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감상주의: <채널 어니언>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최근 수년간, 소위 에세이툰이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따뜻하고 서정적인 메시지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주의적 만화들 대부분이 흔히 빠지곤 했던 함정은, 바로 따뜻한 감정의 일방적 강요라는 점이었다. 적당히 둥그런 그림체, 적당히 따뜻한 세상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고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무리짖는 훈계조의 멘트. 꽤 냉엄한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채널 어니언>이라는 만화는 에세이툰의 대히트가 일어난 시기보다 너무 일찍 나왔던 작품인데, 감상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한 귀중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채널 어니언>이 감상적이 되는 방식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편식이 아니라, 현실적인 일상의 틈새에서 문뜩 피어나오는 작은 상상과 망상이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적당한 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것은 가상 공간이 아닌, 지금 우리가 서있는 구체적인 세계 – 예를 들자면 ‘서울시 지하철 4호선 동작역을 바라보는 전차 차량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언제’ 감상에 빠지는지에 대한 통찰 역시 돋보인다. 현대 사회는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에 이성의 끈을 놓치는 것을 관대하게 허용해주는 곳이 아니라서, 결국 감상적이 될 순간은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 그것은 일상의 피곤이 정점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홀가분하게 맥주 한 캔을 따놓고 홀짝거릴 때, 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이 안오는 새벽녘의 편의점에 들를 때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감각 덕분에, 주인공 어니언군이 감상에 빠지는 것은 결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이성적 논리와는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만으로는 못 전달했던 부분들을 마저 소통한다는 말이다. 무작정 따뜻한 격언 속으로 빠져드는 잠시동안의 도피가 아닌, 누군가와 – 때로는 미래의 자기 자신, 때로는 심지어 ‘공포의 대왕’과 – 나누는 마음 편한 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다시 일상의 현실로 복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수 있다.

  감상적인 현실도피가 유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풍속도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현실적인 감상주의를 즐겨보는 것이 더욱 큰 재미를 준다. 여하튼 그것이 지금 우리들 자신의 모습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7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한겨레21]

!@#… 지난호 한겨레21에 기고한 박스기사. 이전 인물과 사상 원고와 거의 같은 기조인데 재활용 만화 저작권 문제를 언급해주고, 지면개편 노력이 진행중이라는 부분 추가. 개인적 희망이야 데일리줌이 좀도 화끈하게 전면적인 개편을 해서 잘만든 좋은 신문으로 거듭나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이런 비판적 지적들이 그쪽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받아들여지기는 할지) 지금으로써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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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격심한 경쟁체제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무가지는 좁은 관심분야, 연합뉴스에서 일괄공급되는 똑같은 기사, 그리고 신문의 성향이 담긴 사설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차별화가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쟁지와 차별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수십년전 스포츠신문들이 채택했던 전략이었던) ‘신문만화’가 무가지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지하철 무가지의 만화편성 전략에서 종합일간지의 안방마님인 한칸 시사카툰은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4칸 시사만화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스포츠신문에서 볼 수 있던 1면 4페이지 호흡의 에피소드 만화나 연재극화가 일정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주로 히트한 생활속의 따뜻한 감상을 다루는 속칭 에세이툰이 한편 이상 편성되어 있다.
무가지의 만화편성 가운데 가장 특이한 시도는 ‘재활용 만화’로, 이미 단행본으로 오래 전에  유통된 바 있는 에피소드 방식의 만화들이 다시 한 회씩 그대로 연재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줄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끌고 나가는 작품이 아니라면 차라리 원고료도 아끼고, 이미 대중적 재미가 검증된 작품을 한편씩 되새김질해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그러나 재활용 만화는 한국 특유의 모호한 저작권 계약 관행상 문제 발생의 소지를 품고 있는데, 최근 만화 <무대리>를 둘러싼 설전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발단은 일간스포츠에서 연재중인 인기만화 <용하다 용해>가 한 지하철 무가지에서 <무대리>라는 제목으로 연재 개시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원래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다가 몇 개월전에 일간스포츠로 연재지면을 이전했던 것인데, 무가지측은 해당 작품의 단행본 발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었던 분량인 첫 화부터 개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기 작품을 자사 신문의 얼굴로 내세우려면 연재중인 특정 에피소드가 아니라 시리즈 자체에 대한 독점적 연재권한을 주장할 필요성을 느낀 일간스포츠는, 이 사건을 ‘도의 없는 만화판’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 결과 한동안 해당 무가지 지면에서 <무대리>의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이내 다시 연재를 속행했다.
만화로 무가지 시장의 경쟁을 돌파하고자 하는 더 본격적인 시도는 만화 무가지를 표방하며 6월에 창간된 ‘데일리줌’이다. 군인공제회의 투자를 받아서 지면의 60% 이상을 만화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이현세, 강철수, 고우영 등 스포츠신문의 인기만화가들을 올스타팀으로 포진시킨 위용은 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문제는 지명도 있는 작가, 좋은 작품, 그리고 시의적절한 편성은 모두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작으로 내세웠던 이현세의 <신들의 시간>은 자신의 현재 주력작품인 <천국의 신화>의 패러디에 가까우며,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출판사의 원고분실사건으로 소실되었던 동명의 작품을 복원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짜 약점은, 이러한 작품들이 유료 스포츠신문이 아닌 지하철 무가지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편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거창한 신화와 역사의 세계를 다룬 작품, 80년대에 대한 맹목적 향수를 다룬 작품, 가벼운 에세이툰 등이 유기적인 독서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수평적으로 뭉쳐져있었다. 또한 일반 뉴스보도가 만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완전히 뒤로 밀려나버림으로써 출퇴근길에 읽는 ‘신문’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에 대한 반성으로 점차적인 지면개편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극심한 무가지 경쟁구도 속에서 인지도/선호도 면에서 이미 확실한 열세로 시작되어버린 현재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화는 사랑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좋은 파트너지만, 신문으로서의 완성도를 확보해주는 요행수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출처: 한겨레21 제521호 / 2004.8.1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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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 개장 (SICAF2004)

!@#… 한동안 capcold를 행사마감에 시달리게 했던 이벤트, SICAF2004의 일환인 <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가 오늘 개장.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성인 만화 전시회’인데, 특별히 야하던가 폭력적이던가 철학적이던가 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성인들만 느낄 수 있는 감수성 – 즉 7,80년대의 만화 향유에 대한 뒤돌아보기라는 테마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애들 등쌀에 못이겨 쫒아온 30대 부모님들에게 만화보는 즐거움을 다시 되새김질하게 만들려는 의도. 그 의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게다가 폐막하는 그 순간까지 앞으로 일주일동안 희비가 교차하겠지만), 여튼 오늘 본 ‘엄마가 꼬마애들에게 만화책을 보면서 설명을 해주는’ 풍경은 그간의 개노가다가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 여튼 이걸로 또 전시 하나 쫑(일주일동안의 유지문제가 있으니 진짜 쫑은 아니지만, 개장하는 것까지는 쫑). 오늘 오전 10시 개막에, 9시 59분까지 만들고 있었던 급박함은 여전하고. 전시기획자로서의 capcold의 이미지는 오늘도 여전히 ‘오른손에는 커터칼, 왼손에는 77′(주: 77은 3M에서 나오는 스프레이식 접착제의 이름. 전시회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테이프와 좋은 라이벌 관계다). 현장파, 또는 십장형 큐레이터. 다음번부터는 진짜로, 우아하게 팔짱끼고 그림 위치 조정해달라고 나즈막히 점잔떠는 큐레이터로 이미지를 한번 바꿔봐야 하겠다. (과연?)

!@#… 좋은 전시기회를 부여해주고 골치아픈 코디네이터 역할을 일임해온 박인하 교수, 박조교 망구 스캔인간들 등 청강 인쇄공방(채택될 리 없는 가칭) 여러분, SICAF측 프로젝트 매니저 공태건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 순간 든든한 지원자인데다가 클로버문고에 혼을 불태우시는 버즈컴, 신머루님 위시한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 여러분들. 그리고 오늘,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동안 전시장에서 만화를 즐기시며 전시장 풍경의 일부가 되어주실 수많은 방문객들. 좋은 전시라는 것은, 일개 기획자가 이런 수많은 훌륭한 인연들을 만날 때 우연히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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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는 부록: <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 도록 설명원고 풀버젼. 실제 도록에 들어간 편집버젼보다도 더욱 풀버젼. 밑에는 축약된 영어판 버젼도 같이.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도록에 들어간 영어판은 에에… 좀 곤란한 수준의 번역인지라…결국 내가 직접 다시 주욱 고쳤지만, 얄궂게도 결국 도록에는 이전 버젼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0.5초 동안 좌절. (솔직히, 이런 대규모 국제행사 공식 도록 텍스트의 번역을 일반 알바생들에게 완전히 일임한다는 발상 자체가 좀 곤란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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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중개자 무당…말리作 <도깨비 신부>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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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풍속사]소통의 중개자 ‘무당’…말리作‘도깨비 신부’

아이러니컬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컬트가 더욱 각광받는다. 다양한 현상들이 발달된 과학으로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있기에 더욱 더 초자연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런 매력 덩어리를 절대 놓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표현적 자유도가 높은 만화야말로 오컬트와 환상의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최근 발간을 재개한 말리의 ‘도깨비 신부’는 발표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몸주·도깨비·굿 등 전통적인 무속 개념들을 현대적 드라마 구조로 섬세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주인공은 무당의 피를 타고난 여고생인데, 각종 신들과 도깨비들이 보이고 그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며 세상에 도움 되는 일도 해내는 성장 드라마인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 신부’의 진정한 미덕은 ‘한국적 전통’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당에 대한 민속적 고찰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현실에서 오컬트가 가져야 하는 의미를 보여준다.

