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 시즌2, 간지 프로모션

!@#… 2007년 9월 24일(미국기준), 희대의 동네슈퍼히어로 히어로즈 시즌2 방영개시. 그리고 슬슬, 프로모션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도다. 만족스럽지만 화끈하지는 못했던 시즌1의 결말을 뒤로 하고 난데없이 새롭게 시작되었던 시즌2의 오프닝이 나온지 한 계절. 이제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걱정과 그에 따른 제작 스케쥴 관리 실패에서(하기야 고등학생 치어리더가 졸업만 했더라도…) 해방된 넉넉한 본격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를. 여튼, 프로모션 동영상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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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판타스틱 0708]

!@#… 연재칼럼은 없어졌지만, 여차저차 취향이 꽤 잘 맞는 관계로 즐겁게 원고 참여하고 있는 장르문학/문화 잡지 ‘판타스틱‘ 지난 호에 실린 것… 의 편집 전 탈고버전. 도판 들어가고 멋지게 편집된 완성본을 보고 싶은 분은 재고 떨어지기 전에 과월호 구입하시길. 여튼 탈고시점에서 두어 달 지난 현재는 시즌2가 성황리에 방영중이고 이미 시즌1의 만화책도 발간된 상태다. 재미있는 발상, 재미있는 팬덤.

 

슈퍼히어로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과 슈퍼히어로 컬쳐

김낙호(만화연구가)

누구나, 아니 적어도 소년 시절을 보낸 이들, 아니 최소한 TV, 만화, 게임, 영화 등을 보며 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한번쯤 즐겼을 놀이가 있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서로 무언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어 서로 능력싸움을 벌이는 것. 한마디로 왕년에 가슴에서 브레스트 파이어 한번 안 쏴보고 눈에서 레이저빔쯤 안나가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때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슈퍼영웅이나 로봇을 흉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새로 자신만의 새로운 초능력을 가진 영웅을 발명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능력으로 싸우면서 자기 능력만의 독특한 강점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고, 그리고 의외의 약점을 파고드는 적들에게 밀린다. 그 와중에 계속 설정에 설정을 덧붙이며 우기고 우겨서 결국 놀이터의 우승자가 되어보고 싶어 한다. 어린이 놀이가 아닌 실제 어른 생활에서도 다소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패턴이기는 하지만, 그 원형적인 초월적 능력과 순수한 정의의 승부의 즐거움은 항상 한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은 꿈이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국인 SCi-Fi 채널에서 2006년 여름에 방영한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Who Wants to be a Superhero)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슈퍼히어로 되어보기 놀이의 성인 버전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우리 동네 슈퍼히어로: 영웅질의 문화 차이 [문화저널 백도씨 0708]

!@#… 요새 어째선지 여러 소식지면에서 계속 슈퍼히어로 이야기만 많이 하는 듯한;;; 여튼 백도씨에서도 무려 영웅 특집이라며 의뢰받은 글. 제대로 학문적 깊이를 가지고 들어가도 재밌을 법한 소재에 대한 약간의 겉햝기.

우리 동네 슈퍼히어로: 영웅질의 문화 차이

김낙호(만화연구가)

자고로 언제 어디서든, 슈퍼히어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선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초월적 존재들이다. 그렇게 심히 보편적이기에, 영웅인 것이다. 하지만 선과 정의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어떤 식으로 나타나며, 물리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같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조금씩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사회가 꿈꾸는 이상적 가치의 현신으로서의 영웅이라면,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사회 속에서 조금씩 달라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슈퍼맨이 한국에 나타나면 버터 범벅 느끼함의 화신일 뿐이고, 울트라맨이 미국에 가면 뻘쭘한 은색 거인에 불과해질 것이다. 결국 핵심은 각 대중문화권에서 슈퍼히어로가 지니는 ‘코드’다. 그것은 뒤집어보면 바로 각 문화권 내에서 나오는 슈퍼히어로물의 장르적 재미의 코드이기도 하다. 그런 코드 이야기를 몇가지 해볼 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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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소 TV드라마 ‘히어로즈’의 세계관을 점검해보다

!@#… 원래는 나중에 완결기념 포스팅만 하려고 했는데, 간지만빨 미래 에피소드 20화(Five Years Gone)을 보고 나니까 이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TV드라마 ‘히어로즈’, 이제는 말할 때다. 클라이막스 돌입 기념 포스트 들어간다. 3가지 이야기 – 이 시리즈의 시공간 개념, 사회관, 그리고 가족이라는 요소. 당연히 스포일러 만땅이니, 알아서 선택하고 읽으시기를. 시리즈 진행 중에 실시간으로 감상 올린 이전 글들과 같이 보면 더 재밌다. 아마도. (클릭, 클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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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시빌워, 한 아이콘의 소멸

