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전망이 시원찮아도 여하튼 살아가기 [팝툰 43호]

!@#… 이번 화는 ‘무한동력‘(주호민)을 소재로 끌어들임. 1화 마지막, 달동네 사이로 솟아오른 기이한 구조물의 실루엣 장면은 언제 봐도 참 뭔가 마음을 움직인다. 비루한 현실과 폼나지 않지만 해방감있는 일탈의 묘한 공존이랄까. 여튼 오늘 이곳의 이야기로서의 품질은 2008년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뽑혀 마땅하다.

 

만화로 배우는 생존법:
일자리 전망이 시원찮아도 여하튼 살아가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무척 비장한 민중가요의 한 대목이 있다. 노동자 권익에 대한 요구를 계급적 대결구도로 단순화한 비유라서 일하지 않는 자는 ‘자본가’를 지칭하는 노래이기는 하지만, 사회가 좀 더 복잡해진 오늘날에는 지나치게 비정한 감이 있다. 특히 무직 청년 백수가 넘쳐나고, 정상적인 고용관계 속에서 노동자 취급을 받으려면 500일 정도 파업투쟁은 해야 하는 왜곡된 비정규직 제도가 횡행하고, 명퇴 후 자영업으로 스위치하고 내일이라도 다가올 대박의 꿈을 꾸면서 기복신앙적 투표를 했다가 불황 속에 다시 가게를 접고 정치판을 싸잡아 저주하는 분들도 넘쳐나는 이런 시절이라면 말이다. 사회복지를 통한 안정망은 미진하기 짝이 없고 경쟁구도로 부채질하는 사회분위기는 더 없이 각박한데, 하필이면 그 모든 것에 대한 대처가 되어주어야 할 일자리 전망이 정작 무척 시원찮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구했는데 그게 변변찮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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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만화사 총정리 도표

!@#… 이전에 고우영 작가론 책 출간소식에 nomodem님이 “계보가 있는 한국 만화사”라는 접근을 이야기하신 바 있다. 덕분에 한동안 묻어두었던 이전 자료가 생각나서 슬쩍 공개. 일종의 20세기 한국만화사 총정리 도표(의 베타버전)인데, 여튼 이런 것도 가능하다, 라는 차원에서 예전에 했던 작업 하나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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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의 승리 -『본격2차세계대전만화』[기획회의 235호]

!@#… 한 호 분량 건너뛰고(직접 번역한 책 ‘만화의 창작‘에 대해서 도서리뷰를 하는 건 좀 이상하겠다 싶어서 234호는 대타로 다른 좋은 글을 게재했었음. 생각해보니 2004년 9월 처음 지면을 맡은 이래로 무려 첫 휴재였다!) 다시 재개한 지난 ‘기획회의’ 도서리뷰 원고. 뭐, 당연히 다룰 것이다 싶은 작품을 다뤘다.

 

‘본좌’의 승리 -『본격제2차세계대전만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오타쿠라는 용어를 동원하든 긱이라고 부르든, 어떤 분야에 대한 매니악하면서도 대중문화 친화적인 심취는 나름대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특히 일부 소재는 그런 현상을 더욱 부추키는 경향이 있는데, 내용 측면에서는 인간사의 이야기 거리로 풍부하며, 몰입의 측면에서는 세밀하게 설정을 파고 들어갈 구석이 많고, 쿨함의 측면에서는 뭔가 매력적인 형상과 기능의 물건들이 가득한 경우가 그렇다. 그런 범주에 해당되는 인간 문명 속 소재라면 스타워즈든 건담이든 열광적 팬, 혹은 폐인들을 양성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소재를 하나 뽑으라면 큰 망설임 없이 많은 이들이 어떤 가상의 작품보다도 인류사의 어떤 순간, 바로 2차세계대전을 꼽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차세계대전이야말로 인간문명이 지금껏 탄생시킨 가장 화려하고 복잡하고 잔인한 삽질이니 말이다. 덤으로 각종 아이템들까지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 소재에 심취한 이들이 여러 다른 대중문화의 매니악한 요소들을 섞는 향유방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나아가 그들에게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매체 가운데 하나인 웹만화의 형식으로 소통한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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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작가론 서적 ‘고우영 이야기’ 출간

