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기반한 분노의 민폐 [팝툰 14호]

!@#…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이 글을 바탕으로 쓴 팝툰 칼럼. 지금이야 대세가 분노에서 다시 한풀 꺾이고 호사가 모드(신정아 사태라든지, 디워 미국 정복 자뻑기라든지)로 바뀐 듯 하지만, 분명히 다시 기회만 되면 터질 패턴이니 역시 적어두는 것이 좋겠지. ‘출처 묻지마’ 문화의 폐단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수도.

가정에 기반한 분노의 민폐

김낙호(만화연구가)

더운 여름 한 철 동안, 한국 시민들의 담론 공간은 열심히 분노하느라 바빴다. 아프간 피랍사건, 학력위조사건, 영화 ‘디워’를 둘러싼 논쟁… 이런 큰 사건들은 하나같이 열렬한 분노로 이어졌다.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학력사회의 엘리트들에 대해서, 소위 ‘충무로’와 ‘평론가들’에 대해서 평소의 불만을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느라 분주했다. 개인들은 점점 더 강해지는 온라인의 1인 미디어들의 힘까지 얻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뱉어내며 서로 뭉치고, 기성 언론은 이들의 분노를 가지고 장사를 해먹기 위해서 충실히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여름의 끝무렵, 석방된 아프간 피랍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분노의 여름은 클라이막스를 맞이했다.

분노 자체는 당연히 특별히 나쁠 것 없다. 하지만 분노는 본인에게도 분노를 받는 이에게도 심지어 그 광경을 옆에서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워낙 에너지 소모적이기 때문에, 발전적인 결과를 끌어오기 위한 촉매로 써먹지 못하면 모두에게 손해다 – 그저, 표출하는 사람에게 약간 스트레스 해소가 될 뿐. 그런데 발전적 결과, 즉 내실 있는 토론과 교훈, 향후 계획으로 이어가기 위한 기본 조건은 바로 ‘믿음’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종종 믿음의 격렬한 확대 전파로 끝나버리곤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기획회의 070901]

!@#… 솔직히, 루미코 여사보다 최소한 한 수 아래. 아다치는 어떤 성인 감성 소재를 들고와도 결국 뼛속까지 청춘 소년의 한계를 못벗어난다… 아니 뭐 꼭 벗어나야할 필요는 없지만.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

김낙호(만화연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는 종종 일정한 후회가 따른다. 좋든 싫든,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보이니까 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그래서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상념이 드는 것은 굳이 지난 주 로또번호가 아니라도 인생의 여러 순간에 대해서 해당된다. 왜 그 때 붙잡지 않았을까 하는 연애사든, 왜 그 때 좀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추구하는 과정이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런 식으로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회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철없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지나간 것을 돌아가서 바꿀 수 있을 리도 없는데, 그런 상념에 쓸 지혜를 차라리 지금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다. 가끔 그런 상상이 현재의 삶에, 앞으로의 선택에 비슷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같은 ‘철없는’ 희망,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텐데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생사, 어차피 살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종종 드러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럴 때, 철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이 온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이웃의 우토로 [팝툰 13호]

!@#… 8월 마지막주 발간 팝툰에 실린 원고. 다행히 우토로 토지구매 협상시한이 9월말까지 한달 연장되어, 약간은 더 유효한 이야기로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기본 내용이야 전에 이야기했던 ‘우토로 써먹기‘ 논지 그대로(애초에 같은 타이밍에 썼으니… 하지만 이 연재칼럼 성격에 맞게 서술했을 뿐).

이웃의 우토로

김낙호(만화연구가)

비단 새로운 현상은 물론 아니겠지만, 유독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커다란 이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국민’이라는 화두를 달고 나타났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든, 아프간 피랍 사건이든, 영화 디워든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 마다 항상 궁금해지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가 국민으로 이해되고, 무엇이 정말 국민정서, 애국주의니 하는 말로 정말 이슈화가 되는지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실제로 화제가 어떤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가는 것은 어떤 경우인지 말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슈퍼히어로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판타스틱 0708]

!@#… 연재칼럼은 없어졌지만, 여차저차 취향이 꽤 잘 맞는 관계로 즐겁게 원고 참여하고 있는 장르문학/문화 잡지 ‘판타스틱‘ 지난 호에 실린 것… 의 편집 전 탈고버전. 도판 들어가고 멋지게 편집된 완성본을 보고 싶은 분은 재고 떨어지기 전에 과월호 구입하시길. 여튼 탈고시점에서 두어 달 지난 현재는 시즌2가 성황리에 방영중이고 이미 시즌1의 만화책도 발간된 상태다. 재미있는 발상, 재미있는 팬덤.