!@#… 마블의 거의 모든 메이저 만화 시리즈들을 어떻게든 연계시키며, 지난 반년을 빛낸 궁극의 프랜차이즈 ‘시빌워’. 대형 민간 피해 폭발사건 후 슈퍼히어로 진영이 정부요원 등록파와 반대파 사이에 갈라져서 내전을 겪는 이야기. 스파이더맨 신분 노출 포함 여러 큰 대형사건이 벌어졌지만, 이번달 초에 메인 스토리의 완결이 난 후의 감상은 왠지 당초에 퍼졌던 진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던 소문에 못미친다는 느낌이었는데… 마블 이 인간들, 결국 내전 후 사태정리를 다루는 시리즈에서 결국 소문의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읽기(영어)]

근조 캡틴 아메리카. 이것으로 2차대전부터 버텨온 한 시대의 아이콘이 사라지는구나. 인기 캐릭터라기 보다 아이콘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워낙 캡틴 아메리카가 체화하고 있는 특정한 ‘전통적 가치’들이 많으니까. 어쩌겠어, 시대가 바뀌고 인기가 없으면 죽어야지. 그런 세계인 것을. 뭐, 인기가 회복되면 90년대와 함께 화끈하게 죽어버렸던 DC의 슈퍼맨처럼 부활할지도 모르지만.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또다시) 복면시위 금지법 추진중이란다.

!@#… 연초를 밝혀준 고급 개그, 복면시위 금지법 추진. 시위할 때 얼굴 가리면 신분확인 방해조로 현행체포 가능이라는 아주 황당무계한 법안을 정말로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다니, 그 의원들과 경찰청 간부들의 센스에 가히 손가락을 치켜세워줄수 밖에 (물론, 가운데 손가락). 사실 이 짓이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2003년에 물먹은 것에 대한 설욕전.

!@#… 그런데 행여나 국회가 전부 바보균에 (지금보다도 더) 감염되어 복면시위 금지법이 통과라도 된다면…

복면의 슈퍼히어로가 정의를 부르짖으면 체포된다. OTL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드라마 ‘히어로즈’ 시즌1 전반부 방영 종료 기념 포스팅…

!@#… 이번주의 제11화로 드라마 ‘히어로즈’ 시즌1 전반부 종료. 한달반쯤 쉬고, 1월 말에 방송 재개 예정. 중간기착점이자, 두번째 스토리 아크인 ‘치어리더를 구하라, 세계를 구하라’의 종료인 만큼 중요한 단서들과 새로운 전개의 예고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이것참, 드라마 보는 재미가 막강하다. ##이 벌써 장렬하게 죽어버린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 그런데 뜯어보면 볼수록 이 드라마 대단히 잘 고안되어 있는데, 특히 초능력자 캐릭터들의 구도가 예술이다. 슈퍼히어로 만화장르 특유의 파워밸런스 개념에 어지간히 통달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힘든 경지에다가, 심리학적 성향 구분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선, 모든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단 한가지의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해이션(The Haitian)은 남의 기억을 지우는 것과 남의 초능력을 봉쇄하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캐릭터의 능력은 바로 상대의 정신활동에 방해전파를 보내는 능력 한가지다. 그걸 응용함에 따라서 기억을 지울수도 있고, 두뇌의 활동에 방해파를 보내서 초능력을 봉쇄하기도 하는 것.

