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단결 한마음의 어두움 – 『이끼』[기획회의 080215]

!@#… 하지만 이왕이면 ‘발칙한 인생’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랬다…;;;

 

일치단결 한마음의 어두움 – 『이끼』

김낙호(만화연구가)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뒷받침해준 하나의 철칙이 있다면 바로 뭉치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맘모스 사냥할 때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뭉치고 타인을 배제하는 지극히 현대적인 이합집산에 정통으로 들어맞는다. 특히 같은 지역에 살기에 공동의 이익을 지니는 동네 사람들끼리 뭉칠 때 그 힘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주거단지에서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을 내쫒고자 하는 펜스 세우기든, 동네에 위치한 공고를 문 닫게 만들기 위한 실력 행사든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단결이야 당연한 행동이지만, 그것을 위해 타인에 대한 해코지를 당연시하는 순간부터 광기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번진다. 마치 습한 바위 밑의 이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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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탐구하는 공감대 – 『탐구생활』[기획회의 080201]

!@#… 웹만화 종이출판의 모범.

 

생활을 탐구하는 공감대 – 『탐구생활』

김낙호(만화연구가)

공감이라는 기법은 비단 어떤 작품이라도 어느 정도 의지하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짧은 에피소드 방식의 웹 연재만화(속칭 ‘웹툰’)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활용되다 못해 아예 ‘공감툰’ 이라는 유사 장르로 굳어지고 있을 정도다. 하나의 도식이 된 공감 만화는 일반적으로 1인칭 자전적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생활 속 어떤 순간을 등장시키고는 “다들 이런 적 있지 않나” 하고 반문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크게 신경쓰고 살지 않거나 혹은 사실은 신경 쓰고 있지만 굳이 따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닌 이야기일 때 효과가 더 강력하다. 그 결과 “아 맞아”라고 이마를 치면서 즉각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장르는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빠르게 호응을 얻어서, ‘엄마친구아들’(만화『골방환상곡』에서 퍼트림) 같은 키워드를 크게 유행시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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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국만화사의 숨겨진 대가를 찾아서[무크지 ‘거짓말’ / 0709]

!@#… 작년 하반기에 나왔던 만화 무크지 ‘거짓말’에 실린 글. 원래는 한국만화판 ‘포가튼 실버‘ 혹은 ‘스파이널탭‘ 혹은 ‘무슈 페라이으‘같은 녀석을 목표로 하고 확 써버렸으나, 문제는 사이사이에 숨겨놓은 개그는 고사하고 한국만화의 역사에라도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한 100명은 되려나… 결과적으로 도를 넘어서게 매니악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대중적 개그의 장착이 무척 절실하다. -_-; 여튼 capcold가 추산하는 그 100여명에 자신이 포함된다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스크롤의 압박을 선물로 드립니다.

 

발굴! 한국만화사의 숨겨진 대가를 찾아서

김낙호(만화연구가)

사실, 한국 만화의 역사는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다른 어느 나라의 만화계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변화의 과정과 세대간 분절이 넘쳐난다. 해방 후 잠깐 있었던 고급 양장본의 히트와 저렴한 대여문화의 좌판 떼기 만화가 공존했던 시절에서 만화방으로 갑자기 판도가 바뀌었고, 만화방의 융성 십 수년 만에 잡지나 신문이 새로운 주류로 들어서고, 만화방 자체도 장편 극화와 무협물 위주로 완전히 세대 교체되어버렸다. 여기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잡지판, 작가 세대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런 상시적 격변의 와중에서 한국의 만화사 연구는 항상 남겨진 자료의 부족에 시달렸다. 단편적인 구술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료 수집 속에서, 중요한 작가들이 종종 현재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분들의 증언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 또는 아예 묻혀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때로는 새로운 발견의 놀라움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한다. 청공만화문화연구소에서 몇 가지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 수년간 전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을 찾아다닌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만화사의 흐름을 하나로 관통하면서도 완전히 숨겨져 있던 역사적 발견을 하고 말았다. 한국만화의 배후의 스승, 진정한 아버지였던 김자설 화백을 이번에 재발굴하여 본 지면에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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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유대, 소통 [팝툰 23호]

!@#… 저번에 출간된 설 특집호용 원고라서 가족 특집으로 후딱. 모두들 -너 -이어 되시길. 인수위의 랜덤 정책안 생성기님들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져서 진정한 삽질형 1당 독재를 완성시키겠다고 미리 굳게 다짐을 하고 있는 과반수 국민 여러분들도 모두.