사실 오컬트의 핵심은 미지의 힘이나 존재들과의 조우에 있다. 때로는 그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격퇴해야할 공포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속칭 퇴마물).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아마도 그들은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완전히 ‘다른’ 자들일 뿐일 것이다. 우리의 규칙·상식과는 전혀 다른 자들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히기도 스스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무당’이 퇴마사와 다른 것은 바로 이들 간의 대화를 이끄는 중재자라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해주기까지 한다.

무당은 서로 다른 세계, 다른 문화 사이에서 조율을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나와 다른 자들을 적으로 돌려서 화려하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오해를 풀어나가며 돕고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무당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영적 존재들은 고사하고 육신을 지닌 사람들하고도 도통 말이 안 통하는 곳이니 말이다.

부당한 침략전쟁도, 교통대란도, 개혁 후퇴도 어쩌면 사람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자신의 위세만 발휘하는 마치 ‘저 세상’에 속한 듯한 존재들과의 오컬트적인 마찰인지도 모른다는 몽상을 해본다. 실력 좋은 무당들이 나와서 그들이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판 씻김굿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훌륭한 무당 즉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중재자가 절실한 한 시대의 풍속도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7. 24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만화는 신문을 구원할 것인가 [인물과 사상 / 2004.8]

!@#… [인물과 사상]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런 재미없고 이상한 글 말고도 훌륭한 글들이 많으니, 잡지는 알아서 사보시기를;;  이전 김상택 만평 비평글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오늘] 온라인에서도 게재중.

!@#… 이 글을 썼던 시점 이후로 이미 몇가지 변화의 조짐이 후딱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세는 아직은 여전한 듯 하더군요. 음. 좋은건가, 나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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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잡지 <허브> 창간

!@#… 볼만한 잡지가 창간되었다… 이름하여 <허브>.

http://www.c-herb.net/

!@#… 2-30대 여성, 한마디로 80년대의 순정만화 붐 속에서 만화를 원래 좋아했으나 지금은 좋아할만한 자신들 연배에 맞는 만화를 찾기 힘들어서 만화를 못보고 있는 세대. 이들을 노리는 잡지를 표방하고 탄생.

!@#… 잡지 내용이 아닌 잡지 프로덕션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행본시장을 노리고 잡지를 팜플렛 취급해버리는 기형적인(게다가 십수년간 여실히 실패로 드러난) 시장공략이 아니라, 잡지 자체가 잡지로서 재미있는 지면. 대형 자본을 뒤에 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생존전략을 매 순간마다 짜낼 수 밖에 없는 배수의 진. 수익이 나면 작가에게 배분하는 혁신적인 시도… 등등 성공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 투성이인지라, 창간 준비 단계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프로젝트. 결국 여차저차 창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첫술에 배부를수야 없는만큼, 앞으로 두 술 , 세 술, 백 술까지도 열심히 계속 나와서 독자들에게 질타와 칭찬을 받아내기를.

!@#… 그리고 솔직히… 첫째, 왜 만화계 어려운데 이런 걸 또 만드느냐 하는 인간들 보거라. 당신들이 업계 종사자인지, 열혈독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그냥 앉아서 죽어버릴까?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징징거리면 누가 사탕 하나라도 준다니? 두 발로 일어설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은 죽어버리면 되는 것이고, 일어서는 자들을 제발 발목 붙잡지나 말자. 둘째, 가격 높다, 유통비 아겼다면서 왜 그리 비싸냐 하는 멍청이들 보아라. 우선 유통비가 뭔지는 아냐? 유통비하면 그냥 퍼센트 떼서 값 싸지는 것만 알겠지? 복마전같은 잡지 유통구조 속에서 도매상들 돌아다니면서 영업뛰고 집어넣는 인건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시도인지는 생각해봤냐? 그리고, 초딩들도 아닌 주제에 일반적인 영화 한 편 관람료보다도 싼 월 6000이 아깝다면, 그건 비싸서가 아니라 단지 ‘만화에 돈 쓰는 게 싫어서’일 뿐이다. 니들에게 만화란건 그 따위 의미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지하철 무가지나 보고 살아라. 공짜… 그게 너그들의 그 싸구려 수준과 취향에 딱 맞다. 제 값 주고 자기 취향 즐기려는 사람들한테 초치지 좀 마라. 요새 날씨 덥지? 스트레스 쌓이지? 그래서 시원한 에어컨 틀어진 피씨방에 앉아서 오만군데 게시판에다가 리플을 빙자하여 똥이나 칠하고 싶지?

!@#… 뭐, 궁금하신 분들은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서 정기구독 신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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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한국만화의 역사와 비평적 쟁점

!@#… 맞아, 이런 황당한 글쓰기를 썼던 적도 있었구나. 한국만화의 역사 통째로를 월간지 기사의 짧디 짧은 지면에 우격다짐으로 쑤셔넣는 바보짓… 제목도 물론 잡지사의 취향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제목으로 마구 확장. 뭐 이런 것이 있었다. 어디보자… [월간미술]. 2003년 5월호였나? 4월호? 기억이 가물가물. 당시 커버스토리의 타이틀 Art & Comics… 즉, 만화는 예술이 아니라는 의미 되겠다. 편집진이 의도했든 말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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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omics

한국만화의 역사와 비평적 쟁점

김낙호/만화비평

“근대적 문화의 형성기부터 한국만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19세기 말 서구에서 영향받은 일본만화를 통해 형성된 초창기 한국만화는 이후 급변하는 사회환경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만화의 여명기부터 최근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신개념의 만화환경에 이르는 만화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광복과 함께, 한국만화는 여명기를 지나서 새로운 시기로 들어섰다. 그 동안 억눌렸던 한국어 출판물에 대한 붐이 일어났고, 만화도 그 속에서 새로운 지면을 얻어 나갔다. 그리고 1948년 김용환의 주도로 한국 최초의 만화 전문 잡지인 《만화행진》이 만들어졌고, 이후 한동안 만화는 여러 방면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프로파간다용 삐라에 만화가 적극 활용되었으며, 한국전쟁 말기부터 권당 20페이지 내외의 조악한 품질의 대중오락만화인 《떼기만화》 판형들이 좌판을 통해서 보급되었다. 떼기만화에는 최상권의 《헨델박사》(1952) 등 모험물, SF 장르가 많았는데, 이로써 각종 이야기 만화가 급격하게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잡지 창간은 더욱 가속되었고, 김용환, 신동헌, 박기정 등 많은 작가가 한국만화의 ‘황금시대’(주: 미국에서, 만화가 질적·양적·산업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여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던 1930~195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인 ‘Golden Age’에서 차용했음)를 시작했다. 잡지 《만화세계》를 내던 출판사인 만화세계사는 1955년부터 200여 페이지짜리 고급 장정을 한 판본으로 큰 인기를 끌며 김종래의 〈눈물의 수평선〉등 히트작을 남겼다. 동시에 길거리 좌판에서도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일본만화 〈소년 케니아〉의 도작) 등을 통해서 만화가 대중에게 크게 각광받았다. 하지만 경제사정의 악화로 인하여 서점용 고급 판형은 점차 시장성을 잃어 버리고, 1958년에는 책을 빌려 보는 ‘대본소’라는 유통구조가 들어섰다.

