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 제대로 들어가면 아싸리 길고 난해하고 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사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은, 거두절미하고 토막으로 우선 펼쳐버리는 것이 낫다. 아직도 여전히 촛불 정국 관련, 광장과 귀찮음과 전의경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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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과 판촉(下) [만화규장각 칼럼/60호]

!@#… 지난 회에 이어서 계속. 상품과 판촉 위주 사고의 기초 그 두 번째 시간.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상품과 판촉(下)

김낙호(만화연구가)

지난 회에는 상품과 판촉이라는 기본 개념의 구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물건을 내놓는 사람이 상품과 판촉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상품은 돈의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 저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우선 단순한 차원이라면 자기 돈이 나가는 것에 대한 대가가 어떻게 돌아오는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고 만약 손해를 본다고 느낄 때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즉 (지극히 주관적인) 돈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값어치의 판단 기준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것은 바로 내 손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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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과 판촉(上) [만화규장각 칼럼/59호]

!@#… 현재 만화규장각에서 연재중인 약간 이상한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의 과월호 분량을 캡콜닷넷에 백업 시작.

 

칼럼: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상품과 판촉(上)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원작 영화나 드라마의 범람을 보면서 한국만화계의 부흥을 이야기하는 쪽도, 대여점 위축을 필두로 한 출판 시장 축소를 보면서 한국만화계가 망했다고 울부짖는 쪽도,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하며 웹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야기하는 쪽이나 다른 어떤 쪽이라도, 대부분의 논의에서 한 가지 공통된 테마를 가지고 있다. 바로 만화로 돈 버는 것의 어려움 말이다. 한국의 만화 시장이 수치로 나오는 것만큼 그렇게 거대하고 세계 순위권이라면 도대체 왜 웹툰을 그리고 있는 나는 이렇게 살림이 어려운가? 한문 학습만화가 장기간동안 밀리언셀러를 달리고 있다는데 왜 내가 만든 책은 안 팔리는가? 왜 내가 볼만한 책은 줄어드는데 그나마 볼 만한 책은 값이 계속 올라서 더욱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가? 공짜 스캔만화는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가(읽기 위해서 찾는 이들과 잡기 위해서 찾는 이들이 동시에 하는 질문)? 왜 연재 당시에는 수십 수백만 힛수를 자랑하는 유명 만화였는데 책으로 나오면 안 팔리나? 뭐,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물론,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해명하는 해답도 없다. 다만 있는 것은 정부나 업계가 만화에 대해서 너무 산업적 접근으로만 하고 있다, 문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지난 10여년의 만화계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은 산업적 접근으로도 그다지 체계적인 노하우를 쌓아오지 못했다는 것 뿐. 성공의 사례들은 있지만, 성공의 시스템은 부족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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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추해도 정밀하게”

!@#… 새로 사이드바에 달아놓은 좌우명 “쫌 추해도 정밀하게”가 무슨 의미인지 문의하신 분이 있어서, 간단 해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intherye님의 리플에서 얻었는데, 원래 있던 비교적 직관적인 좌우명 “I might be wrong, so prove me wrong”(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틀렸다고 증명해주시길”)과 달리 약간 추가 설명이 필요할 듯 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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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공교육 [팝툰 31호]

!@#… 지난호 팝툰 원고. 그 후 시위의 양상이 확 바뀌어서 이제 화제성은 묻혔지만, 공교육과 민주주의 참여는 여전히 계속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바꾸어나가야 할 중요한 건이다.

 

길거리에서 공교육

김낙호(만화연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야매로 결정된 현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이 촉발시킨 광우병 정국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10대들의 참여다.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분연히 일어섰든 뜬소문을 믿고 팬클럽 단위로 왔든 간에, 중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항의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떤 영악한 이들은 이 기회를 틈타서 10대에게 새로운 ‘광장세대’의 희망을 찾는다며 소위 88만원세대를 더욱 개차반 취급하기에 바빴고, 어떤 다소 정신이 박약한 이들은 무려 어린 청소년을 선동한 불순한 배후세력을 찾겠다며 열심히 삽질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니라, 학생들의 그런 행동 자체를 걱정한다면서 막고 나선 이들이다. 당혹스럽게도, 정작 그들의 공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들이 그 것에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집회 참여하지 말라고 무려 가정통신문을 돌리고, 형사님이 오셔서 집회 신청한 고등학생을 찾으신다니 친히 수업 중에 귀를 잡고 끌고나가 주신 종자도 나왔다. 집회 현장을 돌며 자기 학교 학생들을 적발하기 위해 ‘생활 지도’를 하는 꼴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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