 

유전자, 유대, 소통

김낙호(만화연구가)

신기하게도 어느 문화권에서나, 가족이라는 개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척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만 수행할 수 있었던 여러 기능들, 예를 들어 육아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주거생활이라든지 심지어 이성간 사랑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 울타리 바깥에서도 상당 부분 충족 가능해진 오늘날의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말이다. 기능적 이유로 떨어져 살다가도 일 년에 한 두 차례씩은 집결을 하는 대가족들의 문화가 익숙한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을 이루는 핵심요소로 흔히들 착각하기 쉬운 것이 ‘피붙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혈연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족이라는 관계 구성의 첫 관문인 결혼만 하더라도 그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근친혼 금지니 하면서 유전자 공유를 적극적으로 뜯어말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법제도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법으로 가족을 규정하던 시절 이전부터 가족이라는 단위가 오래도록 존재해왔다. 그렇듯,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족 성원 사이의 관계 그 자체에서 시작하고, 혈연이고 법제도고 하는 것은 그것을 약간 더 합리화하기 위해서 붙인 요소들에 불과하다. 특수할 정도로 가까운 유대관계, 합리적 필요성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곤 하는 상호 의지적 인연의 끈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말이다. 당연히 이 속에는 가족관계의 편안함과 오지랖에서 비롯되는 피곤함도 같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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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성장담 -『도로시밴드』[기획회의 080101]

!@#… 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 호의 원고도 락음악 관련 만화여서, 담당자분이 잠시 혹시 원고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튼, 높은 품질에 비해서 화제성이 참 떨어지는 비운(?)의 작품.

락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성장담 -『도로시밴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락앤롤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발상은 참 60년대적이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와 밥딜런과 기타 락의 젊은 신들이 한 세대를 새롭게 재발명해내던 의기충천한 시대의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좀 다른 형태와 규모이기는 했지만, 90년대에 재발견되며 잠깐 대중문화의 창조적 힘에 대해서 이야기되고 락 담론이 반짝인 적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음악이 거의 ‘배경음악’이 되어버린 2000년대의 오늘날, 그 정도 과대망상급 긍정성은 많이 희박해졌다. 요즈음 락이 각종 밴드 영화나 만화로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재발견되고 있는 것은, 락의 힘 자체보다는 주로 뭔가 아련함을 이야기하는 계통이 많다. 고된 삶으로부터 잠시 동안의 청량감 있는 도피를 하는 것이다 보니, ‘쿨’함이 부족하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 편중화의 문제인데, 비유하자면 진득한 블루스락에 편중되어 직설적으로 발랄한 펑크락이 가려져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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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의 즐거움으로 버텨봐 -『SLTS』[기획회의 071215]

!@#… 연말연초는 자고로 롹이 제 맛.

락의 즐거움으로 버텨봐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

김낙호(만화연구가)

작년 여름 무렵, 필자는 모 영화 잡지에서 만화 원작 작품 붐과 관련지어 “영화가 한번 내볼 만 한 한국만화”를 몇 개 선정해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당시 온라인에서 연재 중이던 직장인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밴드 경연에 나가는 내용을 담은 삶의 페이소스와 은근한 낙천성이 담겨있는 만화였다. 안 그래도 대세가 그랬던 것인지, 올해들어 실제로 두 편이나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개봉했던 바 있다. 다만, 그 두 편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뭐랄까, 필자가 추천했던 그 만화가 가지고 있던 독특한 재미와는 거리가 먼 컨셉의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와이키키 브라더스’스러운 복고정서에 가까웠지, 정작 오늘날 가장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8-90년대에 한국 락과 해외 락의 하드한 대폭발을 온 몸으로 향유했다가 지금은 한창 사회의 쓴맛에 절어 들어가며 30줄 회사원이 되어가는 락키드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꿈을 버렸다가 일상에서 일탈하며 되찾는 청춘만세보다 훨씬 진한 공감대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락커의 꿈을 버릴 듯 말듯 하면서도 계속 아쉬움을 가지고 뭔가 해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그 답답함이다. 그런 삶 속에서 바로 밴드를 만들고 연주를 시작할 때, 비로소 락은 일시적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즐기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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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아서 [팝툰 20호]