초창기의 대본소는 많은 만화를 적은 비용으로 볼 수 있게 하는 효용을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더욱 많아진 만화는 더욱 많아진 만화인구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그 속에서 한국만화는 극화체 만화, 만화체 만화, 순정만화라는 큰 줄기 아래에서 다양한 장르로 분화할 수 있었고, 한국적 감수성 위에서 일본의 드라마 만화, 미국의 슈퍼히어로 만화, 유럽의 모험물 등이 영향을 끼치며 골고루 유입되어 박기당, 엄희자, 산호, 신동우 등 기라성 같은 작가가 그 기세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대본소 체제만으로는 시장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이은 1961년 사전심사 도입과 1966년의 대본소 유통 독점화로 이어져서 한국만화의 짧았던 황금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1960∼1970년대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대본소 만화는 질적인 급락을 계속했다.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작가군은 공장제로 변해 가는 작업환경으로 인해 창작의 열기가 점차 식어 가면서 대본소 시스템에서 데뷔한 일련의 작가군과 세대적으로 단절되었다. 당시 질적 성장을 거듭하던 일본만화에 대한 도작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출판사 및 유통사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화는 ‘무조건 많이 만들면 되는’ 공산품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권리도, 작품의 수준도, 산업적 활로도 가히 ‘암흑기’라는 표현이 적합한데, 이 시기는 임창 등을 주축으로 한 ‘반합동연합’ 운동으로 대본소 독점체제가 깨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인만화와 명랑만화의 성장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국만화는 성인만화와 명랑만화라는 두 갈래 길에서 몰래(?)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1972년 창간된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가 고우영의 〈임꺽정〉을 시작했고, 이것은 일간지와 성인만화의 성공적인 랑데부를 이끌어냈다. 굵직한 드라마의 연재극화(방학기의 〈바리데기〉 등)와 잡담적 사변과 줄거리가 수시로 교차하여 마치 이야기꾼의 재담을 직접 듣고 있는 듯한 ‘노가리 만화’(고우영의 〈삼국지〉 등)가 그 대표적인 장르다. 이외에도 박수동의 기념비적 작품 〈고인돌〉이 1974년부터 연재, 성에 관한 담론을 풀어나갔다. 또한 1964년 창간된 《새소년》 등의 어린이 종합잡지를 중심으로 명랑만화 장르가 꽃피었다. 이들은 일상적인 풍경과 상황 속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와 교훈을 이끌어 내는 만화체(주: 카툰화 정도가 강한 형상)의 이야기들이었는데, TV의 ‘시트콤’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중 특히 길창덕의 〈꺼벙이〉,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 등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물론 어린이 잡지에서 명랑만화가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이기는 했지만, 기존 SF나 모험물에 대한 관심 역시 이어졌다. 잡지 연재에서 시작해서, 후속편들을 문방구 유통망을 통한 단행본 단위의 직접 판매를 시도한 고유성의 SF물인 〈로보트 킹 연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시작한 1980년대가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고도성장기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만화에서 그 첫 번째 조짐은 대본소에서부터 나왔다. 시대의 욕구를 잘 반영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의 대성공은 장편 극화의 붐을 촉발했고, 박봉성, 고행석, 허영만 등 1980년대를 이끌어나간 굵직한 대본소 극화 작가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고도성장 사회에서 비극적인 도전을 반복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이후에 하나의 장르처럼 굳어져서, 유사한 스토리와 화풍을 계속 재생산해 나갔다. 두 번째 조짐은 《보물섬》의 창간이었다. 《보물섬》은 만화전문잡지를 표방하며 기존의 종합 어린이 오락지보다 더욱 적극적인 작가 및 작품군을 거느렸고,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특히 보물섬은 소년 취향 만화와 여성 취향 만화가 고루 섞여서, 양쪽 장르의 독자를 고루 만족시켰다. 엄희자/민애니로 대표되는 초창기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 표면에서 잊혀졌다가, 동호회 등을 통해서 게토 속의(?) 성장을 계속하던 순정만화 장르 역시 1980년대 말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리고 1988년 창간된 순정만화 전문지 《르네상스》를 통해서 그들의 암중모색의 성과를 유감없이 떨쳤다. 김진/김혜린 등으로 대표되는 장쾌한 대하서사극은 순정만화 특유의 감성과 드라마 구조가 결합하여 걸작을 탄생시켰고, 강경옥 등으로 대표되는 섬세한 일상과 감정표현은 맹위를 떨쳤다.

1980년대의 세 번째 발전은 만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었다. 만화의 대중친화력과 강력한 표현력에 매력을 느낀 문학이나 민중미술계의 전문적인 관심이 만화 영역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서 사회참여의식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주의적 작품 경향들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1987년 창간된 《만화광장》은 그러한 움직임의 정점이었는데, 이론적 논의들과 작가의식이 강한 작품들이 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아예 사회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해 온 ‘민중만화’도 효과적인 선동수단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1980년대 전성기의 마지막은, 1988년 창간된 주간지 《아이큐 점프》가 열었다. 일본식의 기업화된 잡지관리시스템을 수입하고, 주간지라는 빠른 스케줄 및 중고생층이라는 대상 연령층 공략 등은 한국에서는 대단히 신선한 시도였고, 이현세/야설록의 〈아마게돈〉, 이상무의 〈제4지대〉 등 대담한 시도가 히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요 인기 작품이 연재종료되면서, 잡지사는 떨어져 가는 인기를 만회하기 위하여 새로운 작가 발굴과 시스템 개혁보다는 너무도 손쉬운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1989년 말, 결국 일본의 ‘검증된 초히트작’인 〈드래곤볼〉이 한국 라이선스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국만화는 1990년대를 맞이했다.

1990년도 《스포츠 조선》 창간으로 인하여 스포츠 신문들은 만화를 통한 독자확보경쟁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아이큐점프》와 비슷한 컨셉트의 소년지인 《소년챔프》 창간이 이어지면서 한국만화의 판은 일순간 희망찬 성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이전의 도제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지면을 얻을 수 없었을 법한 새로운 감수성의 젊은 세대들이 속속 데뷔했고, 해적판으로 유입된 다양한 일본만화는 만화의 더욱 넓은 세계를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그 와중에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 〈마이러브〉등, 소년만화 장르의 일부 인기작들이 단행본 누계 판매 100만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라면 유익한 자극도 도를 넘어서면 독이 된다. 1994년을 기점으로 한국만화의 양대 메이저 출판사인 서울문화사와 대원은 대대적인 만화사업 확장을 꾀했는데, 연령별로 분화된 다양한 잡지 창간과 일본 만화 단행본 라이선스 수입 강화가 주요 요지였다. 1990년대 중후반 일련의 만화탄압사태를 맞을 때마다 이들은 질적인 개발보다 양적인 확대를 통해서 돌파하려 했고, 급기야는 일본만화 라이선스 경쟁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지나치게 많은 종수가 좁은 시장을 강타했고, 시장은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현재까지 그 문제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쉽게’ 데뷔한 새로운 세대의 신인작가와 기존 작가군 간에는 명확한 세대적 단절이 이루어졌고, 마치 10대 댄스음악 위주의 가요계처럼 주류만화가 특정 장르, 경향성 위주로 집중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한국만화의 새로운 가능성

하지만 결국 문제를 풀어 나가는 열쇠를 쥔 것은 작가와 작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1990년대의 작가들은 그들의 만화에 대한 열정을 풀어 나갔다. ‘구태의연한’ 기존 장르의 재해석이 그중 하나다. 1980년대 대본소 극화의 유산을 이어받은 드라마틱한 스토리 구조와 비정한 사회에 대한 동시대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윤태호의 〈YAHOO〉, 대본소 무협만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그 속에 존재론적인 철학을 시간이 정지한 듯한 연출 방식 속에 묘사하는 〈남자이야기〉의 권가야 등도 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던 명랑만화의 유산 역시, 1990년대 말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부활했다. 이들은 명랑만화에 날카로운 시사성과 소소한 일상성을 더욱 보강했다. 일간지에 연재되는 홍승우의 〈비빔툰〉, 김진태의 〈시민쾌걸〉, 정연식의 〈또디〉 등이 백미다. 과격한 종류의 실험은 주류만화의 방식에 전면적인 반기를 드는 진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언더그라운드’라고 선언하며 기존 지면에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다양한 표현적/메시지적 실험을 담아 낸 작품들로 가득한 새로운 잡지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두 잡지가 바로 《화끈》과 《히스테리》였는데, 이들 잡지를 중심으로 작가집단이 형성되었다. 두 진영 모두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웹진과 종이잡지를 넘나들며 지속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젊은 만화의 확장은, 여성들의 힘에서 나오고 있다. 이진경의 〈사춘기〉, 한혜연의 〈금지된 사랑〉 등은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 찬 작품들이다. 1980년대 중반 이래로 순정만화의 대가들이 택한 길이었던 드라마틱한 대하서사시나 일상에 대한 소소한 탐구라는 우회로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현실을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단 이러한 페미니즘적 메시지 차원뿐만 아니라, 기존 틀을 크게 뛰어넘는 독특한 미학적 표현의 확장 역시 여성작가들이 선두에 서 있다. 다양한 시각적 스타일의 이애림, 현실적인 주제의식과 과장된 만화적 비유를 일삼는 최인선 등 수많은 작가 활동중이다.

