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을 거치는 순환과정 -『여행』[기획회의 233호]

!@#… 지난 호 원고는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의 책으로. 천하의 보두앵이 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의 정식 한국어 단행본인데, 좀 뻘쭘하다 싶을 정도로 개인감상이나 신간안내 이외의 정식 평가를 찾기 힘들다 (하기야 그런 책이 한 두 종류겠나…;;; 뭘 새삼).

 

비일상을 거치는 순환과정 – 『여행』

김낙호(만화연구가)

흔히, 여행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가보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즉 단순한 떠돌이 방랑이 아니라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일상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여행의 종착은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원래의 공간으로 돌아오든, 도착한 지점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든 말이다. 그 중 어떤 경우라고 할지라도, 여행을 한 경험 덕분에 새로 시작되는 일상은 이전의 것과는 조금 달라진 무엇이 되어준다. 조금 한심한 여행이었다면 인증샷 몇 장,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면 나름의 큰 깨달음이 새로운 일상의 기반이 되어준다. 이렇듯 여행은 본연적으로, 순환과 성장의 함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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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적 삶의 모험성장극 -『미스문방구매니저』[기획회의 232호]

!@#… 아니 굳이 정말로 비운의 명작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고, 한정된 인지도로 저평가되는 것이 마냥 아쉽다는.

 

동네적 삶의 모험성장극 -『미스문방구매니저』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 드라마에서 최근 수년간 소위 저주받은 걸작 또는 비운의 명작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시청률이 처절하게 낮다느니 소수에게만 열광적으로 인기를 끈다느니 하는 지당한 이야기 말고, 내용적으로 어떤 비슷한 코드가 종종 엿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남루한 일상적 삶을 사는 이야기가 많다. 물론 일상의 와중에서 보물찾기가 벌어진다든지 혹은 취업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든지 사건은 충분하지만, 기본적으로 폼 나는 코드가 없이 그저 서민적 페이소스 자체만으로 승부한다. 또한 종종, 그 주인공들은 신비감 없는 아웃사이더들이다. 반항아나 천재 같은 식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낙천적 백수, 특정 소소한 분야의 ‘오타쿠’, 구멍가게 알바생 등이다. 또, 핑크빛 연애 관계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물론 각종 짝사랑 등 연애담이 빠지는 경우는 적지만, 핑크빛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생활의 찌든 얼룩이 든 느낌에 가깝다. 즉 동지애의 연대와 우정 같은 느낌이 로맨틱한 사랑의 느낌을 자주 압도한다. 즉 드라마속 주인공들이라기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의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더라도 그 취향에 동의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섬세함으로 다가오지만, 역시 보편적으로 화려한 현실도피의 오락성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물론 전자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좀 더 인기를 끌지 못할까 한탄을 터트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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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정의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기획회의 231호]

!@#… 기획회의에 배트맨 만화책 소개 연타(라고 해도 결국 애초에 썼던 책내서평용 원고를 재가공한 버전). 여담이지만, 사실 영화 ‘다크나이트’는 감독과 각본의 놀란 형제가 투페이스가 죽은 것으로 확정짓고자 했다고 알려진 순간 capcold의 개인적인 평가가 2단계쯤 하락… 다행히도 제작자의 입김으로 결국 생사여부가 모호하게 처리되었지만. 행여나 ‘감독판’을 만들어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이런 경우는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ET, 스타워즈 등등). 여튼, 놀런 형제가 ‘다크나이트리턴즈’ 만화책을 다시 한번 일독하기를 권장할 따름이다.

 

거친 정의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

김낙호 (만화연구가)

2008년 여름은 유난히 양질의 대형 오락영화가 많았던 시즌이었다. 그 중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면 각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가장 큰 화제를 모았으며 흥행을 거둔 영화라면, 단연 ‘다크나이트’를 꼽을 수 있다.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 만화 캐릭터를 범죄드라마 풍으로 해석한 접근법이 악역인 조커의 카리스마(및 배우의 비극적 사망의 화제성)와 맞물리며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찬사의 물결 속에서도, 배트맨의 오랜 팬들에게는 다소 눈에 차지 않은 부분은 있다. 배트맨이 너무… 신사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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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슈퍼히어로 – 『배트맨: 허쉬』[기획회의 230호]

!@#… 지난 호 기획회의는 ‘허쉬’, 이번 호에는 ‘다크나이트리턴즈’. 완전히 다른 작품이지만 같은 캐릭터의 시리즈인데다가 같은 출판사의 것을 도서리뷰로 연달아 다루는 것에 0.5초 정도 머뭇거렸지만, 작품 자체의 가치 이외에는 어떤 배분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철학을 떠올리며 그냥 강행. 그러니까, 배트맨 팬보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씀…;;;

 