!@#… 달력을 거꾸로 매달아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온답니다. 이번 팝툰 원고는 무려 성탄특집.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아서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해가 저물어 가면, 그날이 다가온다. 소복히 눈이 쌓인 거리를 연인들이 오붓하게 거리를 오가며 하얀색 위에 빨갛고 초록색으로 장식된 케잌을 고르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교환하며 뭇 솔로들의 염장을 지르는 날. 잠깐만… 원래 크리스마스는 뭔가 다른 컨셉이 아니었던가? 아 그래.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할아버지가 무단으로 주거침입을 해가면서 애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전설을 믿는 (척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들이 장난감을 포장해서 몰래 잠잘 때 놓고 가는 날. 아니 그 전에도 뭔가 있었다. 그래,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월적 존재가 인간의 몸으로 탄생한 것을 기리며 세상에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뭐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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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 『태일이』[기획회의 071201]

!@#…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단행본화가 오래 걸린 것이지 이해는 잘 안가는 것이, 한 권당 9회고 현재 잡지는 49호가 나오고 있으니 이런저런 펑크 좀 감안해도 거의 완결을 향하고 있어야 할 터. 뭐, 이제라도 나와준 것이 어딘가. 게다가 출판사가, 88만원세대 키워드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이 책에 대해서 노동자의 처지 이야기라는 토픽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 것이 은근히 의아한데… 뭐 모를 일이다.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 『태일이』

김낙호(만화연구가)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신입생들에게 입학과 동시에 손에 쥐어지던 책이 바로 『전태일 평전』이었다. 지배자들의 역사와 경쟁이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대학까지 온 신입생들에게, 이 사회가 어떤 이들의 무엇 위에 실제로 서 있는지 세상의 참가치를 보여주자는 학생회 선배들의 일종의 고정된 루틴이었던 것이다. 특출하게 잘난 것 없는 그저 노동자 출신이지만,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서 노동현장의 참혹함을 알리고 한국에서 노동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적 의제는 물론 진보 운동의 의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선구자 중의 선구자. 바로 이런 이미지야말로 전태일 평전의 주인공 전태일을 민중주의적 진보의 아이콘으로 포장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의도가 신입생들에게 실제로 도달하거나 실제로 공감되는 비율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곤 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선배들의 자의식과는 달리 정작 신입생들은 해방을 시키는 투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해방이 되고 싶어서 들어온 것이니까. 방향이 좀 다를 뿐, 『전태일 평전』 역시 또 다른 “그들의 삶을 본받지 않겠는가”를 강요하는 위인전으로 취급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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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의 아쉬움 – 『거짓말』[기획회의 071115]

!@#… 핵심은, 이 무크지 시리즈의 장점도 단점도 이 3권째에 이르면서 확고해졌다는 것.

