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이뤄진 세계 – 노네임드 [씨네21 컬쳐하이웨이 150406]

!@#… 씨네21 1천호 개편에 따라서, ‘컬쳐하이웨이’의 웹툰 소개 마지막회. 시기상 학교라는 사회, 사라지는 사람들, 완결 그런 이미지가 적절해서 이 작품으로 골랐다.

 

학교로 이뤄진 세계 – [노네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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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백업 2013년 7월 1주까지: 한국일보, 국정원, 권력, NLL, 욱일기, 최저임금 외

!@#… 떡밥 단편들의 북마크와 간단멘트 기록용 트위터@capcold, 그 가운데 새글 알림과 별 첨가 내용 없는 단순 응답 빼고 백업. 가장 인상 깊은 항목을 뽑아 답글로 남겨주시면 감사(예: **번). 중요한 리트윗 일부는 따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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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일보 구순잔치

!@#… C일보 90주년(자신들을 조롱하는 의미의 특정 용어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던 이전 로고를 바꿨더라) 기념식에 진보신당측이 초청에 응한 것 때문에 좀 말이 무성하다… 소녀시대는 까이지 않던데. 그래서  최근 트윗에 남긴 멘트들 가운데 관련 부분만 따로 모아서 남겨둔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따로 뽑아내둘 필요는 있을 만큼 화제가 되는 이슈이되, 제대로 글을 쓸만한 중요한 측면들은 아직 정리하지 않은 경우라서 부득이하게 이런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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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통 특집기획을 읽고, 몇가지 소통 단상

!@#… 경향신문의 소통 특집 기획코너가 최근 실렸다. 신영복/박원순/윤여준 대담 이외의 다른 꼭지들이 크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없고 어째서 이 토픽에 대해서 훨씬 디테일하게 천착해온 강준만이 대담이나 기고에 들어있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혹시 계속 진행될 기획인지도 모르니 기획의 품질에 대한 평가는 유보. 다만 대담은 확실히 읽어둘 만 하고, 대담에서 언급되는 내용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한 단상은 간단히 메모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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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다시 보는, 알린스키류 담론 전략

!@#… 굳이 다시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겠지만, 정부와 거대언론재벌 블록이라는 막강한 미디어스핀 복합체 짝짜쿵 쑈에 맞서기 위한 담론 전략들이 절실한 5년간이 한국 사회의 앞에 펼쳐져 있다. 미디어의 기술적 기반이야 인터넷도 있고 블로고스피어도 큼지막하고 원하면 찌라시도 막 뿌리고 할 수 있다고는 쳐도, 문제는 담론전략이다. 스핀닥터들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고 제정신인 담론을 보급하고 싶다면 어찌되었든 너도나도 분노의 토로보다는 좀 더 효과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야의 가장 고전적인 모범 전략, 일종의 운동판 손자병법인 알린스키Alinsky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들 Rules for Radicals’을 살짝 다시 들춰보게 된다. 국내에는 베르베르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소개한 10개 항목 버전이 주로 퍼져있지만, 여기서 들추는 것은 71년 출간되었던 알린스키의 책에 나온 완성판인 13개 조항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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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5년째.

!@#… 5년전 오늘 – 한국시간으로 보면 이미 어제 – 세계사의 흐름은 바뀌었다. 아니 사실 별로 바뀌었다기보다, 이미 망가져가고는 있었지만 더욱 가속되었다는 쪽이 맞겠지. 몇명이 죽었느니 상징적인 전쟁이니 하는 테러의 부산물(!) 격인 비극 말고, 바로 공포‘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테러‘ 본연의 진정한 목적이 훌륭하게 충족되었다 (여기에 관한 진짜 명 칼럼이 하나 있다… 영어지만).