배트맨, 슈퍼히어로 – 『배트맨: 허쉬』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최신 배트맨 영화인 ‘다크나이트’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여름 오락물이 아니라 진지한 명작으로 말이다. ‘맨’자 돌림 슈퍼히어로를 찾는 것은 어린이들, 혹은 어린이에 준하는 유치한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폄하되었던 오랜 사회적 인식을 생각해볼 때, 이런 추세는 (비록 최근 수년간 여러 슈퍼히어로 흥행작들의 범람 덕에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어도) 신선하다. 다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슈퍼히어로 장르 자체가 그 매력을 인정받았다기보다는, 하필이면 가면 쓰고 망토 두른 아저씨가 주인공인 한 편의 잘 만든 범죄드라마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슈퍼히어로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스판 입은 청년들이 나와서 괴물 같은 악당들과 주먹질 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또 굳이 그것을 억지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장르의 재미를 살리면서도 좀 더 “쎈”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얼마나 그 장르를 깊숙하게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 하는 내공의 차이다. 『왓치맨』 같은 걸작이 이미 증명해주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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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잡상의 수단이다 – 『올드독 영화노트』[기획회의 229호]

!@#… 개인적 생각이지만, 올드독 정도의 걸출한 웹만화 캐릭터가 이쪽 판에서 더욱 확실하게 메이저로 취급받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미스테리다. (편애하는 것 맞다)

 

영화는 잡상의 수단이다 – 『올드독 영화노트』

김낙호(만화연구가)

독립영화의 깐느라고 일컫어지는 선댄스 영화제를 운영하는 선댄스 재단이 최근 몇 년간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있는데, 바로 극장 체인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선댄스 영화제의 취지에 맞게 비주류나 독립영화들을 중요하게 편성하고, 그런 것을 찾아본다는 세련된 문화취향의 이미지를 적극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재단측이 그 극장 컨셉에서 절대적으로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설이 있으니, 바로 바와 라운지다.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 후 나와서 서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누구나 영화이론을 교육받은 평론가들인 것도 아닌 이상, 실제로 영화의 감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뭇 영화지면들의 비교적 균일한 초점들보다 훨씬 자유롭기 마련이다. ‘선호 해독’에 얽매이는 것은 영화적 지식을 어떻게든 과시해야만 하는 자리에 한정될 뿐이다. 실제 감상의 세계란 훨씬 중구난방이고 소소하게 사변적이며, 일상 속 잡념의 향기가 강하다. 그럴 경우 감상이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거리로 연동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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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공간 속에서 -『대한민국 원주민』[기획회의 228호]

!@#… 조만간 작가 분의 북포럼도 한다고 하니, 이왕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같은 시공간 속에서 -『대한민국 원주민』

김낙호(만화연구가)

현대 한국사회의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워낙 이런저런 변화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래 사회라는 큰 환경은 빨리 변할 수가 없다. 사회의 틀을 바꾸는 것은 정책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밀어붙일 수 있다 할지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사회, 문화산업 강국을 부르짖으며 캠페인을 벌이고 예산을 쏟아 부어 시설을 만들 수는 있고, 그 결과 그쪽 산업이 단시간에 크게 융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평생 농사짓던 분들이 그 정책만큼이나 빠르게 모든 생활방식을 버리고 웹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계속 밀어붙인다면 사회는 불안해지고 변화는 오래 못가서 반동을 일으키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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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기획회의 227호]

!@#… 명심할 것은, 이 책은 ‘조금씩’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뭐, 명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재미있다’는 것과는 좀 다른 방향에서 매력 있는 작품.

 

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은 거대한 생각의 덩어리다. 꿈을 꾸지 않는 동안에 축적된 수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꿈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하나의 세계 속에 비선형적으로 펼쳐진다. 어떤 경우 구체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저 심상과 단편적 언어가 맥락 없이 떠다니기도 한다. 현실적 희망과 비현실적 망상이 하나의 세계에서 교차하며,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묶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혼잣말이라는 것이다. 꿈 속에서 벌어지는 타인과의 교류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재해석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다른 일면들과의 대화다. 그렇기에 꿈은 독자적 언어이자, 일종의 메아리와도 같다. 만약 그 메아리를 붙잡아 기록하고 타인의 혼잣말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궁극의 소통이 될 것이다. 어느 수준까지 의식과 이성의 도구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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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누구로부터 지키는가 – 『왓치맨』[기획회의 226호]

!@#… 작품이 작품이다보니 여러 지면에서 소개하게 되었고, 기획회의에는 책으로서의 맥락, 판타스틱에는 다른 꼭지들 사이에서 만화문화적 맥락으로 쓰게 된 물건. 민란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하는 압박스러운 정부와 초인을 자처하는 듯한 수장 덕에,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더욱 여러가지 의미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

사회를 누구로부터 지키는가 – 『왓치맨』

김낙호(만화연구가)

