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생각난 옛날 잡지 표지.

!@#… 숫자, 얼굴 등은 마음의 눈으로 알아서 왜곡해주시길.



(Daily Mirror 2004.11.04일자 표지)

덤: …주식 사러가자. 토목 쪽으로.
덤2: 돌솥밥용 솥 품귀현상 전망.
덤3: “탈루 탈세 합법화 파문… 부끄럼 없다면 대략 오케이”
덤4: 한나라당 지지자들, 정권 교체를 빙자한 1당 독재의 완성에 성공하다.
덤5: …이 블로그는 제발 그냥 좌시해주셈. 굽신굽신.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당신의 투표 한 장이 바꾸는 것

!@#… “당신의 투표 한 장이 세상을 바꾼다“는 격언은 솔직히 구라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한 표, 크고 큰 선거 결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물론, 되면 좋죠.

!@#… 그래서 “당신들의 한 장 한 장이 모여서 세상을 바꾼다“로 격언을 바꾸면 좀 더 낫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떤 당신’들’이 ‘모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구도의 것이죠(사회과학자들의 밥벌이이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 표들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보장은 애초부터 없습니다. 물론, 되면 좋죠.

!@#… “당신의 투표 한 장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당신을 바꾼다.” 스스로의 정치적 성향, 사회정의에 대한 잣대, 계급계층적 이해 관계, 내 지갑™에 정말 단/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표를 던지려고 할 때, 당신은 세상속 당신의 진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근거없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눈치보며 대세니 전략적 지지니 사표 운운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투표하지 말기를.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 투표하시길. 민주주의의 주인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바로 당신이 레벨업됩니다.

PS. 여기 오시는 분 가운데, 투표하러 가지도 않고 앉아서 아침부터 이것부터 읽고 계실 분이 얼마나 계실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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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나온 김에… 라따뚜이 짤막 감상.

!@#… 2007년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지만, 여차저차 별 말 없이 지나간 작품, 시궁창쥐(rat… 한국에서는 생쥐mouse로 광고했지, 아마) 주방장이 프랑스 요식업계 정복을 위해서 4신수의 신물을 확보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화천회와 대립하고 결국 천궁을 부러뜨리고 하늘보다 인간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살인 미소를 날리는… 아니 뭔가 다른 이야기지만. DVD 출시 기념으로 짤막 감상. 사실 아직 DVD 구매는 못했고, 그냥 극장에서 두 번 본 기억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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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팝툰 17호]

!@#… 팝툰의 대대적 지면 개편에 발맞추기 위해, 만화프리즘 칼럼 다음 회부터는 하드한 시사 이야기보다는 좀 더 두루뭉실한 세태 이야기 위주로 살짝 방향전환을 할 예정인데(그래봤자…-_-), 그런 의미에서 ‘구’ 컨셉의 마지막회. 별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결국 정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OTL

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라면, 꽤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가 아니고 모든 대화의 장소가 공개토론회가 아닌 만큼 근거 없는 낭설이나 패배주의적 단순화가 넘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가끔 그 정치 구도에 자신이 속해있는 입장을 실제로 자신의 신분인 서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무슨 국가를 걱정하는 고위 정치인이나 강남 사장사모님과 동일시하는 이상한 패턴도 있다. 하지만 전제해야 할 것은, 어떤 수준에서든지 간에 정치에 관한 관심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관심보다는 백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관심과 소통이 있으면 인식이나 현실 자체의 문제점들을 수정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세상은 멍청하고 고립된 개인 망상의 나락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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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상 뭉개기 방지하기 [팝툰 16호]

!@#… 하지만 잡지에 나가고 홀드백 이후 이 블로그에 오른 지금 시점에, 이 이슈는 이미 원더걸스 만큼의 떡밥레벨도 없는 유사 망각의 영역으로 벌써 사라지고 있도다. -_-;