소심함의 아쉬움 – 『거짓말』

김낙호(만화연구가)

거짓말이란 참 재미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의사소통 행위보다도, 내용 자체보다 그 말이 오가는 상황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되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죄악이 되기도 하고 유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하며, 상대를 거꾸러트리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또는 따듯한 배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단순히 말의 내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오게 되는 상황, 즉 이야기의 맥락을 궁금하게 만들어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때로 그것은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사건의 거짓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세계적 규모의 음모론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하고, 때로는 연애의 솔직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의 교차로를 나름대로 이해하게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거짓말은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픽션’이라는 말 자체가 결국 지어낸 이야기, 즉 거짓말이라는 것 아니던가. 거짓말은 상상력과 이야기 같은 개념들과 찰떡궁합이다. 다만 독자들에게 그럴싸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감을 스스로 즐기는 쾌감을 주는가, 아니면 되도 않는 설득에 짜증이 발생하도록 만드는가에서 이야기 품질의 승부가 갈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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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본, 유럽에 발표된 한국만화의 반응 [image 웹진 1호]

!@#… 커피프린스 간지 사장의 펜트하우스로 유명한(-_-;) 서울애니센터에서 최근 발간하고 있는 웹진 ‘Image’ 창간호에 실린 글(원문 클릭. 연결된 다른 글들과 같이 보면 더 좋다). 제작자 미르*님에게 안그래도 팍팍한 인간이 쓴 팍팍하고 긴 글이니 가급적이면 이런 저런 이미지를 좀 깔아주십사 부탁을 드렸으나(라고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도판을 넘기지 않았다), 결국 여차저차 팍팍 itself로 나갔다. 여튼 제한된 분량에서 너무 이야기가 많아서, 세부 데이터보다 전체 판도 개요에 집중. 한 2년 쯤 전에 정책 보고서의 일부로 넣었더라면 훨씬 더 도움이 되었을 법한 내용의 글인데… 뭐 지금이라도 그리 늦은 건 아닌 듯.

한국만화의 해외 진출 둘러보기: 미국, 일본, 유럽에 발표된 한국만화의 반응

– 김낙호 (만화 연구가)

1. 들어가는 글

이렇게 한국만화의 해외진출 상황에 대한 공식적인 글을 쓰게 되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사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수출 지상주의’를 표방해 왔지만, 문화산업 분야에서만큼은 해외진출이 늦게 시작된 편이다. 질서정연함만을 강조하던 군사문화적 획일성으로 문화산업의 근간인 대중문화를 삐딱하게 보던 1960∼70년대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유화하기 위해 시작된 5공의 우민화정책이라는 호재(?)를 만나서 대중문화가 급격하게 부흥하게 된 1980년대,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가 대중문화의 풍성함을 앞당겨준 1990년대에도 한국의 대중문화는 여전히 국내용이었다. 90년대 말쯤 되어서야 비로소 해외진출 사례가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했고 ‘한류’라는 표현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다시금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어쨌든 그런 숨 가쁠 정도의 변화가 고작해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까지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 상품 수출에 대한 의지가 있었을지언정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특히 한국만화의 경우에는 최근 수년간 시장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해외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히 계약 몇 건에 얼마 벌었다는 식의 이야기보다는 한국만화가 과연 제대로 해외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지, 문화적 영향력을 얻고 있는지 등에 대한 폭넓은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만화는 과연 전 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는가? 아니, 애초에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는가? 뻗어나갔다면 어디의 누가 읽는다는 것인가? 해외진출을 함으로 해서 정말로 돈이 들어오고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가? 더 나아가 과연 어디까지가 ‘한국’ 만화인가? 이런 것들을 점검해보지 않고서 한국만화의 해외진출을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알맹이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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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교육이라고 미화하는 버릇에 대하여 [팝툰 만화프리즘/10호]

!@#… 한 사회의 ‘개념’ 함양은 공공 교육에서부터. 교육이 지난 수십년간 이 모양인데, 오늘날 담론 수준이 이 꼬라지인 것은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호 팝툰 칼럼.

입시를 교육이라고 미화하는 버릇에 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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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고전만화해제』[기획회의 070701]

!@#… 좋은 출발. 아마 이번 소설편보다, 시편 정도에 들어가면 더욱 진가가 드러날 듯.

