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현상, 약간의 교통정리

!@#…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다음 아고라 상에서 만들어지는 통찰력 있는 예언은 아고라라는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 또한 아고라의 익명 발언이라는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다. 아고라는 특성상 철없는 투정과 쌍욕부터 의외의 심도 깊은 통찰까지 수비범위가 넓은 곳이다. 왜냐하면, 별다른 검증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 말이 그냥 거친 넘겨짚기일 가능성을 바탕에 깔고 어쩌면 쓸만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도로 접근하는 것이 기본이다(그게 안되는 순박한/멍청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걱정거리다). 하지만 그 맥락을 넘어설 때는, 예를 들어 아고라에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주류 시사잡지에 글을 쓴다거나 하면 당연히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 학회지 논문만큼의 엄밀함은 아니라도, 저널리즘적 사실성과 논거는 갖춰야 한다. 혹은 그 글 자체가 그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런 기준에 의해서 까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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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살리기 캠페인: 11월 20일, 그때 너는 검었다

!@#… 작은 공지 사항. 11월 20일은 두번째 ‘YTN을 생각하는 날’이라고 합니다(클릭).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YTN은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의 구본홍 사장이 낙하산 착륙한 바람에 벌써 4달 넘게 쌩난리 중(클릭). 노조의 사장 출근 저지 투쟁, 상복 입고 방송하기 등에 힘입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전에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을 둘러싼 당시 금창태 사장의 케이스에서도 볼 수 있듯 그 위치에 올라서서 버티기로 마음 먹은 이들이 발휘하곤 하는 좁은 시야의 고집은 원래 좀 장난이 아닙니다. 금전적 범죄가 걸린다면 모를까, 직업윤리나 업무 적합성에 대해서는 백날 쪼아봐야 꿈쩍도 안하는 왜곡된 자존심을 발휘하는 단계에 들어선 분들에게는, 워낙 대처하기가 무척 힘든 세상입니다(말하고 있노라니 왜 자꾸 다른 특정 동네가 떠오르는지 참 모를 일). 그래도 대처를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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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의 경제논객 ‘미네르바’ 은퇴선언

!@#… 경제난에 대한 예측이 맞아 떨어져서 (현 정부의 경제팀을 가볍게 능가하는) 스타가 되는 바람에 한나라당 정권의 집중 견제대상으로 떠올라 부던하게 해코지를 당하던 인터넷 유저 ‘미네르바’, 며칠 전의 침묵 선언에 이어서 결국 은퇴 선언 (클릭). 그리고 또 하나의 성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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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표현의 자유 개악 법안은 현재진행형

!@#… “최진실법”이라는 유치한 세몰이 명칭을 버리고, “사이버모욕죄”라는 강렬한 본질이 담긴 명칭도 버렸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건 밀어붙이고야 마는 온라인 공간의 명예훼손죄/모욕죄 개정안, 표현자유 개악법. 거침없이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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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없는 무균질 세상을 선전하기 [팝툰 40호]

!@#… 그러고보니 한 일주일 남짓 전부터, 표현자유위축을위한나경원법 (한때 그들이 최진실법이라 운운한) 이야기가 여러 공식 언론 통로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론 주가철도 999의 충격이라든지 큰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이슈가 잠수타는 것은 위험한 징조다. 여튼 지난 팝툰에 올라간, 관련 칼럼.

 