남북협상 뭉개기 방지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마치 초등학생들이 방학 마지막 날에 밀린 일일 숙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듯, 한 정권 내내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던 남북관계가 임기 말에 결국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레어 DVD 박스세트로 상대의 환심을 사는 참으로 바람직한 접근에 힘입었는지 몇몇 상당히 소중하고 구체적인 남북협력 사업계획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고, 바닥을 치던 국정지지율은 일시에 거의 50%를 넘나들고 있다. 남북 평화의 중요성 뭐 그런 뻔한 것을 제외하고 가장 큰 교훈이라면, 역시 자고로 인생은 한 방. 하지만 문제는 워낙 임기 막판이라서 선언은 현 대통령이 하고 일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 그런데 사람들의 현재 후보 선택 성향이란 것이 남북 발전보다는 대운하 개그에 쏠려 있는 만큼, 이번 협상 내용들의 향후 진행에 난관이 적지 않을 것임을 자연스럽게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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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고 싶어하는 정치인의 과거란 것

!@#… 요새 신문들 가운데 노골적으로 한나라당 – 아니 이명박 후보 – 을 지지하면서도 수사학의 힘으로 선거법 위반의 경계선에서 겨우 줄타기하는 곳들의 사설을 읽다보면 (조중동이니 조중동문이니 조중동문국이니 어쩌니 자꾸 이름이 길어져서 귀찮아 죽겠다), 종종 등장하는 논리가 하나 있다. “과거의 도덕성 검증보다, 미래를 꾸려나갈 능력을 보자”. 뭐,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말이야…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흠결이라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것을 따지지 못하면, 미래에도 지속된다.

!@#… 도덕성을 위한 도덕성 검증이야 바보같겠지만, 나중에 큰코다치지 않고 제대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야매질, 편법을 쓰지 않는 사람인지 평가를 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한마디로, 지금 이명박 예비후보의 재산 축적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작 도덕성 검증 따위가 아니라 당신들도 그렇게들 좋아하는 능력 검증이다. 그 정도를 가늠하지 못하면 솔직히 투표장에 갈 자격도 없다. 왜 내가 디자인 좋은 우리집 모니터로 저런 쌩쑈를 읽어야 하는거지?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전거성이고 남녀문제고 군가산점이고 자시고.

!@#… 반짝 인기로 끝날 줄 알았던 ‘전거성’ 쑈 – 마치 70년대 드라마에서 오려낸듯한 가부장 정신의 엑기스 전원책 변호사가 군가산점 부활 찬성론으로 상당수의 남성 인터넷 유저들(capcold는 아무때나 ‘네티즌’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거 싫어한다니까)에게 히트치고 있는 현상 말이다 – 가 생각보다 계속되고 있어서 재밌다. 이 분이 흥행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방송국들이 간파했는지, 토론프로그램마다 못 모셔가서 난리다.

뭐 다른 분들이야 뭐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든 또는 걱정하든, capcold는 항상 그렇듯 자기 관심사에 따라서 이상한 지엽적인 부분을 공략하곤 한다. 이번에 이 건을 통해서 읽어내는 건 두 가지다: 1) 담론의 막다른 골목 환원 현상, 그리고 2) 대변받고 싶은 욕망. 그냥 좀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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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뒤져보자: 선관위, 선거법, 인터넷상의 정치 표현