한국에서의 젊은 만화의 또 다른 중요한 경향성은,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의 활용이다. 언더그라운드 성향 만화웹진 《화끈》의 편집장이기도 한 모해규는 플래시를 활용한 만화, 그리고 핸드폰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모바일 코믹 스트립 분야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아니면 〈스노캣〉(http://www.snowcat.co.kr)의 홈페이지처럼, 적극적으로 하나의 홈페이지를 통째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아이완의 〈점핑〉 시리즈처럼 온라인의 상호작용적 공간에서 새로운 만화독서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다.

독립 출판, 자비 출판이 늘어나는 것도 최근의 공통된 경향이다.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젊은 작가들이, 기존의 굳어진 생산방식과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형 출판사들에게 자신의 작품과 작가로서의 미래를 의지하지 않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만화가들에게 가장 돋보이는 특성은 바로 앞으로의 가능성들이다. 2003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는 한국만화특별전이 열렸다. 이전에는 서구에 거의 그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한국만화가 처음 선보인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만화관계자들은 특히 젊은 작가들의 에너지와 다양한 감수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과의 교류를 희망했다. 역사전을 통해서 기존의 명작들을 보는 것은 그들에게는 박물관적 즐거움일 따름이지만, 젊고 현재적인 에너지를 보면서 그들은 이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만화를 만들어 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서, 만화는 더욱 활발하게 새로운 변종들을 낳아가며 한 단계 새로운 진화를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독자의 시각에서, 그 순간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 2003.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개작불허/영리불허 —

<오후>, <비쥬> 폐간에 관한 (정말) 짧은 소감

!@#… 소식을 들은 것은 모처, 어제 오후였다. 하지만 공식 발표가 나오기까지는 기다려보자…라고 생각했는데, 간밤에 오만가지 블로그에 다 소식이 올라와있더군…무서운 세상, 빠른 세상, 한국 세상.

…어제 시공사의 내부 결정에 의하여, 잡지 폐업. <오후>, <비쥬> 폐간. 기타 이런저런 만화캐릭터사업팀 구조조정 단행.

!@#… 앞으로 태어날 잡지들이 더욱더 멋진 모습으로 대성공을 해서, 이 날의 당혹감을 한낮 가십꺼리로 전락을 시켜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제발, 부탁이다.

한국만화 안보기 운동…커헉

!@#… 가끔, 개그로 의도하지 않았어도 폭소를 유발시키는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들이 있다. 특히 스스로는 굉장히 절박한 상황에서 엄청 진지한 이야기를 한답시고 하는데, 그게 정말로 ‘깨는’ 경우들이 있다. 본인들에게야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어림반푼어치같은 상황 속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건 불가항력이다. 그래도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서 웃음을 참아야할 도덕적 상황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가끔 그 한계도 초월해버리는 강력함도 발생한다. …아…말이 길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여러분이 강력한 이성의 소유자라서 세번째 결의사항까지 웃음을 참으실 수 있었더라도, 네번째인 ‘독자들과 연대해서 한국만화 안보기 운동 돌입!’ 에서까지 견디실 수 있을지…

!@#… 국회가 개판이니 국회를 없애자고 진지하게 분개하는 멍청이들이나, 국민연금이 문제가 많으니 국민연금을 없애자고 촛불시위까지 하고 나서는 머저리들 등과 얼추 비슷한 부류라고 보면 되겠지? 사회적 기능상의 명분이 확실한 사안에 대해서는 땡깡이 아닌 개선과 협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상식일터인데… 굳이 capcold라는 인간이 대여권 법제화가 포함되는 저작권법 개정을 위한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도, 이 정도 바보짓이라면 바보짓으로밖에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00년대식 소통의 풍경: 유시진의 <온> [경향 ‘만화풍속사’]

2000년대식 소통의 풍경: 유시진의 <온>

  역설적이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란, 일상적인 삶의 방식 자체까지 후다닥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뼈져리게 느낄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사람과 사람이 기술을 매개로 하여 소통을 하는 방식, 즉 통신이다. 십수년전에 만들어진 <영웅본색>같은 영화를 비디오로 볼 때, 조직의 간부가 은퇴한 적룡을 조직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당시에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던 휴대폰 – 아니 이건 숫제 대청마루 디딤돌이다 – 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면서 실소를 터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인 것이다.

  <마니>, <쿨핫>등의 작품들로 강력한 팬층을 형성한 만화가 유시진은 소통이라는 문제를 중심소재로 사용해 왔다. 사람들간의 근본적 차이점,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벽, 그 것에 다시금 안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종종 매우 덤덤하고 소극적인) 노력. 이러한 모티브들이 작가 특유의 차갑고 경직된 화풍 속에서 반복된다. 순정잡지 ‘오후’에 연재중인 그의 작품 <온>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주인공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전생이었을지도 모르는 환타지 세계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만화다. 현대의 주인공 중 한명인 제경은 직업이 환타지 소설가인데, 이것은 소통이라는 하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우선 한국에서 환타지소설 작가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배경은 90년대 중반의 PC통신 소설 붐이다. 통신공간 속에서 젊은 세대는 출중한 장르적 상상력과 공개 게시판에서 펼쳐지는 연재에 갈채를 보냈다. 나아가 작가와 독자,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간극은 여러 의미에서 점점 더 좁아졌는데, 통신이 아닌 전통적인 종이 출판물의 형태로 나오는 경우까지도 그 경향은 계속 확산되었다. 다소 비약해서 말하자면 주인공의 직종 자체가 90년대 이후의 소통방식, 통신문화의 상징적인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난 오늘날, 환타지 소설가인 주인공이 컴퓨터로 원고작업을 하다가 인터넷에 연결해서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9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여러 만화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삐삐가 핸드폰으로, 나아가 이 작품속에는 CDMA2000 방식의 폴더형 휴대폰으로 바뀐 것도 시대의 풍속도다.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제경은 여전히 자신이 진짜로 관심이 가는 대상에 대해서는 술을 사들고 집으로 쫒아가서 직접 대면하는 고전적인 소통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래, 그것이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이렇듯 사실 통신기술의 발전은 사람 사이의 소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기보다는 단지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핵심은 오늘날도, 아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듯 하다. 그 앞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글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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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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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으뜸과 버금 0405]

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만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설마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아직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시는 시대착오의 화신같은 분들은 다행히도 거의 멸종하셨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겁을 주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는 ‘유머’라는 이미지가 당장 떠오르는다고 대답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화를 영어에서 지칭하는 용어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시피 ‘코믹스’다. 의미 그 자체에 코믹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이 용어는 만화가 지난 역사동안 간직해온 대표적인 얼굴이 (좋든 싫든) 유머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를 통해서 폭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장르보다 더 쉽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유머를 단지 만화의 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아예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르를 흔히 ‘개그만화’라고 부른다. 개그만화는 주어진 단위 지면 안에서 확실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때로는 200여 페이지짜리 책 한권, 때로는 한 페이지에 불과한 그 속에서 어떻게 독자들의 웃음보를 터트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발한 소재의 발굴이며, 다른 하나는 이야기의 리듬을 조절하여 독자들의 몰입도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특히 매일 4페이지 가량씩 연재되는 표준적인(?) 스포츠신문 개그만화의 경우, 위의 두 가지 요소를 거의 공식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독자들에게 친숙한 짐짓 진지한 상황을 때로는 있는 그대로, 또는 만화적 비유를 통해서 약간 틀어서 점차 고조시킨 다음, 마지막 한칸을 통해서 화려한 반전을 주며 독자를 놀래킨다. 그 마지막 반전 장면이 성공하면, 독자는 작품에서 눈을 떼면서 순간 폭소를 터트린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개그 리듬은 어떨까. 반전이 한박자 일찍 찾아오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짤막하게 개그를 반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엇박자인 셈이다. 달변의 자타공인 개그맨이 화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보다는, 어눌하게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싶으면 그 개그를 다시 한번 구차하게 반복해주는 느낌이다. 전자의 경우는 한번의 폭소를 폭발시키는 것이 장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야기가 끝난 다음까지도 계속 키득키득대고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할 듯 하면서도 사실은 일상적이고 소심한 상황으로 수렴되는 소재와 결합할 때, 이런 ‘허허실실’ 개그 리듬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포츠서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트라우마>라는 만화는 바로 이런 만화다. 엇박자의 개그와 ‘쪼잔한’ 캐릭터들의 향연 속에서 4페이지 단위로 매일매일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여 많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리고 이들의 기대감 속에, 우선 두 권의 책으로 묶여서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물론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하루에 4페이지짜리 에피소드 한개씩 찾아보는 일상적 즐거움의 리듬은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대신에 각 권 400 페이지를 넘는 두터운 레퍼토리의 융단폭격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독자들의 웃음보를 공략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재능이나 발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부지런한” 개그만화다. 그 부지런함은 바로 개그 리듬을 재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때로는 실패할 때 – 즉 안 웃길 때 – 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충격과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은 어떤 경우라도 즐거움을 주고야 만다. 개그만화로서의 미덕, 최종목표는 모로 가나 도로 가나 결국 채워넣고야 마는 <트라우마>의 스타일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으뜸과 버금 20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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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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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말 만화섹션 <펀> 창간했습니다