!@#… ‘고우영 이야기: 만화, 문학, 미술, 역사로 읽는 고우영’ 출간. 여름에 두어달 가량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고우영 특별전 ‘고우영 만화: 네버 엔딩 스토리’의 전시 도록 텍스트로 만들어진 여러 원고들을 모아서 단행본화한 것으로, 여차저차 인연이 닿아서 집필 참여. capcold의 경우 이전에 몇몇 지면에 나눠 썼던 관련 단문들을 엮고 캐릭터론을 추가하여 고우영 작품세계를 비평 정리하는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고우영 작품 읽기’ 챕터다(박인하 교수 챕터처럼, 나중에 언젠가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카피레프트 처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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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본격저질만화

!@#… 원래 이런 링크 하나 꼴랑 걸어놓는 걸로 포스팅을 날로 먹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지만, 이것만은… 조금이라도 널리 퍼트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득햏의 경지, 굽본좌가 굽대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디씨만갤 특유의 막가는 분위기가 낳은 1000분의 1의 역작. 마침내 완결!

본격 저질만화 1부 / 2부 / 3부(완)

역사만화, 역사교과서 [팝툰 39호]

!@#… 역사교과서 파동이 벌어지고 이 원고를 넘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뒤 경제도 휘청이고, 자살사건 연타에, 표현의 자유 억압 악법 추진, YTN 낙하산사장 사태 급악화 등 뭐 그리 강력한 난리통들이 또 연타를 때리고 있는 것인지… OTL

 

역사만화, 역사교과서

김낙호(만화연구가)

뻔한 이야기지만, 기억은 현실을 지배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그럴싸한 실존적 질문이 되었든, 연애 상대와 어떤 이벤트로 인해서 어떤 기념일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기억같은 더 가볍고 실용적인(아니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이 걸릴 수도 있겠다) 것이든 말이다. 과거의 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자신이 규정되고, 이후 행동의 잣대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자신은 물론 타인의 기억까지 최대한 자신의 현재 이익에 부합하게 맞추고자 하는 것은 무척 큰 유혹일 수 밖에 없다. 그 유혹에 빠져드는 수준에 따라서 밀도의 측면에서는 특정 사실의 부각부터 노골적인 왜곡이 있고, 포부의 측면에서는 개인적 설득에서부터 국정교과서 개편까지 있다. 만약 정말로 지지리도 운이 나쁘다면, 노골적인 왜곡으로 국정교과서를 지배하고자 하는 무척 문제적인 집단이 지배세력이 되어 한 사회의 건전한 상식은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남의 동네 이야기라면 비웃어주고 혹은 걱정 좀 하고 끝날 일이지만, 자신의 동네 이야기라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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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적 삶의 모험성장극 -『미스문방구매니저』[기획회의 232호]

!@#… 아니 굳이 정말로 비운의 명작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고, 한정된 인지도로 저평가되는 것이 마냥 아쉽다는.

 

동네적 삶의 모험성장극 -『미스문방구매니저』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 드라마에서 최근 수년간 소위 저주받은 걸작 또는 비운의 명작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시청률이 처절하게 낮다느니 소수에게만 열광적으로 인기를 끈다느니 하는 지당한 이야기 말고, 내용적으로 어떤 비슷한 코드가 종종 엿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남루한 일상적 삶을 사는 이야기가 많다. 물론 일상의 와중에서 보물찾기가 벌어진다든지 혹은 취업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든지 사건은 충분하지만, 기본적으로 폼 나는 코드가 없이 그저 서민적 페이소스 자체만으로 승부한다. 또한 종종, 그 주인공들은 신비감 없는 아웃사이더들이다. 반항아나 천재 같은 식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낙천적 백수, 특정 소소한 분야의 ‘오타쿠’, 구멍가게 알바생 등이다. 또, 핑크빛 연애 관계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물론 각종 짝사랑 등 연애담이 빠지는 경우는 적지만, 핑크빛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생활의 찌든 얼룩이 든 느낌에 가깝다. 즉 동지애의 연대와 우정 같은 느낌이 로맨틱한 사랑의 느낌을 자주 압도한다. 즉 드라마속 주인공들이라기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의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더라도 그 취향에 동의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섬세함으로 다가오지만, 역시 보편적으로 화려한 현실도피의 오락성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물론 전자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좀 더 인기를 끌지 못할까 한탄을 터트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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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라고 [팝툰 37호]