!@#… 최근 블로고스피어를 뜨겁게 달군 토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인의 인터넷상 선거 관련 의사표명에 대한 선거법 적용 관련 기준 발표 (좀 더 쉽게 표현하고 싶지만, 단순화하기도 싫다). 굳이 이미 오고간 수백의 성토에 굳이 더 한두마디를 덧붙일 이유는 전혀 없듯, 그 발표에서 이야기하는 기준은 그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충분히 아스트랄한 결과이며 표현의 자유를 크게 옭아맬 여지가 엄청나다. 그런데… 사실 그 문제를 파고 들다보면, 그 발표를 한 선관위를 욕 한바가지쯤 더 하는 것 정도로는 도저히 뭔가 해결될리가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선관위의 발표를 거부하는 촛불시위라도 할까? 그래서 해결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하겠지만, 아니잖아. 선관위는 실제로 처벌을 내리는 사법기관도 아니고, 그들의 적용기준이야 발표했다지만 법 자체를 만드는 입법기관도 아니다. 즉 상식적으로 봐도 잘못은 있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잘못이고 또 어떻게 고칠 수 있냐, 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 사실 핵심은 간단하다. 의사소통의 기술과 수요, 활용은 발달했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조율하는 제도는 그 다양함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핵심에 인터넷, 그리고 최근 1-2년간 ‘개인의 인터넷’이 떠오르고 있고. 그런데 정작 그 괴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소통의 차원과 실제 정치의 차원이 점점 서로 분리되고 그 갭에서 정치혐오, 시스템에 대한 대안 없는 냉소가 자라고 있는 것. 그래서 한번, 선거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최근 수년간의 스토리를 한번 다시 뽑아봤다. 주연 선관위, 국회, 모 정당들, 인터넷과 언론들 등등. 선거법을 놓고 벌이는 뜨거운 애증의 소용돌이. 한번, 언론을 뒤져보자(귀찮아서, 대체로 경향신문 하나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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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 『26년』[기획회의 070601]

!@#… 하지만 따지고보면 지금은 27년. ‘서평’이라는 것은 종이책으로 단행본 출간된 후에야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좀 불편하다. 이 정도 레벨의 물건을 정작 작년에는 한국만화 전반 추천이나, 그냥 개인 포스팅에서 밖에 다뤄주지 못했으니 원… 연재중인 웹만화를 바로 평가하고 추천할 수 있는 공식 지면도 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결국, 없던걸 새로 만들어내야겠지만.

현재진행형 – 『26년』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오래된 명언을 다시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나간 일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양분이 되어주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과거에 배운 것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주고, 과거에 겪었던 어려움은 현재의 조건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의 정리되지 않은 사건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도록 종용하곤 한다. 만약 그것이 개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큰 차원 – 사실 국민이니 민족이니 나라니 하는 범주들을 동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 이라면, 한 사회의 현재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온통 해방 후 현대사가 워낙 인과응보를 깨끗하게 무시한 닥치고 전력질주를 일삼아온지라, 그 결과 참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현재를 살고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지다시피, 그런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물론 법적인 평가도 끝났고 책임자 처벌과 사면도 이루어졌다지만, 가해자의 반성도 자숙도 없는 이상은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그저 ‘비극’으로 치부되고 끝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가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낼 마감시간은 점점 임박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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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20주년.

!@#… 날이 날인 만큼, 한번 쯤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6월 항쟁 20주년.

http://orumi.egloos.com/3219672
– 민중, 노동자, 혁명 같은 과장된 개념으로 떡칠하지 않고도 전체 과정을 잘 정리한 글을 찾기란 참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

http://u610.cafe24.com/museum/bbs/
– 인터넷 6월항쟁 기념관. 부담스러운 해석도 많지만, 가장 많은 자료 보유. 특히 85-87년 사이의 관련보도들을 모아놓은 신문스크랩 자료실 추천(저작권상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 비굴보도의 달인, 조선일보가 미포함인게 아쉬울 따름.

http://unbeliever.egloos.com/3221694
– 먼 옛날 한 때, 팩트 근본주의의 사도로 올바른 기자상에 가까웠던 조갑제1.0의 부마항쟁 묘사.

“벅찬 승리였고 시린 상처였다” (한겨레21)
– 대선주자들, 그 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http://scemo.egloos.com/3483353
– 흐릿해지는 기억에 관하여.

김동원 감독 “6월항쟁 자화자찬 할 게 아니다” (연합뉴스)
– “6월 항쟁은 중산층 등 시민운동 진영 뿐만 아니라 철거민 등 기층민들이 참여했던 운동인데 97년도 그렇고 올해도 기념사업회 어느 모퉁이에도 그들이 함께 자리하지 않고 있다” – 김동원 감독

올해도, 이날.

!@#… 오늘은 푸르른 5월, 핏빛 검붉은 18일. 잠시 묵념.