!@#… 효과적인 지배구조에 있어서, 피지배인들의 이성과 성찰만큼 성가신 것은 없다. 테러 같은 초대형 부도덕 이벤트는 한 큐에 사람들을 흥분/분노시키고, 그 뜨거운 열기는 순식간에 이성을 증발시킨다. 당한 사람은 당한 사람 나름대로, 입힌 사람은 입한 사람 나름대로. 당한 사람이 입힌 사람에게 보복을 해서 입힌 자가 다시 당한 자가 되고 다한 자가 입힌 자가 되면 더욱더 모두들 사이좋게 공평하게 광기스러운 멍청함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가장 간단하고 뚜렷해 보이는 자기보호의 상징(실체는 어떻든 간에)에 본능적으로 매달려 든다. 그래서 아랍 세계는 맹목적 강경 이데올로기의 기치 아래 한층 똘똘 뭉쳤고, 부시 정권은 미국의 경제와 외교와 문화와 교육과 복지를 말아먹고도 재선되었다. 모두모두 윈-윈 게임. 이렇게 “해피한” 결과가 나왔을 정도인데, 9/11 자작극 음모론이 안나오면 오히려 이상하겠다. 덤으로 한국의 부화뇌동자칭보수실질바보 세력들도 충미의 길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었고.

!@#… 공포에 의한 권력의 도식: 1) 두렵게 만들어라. 두려워해야할 상황을 일부러라도 만들어내라. 2) 내가 너희들을 지켜줄꺼야, 라고 이미지를 풍겨라. 3) 공고해진 권력을 즐겨라. 여기에 저항하는 방법, 간단한 원칙을 잊지 말자. 1) 두려워하지 말아라. 2) 이미지에 속지 말고 머리로 생각해라. 3) 권력을 즐길 틈을 주지 말고, 물심 양면으로 괴롭혀라.

PS. 9.11 5주년이라. 이번 10월 7일이면 미국이 고작 10여년전에는 우방으로 해방전사로 추켜세우고, 같은 해 3월에는 지진구호를 해준다고 국제 기구까지 들어갔던 바로 그 아프간을 밟아버린지 5주년. 다음 3월 20일이면 안그래도 십여년 넘게 경제봉쇄로 말려죽이고 있던 이라크를 구라로 핑계까지 대가면서 박살낸지 4주년. 뭐, 사람들은 별로 기억 안해주지만.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쪼잔하게시리, 비지니스석에 열받다

!@#… 이런거 신경쓰고 다니면 사람이 쪼잔해진다는 건 알지만, 생각할수록 열받네. (클릭)

뒷부분에 나오는 말: “안 교수는 왕복비행기 편 모두 1인당 이용료가 580만원인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했다“. 자기 것도, 기자 것도, K연구원 지도교수 것도. 이런 신발, 이게 다 얼마야. 연구원들은 40만원 주고 라면먹이고 주말근무 다 시키면서, 지들은 무려 비지니스석으로 다니는구나. 그래, 그것이 바로 인생. 그런 마인드니까 2005년 논문도 저자표기가 권력서열순으로 되어있지.

절대적인 힘에 관한 오락 – <데스노트>[기획회의041102]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뭐랄까, 하늘을 날아다닌다든지 순간이동을 한다든지 괴력을 발휘한다든지 하는 소박한 초능력과는 비교가 안되는 막강한 권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과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최근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 그대로 바둑을 소재로 하는 만화인데, 이 작품이 연재된 일본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바둑 붐을 일으켰을 정도로 큰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뭐든지 한번 히트하면 확실하게 붐이 일어나는 일본이라지만, 젊은이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확실하게 쇠퇴하고 있던 일본 바둑을 다시 일으킨다니… 범상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 내용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펼쳐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바둑이라는 분야) 스스로도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소년이, 다듬어진 천재인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면서 각성, 뜨거운 우정과 경쟁의 관계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는 주인공 소년의 각성과 성장을 지도해주는 트레이너(이 경우는 과거 바둑의 명인이었던 유령)가 존재한다.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든 것은, 결국 두 주인공 사이의 팽팽한 긴장관계다. 서로 완전히 대조되면서도 사실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적대 관계이면서도 서로 우호적이며, 라이벌이자 서로의 성장의 원동력. 바둑이라는 상당히 정적인 활동인데도 불구하고, 두뇌싸움을 넘치는 박진감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했던 것이다.