악플 없는 무균질 세상을 선전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84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는 작품이 있다. 인류의 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하고 엄청난 오염 속에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환경 속에서, 인간들이 다시 문명을 일구고 또 싸우는 와중에 공존에 의한 진정한 구원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자연보호와 생태주의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덕분에 SF/판타지 장르에서 고전급 반열에 올라가 있고 여전히 각종 환경보호 행사마다 단골 상영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사실 미야자키 감독 자신이 아니메쥬라는 애니메이션 정보지에 계속 연재하여 9년대 중반에야 완결된 원작만화의 초반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주인공 나우시카가 오염의 바다인 부해를 지배하는 거대생명체 ‘오무’들의 마음을 열어 인류와 그들을 화해시키고, 독성 가득한 부해의 바닥에는 자연정화과정에 의하여 새로운 청정 환경이 자라난다는 희망을 주며 끝난다. 그러나 정작 원작은 훨씬 중요한 한 단계를 더 나아간다. 이미 오염된 환경에 적응한 인간들의 몸에 있어서, 청정한 세상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애니에서 전달하는 환경보호라는 직선적인 메시지는, 만화에서 더욱 다층적인 생태계와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선택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가 된다. 그렇듯, 닥치고 아름다운 자연 깨끗한 강산이 아니라 자연 속을 살아가는 여러 주체들의 거래와 균형이 중심에 놓이는 것이 바로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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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사이버모욕죄 사이, 간단 문답

!@#… 모 연예인의 비극적 자살을 무려 이름까지 빌려가며 수단 삼아서 어처구니 없는 반민주주의적 제도를 정착하려고 박차를 가하는 저능아들과 그것에 동조할락 말락 하는 일부 우매한 인종들이 곳곳에 출몰하는 시기, 표현의 자유와 악플 통제와 인터넷 자율 정화에 관한 몇가지 capcold식 생각의 토막들, 문답형식으로.

!@#… Q1. ‘표현의 자유’가 그리 잘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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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빠진 것?

!@#… 어차피 예상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내용의(즉 적당히 온건한 질문과 사전 작성된 답변, 적지 않은 답변들 간의 자기모순, 정치적 제스쳐의 부족 등) KBS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 있습니다’ 이벤트, 그 실황중계 쓰레드를 읽다가 문득 든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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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사건, 표현의 자유의 상품 가치

!@#… 티스토리가 레진본좌의 블로그(차단 당시 내용들은 이런 것)를 차단해버린 사태에 대해, 역시 재미있는 화두를 건져올려주신 민노씨의 포스트를 보다가 간단한 잡상. 사건의 줄거리나 주요 이슈 등은 그 쪽에 이미 잘 정리되어 있고, capcold는 보통 그렇듯 살짝 비스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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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중단운동에 관한 얍삽한 잡상

!@#… 방송통신심의위의 광고중단운동 관련 게시물에 대한 결정이 일파만파다(아니 이것도 이제는 과거형이지만 – 삭제당하면 당하는 대로 알아서들 구글doc으로 나갔다). 사실 법조항상의 심의 조건이라는 절차적 문제는 어차피 도구적 사안이고, 소비자 불복종이 위냐 기업활동의 자유가 위냐 하는 기본 가치관이야 결국은 “둘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뻔한 결론 밖에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모든 형태의 불복종을 용인한다고 할 경우 그것을 교묘하게 악용해서 특정 경쟁 기업 말려 죽이기에 동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불복종을 용인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로서의 가치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무언가 움직임을 만들고 싶다면, 그 균형 위에서 얍삽하게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가다듬는 것. 우선 그 균형은 어디 있을지, 큰 것부터 좁혀나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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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팝툰 17호]

!@#… 팝툰의 대대적 지면 개편에 발맞추기 위해, 만화프리즘 칼럼 다음 회부터는 하드한 시사 이야기보다는 좀 더 두루뭉실한 세태 이야기 위주로 살짝 방향전환을 할 예정인데(그래봤자…-_-), 그런 의미에서 ‘구’ 컨셉의 마지막회. 별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결국 정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OTL

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라면, 꽤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가 아니고 모든 대화의 장소가 공개토론회가 아닌 만큼 근거 없는 낭설이나 패배주의적 단순화가 넘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가끔 그 정치 구도에 자신이 속해있는 입장을 실제로 자신의 신분인 서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무슨 국가를 걱정하는 고위 정치인이나 강남 사장사모님과 동일시하는 이상한 패턴도 있다. 하지만 전제해야 할 것은, 어떤 수준에서든지 간에 정치에 관한 관심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관심보다는 백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관심과 소통이 있으면 인식이나 현실 자체의 문제점들을 수정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세상은 멍청하고 고립된 개인 망상의 나락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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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기반한 분노의 민폐 [팝툰 14호]

!@#…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이 글을 바탕으로 쓴 팝툰 칼럼. 지금이야 대세가 분노에서 다시 한풀 꺾이고 호사가 모드(신정아 사태라든지, 디워 미국 정복 자뻑기라든지)로 바뀐 듯 하지만, 분명히 다시 기회만 되면 터질 패턴이니 역시 적어두는 것이 좋겠지. ‘출처 묻지마’ 문화의 폐단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수도.

