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19년 뽀삐], 그리고 성장의 버팀목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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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크지 MANAGA의 연장선이자, 크리틱엠을 통해 부각된 젊은 필진들이 중추가 된 웹툰평론 웹진 ‘유어마나’의 개장을 축하하며 동시에 일련의 무익한 설화에 대한 교통정리를 겸한 기고글. 마지막 문장에는 아예 대놓고 무엇을 이뤄야하는 것인지 목록을 던져버림.게재본은 여기로.
웹툰에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생각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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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15년 허영만 작가 특별전의 일환으로 작성된 작가론 연구보고에서, 온라인 환경 적응에 대해 한 챕터 일임. 보고서가 어찌 완성되고 활용되었는지는 못 들었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백업 게재.
허영만: 종이만화 시대의 대표작가, 온라인 적응기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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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농담 비율이 높은 글이지만, 작화력을 판단하는 어떤 잣대로서의
“필요한 표현 대비 구현된 표현”은 언젠가 더 세밀하게 설명해야하는데 아무도 원치않을 진지한 이야기. 게재본은 여기로.
이말년 vs 주호민, 세기의 작화력 대결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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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만화스타의 웹환경 적응기 관련해서는 몇가지 더 준비해놓은게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더 이야기할 일이 생기겠지 한다. 게재본은 여기로.
[고수], 고수가 웹툰에 적응하는 방법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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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와 달’ 후속은 큰 필요 없을 것 같지만(에반게리온 극장판 만큼이나), ‘남자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지 아직도 궁금하다. 전문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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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나라’를 재시동했으면 좋겠으나 사실상 ‘영년’이 그런 역할…인데 그럼 또 영년은 언제 재시동하려나. 전문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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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콜닷넷 연례행사, 올해의 베스트 2015년 시리즈. 그중 첫타는 늘 그렇듯 한 줌 사람들에게만 나름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capcold 세계만화대상. 세계라고 해놓고는 한국이라는 만화권역 기준에서만 뽑는 상.
작년 것을 그대로 복붙하는, 애매하면서도 간단한 선정기준.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완성도와 의미를 갖춘 작품들이지만, 굳이 한국작가에 한정되지 않고, 꼭 2015년에 나왔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도 대중성도 매니아적 깊이도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저 2015년의 만화, 만화 관련 사건들. 순위 같은 것은 계산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순. 왜 이 작품은 없는가 물어보신다면, 바로 작년에 이미 뽑았거나(예: 송곳) 까먹었거나 너무 연말에 출시되서 아직 못읽어봤거나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거나. 여기 뽑힌 작품이나 사건에 관여하신 분이라면, 알아서 뿌듯해하시면 됨. 아니면 말고.
!@#… 기획회의 서평코너의 만화부문을 담당한 마지막 원고. 2004년 10월부터 상당히 누적되었으니 총정리를 한번 해봐야할텐데, 뭐 언젠가 여력이 생겼을 때의 이야기. 우연하게도 마지막을 표현적 성취든 내용의 발랄함이든 꽤 취향직격인 작품으로 가게되었다.
명랑가족모험만화의 미덕 –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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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잡지 ‘멘스헬스’의 기획코너에서, 통찰력, 창의력, 추진력, 분별력, 친화력이 돋보이는 만화를 추천해달라 하여 보낸 소개글.
!@#… 어쨌든 떠들썩하고 평온하고 사랑하고 호구되고 지리하고 통쾌한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
그저, 사람들 – [엄마들]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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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에 대한 고민은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지난 여름(…) 게재본은 여기로.
“효과툰” 릴레이는 공포에 성공하였는가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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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애캐는 역시 마빡. 전문은 여기로.
“그런데 의협 부분은 좀 더 복잡해진다. 분연히 무력으로 나서야할만한 옮음의 추구란 대체 무엇인가… 일종의 사색적 무협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무예로 도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문답에 가까운 논변을 펼치는 과정에서 무의 근본이 드러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