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기억상실, 담론의 리셋: 저작권, 군가산점, 기타등등

!@#… 최근의 블로그 포털, 메타블로그들을 둘러보면 온라인상에서 담론꾼들이 이야기하는 ‘대세’의 흐름(또는 몰이)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밥먹은 거나 여행간 이야기 말고, 정말 서로 열올리며 말꼬리 붙잡기도 하고 장문의 내용들을 올리며 열내는 그런 의제들. 요새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저작권 개정’과 ‘군 가산점 부활 논의’ 였는데, 또 언제 금방 다른 것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바로 전 주만 하더라도 선관위 발표를 가지고 곧바로 표현의 자유에 불타오르는 내용들이 주종이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솔직히 좀 의아하다. 데자뷰랄까. 어디서 언젠가 이미 본 내용, 본 논쟁이 95.49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진지하게 새로운 시각과 이론을 제시한다는 듯이 글들을 생산하는 모습들을 보면, 말리기도 좀 그렇고. 같은 캐릭터로 경험치와 아이템을 쌓지 않고, 접속할때마다 새로 Lv1에서 새로 시작하며 렙업노가다를 하는 모습이랄까. 이상한 건망증이다. 이미 나왔던 이야기들은 대충 생략하고 그 위에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제안, 또는 새로운 시각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귀찮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까. 자료는 넘치지만 정작 담론의 축적이 없는 모습. 하기야 워낙 이런저런 일들이 펑펑 터지니까(터지는 것 처럼 보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capcold도 스스로 과연 요새의 그런 안건들에 대해서 뭐라고 했었던가 다시 한번 기억을 되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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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뒤져보자: 선관위, 선거법, 인터넷상의 정치 표현

!@#… 최근 블로고스피어를 뜨겁게 달군 토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인의 인터넷상 선거 관련 의사표명에 대한 선거법 적용 관련 기준 발표 (좀 더 쉽게 표현하고 싶지만, 단순화하기도 싫다). 굳이 이미 오고간 수백의 성토에 굳이 더 한두마디를 덧붙일 이유는 전혀 없듯, 그 발표에서 이야기하는 기준은 그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충분히 아스트랄한 결과이며 표현의 자유를 크게 옭아맬 여지가 엄청나다. 그런데… 사실 그 문제를 파고 들다보면, 그 발표를 한 선관위를 욕 한바가지쯤 더 하는 것 정도로는 도저히 뭔가 해결될리가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선관위의 발표를 거부하는 촛불시위라도 할까? 그래서 해결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하겠지만, 아니잖아. 선관위는 실제로 처벌을 내리는 사법기관도 아니고, 그들의 적용기준이야 발표했다지만 법 자체를 만드는 입법기관도 아니다. 즉 상식적으로 봐도 잘못은 있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잘못이고 또 어떻게 고칠 수 있냐, 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 사실 핵심은 간단하다. 의사소통의 기술과 수요, 활용은 발달했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조율하는 제도는 그 다양함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핵심에 인터넷, 그리고 최근 1-2년간 ‘개인의 인터넷’이 떠오르고 있고. 그런데 정작 그 괴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소통의 차원과 실제 정치의 차원이 점점 서로 분리되고 그 갭에서 정치혐오, 시스템에 대한 대안 없는 냉소가 자라고 있는 것. 그래서 한번, 선거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최근 수년간의 스토리를 한번 다시 뽑아봤다. 주연 선관위, 국회, 모 정당들, 인터넷과 언론들 등등. 선거법을 놓고 벌이는 뜨거운 애증의 소용돌이. 한번, 언론을 뒤져보자(귀찮아서, 대체로 경향신문 하나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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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청년과 캡콜드닷넷에 관한 근황을 빙자한 잡설

!@#… 근황을 빙자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담 몇 가지.

!@#… 요새, 캡콜드닷넷이 종종 트래픽 초과. 어차피 오페라청년 포스트 때문인 만큼 트래픽 업스케일을 하기보다는 그냥 며칠만 버티면 되겠지 하고 일일 트래픽 리셋 방식으로 대처 중 (한번 리셋하는 데에 550원 소요 ㅜㅜ). 2000비지터 5000 페이지뷰가 일일 500메가의 한계. 타이밍 좋게 리셋해서 3000비지터에 8700페이지뷰까지 찍기는 했지만, 이놈의 거품 인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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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답 (문답놀이의 마수에 걸려들다)

!@#… 이름 문답… 받아버리고 말았다. 며칠 좀 됐지만.

(조건)
1. 경로를 표기한다
2. 꼭 문답을 넘긴다
3. 문답작성자를 지우지 않는다.

경로: 히로 -> 누밁-> 치아키-> 리디-> 유화-> 은휴-> 히나키츠-> 버닝오크-> 씨감탱-> 토선생-> 토식 -> 교빈 -> T.p -> 케렉스-> 토코 -> 카르 -> 이요만테 -> 사피엔스 -> 이르 ->kashumir ->개보린->워스트->낫군->참치는 ->작은욕망 -> ->앙아떼지-> 석류 -> 이찌 ->샄샄 -> 하노미 -> 댕글-> 키라 -> 리넬->두마리-> 블러디->세츠나 ->스왕->조사장->신용진->모리옹->라비또>카메모토->디야>천재소녀>rena☆★->핑쿠미더덕->아오->zelu->수염->루셀->하얀까망->대산초어->위호지처->시바우치 -> capcold

1.당신의 닉네임은?
-capcold.