그런데 그 ‘한 가지 능력’으로 무한한 능력을 취할 수 있는 캐릭터가 딱 두 명 나오는데, 바로 연쇄살인마 시계공 사일라와 정의의 간호부 피터 페트렐리. 초능력자들의 두개골을 깨고 두뇌를 열어서 능력을 흡수하는 사일라, 그리고 초능력자가 곁에 있으면 그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같이 구사할 수 있게 되는 피터는 바로 동전의 양면이다. 사일라의 고유능력은 바로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고치는 능력”.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두뇌를 직접 꺼내서 초능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유전자를 고침으로써 자기 능력으로 만든다. 그 절차를 위해서 상대 초능력자는 두개골이 열린채로 죽을 수 밖에. -_-; 한마디로, 사일라의 능력의 핵심은 바로 절대적인 ‘이성’이다. 부대적 피해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궁극의 이치를 위해서 끝없이 매진한다. 그와 정 반대 극단에 서있는 것이 바로 피터. 그의 고유능력은 바로 “상대의 모든 것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꿈을 통해서 자기 형이나 죽어가는 자기 환자 등 타인의 경험과 연동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극단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타인의 능력을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해버리는 것. 바로 절대적인 ‘감성’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다. 물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이, 폭주하면 자칫 아예 자아가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시즌1의 핵심 축을 이루는 대결구도는 이성-감성의 구도인 만큼 팽팽한 파워 밸런스를 이루면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결국 둘이 결국은 어떻게 공멸 또는 융화할 것인지가 관건. 캐릭터 밸런스를 위해서 ‘알고보면 인간적인 슈퍼악당’이라는 (이제는 꽤 뻔해진) 코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속성’ 그 자체를 통해서 구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편집증처럼 묘사되는 초능력자 주소록 작성자, 노골적으로 커밍아웃 코드를 지니고 있는 무한 힐링 10대 소녀, 억압된 공격성과 이중인격으로 무장한 주부, 소년 같은 정신상태의 히어로 오타쿠 회사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세속적 정치가 등 히어로의 원형적 경이와 현대 도시인의 각종 정신상태가 접합된 캐릭터들이 한 다스 서로 얽혀 들어간다. 참 똑똑한 설정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 또다른 측면의 즐거움이라면 역시 ‘장르만화적’ 재미. 이미 4화에서 올백+수염+가죽코트+등에 검을 둘러매고 미래에서 온 히로를 통해서 만화적 슈퍼히어로 후까시를 보여주어 자신들의 ‘슈퍼히어로 장르만화적’ 근본을 보여준 제작팀, 갈수록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더 캐릭터들이 슈퍼히어로적인 ‘이름'(별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 ‘싸일라(Cylar)’, ‘더 해이션(The Haitian)’, ‘DL’은 원래부터 슈퍼히어로틱한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스스로를 ‘스파-히로'(슈퍼히어로)라고 지칭하는 히로는 물론, 온갖 사람들에게 멀쩡한 이름 놔두고 그냥 ‘더 치어리더'(The Cheerleader)라고 불리우고 있는 클레어를 보라. 이거, 분명히 의도적이다! 울버린이나 사이클롭스 같은 멋진 히어로명이 있으면서도 뒤로 갈수록 더욱 더 로건이니 스콧으로 불러댔던 모 극장영화와는 정반대라니까. 또는 히로의 미래를 예지하는 아이삭의 그림이 그가 일본도 한자루로 티라노사우르스와 맞서는 장면인 것 역시 (낚시일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장르팬의 환호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 정도로 ‘골수 진성’이라면, 근육과 타이즈가 안나오는 정도의 타협은 기꺼이 받아들여주리라.

 

PS. …그런데 와이프님은 아무래도 “각본 예측”이라는 초능력이 있는 듯 하다. 같이 보고 있노라면 어떤 장르의 드라마라도 10분 뒤에 벌어질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_-; 그런 류의 능력들만 잔뜩 모아서, 한국식의 ‘히어로즈’ 드라마를 만들면 대박일 듯.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이 드라마, 멋지다 – NBC 드라마 ‘히어로즈’

!@#… NBC 드라마 ‘히어로즈'(Heroes) 보기 시작하다. 이거, 무지 재밌잖아! 참 당혹스러웠던 것이,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처음 만나서 인사 나누는 미국인들까지도 만화 좀 본다는 capcold라면 당연히 이것을 보고 있겠거니, 하고 가정을 해버리는 것. 매번 아직 안보고 있었다, 원래 드라마 실시간으로 챙겨보는 일이 없다 등등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결국 보기 시작해버렸음. 스판과 근육과 주먹이 날라다니지 않는 슈퍼히어로 리그물은 아무래도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한번쯤은 초능력을 지녔으나 밋밋한 바디를 지닌 서민들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예외를 두기로 했다. 스몰빌은 대형 히어로를 데려다가 작디 작은 일상으로 박아 넣은 소심한(?) 설정이라서 그다지 끌리지 않았으나, 히어로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슈퍼 히어로를 끌어내서 결국 대형 활극으로 이어갈 야심찬 프로젝트니까.

!@#… 초반 스토리 전개에서는 평범한 생활을 살아가던 각 주인공들이 초능력을 발현하게 되는 중. 초능력이 거의 무슨 정신이상 증세처럼 묘사되는 전개가 멋지고, 영화 엑스멘 시리즈의 영향이 뚜렷한 그 커밍아웃스러운 분위기가 재밌다. 시공간을 굴곡시키는 오타쿠 화이트 칼라 일본 회사원의 소년스러운 사고방식이 상쾌하고(실제로 이 사람은 ILM의 CG 프로그래밍이 본업, 연기가 부업), 날아다니는 근엄한 정치가 아저씨도 은근히 깬다. 그리고 당연히 슈퍼히어로물이라면 등장해줘야 하는 지구종말도 쌈박하게 예고.