문화권에 따라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스스로 무장하여 질서를 지킨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큰 미덕으로 칭송되어 왔다. 민병대든 동네 방범이든, 이런 자경단 정신은 자율적 인간이 사회적 몫을 자발적으로 다하며, 나아가 사회 속 타인에 대한 애정까지 보여주는 것으로 쉽게 간주된다. 그 자발성이 지니는 도덕적 훌륭함의 느낌은 확실히 크다. 하지만 사회가 미국 서부 시대의 개척촌이나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임진왜란 한복판이 아니라면, 즉 사회가 나름대로 정의를 강행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자경단 정신을 칭송하는 것은 몇 가지 난점에 봉착한다. 제도의 정의와 개인의 정의의 마찰, 제도 속을 사는 일반인들과 제도를 넘어서는 영웅의 마찰, 공공선의 한도, 불의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 등 끝이 없다. 이런 것은 특히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을만한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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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어내는 그릇 – 『도자기』[기획회의 225호]

!@#… 이상하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자꾸 타이밍을 놓치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한 마디. 만화라는 표현 양식에 큰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마음을 읽어내는 그릇 – 『도자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대부분의 경우, 옛 도자기는 순수한 감상의 세계 그 자체를 제공한다(물론 어떤 이들은 도자기 자체보다 도자기의 가격을 감상하며 황홀경에 빠지곤 한다). 대부분의 옛 도자기는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 없이, 오로지 그 물건 자체로서 우리를 만나게 된다. 어떤 장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어렴풋할 뿐이며, 유물은 물건 그 자체로서 그곳에 있다. 그렇기에 억지로 모범답안을 달달 외운 것이 아니라면, 옛 도자기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은 지금 현세에 보는 이들의 해석 혹은 느낌이 주는 현재성을 지닌다. 게다가 옛 도자기의 상당수가 장식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생활 속 도구로서의 맥락까지 있다. 그렇듯 도자기는 현재적 일상성의 영역이며, 여러 인간 사연들과 상상들이 만나는 느슨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교과서의 암기사항이나 박물관의 유리통 속에 머물지 않고, 상상 가득한 작품의 지면으로 놀러 나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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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인정하는 순간 – 『바이바이 베스파』[기획회의 224호]

!@#… 답지않게 꽤 자의적인 감상이기는 하지만, 하기야 워낙 주관적으로 보지 않기 힘든 작품이니까.

 

성장을 인정하는 순간 – 『바이바이 베스파』

김낙호(만화연구가)

베스파는 스쿠터의 기종 가운데 하나로, 꽤 올망졸망 귀여운 종류다. 그런데 스쿠터는 상당히 어중간한 탈것이다. 자전거보다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이동거리를 늘려주고, 그렇다고 오토바이처럼 아예 질주할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스쿠터로 도심 질주를 하는 동네 중국집 배달원들 같은 특수한 사례들은 논외로 치자). 게다가 탑승도 그렇다. 좁게 앉아서 한 명 정도 더 태울 수 있을텐데, 그것도 밀착 정도가 심지어 오토바이보다 더 좁기 때문에 웬만한 사이가 아니라면 좀 민망해지기 십상이다. 만약 본격적으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된다면, 혹은 무언가를 짊어지고 돌아다녀야 한다면 스쿠터는 곤란하다. 그런데 결국 사람은 더 이동거리가 늘어나고,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더 데리고 다니게 된다. 그럴 때 스쿠터는 ‘졸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름대로 자유롭게 달리는 것을 꿈꾸지만 과장되지 않은 섬세한 삶의 방식으로 선택했던 스쿠터는 계속 함께 할 수 없는, 한시적인 것이 된다. 스쿠터는 소년시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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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 『음주가무연구소』[기획회의 223호]

!@#… 그런데, 술을 먹지 않아도 이미 바보인 자들에게는 약이 없다(특히 그 상태로 정책 의결까지 하고 있다면). 지난 호 게재분.

 

뭐 어때 – 『음주가무연구소』

김낙호(만화연구가)

성인들에게는 누구나 주사의 기억이 있다. 아니, 기억이 없어서 더 난감한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그 결과 술을 싫어하게 되었든 오히려 더욱 좋아하게 되었든, 이성의 끈을 살짝 놓을 정도까지 술을 마셔보는 경험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보편적이다. 애초에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사회와 자기 자신이 부여한 여러 이성의 속박을 느슨하게 하기 위함인데, 그 속박이 풀릴 때 스며 나오는 정직한 알맹이는 어떤 방향이 되었든지 간에 정상인(즉 취하지 않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무척 바보스럽다. 근엄한 정치인이 사실은 성추행 욕구로 불끈거린다는 것이 드러난다든지 하는 불쾌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재미있게 망가짐으로써 주변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한 경우도 있다. 전자는 제도의 쓴맛을 보여주어야 할 영역이지만, 후자는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되어준다. 이왕, 또 다른 술자리에서 안주가 되어주면 더욱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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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기획회의 222호]

!@#… 풀의 꽃은 잠시의 슬럼프였을 뿐, 르브바하프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작품. 더 유명해져야 마땅하지만, 현재 한국의 종이만화잡지의 한정적인 파급력이 웬수지.