 

슈퍼히어로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과 슈퍼히어로 컬쳐

김낙호(만화연구가)

누구나, 아니 적어도 소년 시절을 보낸 이들, 아니 최소한 TV, 만화, 게임, 영화 등을 보며 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한번쯤 즐겼을 놀이가 있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서로 무언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어 서로 능력싸움을 벌이는 것. 한마디로 왕년에 가슴에서 브레스트 파이어 한번 안 쏴보고 눈에서 레이저빔쯤 안나가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때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슈퍼영웅이나 로봇을 흉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새로 자신만의 새로운 초능력을 가진 영웅을 발명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능력으로 싸우면서 자기 능력만의 독특한 강점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고, 그리고 의외의 약점을 파고드는 적들에게 밀린다. 그 와중에 계속 설정에 설정을 덧붙이며 우기고 우겨서 결국 놀이터의 우승자가 되어보고 싶어 한다. 어린이 놀이가 아닌 실제 어른 생활에서도 다소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패턴이기는 하지만, 그 원형적인 초월적 능력과 순수한 정의의 승부의 즐거움은 항상 한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은 꿈이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국인 SCi-Fi 채널에서 2006년 여름에 방영한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Who Wants to be a Superhero)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슈퍼히어로 되어보기 놀이의 성인 버전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재능과 소망 사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기획회의 070815]

!@#… 출판 전문 저널에 바로 이런 작품을 소개하는 재미가 바로 이런 연재를 계속하는 이유. 핫핫핫. 그러고 보니 재능과 현실의 차이를 다룬 다른 장르의 명작이 최근 한 편 있었으니, 바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전혀 달라!!!)

재능과 소망 사이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날 일은 좀처럼 드물어서, 오히려 많은 경우 꿈을 꾸는 것은 처절하고 고생스럽다. 그리고 그 고통이 있기에 결국 그 종착역에 도달했을 때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며, 꿈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고통도 고통 나름이다. 꿈을 추구하지만 운이 나쁘거나 재능이 없거나 해서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그나마 다행이다. 이루지 못하는 고통은 꿈을 향한 하나의 길 위에 있는 장애물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꿈과 정 반대의 영역에서 재능이 넘쳐날 때다. 단지 꿈을 향한 난관을 극복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까지 선택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인질극, 협상은 있다 [팝툰 12호]

!@#… 시사 화제는 빠르게 바뀌지만, 실제 사건들은 그렇게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끔은 줄줄이 사탕 현상도 있는지라, 지난 호에 썼던 학력사기 이야기가 다시 오만 사람들의 고백 행진으로 뻗어나가질 않나… 거의 3주 전에 탈고하고 이번 호에 들어갔던 인질극 이야기 역시, 이제 두명 석방된 채 결렬이니 뭐니 이야기하면서 무한 대척 상태. 그 동안 욕할만큼 하고 스트레스 풀고 후련들 해졌는지, 놀랄만큼 잠잠해진 온라인 담론 공간. 하지만 실제 사건은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참, 본문에 언급한 협상정책 운운은 전에 여기에서 이야기한 것.

인질극, 협상은 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아프간 인질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일 듯 안 보일듯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애태우며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더 큰 소란은 정작 이들이 억류된 그곳이 아니라, 억류된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뭐 경솔하게 그들을 보낸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좋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한국 기독교의 여러 축적된 모순들에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좋지만,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인질들을 국내로 무사하게 데리고와야 한다는 전제는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예 ‘협상을 하지 말라’는 식의 여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미국이나 선진국들은 절대 협상을 하지 않는다느니, 협상을 하면 그 결과 오히려 더 많은 인질납치를 불러일으킨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여름날 방치해둔 우유한컵 속 곰팡이 마냥 빠르게 번져나가곤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