!@#… 넉넉한 추석을 맞이하여, 쪼잔한(…) 정치성 이야기. 지난 호 팝툰 칼럼.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라고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이도저도 선택하기 힘든 상황이 주어지곤 한다. 지뢰찾기 게임의 마지막 두 칸이든, 어장관리남녀들의 연애사든, 혹은 좀 더 진지한 사회적 문제의 경우든 말이다. 그런데 선택의 어려움이 생기는 대부분은 각 선택의 장단점이 비등해서 그렇게 되기보다, 사실은 훨씬 단순한 이유가 있다. 바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합리적 판단이라면 그 중 손해를 덜 보는 쪽을 택하면 되겠지만, 만약 어느 쪽이든 예상되는 손해가 크기가 궤멸적일 정도로 크다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그런 상태가 약간만 더 지속된다면, 선택은 합리성이 아닌 임의성에 몸을 맡기게 된다. 애초에 특정한 선택을 강요했던 각각의 주체들조차 주체할 수 없을 파국의 시작이다. 지뢰찾기라면 다행, 연애사라면 본인들만 비극. 하지만 진지한 사회적 문제라면 좀 파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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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잡상의 수단이다 – 『올드독 영화노트』[기획회의 229호]

!@#… 개인적 생각이지만, 올드독 정도의 걸출한 웹만화 캐릭터가 이쪽 판에서 더욱 확실하게 메이저로 취급받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미스테리다. (편애하는 것 맞다)

 

영화는 잡상의 수단이다 – 『올드독 영화노트』

김낙호(만화연구가)

독립영화의 깐느라고 일컫어지는 선댄스 영화제를 운영하는 선댄스 재단이 최근 몇 년간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있는데, 바로 극장 체인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선댄스 영화제의 취지에 맞게 비주류나 독립영화들을 중요하게 편성하고, 그런 것을 찾아본다는 세련된 문화취향의 이미지를 적극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재단측이 그 극장 컨셉에서 절대적으로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설이 있으니, 바로 바와 라운지다.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 후 나와서 서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누구나 영화이론을 교육받은 평론가들인 것도 아닌 이상, 실제로 영화의 감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뭇 영화지면들의 비교적 균일한 초점들보다 훨씬 자유롭기 마련이다. ‘선호 해독’에 얽매이는 것은 영화적 지식을 어떻게든 과시해야만 하는 자리에 한정될 뿐이다. 실제 감상의 세계란 훨씬 중구난방이고 소소하게 사변적이며, 일상 속 잡념의 향기가 강하다. 그럴 경우 감상이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거리로 연동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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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공간 속에서 -『대한민국 원주민』[기획회의 228호]

!@#… 조만간 작가 분의 북포럼도 한다고 하니, 이왕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같은 시공간 속에서 -『대한민국 원주민』

김낙호(만화연구가)

현대 한국사회의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워낙 이런저런 변화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래 사회라는 큰 환경은 빨리 변할 수가 없다. 사회의 틀을 바꾸는 것은 정책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밀어붙일 수 있다 할지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사회, 문화산업 강국을 부르짖으며 캠페인을 벌이고 예산을 쏟아 부어 시설을 만들 수는 있고, 그 결과 그쪽 산업이 단시간에 크게 융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평생 농사짓던 분들이 그 정책만큼이나 빠르게 모든 생활방식을 버리고 웹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계속 밀어붙인다면 사회는 불안해지고 변화는 오래 못가서 반동을 일으키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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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으니까, 좋은 세상이 필요한 것 [팝툰 34호]

!@#… 기본적으로는, 이전에 토막으로 던진 이야기를 확장시킨 것(역시나, 연재를 한다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한 중요한 동기부여). 그건 그렇고 조만간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돌아오는데, 만약 유권자들이 현재 1위를 달린다는 주경복 후보를 당선시켜준다면 현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교육정책 가운데 상당수에 직방으로 브레이크를 달 수 있다… 그것 참 커다란 귀찮음을 덜어주는, 훌륭한 일이다.