!@#… 제목 그대로입니다. 경향신문 주말 만화섹션 <펀> 창간했습니다. 기획단계부터 계속 옆에 붙어온지라 팔이 사정없이 안으로 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정도로 나와주었으니 아마 다른 신문사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뒤따라 만화섹션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획입안하고 관철시킨 박인하 교수, 제작실무의 첨단에서 분투중이신 강인선 만화발전연구소의 모든 이들과 경향신문의 관계자 분들 모두 중요한 첫 발을 성공시켜내셨습니다. 축하의 말씀과, 앞으로 좋은 모습 많이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격려/채찍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마냥 해피한 2004년 5월 22일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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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저편으로 – <미스터 레인보우> [으뜸과 버금 0404]

무지개 저편으로 간 만화 – <미스터 레인보우>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예를 들어 비가 온 직후처럼 수분이 채 증발하기 전인데, 갑자기 햇살이 비추는 순간이 있다. 이 때, 운이 좋으면 빛이 대기중에서 파장길이에 따라서 분광현상을 일으키면서 커다란 곡선을 그려내는 경우가 있다. 생활용어로, 이것을 우리는 ‘무지개’라고 부른다. 무지개를 보면 괜스레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비온 직후 찬란한 햇빛과 함께, 마치 대자연의 힘이 우리에게 희망의 선물을 던져준 듯 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대홍수 이후 신과 노아의 약속의 징표로 여겨졌으며, 서양 민담에서는 무지개의 ‘저쪽 끝’에는 행복과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지개의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생식에 얽매인 사랑을 넘어선 사람들, 바로 동성애 인권운동의 현장이다. 동성애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깃발은 78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대중적인 코드가 되었다. 아마도 그 무지개의 저편에는, 이들이 꿈꾸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그런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레인보우>(시공사, 1권 발매중)의 주인공은 동성애자다. 사실 ‘야오이’라는 장르가 만화팬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지 오래인 지금, 그것이 무슨 특징이 되겠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느 동성애 판타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미스터 레인보우>의 하덕구는 생활인이다. 지금 이곳, 한국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인 것이다. 고스란히 있는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커밍아웃을 피하고, 좁디 좁은 동성애자의 커뮤니티에서 위안을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세계 속에서 사랑을 찾아나선다. 밤에는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잔뜩 부풀려서 폭발시킬 수 있는 직업인 게이바 여(…)가수를 하면서, 낮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는 사회에서 ‘정상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유치원 교사를 한다. 정체성과 사회적 삶을 동시에 유지하려면, 여러모로 바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꽤나 착한 사람이다. 가끔 희화화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코믹한 상황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레인보우>는 결코 자신의 주인공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한 유치원생의 잘생긴 아버지에게 연모의 정을 불태우며 소란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사랑을 고민하는 덕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나아가 그의 주변 인물들 조차도 코믹하고 궁상맞으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고 싶은 사람들 투성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덕구를 좋아했던 한 후덕한 여학생, 덕구의 할머니, 허영끼 많은 유치원장, 덤덤한 동료 여교사… <취중진담>등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편안해진 펜선과, 기교를 가다듬은 화면 연출이 안정감 있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동성애와 성전환증의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든지, ‘남성답지 않게 여성스러움’ 등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든지 하는 등은 지적의 대상이다. 나아가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 전개의 호흡도 이후의 발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부족했던 부분들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독자들의 상상력 속에서 완성을 시켜야 할 듯 하다. <미스터 레인보우>의 작가는 최근 급성 폐렴으로 인하여, 무지개의 저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좋은 작품, 더 좋아질 것이 한없이 기대되던 작품을 중간에 남겨두고 가신 고 송채성씨의 명복을 빈다.

[으뜸과 버금 20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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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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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잃어버릴 뻔한 삶의 조각들을 찾아서: 최규석 단편집 ‘공룡둘리’ [책속해설]

  …필자는 여러 지면에서 현실과의 고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젊은 만화가들의 경향성을 꽤 강도 높게 비판해온 바 있다. 삶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고민들보다는, 장르적 규칙만을 소재로 조합형으로 만들어진 매끈한 엔터테인먼트 코드의 덩어리 – 한마디로 쭉정이만 남는다는 것이다. 

  최규석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몇 안되는 젊은 작가다. 시각적으로도, 미소년미소녀 같은 장르 코드나 화사한 기교에 의존하기 보다는, 거칠면서도 정확한 선과 뚜렷한 데생, 주제와 이야기 중심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대부분의 재능을 할애하고 있다. 아직 ‘장편’작품을 남기지 못한 신인에게는 과분한 평가일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마치 막일로 단련된 근육질 마냥 투박하고도 탄탄하다. 드라마틱하고 형이상학적 고민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주변에서 약간만 자세히 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소외와 모순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온다. 하지만 최규석의 잠재력은 단순히 “어둡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현실의 범주에서, 때로는 절묘한 상상력의 비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심지어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산다는 것의 업보: <사랑은 단백질>

  <사랑은 단백질>은 본 단편집의 문을 여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살아가는 건 누군가를 밟고, 죄를 지어가며 쌓이는 업의 연속이다. 뭐 그렇지만 결국은 인간은 고기를 먹고 사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동물들 아니겠는가. 죄의식을 가지든, 무감각하든, 그 사실 자체만은 여전히 변함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닭집을 하는 닭사장, 족발집의 돼지사장의 처절한 희극성이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한다. 전체 주제를 압축해서 다시 재현해내는 돼지저금통의 캐릭터도 압권이다. 풍자와 유머의 칼날을 잔뜩 갈아서 한껏 펼쳐보이기로 작정한 작가의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약자 위의 삶: <콜라맨>

  원래 최규석은 <솔잎>이라는 작품으로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군입대로 인하여, 작가의 정기 지면 데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대후, 작가는 다시 ‘데뷔’를 했다. 2002년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의 극화부문 당선작으로, 만화판의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첫 사건인 <콜라맨>의 등장이다. “…페스티벌용 작품의 경우 모호한 이야기에 복잡한 연출이나 화려한 작화실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익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반면, <콜라맨>은…”는 당시의 심사평이 주목의 이유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공동작업을 한 서경순이 주로 작업했다는 골목길 배경의 표정들과, 투박한 삶을 사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이야기의 조화가 돋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밟고 그 기반 위에서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전형적인 우리 삶을 묘사하는 접근법이 더욱 매력적이다. 이러한 주제와 시각은, 이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공모전을 노린 해피(?)엔딩’이 아직은 약간 어색한 수작.

인생사의 블랙코미디: <공룡 둘리>

  <콜라맨>이 만화판에 관심있는 자들에게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알렸다면, 일반 독자층에게까지 그 차원을 확대한 것은 바로 이 작품 <공룡 둘리>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탄생 20주년으로 ‘주민등록증 발급’이니, ‘둘리의 거리 제정’니 하고 호들갑을 떨때 난데없이 한켠에서 등장해서 큰 화제를 모았던, 본 단편집의 표제작. 공모전이나 졸업작품집이 아니라 본격 상업지면에서 데뷔를 한 첫 작품이다. 국가대표급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을 처절하고 남루한 현실로 끌고들어옴으로서 만들어지는 극한의 블랙코미디. 다만 워낙 발상의 충격이 크다보니, 독자들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슬퍼해야할지를 헷갈리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최규석식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한층 명쾌하게 정리하며, 곤궁한 현실과 역설적 유머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인 수작.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왠지 둘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도록 하는 힘을 지닌 만화로, 단지 오마쥬나 패러디 정도로 의미를 한정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한창 젊고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서 발굴하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에 개재.

인간이 만든 것: <리바이어던>

  2003년 상명대학교 졸업작품집에 실린 단편. 권력, 지배에 대한 짧은 우화이자, 유쾌한 소품. 스스로 왕이 되지 않겠다는 영웅이라는 지극히 합리적 발상에서 시작하는 모험이,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데뷔작이었던 <솔잎>에서 다루었던 개인과 사회의 충돌, 그것을 통해서 처음에는 개인이 파멸하지만 결국 사회가 점차 바뀐다는 주제는, 이제는 살짝 비틀어진다. 개인에게 파멸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그 개인들 스스로였다는 자괴감이 밝고 명랑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친 상징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리바이어던이 커다란 심해의 뱀으로 등장하는 얄팍한 장르모험물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계약에 의해서 형성시킨 절대적인 힘”이라는 토마스 홉스의 비유는, 그동안 더욱 치열한 고민들 통해서 주제의식과 여유를 성장시킨 작가의 작은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이다. 과장되었으나 간결한 컬러 그림체가 색다른 매력을 주는 작품.