!@#… 그런데 사실 그보다도 더 재미있는 점은, 드라마의 전개 방식 자체가 완전히 미국의 이슈 단위 만화 연재 포맷 그대로라는 것. 즉 몇개 화 단위로 하나의 ‘스토리 아크’로 묶인다. 1-4화가 하나의 스토리로 묶이고(심지어 그것에 대한 별도의 부제까지 붙고), 5화부터 연속되지만 다음 ‘챕터’스러운 단위의 새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 이 방식은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을 때 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뭐랄까, 슈퍼히어로라는 소재나 상상력뿐만 아니라 형식까지도 만화에 기대고 있는 드라마. 그러면서도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최대한 살리는, 매체간 영향력의 진정한 윈윈관계. 게다가 공식 사이트에 가면 매 주 온라인 만화로 각 캐릭터들과 관련된 외전이 한편씩 새로 연재되는데, 각 주에 방영된 내용과 당연히 연계된다. 이거이거, 만화를 대충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작가진 가운데 Jeph Loeb 같은 만화계의 베테랑이 끼어있을 정도니(덤으로 공동 총제작자이기도 하다).

!@#… 여튼, 만화에서 캐릭터나 소재만 따오는 것이 아니라 만화라는 양식 자체의 여러 재미 요소들을 제대로 끌고 오면 더욱 다양한 재미가 생겨난다는 명백한 증명.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인 미국 고예산 드라마계에 새로운 강자가 출현했고, 그 강자는 만화라는 말을 타고 있다. 향후 추이에 주목할 필요.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 [문화저널 백도씨/0610]

!@#… 청강대 문화저널 ‘백도씨’ 지난호에 실린 글. 폭력 특집. 당연히, 밑의 글에서 ‘힘’을 모두 ‘폭력’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뭐랄까, 이건 슈퍼히어로라면 인간적 고뇌 어쩌고는 양념이고 진짜 핵심은 역시 호쾌한 힘자랑 활극이라는 취향의 소유자로서의 소신. -_-; 보통 그렇듯 그림 이미지는 생략.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의 진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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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 [한겨레21/060309]

!@#… 최근, 여차저차 한겨레21의 해외통신원단에 합류(그래서 직함도 만화연구가나 미디어평론가 같은 식으로 하지 않고 ‘해외’를 강조한 것;;). 첫 기사로 좀 재밌으면서도 뼈있는 소식을 골라보고자 투고해 본 내용. 그래서 한겨레21 제600호에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주: 로그인 필요)이라는 제하에 게재…되었는데, 정작 해외통신원 코너가 아니라 문화면에서 픽업해 감. 여기 공개하는 버전은 늘상 그렇듯, 편집부를 거친 최종버젼이 아닌  capcold 투고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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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를 잡는 배트맨? – 유명 만화작가, 정치홍보물 제작을 선언하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과정)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라다니는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슈퍼히어로들과 맞서는 슈퍼 악당들이다. 히어로들은 설정이 그 아무리 황당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그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 일반의 사회적 상식과 정의추구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문화권마다 그 가치에 대한 차이는 상당하지만, 최소한의 공감대 정도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슈퍼 악당들은 다르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과 출처가 불분명한 막강한 재력으로 동원해낸 여러 부하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맹목적인 파괴활동을 일삼는다. 아무리 알고보면 불쌍한 사연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 질서 파괴적 행동에 공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슈퍼 악당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속시원하게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화,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만화와 종종 취향 층을 공유하기 마련인 공상과학 또는 환타지 영화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박람회 행사 ‘원더콘’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향후 1년간 이쪽 업계를 크게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들이 종종 베일을 벗는 공개 발표장소로 활용되곤 한다. 그런데 올해 원더콘 발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것 중 하나가 바로 북미 주류 만화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중인 작가 프랭크 밀러의 신작 제작 발표 소식이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Holy Terror! Batman! (‘이럴 수가, 테러라니! 배트맨!’이라는 뜻인데, 초창기 배트맨 만화의 홍보문구로 자주 쓰였던 표현의 패러디)』. 이번에는 배트맨이 조커나 캣우먼, 펭귄 같은 가상의 슈퍼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혼내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발표장에서 이 작품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파간다”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출간은 내년 정도가 될 것이며, 현재 200페이지 가운데 120페이지의 선 그림을 끝낸 상태라고 발표했다.