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곰선생의 고전만화해제』

김낙호(만화연구가)

‘고전’이라는 수식어는 작품에게 있어서 영광이자 커다란 짐이다. 영광인 것이야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짐이라니 무슨 말인가.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대표적인 우수작이기에 부여되는 타이틀인데, 거꾸로 보자면 그만큼 일관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범생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전이라는 딱지는 재미없는 옛날 작품이라는 의미를 자동적으로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운 나쁘게도 의무교육 과정 속에서 교과서로 처음 접하는 불행한 사태라도 생긴다면, 그 작품의 재미는 영영 복권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이전에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기에, 끌렸기에 그랬다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고전으로 인정받을 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우수작들은 실제로는 재미있다. 인간사의 사연이 서정이나 이야기로 담겨있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렬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를 제거하는 엄숙주의 교육문화의 폐단일 뿐, 고전 작품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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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 『26년』[기획회의 070601]

!@#… 하지만 따지고보면 지금은 27년. ‘서평’이라는 것은 종이책으로 단행본 출간된 후에야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좀 불편하다. 이 정도 레벨의 물건을 정작 작년에는 한국만화 전반 추천이나, 그냥 개인 포스팅에서 밖에 다뤄주지 못했으니 원… 연재중인 웹만화를 바로 평가하고 추천할 수 있는 공식 지면도 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결국, 없던걸 새로 만들어내야겠지만.

현재진행형 – 『26년』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오래된 명언을 다시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나간 일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양분이 되어주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과거에 배운 것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주고, 과거에 겪었던 어려움은 현재의 조건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의 정리되지 않은 사건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도록 종용하곤 한다. 만약 그것이 개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큰 차원 – 사실 국민이니 민족이니 나라니 하는 범주들을 동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 이라면, 한 사회의 현재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온통 해방 후 현대사가 워낙 인과응보를 깨끗하게 무시한 닥치고 전력질주를 일삼아온지라, 그 결과 참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현재를 살고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지다시피, 그런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물론 법적인 평가도 끝났고 책임자 처벌과 사면도 이루어졌다지만, 가해자의 반성도 자숙도 없는 이상은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그저 ‘비극’으로 치부되고 끝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가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낼 마감시간은 점점 임박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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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기획회의 070515]

!@#… 논의 초기에 기획 참여했다가 유학차 도망쳤던 물건으로, 결국 2년만에 세상의 빛을 본 케이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꽤 충실한 품질로 나와줘서 반갑고, 당초 기획한 컨셉들의 상당 부분이 잘 녹아들어가서 또한 재미있다. 2권, 3권까지는 후딱 출간되어줘서 상승세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

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수년간은 확연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화는 ‘비교육적’인 것의 대표격으로 종종 어른들의 걱정 속에 동원되고는 한다. 사실 그 어른들이 원하는 아동들의 교육을 저해하는 것은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 인터넷 상의 넘치고 넘치는 잡스러운 정보와 커뮤니티들 등 넘치고 넘친다. 즉 거꾸로 생각하자면 만화가 그만큼 어른들이 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 – 바로 ‘책’의 형식과 가까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만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물론 과장법이 다소 끼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는 언젠가부터 부모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학습’이라는 컨셉을 차용하곤 했다. 아동들에게 오락적 재미를 주어 승부하고 싶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굳건한 벽, 부모의 교육 만능주의 – 솔직히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기보다는 그저 경쟁적 입시준비에 대한 변명이지만 – 를 돌파하기 위한 밑밥인 셈이다. 하지만 밑밥은 종종 멍에로 돌아온다. 학습성을 어떻게든 집어넣겠다고 신경 쓰느라 재미가 없어지거나, 아무리 봐도 전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학습성으로 덮어보려고 하는 얄팍한 술수 말이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것은 결국 아동층을 독자층으로 하는, 재미 그 자체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나니아 전기』, 소설로 따지자면 『해리포터』 연작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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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현대사 – 『타짜』[기획회의 070415]

!@#… 왠 뒷북 ‘타짜’냐고 한다면… 영화 덕분에 다시 한번 유명세도 타고, 신판본으로 완결까지 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제 때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사후분석이 아닌 ‘리뷰’를 할만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 듯 하여 4월 초에는 그냥 이걸로 갔다. 앞으로는 한동안 다시 신간다운 신간(?)으로 리뷰 대상을 스위치하고자 (지난호에는 푸른 알약이 들어갔고, 이번호에는 크로니클스 예정) 한다.