택일의 기로에서: <선택>

  한가지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선택이란 필요없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모습들을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면 그때가 바로 선택의 순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선택의 순간이 보통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학교졸업과 함께 ‘사실 세상은 이런 저런 것이 있단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낙오될꺼야’라고 강요받고, 복잡한 갈등과 생각들이 ‘승자와 패자’로 단순화된다. 그 속에서, 과연 ‘패자’를 선택할 무모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어디있을까. <선택>에서 주인공이 몽둥이를 들고 결국 내린 것은 그러한 선택이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그 환성의 밑에 묻혀있던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것은 작가로서의 선택인 셈이다. <리바이어던>과 함께, 졸업작품집에 실린 작품. 마지막의 응원장면은, 선택을 내린 개인이 다수로 확장되는 이미지라고 한다.  

…진정한 치열한 고민은 더욱 진행될 수록, 전체적 시각과 여유를 낳는다. 그리고 여유는 유머를 만들어준다. 최근의 단편작품들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처절함과 블랙유머의 조화는 작가의 성장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다소 고지식할 정도로 직선적인 연출 호흡이 성장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갖 첫 단편집을 묶어내는 ‘신인’에게 이 정도의 기대를 가져보기는 오랜만인 듯 하다. ‘리얼리즘’이라는 흔한 용어로는 묶어내지 못하는, 비굴한 현실과 만화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이야기꾼의 매력이다. 

  <만화, 내 사랑>이라는 책에서, 박재동은 오세영을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라고 칭찬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최규석을 “청테이프를 붙일 줄 아는 작가”로 칭송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처절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 투박하면서도 정직한 접착력으로 앞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달라붙기 바란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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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미정> – 변병준식 그림이야기의 성찬

단편집의 말미에 실리는 평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꽤나 난감한 일이다. 주례사 비평의 위험성은 기본이며, 더욱이 단편집은 그 속에 포함된 개별 작품들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보통이라서 하나의 책으로서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장황하게 작가론을 늘어놓아서 독자들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도 어색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한 작가의 창작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들과 그것의 진행방향을 엿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통의 단편집은 음반으로 치자면 B-SIDE 모음 같이, 작가가 보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와중의 틈새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즉각적인 시도들을 자유롭게 담고 있다. 즉 보다 직접적으로 날것 그대로의 사색과 그 발전과정의 흔적에 접속할 수 있는 접속점인 셈이다.

많은 비평적 찬사를 얻어냈던 <프린세스 안나> 이후의 변병준은 주로 도시를 그려내는 작가다. 단순히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것도, 도시하면 떠오르는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아니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상황들과 정서가 대부분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만화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그림들’이라고 생각해볼 때, 변병준이 묘사하는 도시공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 하다. 친숙한 모습의 도시는 그 현실적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정서를 듬뿍 담은 정서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때로는 지극히 쓸쓸하고 차가운 정서가, 때로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적인 무언가가 그 공간 속에서 암시되고 있다. 이미 공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그냥 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작가가 단편 위주의 작업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병준의 만화의 주인공들은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반영이다. 공간배경과 하나가 된 그들의 생활 모습이 먼저 주어진 후, 이들의 과거 사연이 지나가듯 암시된다. 그 속에서는 극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결과를 낳기 보다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무언가를 매듭짓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득찬 밀도의 표현적 그림들로 인하여 독자들은 캐릭터로의 이입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작품 속 공간으로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입보다는 관찰을 유도해내는 그러한 화법 속에서 때로는 지나가는 농담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사연을 두 다리 건너서 전해듣는 것처럼 드라마가 펼쳐진다.

본 단편집 <미정>에 묶인 것은, 작가가 화풍의 다변화를 시도한 2000년대 초반의 일련의 단편들이다. 첫 단편집 <첫사랑>이 성인취향 개그물과 도시의 차가움, 농촌의 따스함라는 여러 관심사들의 모음이었다면, 이번 단편집은 도시공간이라는 하나의 큰 컨셉 아래에서 다양한 화법을 시도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들의 큰 줄기는 무언가를 찾지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 상처입은 소년소녀의 이야기 등 두 가지인데, 그 중 전자는 작가의 정서적, 또는 생활의 자화상을 녹여낸 흔적이 짙게 베어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본 단편집의 첫문을 여는 것은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미정>이다. 도시의 차가움과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나서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모티브를, 만화에서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변병준 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자화상적 서정과 상처입은 도시남녀라는 두 축 모두의 출발점인 셈이다. 2003년 봄 <계간만화>에 실린 작품으로서, 당해 1월에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의 전시작가로 현지를 방문하고 있었을때마저도 원고를 작성한 일화 역시 재미있다. 두 번째 작품은 <연두 17세>로, <프린세스 안나>에서 시작한 상처입은 소녀 모티브를 다루는 방식이 이제 완전히 하나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에서의 출판을 위하여 2003년 여름에 작성된 작품이다. 보다 간결하고 능숙하게 도시군상의 비극적 감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그 뒤를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한국 소년만화계의 스토리 작가로서 스타급 위치를 누리고 있는 윤인완과 협업한 <유틸리티>다. 기대만큼의 흥미로운 스토리가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위악적인 어린이들의 표정과 이들이 살아가는 살풍경한 도시공간의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블랙코미디는 또다른 발전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2002년 4월, 일본의 <빅코믹스피리츠> 증간호에 개제되었다. 흐릿한 모노톤의 컬러작업을 시도한 <너의 노래>는 2003년 가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층 친절해진 캐릭터들과 더욱 진일보한 공간묘사가 장점이다. <신일맨션201호>는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개그물인데, 그 쪽 분야의 실력 역시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 증명해주고 있다. 2000년 봄, 작가의 일본 유학시절에 그려진 작품으로, 생활의 자화상이 작가적 망상과 겹치면서 발생하는 유쾌한 코미디다. <빅코믹스피리츠> 2001년 12월호에 개제되었으며, 소학관 코믹스피리츠상에 입선했다. 이 정서는 2001년 가을에 그린 차기작인 <할아버지 힘내세요>의 고양이 개그로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여기서는 망상 대신에 미소녀 여선생이 등장해서 작품을 끌고나가는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활용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내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양승천이 글을 맡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썰렁한 농담을 전달하는 짧은 이야기로, 의인화된 캐릭터들의 상황묘사를 통해서 독자를 농담 속으로 집어넣는 손쉬운 방법이 아닌, 전화통화로서의 전달을 같이 듣도록 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주고받는 남녀의 관계, 그 감수성에 주목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분에 여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골방의 만화가, 즉 작가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이로써 처음의 상상화된 자화상과 마지막의 현실적인 자화상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본 단편집의 여러 이야기들을 감싸안는다.

본 단편집은 변병준이라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는 것인 만큼, 아직도 극복 과정 중에 있는 단점들 역시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의 극적 재미 부족이나, <프린세스 안나> 이래로 이어지고 있는 유사한 이미지의 칸간 연출 반복 등은 아직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변병준식 개성으로 끌어내고, 더욱 깊은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2000년대 초반, 변병준이라는 작가가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성찬인 것이다. 그리고 도시적인 섬세한 감성과 상처입은 소년소녀, 그리고 따뜻한 유머와 당혹스러운 상황의 블랙코미디 등 이 모든 트레이드마크격인 요소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녹아들어간 변병준식 걸작의 탄생이, 앞으로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몇 년전, 한 지인이 변병준을 ‘박흥용의 적자’라고 일컫은 적 있다. <첫사랑>과 <프린세스 안나>에서 그가 보여준 도시풍경과 그 속에 녹아들어간 인간군상들이, 80년대 박흥용이 발표했던 작가주의 성향 단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당시 박흥용 단편집의 제목은 <백지>였고, 이번 변병준 단편집의 제목은 <미정>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으로서 공란을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어떤 여성의 이름일 수도 있도록 고안된 제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이 가운데 어떤 가능성을 발전시킬 것인지, 즉 다음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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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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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코스모스> 속에서 부유하기

<코스모스> 속에서 부유하기

신인 만화작가가 데뷔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가장 놀라움을 안겨주는 경우는 어느 순간 짦막한 단편으로 세상에 선보인 후 오랫동안 숨겨져있다가 온전한 작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력있는 신인을 새로 발굴한 듯한 만족과, 면식있는 작가의 성장한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들을 ‘중고신인’이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작가적 고민으로 인하여 스스로 만족할만한 역량을 쌓을 때까지 자진해서 다시 축적의 길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결심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준의 <코스모스>는 이러한 과정의 결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이한 사례가 될 것이다.