– 한 2년전에 쓴, 518 관련 작은 소망:[클릭]

– 가장 간결명확하게 잘 표현된, 518을 기억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개요 (강풀만화): [클릭]

– 고교생 시인의 시 한 수: [클릭]

– 최근 문학세계사에서 종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26년’ 미디어다음 연재분: [클릭]

– 5.18 기념재단: [클릭]

– 교육부왈, 계획된 학살이 아니란다… 하기야 원래 당신들이 섬겨 마지않는 5공 어르신들의 계획은 특공대 투입해서 총칼 들이대고 그냥 말로 잘 타이르려고 했나보다. 그치? [클릭]

!@#… ’26년’ 연재종료 기념 포스팅에서 달았던 리플을 다시 갈무리하며 재미없는 포스팅 마무리.

“…뭐 저도 내용상의 불만이야 여러가지 있습니다. ‘절대악’으로서의 전두환을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 전두환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모든 공범들 – 그 중에는 광주를 빨갱이 폭동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그게 거짓말로 드러나자 애써 잊어버리려고 했던 평범하게 비겁한 민초들도 포함 – 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으니까요. 진짜 성찰은 자기 얼굴에라도 과감히 똥을 바르는 것에서부터 시작인데, ‘민중’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게 넘쳐나면 그런 작업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그래도 실존하는 전두환 자체가 진짜 절대악인 것이야 사실 맞기 때문에 뭐…;;; 다만 전두환을 제거한다고 해서 ‘악’이 특별히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죠. 한나라당이 40% 지지율을 얻고 정형근이 의원이 되는 동네 사람들의 마인드로 사실 뭘 하겠습니까.”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머릿수 세력 과시 커뮤니케이션의 허상

!@#… 완전소중 황오빠 지지집회를 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 것이… 수천명이 아니라 수천만명이 거리에 나와서 촛불들고 우석오빠 힘내세요를 부르짖는다고 한들, 사기친 전과가 사기 안친 걸로 바뀌나? 없던 줄기세포가 땅 속에서 솟아나나? 진실을 온 힘으로 막아내고자 총력전을 펼쳤던 행위의 증거들이 스르륵 사라지나? 도대체, 인원숫자에 기반한 ‘세를 과시함’으로써 얻어내고자 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 사람들의 뜻이 많이 모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그 소박한 희망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정말 좀 재교육이 필요하다. 아 그래, 4.19도 있었고 87년도의 넥타이부대 경험도 있고, 노무현 탄핵 반대 사례도 경험해 본 나라의 국민이기는 하지. 사람들이 힘을 합치니 뭔가 세상이 움직이더라, 라는 것. 그런데 그런 ‘성공사례’들의 공통점이란? 애초부터 ‘다수결’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형식민주주의 체계에서 공공직 고위 공무원의 직위유지라든지 하는 것들은 다수의 결정에 기반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다수의 힘으로 반대하면, 형식상으로 몇 다리를 건너뛰는 극단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성립되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 예를 들어 노무현 탄핵건은 그 극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어차피 법적으로 결정해도 탄핵 요건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만이 시위를 하든 말든 당연히 정해진 결과다. 사람들의 ‘힘’이 발휘된 진짜 지점은 무엇이냐 하면, 총선이다. 직접 투표를 하는 과정에 탄핵세력에 대한 반대 의견이 직접 반영됨으로써, 한나라당 급락 열린우리당 급부상. 다수결의 힘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 다수결이 작동한 것 뿐. 착각하지 말자. 수많은 대중의 뜻은 대통령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그것은 ‘헌재’에서 ‘헌법 논리’에 따라서 했다), 대통령을 거꾸러트리려던 구 기득권 세력에게 결과적인 불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따름이다. 그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너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시민의 힘”이니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에 비해서 미군 여중생 압살사건은 어땠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서 뜻을 모은들, 사건의 골자와 이후 처벌대책은 ‘한국인’들의 ‘다수결’로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었다. 미군의 수사 문법에 따라서 수사와 처벌이 행하여지고, 한미협정에 의하여 한국측에 보상과 사과가 이루어질 뿐이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아름다운 마음을 확인하는 것 말고는, 실제적인 효과는 제로다. 물론 대중 의견의 다수결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가해서 좀 더 사태 대응에 능동적이 되도록 채찍질을 한다는 정도의 간간간접 효과 정도는 있지만, 솔직히 다음주가 선거 시즌이 아니라면 그 영향 대단히 미미할 뿐이다.