작품의 내용은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 시티(뉴욕시를 모델로 하고 있는 가상도시)에 알카에다가 주모한 테러가 일어나고, 배트맨이 그것을 막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왜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정치적 선전물을 자처하고 나서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인지, 작가의 대답은 분명하다: “슈퍼맨은 히틀러를 두들겨줬어요. 캡틴 아메리카도 그랬죠. 그게 그들의 당초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죠. 그들은 우리 국민, 우리 나라의 상징입니다. 민속 영웅이라구요. 알카에다가 활보하고 다니는데 ‘리들러’나 뒤쫒고 있는 것은 너무 바보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는 87년 『어둠의 기사의 귀환』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정체기에 빠져있던 배트맨 시리즈에 완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작품에서 그는 당대의 미국 현실을 살아가는 완고하고 어두운 성격의 중년 배트맨을 창조해냈고, 이 작품의 히트는 이후 90년대에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현실적인 재해석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밀러는 레이건 시대의 비합리적인 보수성과 관료적 국가 통제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연방 정부 기관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슈퍼맨과의 대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패한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통제해주지 못하는 악의 세력이 뒷골목에 넘치는데, 강고한 완력을 지닌 히어로가 그 상황을 직접 하나씩 타파해 나간다는 ‘자경단’ 정신은 이후 『신시티』 연작 등을 통해서도 더욱 공고하게 다져진 프랭크 밀러의 핵심 정서다. 특히 전 세계와 나아가 우주까지도 보호하는 절대적인 영웅인 슈퍼맨과는 달리, 배트맨은 고담시티라는 ‘자신의 동네’를 지키는 존재이기에 자경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테러가 어디에서나 일어나서 당신의 일상을 덮칠 수 있고, 정부는 그것을 제대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는 불안감이 꿈틀대고 있는 9/11 이후의 미국에서, 이러한 정서는 더욱 많은 공감대를 자아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사실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의 악당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작품들은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차대전 당시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히틀러와 일본군을 열심히 문자 그대로 두들겨 패 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을 좋아하는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전쟁 후원금 모금운동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초능력과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왜소하고 사악하게 묘사된 히틀러와 일본군들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굳이 분석적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너무나 극명한 상징을 보여주고자 한 프로파간다였다. 사실 영화나 여타 대중 매체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넘쳐나지만 그 중 특히 만화는 희화화와 과장에 있어서 워낙 자유로운 표현력을 발휘하며, 나아가 당시 가장 ‘대중적인 대중오락’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돋보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력과 대중성이라는 만화의 장점이, 오히려 만화가 선전도구로 악용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또한, 2차대전 당시의 정치 홍보성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사례에서는, 선악 구도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극도의 인종 차별적 희화화가 성행했다. ‘우리’의 결속을 위하여, ‘남’들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되고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오는 여러 문제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당시 사회의 일방적 잣대를 적용한, 표현의 자유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덮어버리곤 했다. 비록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일간의 『혐한류』, 『혐일류』 만화책 출간이라든지, 점점 더 파국을 향해 확대되고 있는 마호메트 만화 파문 역시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이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 밀러가 그려내는, 알카에다를 혼내주는 배트맨의 모험이 과연 어느 정도의 표현수위를 지니고 있을지 아직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혹시 정치적 공정성이 사려 깊게 배치되어 있으면서, 슈퍼히어로 장르의 현실성을 또 한번 재발명하는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보수층이 지니고 있는 타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지를 고려해볼 때,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년 이맘 때, 이 작품이 제2의 마호메트 만화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박스—
2차 대전 당시,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나치와 일본군을 혼내주며, 동시에 전쟁 모금도 모아주느라 바빴다. 그들의 분주한 활동상을 몇가지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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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첫 시리즈가 시작한 바람에,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부터 나치와 연관이 많았다. 붉은 해골머리의 숙적 ‘레드스컬’이 바로 나치 테러리즘 부대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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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나치 병사와 싸우면 싸움이 시시하게 끝나므로, 종종 강력한 힘을 지닌 괴물로 변모하기도 했다. 장르적 즐거움과 정치선전의 효과를 겸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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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에 의지하며 어쩔 줄 모르는 칙칙한 녹색의 나치 적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화사한 슈퍼맨의 대비는 특히 전형적인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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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들은 때로는 압도적으로 약해진다. 정의의 슈퍼히어로가 전형적인 외계 침략자의 구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역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PS. 영미권 만화에 대해서 항상 주옥같은 덧글을 달아주시는 Dreamlord님의 추가 정보+지적. 행여나 퍼가실 분이 있으면 같이 묶어서 읽으십사 본 포스트에 같이 묶어넣음.

Dreamlord: “Holy ***, Batman!”이라는 표현은 배트맨 만화책이 아니라 1960년대의 배트맨 TV시리즈에서 유래된 구절이죠.