본 작가의 공식적인 데뷔는 97년 봄, <빅점프>에 단편이 입선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김성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97년, 제1회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에서 수상작에 올라와있던 <잠자리는 없다>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보통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들이 기발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특징지어진다면, <잠자리는 없다>의 경우는 오히려 흔한 SF적 발상이지만 잘 정리된 안정적인 연출으로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화풍이었지만, 색채의 연출 활용 등에서 스타일리스트로의 성장가능성이 점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미 충분히 상업지에서 정식데뷔를 할 수 있는 실력이나 감수성을 갖추었음에 분명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연재 소식이 들리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잊혀져갔다. 그런데 2001년, 다시 동아엘지 공모전에서 낮익은 이름, 하지만 그림의 질감은 사뭇 다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본선진출작에 걸려있던 <난...>이라는 단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잊을 만할 때인 2003년, <배바라기>라는 작품으로 다시한번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같은 해,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의 출판제작지원 대상작 명단에서 김성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고, 결국 이렇게 정식 출판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앞의 두 단편을 포함한 본서 <코스모스>의 탄생배경이다.

<코스모스>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작가가 그린 7편의 단편들이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화풍이나 이야기형식, 그리고 분절성에 있어서 독립된 단편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발생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덕분에 독자는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난데없이 4명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 속으로 던져지며, 그 주인공들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난감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이들의 과거 관계를 조금씩 엿보며,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수렴된다. 이것은 분명히 매우 불친절한 방식이며, 창작자도 수용자도 편하게 뒤로 기대어 쉴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는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하지만 동시에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인연으로 서로 연결되는 두 쌍의 남녀, 그리고 그 남루한 현대남녀들의 사랑, 꿈, 환상의 담담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본작의 연출방식 역시, 친숙한 무언가를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필두로 90년대 후반 유행한, 독백조의 관념적 나레이션이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듯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류의 핵심적인 특징인 ‘쿨’한 성격이라기보다는 단지 상호관계에 미숙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앞선다. 상황과 분위기, 인물들은 하나로 섞여들어가기보다는 마치 각각 다른 레이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리얼한 묘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단지 환상 속의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만이 아닌 작품 전반에 걸쳐서 느껴지는 정서다. 나아가, 만화에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자체의 드라마성과 화풍을 통한 정서전달이라는 측면을 볼 때, 작가가 추구한 것은 오히려 이야기 자체의 정서전달과 화풍의 드라마성으로 생각될 정도다. 다시 말하자면, 대사와 드라마 전개는 인과에 의하기 보다는 정서적 흐름에 따라서 여러 주인공들 사이를 누비고 있고, 오히려 시각적 요소들이 다양한 화풍과 상황들을 넘나들며 어떤 특정한 전개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각 에피소드별 주인공의 전환이나 소제목을 통해서 드러나는 전체 정서의 방향잡기, 만화화풍이나 이야기서술 방식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흐름 역시 시간과 인과를 의도적으로  파괴해 나가며 진행된다. 속칭 실험 만화들이 시각적 파격에 대한 집착으로 흐르기 쉬운 것에 비해서, <코스모스>는 이야기 서술 자체를 파기하지 않고도 다양한 층위에서 파격을 실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성공적이고, 때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때로는 신선하고, 때로는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 도전정신 자체는 집요하리만큼 일관적이다. 

첫 이야기인 <올리브그린>에서 주인공인 시우, 연희, 은정, 지철은 서로 만난다. 네 명 모두의 시각에서 각각 그 만남은 묘사되며, 지난날의 이야기들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난...>에서 시우와 연희의 첫만남이 공상속의 지구파멸과 정체성의 이야기로 유머러스게(?) 묘사된다. 그리고 시간은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연희가 상징물처럼 착용하고 있는 돌고래 목걸이를 처음 줍는 것으로 시작하는 <바다가 오다>의 연희와 은정의 취중환상으로 이어진다. <꿈속의 여인>에서 지철의 성적 환타지가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며, <나의 거리>에서 은정을 향한 지철의 마음이 아예 만화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직접 묘사된다. 이 낯선 변화가 끝난 후 다시 만화로 돌아온 이야기인 <배바라기>는, 4명의 주인공을 벗어나서 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건너뛰며, 연희의 돌고래가 가지는 ‘바다를 향한 탈출’이라는 자유로운 해방의 이미지와 현실에서의 비극적 결말을 내포한 상징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난교 그리고 바다>의 소설체를 통해서 결국 예정된 결말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의 에필로그 <핑크하우스>로 이후를 열어놓으며 이렇게 작품은 완전히 끝을 맺는다.

작가의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실험정신이나 실체를 알기 쉽지 않은 –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전형적인 관념적 흐름은 앞으로 차차 풀어나아가야할 과제다. 화풍에서나 이야기에서나, 자신이 영향받아온 특정 만화나 소설, 영화 작품들의 흔적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일부분에서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극복해 나아가야할 부분이다. 나아가, 표현이라는 측면과 독자와의 소통이라는 측면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균형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의 성장의 척도에 가깝다. 하지만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재능있는 신인으로서, 이번 작품이 부끄럽지 않은 데뷔작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권말의 서평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은 본작을 조금이나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고, 앞에서 그 것을 충족시켜보고자 한두마디 늘어놓은 셈이 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진심은, <코스모스>의 경우 이런저런 설명들을 살펴보면서 논리적인 해답을 찾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처음 볼 때의 그 거리감과 불편함을 더욱 즐겨볼 것을 바라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그것이 이야기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추구해보려고 하는, 오랜 제작기간을 들여서 만든 신인작가의 연작 작품의 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기는 방식이다. 작품의 마지막 공간이 그림속에 있고, 그 공간의 그림이 다시 그림속에 있는 무한반복의 라스트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작품과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잠시 부유해보며 여운을 느껴볼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 여운이,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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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으뜸과 버금 0403]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르겠다. 아마도 피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기만이 가능할만한, 엄청나고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꾸어보면, 모두의 관심사로 탈바꿈한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강풀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강도영의 <순정만화>는 바로 이것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다. 

  <순정만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디어 다음>에 연재중인 만화로, 이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0여 화가 문학세계사에서 최근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다음이라는 막강한 인터넷 포탈의 힘이 아니더라도, <순정만화>는 어차피 히트를 기록했을 법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커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솔로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떻게’라는 과정은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우여곡절, 여러 인연과 사연들이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는 흐름이 결국 큰 맥락에서는 사랑이라는 큰 차원으로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을 독자들이 깨닳을 때, 더 이상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는 못배긴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이런 큰 원칙을 좋은 작품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자신의 사이트 강풀닷컴을 비롯해서 여러 온라인 만화지면을 통해서 수련된 연출호흡은 모니터 친화적이며, 동시에 인터넷 독자들의 독서 및 반응 패턴을 정확하게 맞추어주고 있다. 한 회의 연재분량은 하나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끊어나가며, 그 속에서 자기 완결적인 기승전결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아가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방식 보다는 한 페이지 안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단지 수평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패턴에 함몰되지 않고 연속극 방식의 내용연결로 이야기의 전개를 축적하여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짧은 호흡을 보완해나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말하다 보니 대단히 어려운 개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을 잘 다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능숙하고 잘 만든 만화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연재시에 <순정만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때 과연 살아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힘이 다음 페이지면 다음 이야기가 있는 단행본에서도 통할 것인가. 또한 마치 가려진 부분들을 조금씩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던 한 페이지 내에서의 스크롤 방식이, 여러 페이지로 분절된 책 속에서 과연 매력을 발할 것인가. 나아가, 모니터 화면의 저해상도 불빛에 맞추어 놓은 여유로운 컬러 그림과 경계없는 칸의 매력이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혀서도 그 투박한 멋을 발휘할까.
  책을 펼쳐본 결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재미있었다. 이때, 필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의 기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만화의 진정한 힘,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덕분에 필자도 이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사랑 이야기의 다음이, 궁금해 미치겠다.
[으뜸과 버금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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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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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FIVE – 밴드 만화의 미덕 [으뜸과 버금 0402]

TAKE FIVE- 밴드 만화의 미덕

김낙호 (두고보자 편집위원)

이야기만화에는, <드래곤볼>, <슬램덩크>등의 대형 히트작으로 대표되는 소년만화라는 커다란 장르가 있다.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중심줄거리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그것을 함께 극복하도록 돕는 동료들을 얽어넣는 공식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주류장르다. 이 장르에서 강력한 적과의 대결은 필수적이며, 동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멋진 명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외계의 강자들, 그리고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 뭉친 주인공과 친구 용사들… 이 결합하면 <드래곤볼>이 되는 이치인 것이다. 이처럼 지구, 나아가 전 우주를 걸고 맞짱 싸움을 벌이는 환타지물도 있지만, 만약 나름대로 현실적인 환경설정 속에서 그런 재미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포츠물이 있다. 그 다음은 좀 더 원초적인 학원폭력물도 생각난다. 하지만 이미 그쪽은 너무나 많은 작품에서 써먹었고… 좀 더 특이하면서도 일상적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온 아이디어중 하나는 분명히, ‘밴드’다.