 

귀찮으니까, 좋은 세상이 필요한 것

김낙호(만화연구가)

2000년대 초에, 귀차니즘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탄 적이 있다. IMF의 파도도 살짝 진정되고, 초고속 인터넷도 널리 보급되며 나름대로 사회가 한층 ‘세련’되어가던 때이자 그 결과 슬슬 생활자세이자 취향으로서의 개인주의가 본격적인 화두가 되던 타이밍이다. 이 때 결정적 방아쇠를 당겨준 것으로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라는 만화가 있다. 개인 홈페이지의 웹만화로 연재되던 이 만화는, 작가의 자화상격인 고양이 형상의 주인공 스노우캣이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방식들을 짧고 재치 있는 에피소드로 내세우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 생활 자세라는 것이 바로 귀찮은 일은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다, 즉 ‘귀차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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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기획회의 227호]

!@#… 명심할 것은, 이 책은 ‘조금씩’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뭐, 명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재미있다’는 것과는 좀 다른 방향에서 매력 있는 작품.

 

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은 거대한 생각의 덩어리다. 꿈을 꾸지 않는 동안에 축적된 수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꿈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하나의 세계 속에 비선형적으로 펼쳐진다. 어떤 경우 구체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저 심상과 단편적 언어가 맥락 없이 떠다니기도 한다. 현실적 희망과 비현실적 망상이 하나의 세계에서 교차하며,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묶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혼잣말이라는 것이다. 꿈 속에서 벌어지는 타인과의 교류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재해석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다른 일면들과의 대화다. 그렇기에 꿈은 독자적 언어이자, 일종의 메아리와도 같다. 만약 그 메아리를 붙잡아 기록하고 타인의 혼잣말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궁극의 소통이 될 것이다. 어느 수준까지 의식과 이성의 도구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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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고도 재미있으면 천하무적 [팝툰 33호]

!@#… 마침내 문희준의 ‘단추구멍인생’을 능가하는 노래가 탄생하였기에, 신나게 들으면서 삘받아 마감한 글.

 

구리고도 재미있으면 천하무적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화제를 모은 황당한 가요가 하나 있다. ‘날봐귀순’이라는 제목부터 무언가 비범하며, 앨범 이미지에 있는 살인미소를 날리며 손가락을 찌르는 반짝이 복장의 남정네 또한 상당하다. 노래에는 “날봐”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등장하고, 강렬한 꺾기와 애틋한 연호가 필수품이다. 마치 뽕짝의 모든 것을 압축해 넣은 듯 한 이 노래는, 한 번 들어도 귀에 감기는 단순한 멜로디의 절묘한 중독성으로 무장하기까지 했다. 그 절묘한 매력은 뭐랄까, 파티 노래, 노래방 차트를 석권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이 노래의 탄생에는 재미있는 배경이 있다. 원래 아이돌 힙합 밴드가 쇼프로에서 소개팅 파트너를 상대로 즉흥적으로 읊어본 멜로디였는데, 재미있다고 다들 난리가 나서 결국 밴드 멤버 중 하나를 내세워 진짜 노래로 만들어 취입한 것. 세련된 아이돌 힙합 밴드에서 난데없이 가장 ‘촌스러운’ 컨셉으로 트로트를 만들어서 의외성의 재미를 줌과 동시에, 듣고 보면 그냥 우스개감이 아니라 정말 본연에 충실한 훌륭한 트로트이기에 이렇듯 빠르게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발상을 이미 오래전에 시도했던 초난강의 한국어 데뷔 싱글 ‘정말 사랑해요’가 히트치지 못했던 사실이 기억나며 마냥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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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음가짐은 소통 [팝툰 32호]

!@#… 지난 팝툰은 여행 특집호였다. 따라서 칼럼에 주어진 선택은 “여행에 관해서, 혹은 (당시 한창 촛불시위의 기세가 피크를 이루던 시기였던 만큼) 시국에 관해서” 였다. 음… 뭐, 결국 시국을 여행과 엮어봤다. -_-;

 

여행의 마음가짐은 소통

김낙호(만화연구가)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여행이라는 행위의 목적 또한 무수히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일상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진귀한 구경거리를 위해, 또 다른 이들은 어떤 업무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어떤 목적을 표방하든지간에 여행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바로 사람 간의 소통이라고 본다. 여행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렇게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또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통하게 해준다. 그리고 혹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서로 다른 모습들 속에 있는 인간 본연의 어떤 공통된 모습들을 발견하며 어떤 인간적인 목소리, 의견,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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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촛불시위 릴레이만화 시작.