 

『타짜』 – 도박의 현대사

김낙호(만화연구가)

도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확률과 보상의 크기를 놓고 서로의 판단력을 겨루는 대결이다. 성공의 확률이 낮을 수록 보상의 크기는 커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얻어냈을 때 일시적으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성취감이 지극히 중독적이라는 것, 그리고 역시 크게 실패할 확률이 애초부터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사례라면 대부분, 재도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붇고 산화하기까지 한다. 정말로 돈을 따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차라리 적금을 붓고 투자 펀드에 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도박은 어디까지나, 돈 자체의 문제 이전에 돈을 매개로 한 스릴에 대한 집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하는 원래의 목적이든 생각이든 뇌리에서 증발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발생한다. 이기는 것, 복수하는 것, 혹은 그냥 ‘손맛’ 그 자체에 힘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극대화된 경쟁에 스스로 도취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자면 비단 도박이라는 극단적인(?) 놀이문화가 아니라도, 정치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가 되었든 한국사회에서 종종 나타난 공통된 패턴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왜 잘 살아보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룰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한국의 현대사다. 성찰과 룰을 생략하고 입시경쟁과 취직시험 경쟁에 몰아넣고, 낮은 확률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각종 족집게 과외와 꼼수들을 머리에 우겨넣는 것이 우리 생활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 말로 목적을 잃은 스릴 중독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 자체가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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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힘 – 『무크지 에로틱』[기획회의 070315]

망상의 힘 – 『무크지 에로틱』

김낙호 (만화연구가)

굳이 프로이트니 뭐니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성적 욕망을 돌리고 돌려서 창작열로 승화시키는 행위는 대중예술 전반에 너무나도 흔하다. 그 중에서도 그 ‘본심’을 비교적 꼭꼭 숨겨놓은 장르가 있는 반면, 자신의 에로스적 원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장르가 있다. 그 중 후자를 바로 ‘에로’물으로 지칭하곤 한다. 성적 자극이 넘친다, 혹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교하고 싶은 욕구를 지핀다는 뜻의 ‘섹시하다’라는 말이 더 이상 천박한 표현이 아니게 된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가장 애매한 처지에 있는 것이 이러한 에로 장르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물리적 자극을 통해서 지극히 실용적인 기능성을 추구하는 ‘포르노’와 스스로를 차별화해야 하는 당위와 함께, 장르에 대해서 요구되는 자극의 수위를 충족시킨다는 두 가지 임무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묘한 표현과 기발한 발상으로 성적 욕망의 정수를 압축해내어 향유자로 하여금 외부로부터의 성적 자극보다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성적 망상을 자극하는 ‘참여적 망상’이 에로물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 와중에 그림과 그림 사이 글과 그림 사이를 채우는 참여적 상상력이 표현양식의 기본 원리 그 자체인, 만화라는 매체가 지니는 강점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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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동화 – 『우주인』[기획회의 070301]

백수동화 – 『우주인』

김낙호(만화연구가)

백수라는 종족이 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칭하지만, 약간만 파고 들어가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주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금전적 압박이 있다는 점이야 뻔한 이야기지만, 무직자라고 할 때와 백수라고 할 때의 미묘한 어감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일을 그냥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나 신체, 지능이든 뭐든 여러 조건들이 분명히 어떤 일을 할 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거리가 없어야 한다. 일을 못하는 것과 일을 ‘안’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서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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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여, 튀어 올라라 [한겨레21/650호]

!@#… 지난 한겨레21 650호에 ‘만화잡지여, 튀어 올라라’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국 만화잡지의 흐름을 정리하는 글. 이미 눈치챘겠지만,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의 창간 관련해서 잡힌 꼭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컨셉으로 씨네21에서는 이명석씨의 글을 게재했는데, 글 스타일이나 주제의 초점이 전혀 달라서 은근히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명석씨 글쓰기의 대중적 호소력과 직관성을 많이 부러워하고 있다 – 하지만 팩트 오류는 좀 줄여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여기 공개하는 버전은 항상 그렇듯 편집을 거치기 전의 송고 버젼. 편집부의 제목과 리드문 뽑는 센스는 역시 현장이기에 해낼 수 있는 귀중한 자산. 지면관계상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의 만화잡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capcold.net 검색창을 활용하시길.