우정이라는 측면에서 먼저 볼까? 밴드는 기본적으로 팀이다. 팀웍이 밴드의 ‘힘’의 핵심이다. 게다가 각 악기파트별로 뚜렷한 개성도 있어서, 기타도 보컬도 드럼도 각각 다른 성격의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인원 역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3-5인조 정도로 편성할 수 있다. 대결은 어떨까. 밴드 음악은 서로 겨룰 수 있다. 누가 더 연주실력이 좋은가, 더 작곡을 잘하는가, 관객을 더 감동시킬 수 있나… 경쟁이다. 그리고 심지어 대화합의 발판도 확실하다. 뜨거운 경쟁을 펼치던 실력있는 밴드들이, 결국에는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된다’… 얼마나 감동적인 화해의 장인가.

TAKE FIVE(유상진 작 / 학산문화사 / 현재 2권 발매중)는 이러한 지점에서 탄생한, 영화판 용어로 하자면 ‘웰메이드’ 소년 밴드만화다.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서 부모 몰래 예고로 전학을 가버리고, 그 결과 집에서 쫒겨난 주인공 이주인은 모범적일 정도로 소년만화적인 주인공이다. 넘치는 열정, 하지만 장래에 대한 고민이 있고 아직은 실력도 그리 썩 뛰어나지 않은 캐릭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캐릭터를 성장기도로 올려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짠, 하고 수상한 여주인공의 등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더 큰 성장과 목적을 위한 밴드 결성,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밴드간 대결. 그 과정은 너무나 능숙하고 매끄러워서, 보편적인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사실 가 표방하는 ‘재즈 만화’라는 것은 그다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뭔가 전문적인 ‘개성’으로서 소년만화에서 흔한 락보다는 특이하게도 재즈를 택한 것이고, 그 선택은 어설프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매니악하지 않은 정도의 전문지식 수준 안에서 나름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유머, 적절한 과장, 적절한 고뇌, 적절한 갈등, 적절한 애정관계. 이 모든 완급이 신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특이하고 전위적인 개성은 아니지만, 좋은 주제와 좋은 연출의 웰메이드 장르만화의 미덕을 갖춘 즐거운 만화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의 진행이 마음에 들고,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으뜸과 버금 200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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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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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로 한자 익히기 – 마법천자문 [으뜸과 버금 0401]

필살기로 한자 익히기  – 마법천자문
(스튜디오 시리얼 / 2003, 아울북 / 현재 2권까지 출간중)

김낙호 (만화연구자/두고보자 편집위원)

  아이들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방금 삼십분전에 시킨 심부름이나 구구단 같은 것은 어느틈에 깨끗하게 잊어버리지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니 벨로시랩터니 하는 그 길고 긴 공룡 이름들은 고고 생물학자들보다도 더 줄줄 외우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이 애들은 여하튼 잘 외우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생물학 도감을 들이밀면 역효과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몰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답은, 그렇다면 어디에 몰입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이 부분은 약간 더 어렵다(만약 확실한 답을 알고있다면, 한국땅에서는 쉽게 떼부자가 될 수 있으리라). 필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접근을 좋아하는지라, 그 해답은 “자기들의 생활과 관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들이 무슨 생활? 모르시는 말씀. 아이들의 생활은, 부모들이 폄하하는 것 이상으로 심오하고 복잡미묘하다. 서로 다른 개성과 능력에 의한 경쟁관계, 성장, 강한 것에 대한 동경, 점차 복잡미묘해지는 인간관계 등이 여과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다가오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생활경험에 기반한 욕구들을 반영하는 환타지를 하나의 줄거리로 담아내는 작품이라면,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해서, <포케몬>의 히트는 단지 피카츄가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그 지점을 확실하게 공략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뭐든지 – 심지어 한자공부라도 –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로 그런 책이 나오고 말았다. <마법천자문>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서유기의 주인공들을 바탕으로 하는 소년만화 스타일의 작품으로, 필살기 중심의 대결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소년취향 만화의 단골소재인 필살기라는 개념은, 사용자의 개성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며 그 상성이 다르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승패결과를 조합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필살기로 한자를 사용한다면? 허공에 소(小)를 쓰면 상대가 작아진다든지, 화(火)를 쓰면 불길이 치솟는다든지, 그것을 수(水)자를 써서 물벼락으로 꺼트린다든지 하는 대결의 묘미가 생겨난다. 더 어려운 한자를 상황에 맞게 구사할 줄 아는 자가 바로 강자이며, 그러한 고수가 되는 것이 바로 성장의 척도가 된다. 악의 마왕에게 맞서기 위한 방법은 주인공의 끊임없는 수련 – 즉 한자공부다.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능숙한 장르법칙에 따라서 깔끔하게 연출되는 우정과 대결, 배신과 믿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모험. 그 모험에 동참하는 어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그 한자를 되뇌이고, 종이에 끄적거리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런 방식이라면 천자문이 아니라 사서삼경이라도 어느틈에 다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학습만화의 미덕은, 단순히 얼마나 좋은 정보가 많이 들어있는지가 아니다. 얼마나 대상독자들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는 재미를 주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배우도록 유도할 수 있는가다. 능숙하고 매끄러운 이야기, 깔끔한 화면연출,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이라는 전통적인 만화 기반 위에, 한자마법 필살기라는 새로운 요소를 섞어넣은 <마법천자문>은, 홍은영의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성을 이어나갈 차세대 기대주로서 손색이 없다.
[으뜸과 버금 200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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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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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이유를 유머로 캐묻다: 십자군 이야기 [으뜸과버금 0312]

전쟁의 이유를 유머로 캐묻다: 십자군 이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독으로 독을 치유한다” –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자, 수많은 전쟁범죄을 자행한 자의 초라한 말로가 뉴스를 타고 있는 지금 생각나는 구절이다. 현역 석유재벌인 부시라는 자가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마음대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사람들을 학살해도 용납이 되는 이상한 시대지만, 적어도 자기들끼리의 심오한 이해관계 충돌 덕분에 이 세상에서 독재자가 한명 쯤 줄어들었다.

전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최근 출간된 <십자군 이야기>(김태권 작, 길찾기 출판사 / 전6권 예정 / 현재 1권 발매중)는, 전쟁의 이유를 직시하고 있는 교양만화다. 이 만화의 시각은 처음 몇 페이지에서 이미 명확해진다: “문명의 충돌? 문명끼리 어떻게 충돌합니까… 문명인들이라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해야 할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미개한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 그것이 바로 로마시대 이래로 내려온 세계의 역사라는 말이다. 무지의 씨앗을 뿌려놓을 때 사람들은 충돌과 오해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며, 그 와중에서 어떤 세력들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자기 잇속을 챙겨나간다.

<십자군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중세 서양의 십자군 전쟁의 과정의 소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풍자에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는 현재 21세기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동방과 서방, 이슬람의 정치권력 관계의 패턴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금 TV를 틀면 화면에 나올 법한 뻔한 정치인들과 그들의 행태가 그대로 이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뭔가 팍팍하고 계몽적인 느낌 – 다시 말하자면, “재미없는” 만화일 것이라는 걱정은 처음부터 접어놓기를 바란다. 작가가 매 순간마다 언어유희와 상황 개그를 일삼으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오는 실력은, 마치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고우영 삼국지>과 <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을 섞어놓은 듯 하다.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아마도 부시의 선조인 듯한 호전적인 나귀와, 서방과의 우호관계와 자주적 실리 사이에서 희극적인 고민을 계속하는 동방의 어떤 황제, 각자의 잇속을 위해서 경주하는 여러 기사들이 벌이는 난리판 그 자체가 이미 일류 코미디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중세 서양화 풍으로 구사된, 단순하면서도 미려한 그림은 이 작품의 또다른 미덕이다. 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시대를 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그림들의 연속으로서 연출해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적 연출 덕분에 설명 부분과 드라마 부분의 경계선이 한층 희미해지면서,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유익한 교양정보의 전달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종시에 훌륭하게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 작가서문의 마지막은 한 인용구절로 끝나고 있다: “기억은 약한 자들의 마지막 무기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이 바로 <십자군 이야기>가 개인이든 대여점이든 도서관이든, 모든 서가에 꼽혀있여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다.

[으뜸과 버금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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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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