!@#… 막간을 이용, 홍보 한 판 때립니다. 최근, 여러 만화작가들이 참여한 촛불시위 시국에 관한 릴레이 만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주 발매된 ‘씨네21’에 의견광고 나갔고, 한겨레21 온라인에서 지면을 제공하여 릴레이만화가 연재 들어갔습니다. 참여작가의 진용은 화려하고 다양하고 계속 늘어가고 있으며, 당장 가서 직접 보시는 것이 베스트.

!@#… 공포심리에 기대는 구라성 떡밥이나 ‘우리는 숫적으로 많으니까 옳아’ 같은 개념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말이 좀 통하는 사회를 향해 움직이자는 염원으로 가기를 바라지만, 뭐 기획 무크지도 아니니 결국 각자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는 법. 편차는 있겠지만 아무쪼록, 그리는 사람도 재미있고 읽는 사람도 재미있고 그 재미가 모여 이 총체적 개판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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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를 발족하신 김태권 작가님, 궁극의 추진력을 발휘한 팝툰 김송은 기자님, 일선에서 큰 부상을 당하시며 발화점이 되어주신 박건웅 작가님, 참여하신 그리고 참여하실 모든 작가님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같이 기여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릴레이만화 참여 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광고에도 나와있듯 mirx@hanmail.net 으로.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마음을 읽어내는 그릇 – 『도자기』[기획회의 225호]

!@#… 이상하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자꾸 타이밍을 놓치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한 마디. 만화라는 표현 양식에 큰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마음을 읽어내는 그릇 – 『도자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대부분의 경우, 옛 도자기는 순수한 감상의 세계 그 자체를 제공한다(물론 어떤 이들은 도자기 자체보다 도자기의 가격을 감상하며 황홀경에 빠지곤 한다). 대부분의 옛 도자기는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 없이, 오로지 그 물건 자체로서 우리를 만나게 된다. 어떤 장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어렴풋할 뿐이며, 유물은 물건 그 자체로서 그곳에 있다. 그렇기에 억지로 모범답안을 달달 외운 것이 아니라면, 옛 도자기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은 지금 현세에 보는 이들의 해석 혹은 느낌이 주는 현재성을 지닌다. 게다가 옛 도자기의 상당수가 장식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생활 속 도구로서의 맥락까지 있다. 그렇듯 도자기는 현재적 일상성의 영역이며, 여러 인간 사연들과 상상들이 만나는 느슨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교과서의 암기사항이나 박물관의 유리통 속에 머물지 않고, 상상 가득한 작품의 지면으로 놀러 나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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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인정하는 순간 – 『바이바이 베스파』[기획회의 224호]

!@#… 답지않게 꽤 자의적인 감상이기는 하지만, 하기야 워낙 주관적으로 보지 않기 힘든 작품이니까.

 

성장을 인정하는 순간 – 『바이바이 베스파』

김낙호(만화연구가)

베스파는 스쿠터의 기종 가운데 하나로, 꽤 올망졸망 귀여운 종류다. 그런데 스쿠터는 상당히 어중간한 탈것이다. 자전거보다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이동거리를 늘려주고, 그렇다고 오토바이처럼 아예 질주할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스쿠터로 도심 질주를 하는 동네 중국집 배달원들 같은 특수한 사례들은 논외로 치자). 게다가 탑승도 그렇다. 좁게 앉아서 한 명 정도 더 태울 수 있을텐데, 그것도 밀착 정도가 심지어 오토바이보다 더 좁기 때문에 웬만한 사이가 아니라면 좀 민망해지기 십상이다. 만약 본격적으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된다면, 혹은 무언가를 짊어지고 돌아다녀야 한다면 스쿠터는 곤란하다. 그런데 결국 사람은 더 이동거리가 늘어나고,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더 데리고 다니게 된다. 그럴 때 스쿠터는 ‘졸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름대로 자유롭게 달리는 것을 꿈꾸지만 과장되지 않은 섬세한 삶의 방식으로 선택했던 스쿠터는 계속 함께 할 수 없는, 한시적인 것이 된다. 스쿠터는 소년시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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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기획회의 222호]

!@#… 풀의 꽃은 잠시의 슬럼프였을 뿐, 르브바하프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작품. 더 유명해져야 마땅하지만, 현재 한국의 종이만화잡지의 한정적인 파급력이 웬수지.