 

만화 잡지, 새로운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80년대 초의 소년시절을 소재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여 화제를 모았던 만화 『소년탐구생활』의 한 에피소드를 보면 만화잡지 ‘보물섬’이 등장한다. 매 호마다 정성스럽게 모으고 있던 잡지의 지난 호 한 권이 없어지자 주인공 소년과 또래 친구들이 벌이는 치열한 신경전이, 해학적이자 실감나게 펼쳐지며 세대적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계의 복잡성이 증가한 오늘날은 어떨까. 만화가 ‘콘텐츠’로서의 각광받은 것과는 달리 만화 잡지는 대중적 지명도에서나 품질과 다양성에서나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팝툰’(씨네21 발행)의 의욕적 창간에서도 볼 수 있듯, 만화잡지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여전히 크다. 한국에서 만화잡지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상황이기에 이런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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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재앙, 팝툰 창간기사 편

!@#…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 창간에 관한 해외 전문가 반응을 보며 잠시 어안이 벙벙, 잠시 박장대소, 잠시 좌절. 요약하자면, 이 사람은 그 기사를 읽고 한국은 성인만화가 90년대에 소멸해서 아동만화만 남은 상태였다가 이번에야 부활한다고 믿은 것. -_-;

!@#… 내막인 즉슨, ‘성인만화잡지‘와 ‘성인만화’도 구분 못하는 한심한 영어 번역이 낳은 대형 참사. 즉 한국 성인만화잡지가 90년대에 명맥이 끊겼다가 다시 부활한다는 내용의 (물론, 그것마저도 사실과 다르다) 기사가, 한국에서 성인만화가 싸그리 사라졌다가 십여년만에야 비로소 새 작품(‘title’) 하나가 다시 나온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아… 한겨레 영문판 팀의 퀄리티에 심히 난감해졌다. OTL 설마 다른 기사들도 다 이정도씩 야매성이 있다면 정말 곤란. 뭐 한국 원문 기사 자체만 놓고 보자면 다소의 오버만 빼면 크게 이상한 부분은 없다. 아, 만화광장이 사라진 것을 미스터블루 건과 묶어서 ‘비문화적 시각’으로 이야기한 것도… 곤란하지만.

!@#… 여튼 오늘의 교훈: “약은 약사에게, 번역은 전문가에게“.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미국 만화계, 한국 만화 [만화정보 0702]

!@#… 부천에서 발간하는 종이소식지 ‘만화정보’에 실린, 한국만화의 미국 만화판 진출 패턴에 관한 정리. 수박 겉에 침바르기 수준으로 개요만 풀어낸 정도지만 (예를 들어, 한때 이현세 만화 출판 건 덕분에 한국언론에서는 엄청난 곳처럼 포장해주었던 CPM 정도는 과감히 생략), 약간은 현재 미국의 분화되고/변화하고 있는 만화판 상황 속에서 한국만화, 만화가를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 수도. 아니면 말고.

미국 만화계, 한국 만화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 만화가 미국 만화계에서 자리잡는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가장 쉬운 구분은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만화를 미국에서 번역 출판하는 것, 또는 한국의 만화가가 미국의 출판사에서 만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경우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실 뒤의 경우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 더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출판하기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만든다면? 분업화되어 있는 미국의 만화 스튜디오 특성상 데생 등 특정 작업만 전담해서 수행한다면? 혹은 아예 작가와 작품의 국적 자체도 애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국의 만화가인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식 만화를 그린다면 그 작가는 한국작가고 작품은 한국만화가 되는 것일까. 또한 미국식 만화와 한국식 만화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한번 간단하게, 한국만화가 미국 만화계에 들어온 방식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마련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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