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약속, 치졸한 기습

!@#… 이 작자들은 겉으로는 말은 뭐라고 하든, 행위로 드러나는 바로 판단하건데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무척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듯 하다. 이 정도로 밑바닥이면, 이 작자들을 지지하는 작자들도 그 경향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 힘들겠다. 이것은 수구니 우익이니 뭐니 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막되어먹은 것이고, 각하의 돌잔치상에 바치는 피의 제물이다.

!@#… 이를 피의 돌잔치 사건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표어 역시 근조 민주주의 그런 뻔한 이야기말고, 이 따위 상황이 반복해서 들이닥침에 대한 황당함과 분노와 짜증이 섞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또 당했다 씨발”을 제안한다. 아름다운 말머리, 아름다운 대화명이니 인증샷을 박자. 배너 필요하신 분은 이렇게 퍼가시길:

<a href="https://capcold.net/blog/3062">
<img src="https://capcold.net/blogimg/2009/02/notagain.jpg"
title="미디어악법 날치기 반대 캠페인 [또 당했다, 씨발]">
</a>

* 혹시나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라고 생각하실 분은, 이런 저런 이전 글들 참조 요망.
* MBC 아나운서들이 세계인에게 전하는 긴급 메시지도 널리 퍼트려 주시면 좋음. (정말로 ‘세계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보기는 좀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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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악법 상임위 상정 문제 간단해설

!@#… 2009년 2월 25일은 미디어법 개악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D-Day이자 각하의 취임 1주년. 흥겨운 돌잔치 선물을 가져다 바칠 것이 두려워서, 관련 사항 간단 해설.

Q. 왜 야당들은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안을 상정도 못하게 하나요? 그렇게 나쁜 악법들이라면 토론을 해서 나쁜 점들을 밝히면 되잖아요. 상정을 해야 토론을 할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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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게 지배당해도 살아가기 [팝툰 48호]

!@#… 알아차리실 분들은 이미 알아차리셨겠지만, Kübler-Ross의 “큰 손실을 받아들이는 5단계 이론” (부정-분노-흥정-우울-수용)을 살짝 패러디… 했는데, 해놓고 보니 별로 유머러스하지 않아서 당황.

 

기생충에게 지배당해도 살아가기

김낙호(만화연구가)

80년대의 개그 한 토막을 떠올려보자. “내 속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고 있어.” “어머, 너 혹시 임…?” “기생충.” 사람은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을 자기 존재의 기반으로 삼기 마련인데, 보통 그것은 각자의 ‘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기생충이라는 것은 그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몸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온 상태인 만큼, 충격이 크다. 고작 내 재산, 내가 아는 이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침범당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기겁하면서 냉큼 약국으로 달려가 그 커다랗고 삼키기도 힘든 구충제를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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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게 유리잔은 반쯤 차있다

!@#… 유리잔에 물이 반 담겨있을 때, 잔이 반쯤 비어있다는 사람과 반쯤 차있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를 비관론자와 낙관론자로 흔히 칭한다. 뭐 어쩌다가 “유리잔 부피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이 존재한다” 라고 애써 정밀하려고 하는 얄미운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데 한 방울이 담겨 있더라도 잔이 차있다고 주장하는 울트라낙관론자들도 있는데, 정말 세상을 해밝게 보거나 아니면 유리잔에 미칠듯한 애정을 느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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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화되는 선택: ‘설마’와 ‘울분’

!@#… 아직 당연히도 진행중인 용산참사 사건. 여기에는 앞서 이야기했듯 고민할 층위가 여럿 존재하지만, capcold의 경우는 관심사 특성상 청와대가 대충 묻어버리려고 하는 보도지침 부분에 주로 주목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이모글루스를 뜨겁게 불태운 계약서 공개 떡밥 같은 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몰래 단서들을 공급해줄망정 그다지 직접 물 생각이 없었다(재개발 계획을 인지한 것과 철거 일정을 안다는 것은 좀 많이 다른 만큼, 크게 중요한 새 단서라고 보지 않아서). 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표면화된 ‘약자는 정의다‘ 착시를 둘러싼 논쟁들, 그 와중에서 왜 철거민들은 전철연을 끼웠나, 혹은 좀 더 거칠게 까는 쪽에서는 왜 그 정도 보상금 탐욕으로 자신과 남의 목숨을 걸었냐 같은 부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좀 관심이 간다. 바로 선택의 극단화라는 기제를 이해하기 위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몇가지 생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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