2차 대전 당시,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나치와 일본군을 혼내주며, 동시에 전쟁 모금도 모아주느라 바빴다. 그들의 분주한 활동상을 몇가지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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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첫 시리즈가 시작한 바람에,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부터 나치와 연관이 많았다. 붉은 해골머리의 숙적 ‘레드스컬’이 바로 나치 테러리즘 부대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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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나치 병사와 싸우면 싸움이 시시하게 끝나므로, 종종 강력한 힘을 지닌 괴물로 변모하기도 했다. 장르적 즐거움과 정치선전의 효과를 겸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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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에 의지하며 어쩔 줄 모르는 칙칙한 녹색의 나치 적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화사한 슈퍼맨의 대비는 특히 전형적인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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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들은 때로는 압도적으로 약해진다. 정의의 슈퍼히어로가 전형적인 외계 침략자의 구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역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PS. 영미권 만화에 대해서 항상 주옥같은 덧글을 달아주시는 Dreamlord님의 추가 정보+지적. 행여나 퍼가실 분이 있으면 같이 묶어서 읽으십사 본 포스트에 같이 묶어넣음.

Dreamlord: “Holy ***, Batman!”이라는 표현은 배트맨 만화책이 아니라 1960년대의 배트맨 TV시리즈에서 유래된 구절이죠.

“Holy Terror, Batman!”은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닙니다. 만화계에서는 밀러의 The Dark Knight Strikes Again이 종결되었던 2002년경에 처음 이 만화의 소식이 나왔었는데, 이번에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진것 뿐이죠. 작년까지만 해도 “Batman Vs. The Terrorists”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고, 작년 7월에 All Star Batman And Robin The Boy Wonder와 관련해서 나온 인터뷰에서도 200페이지중 120페이지를 그렸다고 말했었는데, 설마 그후 지금까지 한페이지도 더 그린게 없다는 말인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랭크 밀러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만화 300 이후 맛이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300 이후에 나온 Sin City 미니시리즈 Hell And Back, DKSA, ASBARTBW 등등의 만화들은 그림이나 대본면에서 모두 예전의 밀러 작품보다 훨씬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본만 맡은 ASBARTBW의 경우 인터넷 팬들의 반응을 보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는 것처럼, 한때 훌륭한 만화를 내놓던 밀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배트맨의 캐릭터를 망쳐놓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사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밀러의 황당한 대본을 충실하게 만화로 옮기고 있는 이용철씨의 그림이 없었다면 읽지 않을 만화입니다.)

밀러가 2차대전 당시의 만화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수 없군요.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Timely/Marvel 캐릭터들은 만화책 안에서도 적국 군인들과 싸우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 맞지만, 수퍼맨과 배트맨 등의 National/DC 캐릭터들은 만화책 표지에서만 전쟁노력을 독려했었고, 만화책 줄거리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었죠. 기껏해야 클라크 켄트가 잠깐 종군기자로 활동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었고, 수퍼히어로들이 초능력을 사용해서 전장에서 적군과 싸우는 만화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클라크 켄트가 징병검사를 받는데, 시력검사를 할때 벽을 뚫어볼수 있는 엑스레이 눈을 지닌 클라크 켄트가 실수로 옆방 방 벽에 붙어있는 시력검사표를 읽어서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내용의 만화도 있었을 정도로, National/DC 만화책의 내용에서는 자사의 캐릭터들을 2차대전과 멀리하려고 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에 나온 만화 All-Star Squadron에서는 2차대전동안 히틀러가 운명의 창을 발견하고, 일본의 군사지도자 Dragon King이 성배를 발견해서, 이들이 이 2개의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서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지대를 감싸는 일종의 보호막을 펼쳤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왜 수퍼맨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는지를 해명했습니다. 본래 수퍼맨의 약점중 하나가 마법에 약하다는 것인데, 수퍼맨이 이 보호막 안에 들어가면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기편을 공격하기 때문에, 수퍼맨을 비롯한 National/DC의 대표적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전쟁지대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야만 했고, 2차대전은 Sgt. Rock처럼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싸워야만 했다는 설정입니다.) 2차대전중의 만화책에서 수퍼맨과 배트맨은 밀러가 말한것처럼 리들러나 뒤쫓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가지 간과할수 없는 것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당시 미국 만화계에서 활동하던 상당수의 만화가들은 이민 1.5세대나 2세대 유태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당시 만화 표지 그림들의 상당수는, 유럽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친척들이 나치수용소에 감금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미국정부는 참전을 주저하고 있는 현실에 참지못한 이들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죠. 유태인인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해낸 직접적인 이유도, 유럽전쟁의 참상에 관한 소식을 그냥 듣고만 있을수 없어서였죠. 미국정부가 9/11 테러를 구실로 삼아서 자국을 공격한적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니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밀러가 과거에도 독자들의 반응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상당히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경우가 많았고 (Give Me Liberty에 나왔던 “남자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백인 우월주의 집단” Aryan Thrust, 영화 RoboCop 2에 나왔던 어른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어린 소년 범죄자), DKSA와 ASBARTBW 등은 사실 패러디인데 독자들이 잘못 해석했다는 변호를 하면서, “Holy Terror, Batman!” 역시 테러전의 승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를 가장했지만 사실은 패러디가 될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머리속에는 독립만화가 크리스 웨어가 최근 강연회에서 했다는 말만 생각나는군요. “모든 만화가들은 결국은 미쳐버리고, 화판 앞에 앉아서 죽는다.”  (200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