 

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세대를 규정지은 엄청난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비결은, 특이한 인간들이 모여서 마법이 난무한다고는 해도 결국은 기숙 학원성장물이라는 탄탄한 검증된 근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에 대한 세계관을 체계화시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 작가의 창작력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장르적 기반은 큰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기숙학교성장물의 전통은 원래 유럽의 청소년 문학에서 뚜렷하게 형성된 것인데, 생활의 모든 면모를 같이 하게 된다는 공동체 설정, 학교라는 배경이기 때문에 기본으로 깔리는 성장의 테마, 어른들이라는 더 강한 존재들이 현명한 조력자 역할도 문제적 역할도 일임하는 방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형이지만 결국 끝이 나고(예를 들어, 졸업) 그 후에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있다. 현재 청소년이거나 한 때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정서적 공감대, 혹은 최소한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좋다. 이런 건전무쌍하면서도 확실하게 폭넓은 호소력을 가지는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한국이라는 곳은 워낙 극악한 교육제도 덕분에 도저히 무려 기숙학교 생활에 낭만적 판타지의 요소를 넣기 힘들기는 하다. 왠지 합숙소 지옥훈련 스파르타 그런 생각부터 들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이미지들을 그냥 그대로 쓰면서, 적당히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유쾌한 기숙학교물을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소재는 보너스. 해리포터에 대한 한국식 화답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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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생활이 하나 가득 – 『을지로 순환선』[기획회의 220호]

!@#… 이런 책은 사실 3권을 사야 한다. 한 권은 고이 소장용, 한 권은 폼나는 선물용, 한 권은 조각조각 분철해서 벽에 걸어놓기용. 실물 책을 보기 전에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PDF본으로 봐도 상당히 느낌이 좋던데, 홍보용으로 월페이퍼 모음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 여튼 서가에 오래오래 꼽혀있어야 할, 좋은 (만)화집.

 

사람들의 생활이 하나 가득 – 『을지로 순환선』

김낙호(만화연구가)

지하철 속,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각자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있고 통로에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설교하고 있다. 창밖으로는 달동네, 곳곳의 빌딩, 그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이들과 노는 아이들이 있다. 혹은 와우산 달동네가 널찍하게 펼쳐진 모습,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집들 사이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장면,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옮겨가려는 풍경을 위에서 살짝 바라보듯 잡아낸다. 아니면 두 도시 가운데 놓인 길 한 토막을 놓고 옥신각신 하면서 결국 무언가를 공사하는 모습도 있다. 이런 풍경들은 그림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길지 않은 한마디의 설명과 결합하며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허름한 쪽방 집 아이들이 헌 의자를 놓고 노는 모습에 달려있는 짧은 문장 하나. “울 아빠 10년 다녔다는 회사 망하고 월급 대신 가져온 중역의자. 마당의 우주정거장.” 그 작품들 속에는 우리네 삶,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풍경이 있고 그 속에는 항상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때로는 짠하게, 보통은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담긴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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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 영혼 –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기획회의 080301]

!@#… capcold.net에서 리플 제로인 경우가 은근히 적지 않은,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의 연재 만화 서평들. 설마 이 작품에도 무플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은근히 신경쓰나…?)

 

진화하는 영혼은 진행형 –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김낙호(만화연구가)

육체의 진화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아주 극단적인 창조론자가 아니고서야). 어쨌든, 주어진 환경에 대한 효율적인 적응이라는 비교적 강력한 기준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낌이 뚜렷하다. 그 속에는 “만약 내 목이 더 길었다면 저 나뭇가지 위의 열매를 따먹어서 생존을 할 수 있을꺼야” 같은 욕망의 규칙도 쉽게 들어선다. 하지만 영혼의 진화라면 어떨까. 도대체 영혼이 진화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할 것인가. 보다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것 같은 편리한 대답 정도로 만족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 사이 모든 단절의 벽이 없어져버리고 모두의 영혼이 하나의 군집체로 융합하는 상상을 발휘하기도 했고, 순환 속에서 카르마의 적립을 통한 영혼의 해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아마 진화하고 있는 영혼이 바로 자신이라 할지라도 영혼의 진화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저 나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고 있고, 아마도 육체의 제한과는 달리 여러 시대를 초월하며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연을 겪고, 자연의 여러 면모들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여러 생각과 느낌들이 퇴적된다. 해탈이나 최종융합 같은 ‘끝’이 오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느릿느릿 현명해져 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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