“Holy Terror, Batman!”은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닙니다. 만화계에서는 밀러의 The Dark Knight Strikes Again이 종결되었던 2002년경에 처음 이 만화의 소식이 나왔었는데, 이번에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진것 뿐이죠. 작년까지만 해도 “Batman Vs. The Terrorists”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고, 작년 7월에 All Star Batman And Robin The Boy Wonder와 관련해서 나온 인터뷰에서도 200페이지중 120페이지를 그렸다고 말했었는데, 설마 그후 지금까지 한페이지도 더 그린게 없다는 말인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랭크 밀러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만화 300 이후 맛이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300 이후에 나온 Sin City 미니시리즈 Hell And Back, DKSA, ASBARTBW 등등의 만화들은 그림이나 대본면에서 모두 예전의 밀러 작품보다 훨씬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본만 맡은 ASBARTBW의 경우 인터넷 팬들의 반응을 보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는 것처럼, 한때 훌륭한 만화를 내놓던 밀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배트맨의 캐릭터를 망쳐놓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사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밀러의 황당한 대본을 충실하게 만화로 옮기고 있는 이용철씨의 그림이 없었다면 읽지 않을 만화입니다.)

밀러가 2차대전 당시의 만화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수 없군요.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Timely/Marvel 캐릭터들은 만화책 안에서도 적국 군인들과 싸우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 맞지만, 수퍼맨과 배트맨 등의 National/DC 캐릭터들은 만화책 표지에서만 전쟁노력을 독려했었고, 만화책 줄거리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었죠. 기껏해야 클라크 켄트가 잠깐 종군기자로 활동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었고, 수퍼히어로들이 초능력을 사용해서 전장에서 적군과 싸우는 만화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클라크 켄트가 징병검사를 받는데, 시력검사를 할때 벽을 뚫어볼수 있는 엑스레이 눈을 지닌 클라크 켄트가 실수로 옆방 방 벽에 붙어있는 시력검사표를 읽어서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내용의 만화도 있었을 정도로, National/DC 만화책의 내용에서는 자사의 캐릭터들을 2차대전과 멀리하려고 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에 나온 만화 All-Star Squadron에서는 2차대전동안 히틀러가 운명의 창을 발견하고, 일본의 군사지도자 Dragon King이 성배를 발견해서, 이들이 이 2개의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서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지대를 감싸는 일종의 보호막을 펼쳤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왜 수퍼맨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는지를 해명했습니다. 본래 수퍼맨의 약점중 하나가 마법에 약하다는 것인데, 수퍼맨이 이 보호막 안에 들어가면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기편을 공격하기 때문에, 수퍼맨을 비롯한 National/DC의 대표적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전쟁지대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야만 했고, 2차대전은 Sgt. Rock처럼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싸워야만 했다는 설정입니다.) 2차대전중의 만화책에서 수퍼맨과 배트맨은 밀러가 말한것처럼 리들러나 뒤쫓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가지 간과할수 없는 것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당시 미국 만화계에서 활동하던 상당수의 만화가들은 이민 1.5세대나 2세대 유태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당시 만화 표지 그림들의 상당수는, 유럽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친척들이 나치수용소에 감금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미국정부는 참전을 주저하고 있는 현실에 참지못한 이들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죠. 유태인인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해낸 직접적인 이유도, 유럽전쟁의 참상에 관한 소식을 그냥 듣고만 있을수 없어서였죠. 미국정부가 9/11 테러를 구실로 삼아서 자국을 공격한적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니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밀러가 과거에도 독자들의 반응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상당히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경우가 많았고 (Give Me Liberty에 나왔던 “남자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백인 우월주의 집단” Aryan Thrust, 영화 RoboCop 2에 나왔던 어른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어린 소년 범죄자), DKSA와 ASBARTBW 등은 사실 패러디인데 독자들이 잘못 해석했다는 변호를 하면서, “Holy Terror, Batman!” 역시 테러전의 승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를 가장했지만 사실은 패러디가 될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머리속에는 독립만화가 크리스 웨어가 최근 강연회에서 했다는 말만 생각나는군요. “모든 만화가들은 결국은 미쳐버리고, 화판 앞에 앉아서 죽는다.”  (2006/03/17)

캐릭터 예찬: 박쥐 옆에 개똥지빠귀

!@#… 2002년 가을 정도, 이라는 괴(?) 동인지가 나와서, 코믹 행사에 부스까지 내서 판매된 적이 있다. 아주 드물게도 – 아니 제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최초의 – 미국만화 전용 동인지였던 것이다! 미국만화 정보 사이트 카투넷의 운영자 Majorglory님의 주도하에 여러 작가들과 필자들이 참여했다…심지어 형민우, 강찬호님 등 프로 작가들도 다수. 미국식 이슈 판형을 염두에 둔 편집이 빛나는, 지금은 레어 아이템. 여하튼, 그 지면에 기고했던 글. 2호가 나오면 <영웅이라면, 스판덱스다!>라는 글을 기고하겠다고 미리 아이디어까지 다 잡아놨지만… 2호는 나오지 않고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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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예찬: 박쥐 옆에 개똥지빠귀

  2001년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1,2선발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을 두고, 한국의 각종 일간 찌라시들은 ‘원투펀치’라는 정체불명의 별명을 달아주었다(야구의 권투화?).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이들을 부르는 진짜 별명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랑스러운 “Dynamic Duo”다! 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Dynamic Duo라는 것은 바로 ‘배트맨과 로빈’을 칭하는 말이다. 슈퍼히어로계의 전설, 궁극의 2인조팀의 별명을 부여받은 두 투수들에게 영광이 깃들기를.