!@#… 특히 머릿수에 의한 세력 과시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전부 쥐고 있는 소수의 압제자 vs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박탈당한 다수의 민중이라는 뚜렷한 대결구도가 있던 시대적 맥락에서만 가능했던 현상이다. 다수결이라는 룰이 있는 종목에서, 쪽수에 의한 세력 과시는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하지만 다른 룰이 적용되는 시스템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주주의라면 그냥 ‘다수결’이라는 룰이 전부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가 더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다양한 종목들과 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법논리라는 룰, 과학이라는 룰, 경제경영이라는 룰, 민족주의라는 룰… 예를 들어 이번 황 사태에서 부각된 ‘과학의 룰’은 어떨까. 이것은 다수결이고 어쩌고와 전혀 관계없다. 과학적 엄밀성과 근거자료라는 것이 핵심 판단기준이다. 형사법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과학에서는 입증 책임이 과학자 본인에게 있다. 이런 룰의 차이를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고 ‘국민적 성원’이라는 전략으로 소통을 밀어붙이니 줄기세포교도라고 비웃음을 살 수 밖에.

!@#…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관들이 보장되며, 그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조율되는 유동적인 시스템이어야만 존재의의가 있다. 훌륭한 올림픽 경기는, 각 종목의 룰을 파악하고 그 룰을 때로는 지키며 이용하고 때로는 유리한 방향으로 고쳐나가면서 이루어진다. 투포환을 들고 하키장에 난입하는 것은 뻘짓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머릿수 늘리기가 아니라, 그 상황 그 이슈 그 룰에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을 찾아내는 것이다.

!@#… ‘무슨 목표‘를 얻기 위해서, ‘누구‘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도 없이 감정적으로 고양되서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은 축구응원으로 족하다. 길거리에서 대규모로 모여서 전투적인 시위를 하는 것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사안은 특정한 부류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시대적 맥락 – 특히 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경로들 – 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런 맥락을 잊어버리고 방법론 자체에만 몰두한다면 당연히 소통 효율성이 떨어지고 관성화되어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죽창과 쇠파이프로 필살의 진을 친다고 해봐야, 결국 그 결과 길거리 시민들에게 마저 여론화되는 것은 교통체증과 폭력시위와 진압의 문제 뿐이지 그들이 주장하던 노동자 농민 생계보장 문제는 묻혀버리지 않나. 그러한 역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나왔던 것이 최근의 촛불시위라는 방법론. 깃발 없이 구호 없이, 즉 조직적 동원 없는 자발적 참여를 매력포인트로 내세우는 방식. 하지만 이것 역시 점차 수많은 마이너한 사안들(황우석 오빠 사랑해요…라든지) 흔하고 식상해지고 있어서 화제를 집중할 만한 가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와 맥락에 입각한 가장 효과적인 소통방법론의 고민이다. 예를 들어 두 가지 분신 사건을 놓고 보자. 노동자 전태일이 노동법을 준수하라며 평화시장에서 분신을 한 것은 노동자들의 여론을 규합시키고 친노동자 지식인층을 각성시키며 제한적이나마 주류 언론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당시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이전에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은 시도해봤고,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최종적인 선택이었다. 그에 비해서 어제 황우석을 지지한다며 분신했다는 분은, 고인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도대체 그런 고민이 과연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뜻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비극 아닌가.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한 의사소통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도, 운동의 향방도, 일상 생활의 조율도 결국 여기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디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capcold에게, 스스로 쥐어주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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