2. 닉네임이 지어지게된 계기는?
– 1994년, 최초로 PC통신 나우누리에서 돈 내고 개인아이디를 만들 때 (그 전까지는 공짜 아이디를 쓰거나, 남의 아이디에 기생). 무척 썰렁/냉정/냉혈한 성격을 반영하여 만들었음. 당시의 컴퓨터통신 문화에서는 아이디를 한번 만들면 좀처럼 바꾼다거나 하는 것이 힘들었던 터라, 1) 그냥 기억하기 쉽게 이름 약자에 번호 붙이는 나태한(…) 분들 아니면 2) 이번 기회에 내 정체성이 듬뿍 드러나는 진정한 자아를 표현하겠다는 의지의 괴상한(…) 분들 투성이었으니 뭐;;; 한번 만들고 나자, 이런 말도 안되는 이상한 닉을 중복으로 쓰는 사람이 절대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마음껏 이걸로 활동. 지금까지 단 한번 capcold가 없어서 capcolds로 가입한 곳이 있는데, 그건 알고보니 내가 수년전 가입하고는 번호를 까먹은 경우였음.

3. 그밖의 여러곳에서 쓰는 닉네임 3개
– 그런 것 없음.

4. 각각의 닉네임이 지어지게된 계기는?
– 없다니까.

5. 닉네임 이외의 별명은?
– 기계인간. (여러가지 의미에서)

6. 온라인에서 당신은 뭐라고 불리는가?
– 캡콜드님. capcold님. 한번은 coldcap님(하하).

7. 현실에서 당신은 뭐라고 불리는가
– 본명. 오프라인에서 닉으로 부르기에는 내 닉이 너무 낯간지러운가보다.

8. 온라인에서의 호칭이 더 끌리는가
– 경우에 따라서. 예를 들어, 내가 스스로를 3인칭화할 때.

9. 당신의 본명이 마음에 드는가?
– 마음에 든다.

10. 마음에 든다면 이유
– 1) 중복이 많지 않아서.(중복안내) 2) 복모음이 없어서 서양인들에게 이상하게 읽힐 위험이 적은 편.

11. 마음에 안든다면 이유와 자기가 바꾸고싶은이름
– 귀찮아. 바꾸긴 뭘 바꿔. 참, 고등학교때 한자로 쓰여진 본명을 보고 무려 김난천이라고 적어놓은 아주 무식한 국어교사(!)가 있었다.

12.내’가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나라가 어디며, 그 나라에서 불리고 싶은 이름은?
– 이미 유학중이다-_-. 미국. 본명 쓴다.

13. 내가 중세의 귀족이 된다면 귀족적인 느낌으로 내이름은?
– 다스 베이더.

14. 만약 나와 어느 유명스타의 이름이 나와 같다면 나에게 어울릴만한 유명스타의 이름은?
– 옵티머스 프라임.

15.살면서 이런 특이한 이름 들어봤다.
– 비달사순. 사순절과 관련있는 줄 알았다.

16. 내가 어른이 된다면 나의 이름뒤에 (혹은 앞에)붙는 지위나 호칭은 무엇이 좋겟다고 생각하나?
– ‘놈’이나 ‘새끼’만 아니면 뭐든 상관 무.

17. 이문답을 넘길 이웃중 이분! 정말 닉네임 잘 지으셨다. 3분 선정하고 넘길것
* 바톤터치 수는 제한 없음 10~20명까지 가능!
…그럼…평소에 궁금했던 분들로…
1) nomodem님.
2) 기린아님.
3) dcdc님.

빌게이츠 연설, 창조적 자본주의를 듣고 엘리트주의를 생각하다

!@#…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버즈워드가 뜨고 있다. 출처는 바로 올해의 빌 게이츠의 하버드 졸업 축하연설 (이자 자신의 30년만의 졸업 소감). 국내 언론에서 최근 무지하게 소개되었는데, 그다지 별 재미 없어 보여서 무시하고 있다가 여차저차 연설 원문을 접하게 되었다. 아니, 이거… 상당한 이야기인걸!

연설문 전문 (클릭. 장문의 영어의 압박)
연설문 동영상 (클릭. 게이츠 재단 제공. 당연히 무자막)

!@#… 한국의 여러 신문들의(특히, 다분히 “닥치고 돈”을 외쳐온 경제전문 또는 ㅈ일보들) 해석과는 달리, 빌게이츠가 주장한 ‘창조적 자본주의’의 본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따위의 애매한 도덕률이 아니다. 그 개념의 핵심은 바로 시장의 도달 범위와 작동방식을 확대하고 개조해서, 불평등으로 인하여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던 영역의 사람들까지도 먹고 살만한 구석이 생기는 강력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 그에게 있어서 가난한 자들이 그런 열악한 상황에 처한 것은 바로 “because their mothers and their fathers had no power in the market and no voice in the system”, 즉 선대에서부터 시장에서 힘이 없고 시스템에서 발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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