  배트맨과 로빈은 톰과 제리, 콩쥐와 팥쥐 만큼이나 ‘and’가 어울리는 대명사가 되어있다. 배트맨 하면 로빈이 저절로 떠올라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듯이 말이다. 원래 밥 케인이 배트맨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배트맨은 펄프 문학이나 라디오 드라마(이 중에는 한참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쉐도우‘도 있다)의 인기장르였던 느와르 풍 범죄 수사물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배트맨은 트렌치코트 대신에 망토를 두르고, 중절모 대신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원래는 ‘탐정’이었다. 그리고 그 장르의 관습들을 적극 차용해 들여오다 보니, 자연스럽게도 배트맨은 다른 슈퍼히어로들보다 꽤 하드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 주류 만화에서 슈퍼 히어로 장르가 점점 강력한 위세를 떨쳐나가면서, 배트맨 시리즈도 느와르풍보다는 뭔가 ‘히어로물 다운’ 이미지들을 적극 도입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우선은 그 어둡고 하드한 범죄수사 이미지를 벗고, 화려한 액션과 색감의 향연을 펼칠 수 있도록 배트맨에게 또다른 반쪽을 붙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짜잔! 그리하여 로빈이 탄생했다. 때는 1940년, Detective Comics#38호였다.

  로빈은 배트맨의 파트너이자, 모든 면에서 배트맨에 대한 반대말이다. 배트맨을 표현하는 이미지가 중년, 까다로움, 진지함, 신중함, 좋은 체구, 흑청색 계열의 단색 등이라면, 로빈은 청년(혹은 ‘소년’), 경솔함, 대범함, 작은 체구다; 그리고 어둠의 피조물 배트맨과는 정 반대로 빨간 웃통과 초록색 바지, 노랑 망토를 휘날리는, 걸어 다니는 색칠공부 같은 녀석이다. 박쥐와 개똥지빠귀. 당연히 대단히 부조화를 이루며 작위적인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파트너쉽이 그렇게도 최강으로 꼽힐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로빈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어두운 배트맨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저스티스 리그 아메리카같이 단지 다양한 캐릭터들을 골고루 크로스 오버 출연시켜서 마케팅하기 위한 조합이 아니라, 파트너쉽을 만들기 위해서 아예 상대 배역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치 슈퍼맨의 애인역할이 되기 위해서 탄생한 로이스 레인처럼 말이다.

  배트맨 최상의 파트너이기 위해서 탄생한 로빈. 배트맨과 로빈은 단순한 업무상의 파트너 이상으로, 마치 중년 아버지와 청소년 아들에 가까운 가족급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는, 서로 끈끈히 연결되어 있는 파트너다. 특히 배트맨의 지나치게 초인적이고 빈틈없는 능력에 대해서 일종의 핸디캡으로서 작용해준 덕분에, 로빈은 배트맨의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로빈은 슈퍼 히어로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보다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정겨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트맨 만화를 가장 열성적으로 보는 독자층인 ‘소년’들의 대변자 아니던가! 여하튼, 로빈이 배트맨의 파트너가 되어준 덕에 스토리들에는 더욱 다양한 인간적 긴장관계가 저절로 도입된 셈이 되었다.