바로 그 작가, 오바타 타케시(스토리: 오오바 츠쿠미)의 신작이 최근 발간되었다. <데스노트>라는 작품인데, 무려 고등학생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다. 저승사자(사신)들은 공책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그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히는 사람은 죽는다. 염라대왕의 명부라는 오래된 테마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셈인데, 사신 중 하나가 인간계에 그 노트를 떨어트리고 주인공이 노트를 주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름대로 끔찍한 도구를 손에 쥐고 고뇌하고 갈등해야할 주인공…을 기대하겠지만, 이 작품은 약간 다르다. 하필이면 그 주인공은 천재 고등학생이었고, 이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세계의 범죄자들의 씨를 말려서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곳의 지배자로 군림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세계 최고의 탐정, 가칭 ‘L’이 달려드는데…

전작과는 다른 스토리 작가 덕택에 소재는 완전히 하드하게 바뀌어버렸지만, 작가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인 두 천재 사이의 두뇌싸움을 들고 왔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즉 범인과 탐정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트레이너가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전히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대결이 이루어지고, 대부분이 대화와 표정연기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주면서 히트작으로 등극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리 소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불리우는 일본의 주류 만화판이라 할지라도 유수의 대중적인 소년만화 잡지에서 무려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만화를 연재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모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소재 선정의 특이성에 특화되어 있는 일본만화계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경우지만, 동시에 적지 않게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몇몇 천재소년들이 아니라, 바로 ‘데스노트’라는 도구 그 자체다. 절대적인 힘이 주어질 때,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바로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다. 공책을 주운 주인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자들을 일방적으로 살인한다는 설정이 주는 부도덕한 쾌감도 잠시에 불과하다. 곧 그가 살인 대상을 그의 정체를 추적하는 수사관들까지 확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섬뜩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를 추적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희생을 전혀 개의치 않는 추적자 탐정의 행동 역시 즐기기 힘든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불쾌함이 극에 달하는 부분,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두 명이 서로 다른 곳에서 “내가 바로 정의다”를 외치는 장면까지 오면 이 기이한 소년만화의 사악한 재미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특별히 어떤 성찰적이거나 교훈적인 무언가를 표방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 주류 만화판의 소재 중심 제작방식의 첨단에서 나온,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주류 오락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합적인 심경을 느끼고야 마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로서의 입장에서 지어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전혀 갈등하지 않는 확신에 찬 – 마치 야구에서 우승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다짐을 하며 좀 더 효율적인 살인에 매진하는 주인공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무언가 모를 찝찝한 자극을 느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이유가 없다. 나도 그런 힘이 주어지면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감의 능력이 발동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공감’이야말로 대중 오락에서 생성되는 재미의 근원이 아니던가.

‘권선징악’이라는 명제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기는 자가 ‘선’이고, 진 자는 자연스럽게 ‘악’으로 사후 규정되는 세상이니까. 가끔은 그런 냉엄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대놓고 직면시켜주는 주류 오락물이 나와서 히트치더라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주변에 ‘데스노트’가 떨어져있지나 않은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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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어떤 질서에 관하여 – <니나잘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마찰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갈등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원만한 합의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지만 많은 경우 강제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강제적인 권위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누구를 감시하고 심판할 것인가에 대한 질서가 필요하고, 그러한 권력의 양을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된다. 서열, 계급, 직급, 사회원로, 뭐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다. 

국산 학원폭력물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니나잘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명문 학생 주먹조직 스콜피온, 그 리더인 이후, 그리고 차기 리더 후보 3인방의 수련과정이 전체 스토리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장르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학교의 주먹 조직이 있고, 그 조직 내부에서 또는 다른 학교 조직들과의 마찰 속에서 완력이 탁월한 주인공들이 싸움을 통해서 자기 위치를 굳혀나아가는 이야기. 그 와중에는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고, 연애담도 있고, 개그도 있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조직적 서열 관계 속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점차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로서, 성인만화의 가장 인기있는 장르인 조직폭력물(넓게 보자면, 무협만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에 속한다)을 청소년용으로 변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이들의 조직이 아예 학교의 평화와 안녕을 다스리는, 일종의 공인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완력이라는 단순명쾌한 비교척도와 선후배라는 서열개념이 결합되어, 완연한 힘에 의한 질서를 구축한 이상적인 조직형태. 심지어 문제아 집단이 아닌 치안유지자로 받들어지기까지 한다.

오한이 든다.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폭력은 나쁜 것이니까? 아니다. 이유는 좀 더 단순한 곳에 있다. 바로, 누구나 그러한 방식의 ‘질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닌, 단지 질서를 위한 질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당연한 미덕으로 떠받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만화를 읽다가도 난데없이 머리 속에는, 관습헌법 같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가져다 붙이면서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질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괴인들과, 여기에 아무 생각 없이 환호하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왕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어서 뽑아든 장르오락물인데… 현실도피에 또다시 실패했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11. 5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