가정에 기반한 분노의 민폐

김낙호(만화연구가)

더운 여름 한 철 동안, 한국 시민들의 담론 공간은 열심히 분노하느라 바빴다. 아프간 피랍사건, 학력위조사건, 영화 ‘디워’를 둘러싼 논쟁… 이런 큰 사건들은 하나같이 열렬한 분노로 이어졌다.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학력사회의 엘리트들에 대해서, 소위 ‘충무로’와 ‘평론가들’에 대해서 평소의 불만을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느라 분주했다. 개인들은 점점 더 강해지는 온라인의 1인 미디어들의 힘까지 얻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뱉어내며 서로 뭉치고, 기성 언론은 이들의 분노를 가지고 장사를 해먹기 위해서 충실히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여름의 끝무렵, 석방된 아프간 피랍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분노의 여름은 클라이막스를 맞이했다.

분노 자체는 당연히 특별히 나쁠 것 없다. 하지만 분노는 본인에게도 분노를 받는 이에게도 심지어 그 광경을 옆에서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워낙 에너지 소모적이기 때문에, 발전적인 결과를 끌어오기 위한 촉매로 써먹지 못하면 모두에게 손해다 – 그저, 표출하는 사람에게 약간 스트레스 해소가 될 뿐. 그런데 발전적 결과, 즉 내실 있는 토론과 교훈, 향후 계획으로 이어가기 위한 기본 조건은 바로 ‘믿음’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종종 믿음의 격렬한 확대 전파로 끝나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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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뒤져보자: 선관위, 선거법, 인터넷상의 정치 표현

!@#… 최근 블로고스피어를 뜨겁게 달군 토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인의 인터넷상 선거 관련 의사표명에 대한 선거법 적용 관련 기준 발표 (좀 더 쉽게 표현하고 싶지만, 단순화하기도 싫다). 굳이 이미 오고간 수백의 성토에 굳이 더 한두마디를 덧붙일 이유는 전혀 없듯, 그 발표에서 이야기하는 기준은 그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충분히 아스트랄한 결과이며 표현의 자유를 크게 옭아맬 여지가 엄청나다. 그런데… 사실 그 문제를 파고 들다보면, 그 발표를 한 선관위를 욕 한바가지쯤 더 하는 것 정도로는 도저히 뭔가 해결될리가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선관위의 발표를 거부하는 촛불시위라도 할까? 그래서 해결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하겠지만, 아니잖아. 선관위는 실제로 처벌을 내리는 사법기관도 아니고, 그들의 적용기준이야 발표했다지만 법 자체를 만드는 입법기관도 아니다. 즉 상식적으로 봐도 잘못은 있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잘못이고 또 어떻게 고칠 수 있냐, 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 사실 핵심은 간단하다. 의사소통의 기술과 수요, 활용은 발달했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조율하는 제도는 그 다양함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핵심에 인터넷, 그리고 최근 1-2년간 ‘개인의 인터넷’이 떠오르고 있고. 그런데 정작 그 괴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소통의 차원과 실제 정치의 차원이 점점 서로 분리되고 그 갭에서 정치혐오, 시스템에 대한 대안 없는 냉소가 자라고 있는 것. 그래서 한번, 선거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최근 수년간의 스토리를 한번 다시 뽑아봤다. 주연 선관위, 국회, 모 정당들, 인터넷과 언론들 등등. 선거법을 놓고 벌이는 뜨거운 애증의 소용돌이. 한번, 언론을 뒤져보자(귀찮아서, 대체로 경향신문 하나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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