  물론 파트너쉽이라는 것은 대단히 미묘한 관계다. 특히 범죄수사물을 기반으로 시작했던 만큼, 비중있는 ‘우리편’ 여성캐릭터가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게다가 로빈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악당들에게 납치 당해서 배트맨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여기에 더하자면, 로빈 – 혹은 딕 그레이슨 – 은 서커스 공중곡예단이었던 부모들이 살해당한 후, 브루스 웨인네 저택에 입주해서 눌러앉아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이 모든 단서들을 다 더해보고도 배트맨과 로빈의 관계가 동성애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면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것이다. 필자같은 건전무쌍한(-_-;;;) 사람도 그런 결론에 달하고 있는데, 눈에 불을 켜고 트집을 잡고자 하는 당시의 검열주의자들에게는 오죽했으랴… 짜잔~ 그리하여 ‘배트걸’이 탄생했다. 여하튼 우리편에 여자도 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배트걸의 도입은 로빈에게 있어서는 물론, 배트맨 시리즈 전체에 있어서도 사실은 백해무익했다(무슨 유치원 교사가 남녀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배트걸이라는 작위적인 캐릭터는 로빈이 맡고 있던 여러 역할들을 잠식해 들어갔고, 배트맨과 로빈의 파트너쉽이 뿜어내던 조화나 호흡은 사정없이 깨졌다. ‘Dynamic Duo’는 깨지고, ‘Dynamic Trio’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극적 긴장만 해친 꼴이 된 것이다. 배트맨은 배트맨대로 계속 나름의 입지를 지니고 돌아다녔지만, 배트걸은 로빈을 감싸안고 자폭한 꼴이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배트맨의 인기와 작품적인 잠재성을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80년대 이후의 재해석에서 로빈의 역할은 점점 더 격하되어 왔다(뭐 배트걸은 거의 완전히 무시당해버렸지만 말이다). 어디, 배트맨 ‘공식 스토리라인’를 한번 살펴 보자. 딕 그레이슨은 배트맨 스토리 안의 시간으로 6년간 파트너를 하다가, 한번 거의 죽을뻔 한 후 브루스가 그의 안위를 걱정, 팀을 깨버렸다. 그레이슨 군은 현재는 ‘나이트윙’이 되어서, 여전히 영웅질을 하고 있다. 뭐, 일종의 다 큰 자식 자립시킨 꼴이지만, 여하튼 이제는 어엿한 DC 세계관의 일원이 되어있다. 이 다음에는 제이슨 토드라는 녀석이 배트맨 자동차(배트모빌)의 타이어를 훔치려다가 2대 로빈으로 등극한다. 그리고는, 2년 정도 활동하다가 조커에게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그리고 지금은 팀 드레이크라는 녀석이 21세기형 3대 로빈을 맡고 있는데… 이 녀석은 14세, 말 그대로 ‘애’다! 컴퓨터 능력도 출중하고… 더더욱 파트너라기 보다는 꼬마 조수, 마스코트처럼 격하되고 있다. 정사는 아니지만, 배트맨 세계관 재해석의 신호탄을 날린 프랭크 밀러의 명작 ‘The Dark Knight Returns’에서도 로빈이 죽어 없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배트맨은 은퇴상태로 중노년에 돌입. 그리고 당돌한 고등학생 아가씨(!!!) 캐리 켈리가 로빈을 자청하고 나선다. 아, 그러고 보니 DKR의 후속편인 ‘The Dark Knight Strikes Back’이 최근에 시작되었는데, 캐리 켈리는 여기서 캣 우먼으로 전업을 했다고 전해들었다(이런…-_-;). DC 세계관의 종합선물세트 ’Kingdome Come‘에서도 배트맨은 독자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이래저래, 한때 배트맨의 위풍당당한 파트너였던 로빈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툭하면 죽고, 무시당하고, 없어지고, 바뀌고…

  아, 물론 배트맨의 가장 강력한 매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어두움과 음험함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 지점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Arkham Asylum에서처럼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광기, 그것은 배트맨 시리즈에서만 가능한 재해석이다. 음험한 광기는, Joker니, Two-Face니, Mad Hatter니, Dr.D니, Scarecrow니 등등 워낙 잘 만들어진 수많은 미친 악역들을 통해서 전달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배트맨 아저씨의 더러운 성깔머리도 만만치 않게 어둡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이쪽으로만 너무 흘러오다 보니, 배트맨에서 몸과 몸이 부딪히는 화끈한 액션, 곡예성 스턴트들이 너무나 매말라버렸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다지 ‘Dynamic’하지 않다는 것이다. 화끈한 액션활극 + 수사극 + 슈퍼히어로 모험의 풍미가 담겨있던 한 시대의 향수는, 역시 로빈이라는 캐릭터를 다시금 그리워하게끔 만든다. 로빈과의 파트너쉽을 통한 뜨거운 남자들간의 로망을 왜 무시하냔 말이냐! ‘dynamic duo’라는 옛 모토를 다시금 강조하는, 진짜 ‘구식 그대로의’ 배트맨 어드벤처를 한번쯤 다시 보고 싶어진다.

  필자가 지금 진짜로 보고 싶은 배트맨 재해석은, 배트맨과 로빈이 우정과 연애감정의 가느다란 경계 위에서 위태로운 곡예타기를 하는, 므흐흐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동인들이여! 달려들기를!). 아니면 ‘영웅본색’ 같은 오우삼 영화에서나 보는 끈끈한 남자간의 애증과 파트너쉽의 뜨거운 스토리를 보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도 ‘배트맨의 숨은 균형추’ 로빈이 맡아야 할 임무는 크다.

 

— 2002.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개작불허/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