 

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세대를 규정지은 엄청난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비결은, 특이한 인간들이 모여서 마법이 난무한다고는 해도 결국은 기숙 학원성장물이라는 탄탄한 검증된 근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에 대한 세계관을 체계화시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 작가의 창작력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장르적 기반은 큰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기숙학교성장물의 전통은 원래 유럽의 청소년 문학에서 뚜렷하게 형성된 것인데, 생활의 모든 면모를 같이 하게 된다는 공동체 설정, 학교라는 배경이기 때문에 기본으로 깔리는 성장의 테마, 어른들이라는 더 강한 존재들이 현명한 조력자 역할도 문제적 역할도 일임하는 방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형이지만 결국 끝이 나고(예를 들어, 졸업) 그 후에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있다. 현재 청소년이거나 한 때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정서적 공감대, 혹은 최소한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좋다. 이런 건전무쌍하면서도 확실하게 폭넓은 호소력을 가지는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한국이라는 곳은 워낙 극악한 교육제도 덕분에 도저히 무려 기숙학교 생활에 낭만적 판타지의 요소를 넣기 힘들기는 하다. 왠지 합숙소 지옥훈련 스파르타 그런 생각부터 들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이미지들을 그냥 그대로 쓰면서, 적당히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유쾌한 기숙학교물을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소재는 보너스. 해리포터에 대한 한국식 화답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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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만든 환경을 기억하다 – 『재미난 집』[기획회의 221호]

!@#… 재미난 집Fun Home에 대해서는,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뭔가 커밍아웃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쪽 리뷰에서는 물론, 심지어 책내 서평에서도 왜 그랬는지 이해못할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이 죽음 ‘직후’라고 썼는데, 첫째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비로소 아버지에 관한 여러가지 것들을 새로이 발견해나간다는 비유적 의미, 둘째는 어머니가 사실을 폭로했고 아버지는 딸에게 직접 대놓고 고백하지 않았다는 미묘함을 포함하려 한 것. 하지만 다시 읽다보니, 마지막 자동차에서의 대화장면이 충분히 직접적인 커밍아웃 아닌가. 여전히 뒤늦었고 ‘어긋난 타이밍’이라는 문맥은 그대로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운 팩트 실수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무척 쪽팔리는 실수.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는 책이기는 하지만, 2쇄를 찍을 때 반드시 수정 필요. 그런 의미에서, 빨리 다들 책을 사서 초판을 소진시켜주셈. (핫핫)

 

자신을 만든 환경을 기억하다 – 『재미난 집』

김낙호(만화연구가)

가족의 기억을 다루는 작품은 흔히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채워줘야 한다. 한쪽으로는 굳이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만큼 나름대로 특이한 측면이 있는 가족이어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으로서의 특징을 담아줘야 하는 것이다. 전자가 미비하면 그냥 일기장에 불과해지고, 후자가 미비하면 애초에 가족물로서 성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재면의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의 기억을 애초에 왜 다루고 있는지 그 자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일종의 사회 풍자나 민속지 기록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보다 좀 더 담아내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현재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 환경을 되짚어보는 것 말이다. 어쩌다가 내가 나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장 밀접하게 같이 살아온 인연인 가족의 이야기로 가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회한일 수도, 애정일 수도, 그 모두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향수로 풀어내는 것도 좋겠지만, 진정한 사색은 과거의 가족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현재의 내가 그 당시의 모습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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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생활이 하나 가득 – 『을지로 순환선』[기획회의 220호]

!@#… 이런 책은 사실 3권을 사야 한다. 한 권은 고이 소장용, 한 권은 폼나는 선물용, 한 권은 조각조각 분철해서 벽에 걸어놓기용. 실물 책을 보기 전에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PDF본으로 봐도 상당히 느낌이 좋던데, 홍보용으로 월페이퍼 모음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 여튼 서가에 오래오래 꼽혀있어야 할, 좋은 (만)화집.

 

사람들의 생활이 하나 가득 – 『을지로 순환선』

김낙호(만화연구가)

지하철 속,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각자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있고 통로에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설교하고 있다. 창밖으로는 달동네, 곳곳의 빌딩, 그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이들과 노는 아이들이 있다. 혹은 와우산 달동네가 널찍하게 펼쳐진 모습,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집들 사이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장면,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옮겨가려는 풍경을 위에서 살짝 바라보듯 잡아낸다. 아니면 두 도시 가운데 놓인 길 한 토막을 놓고 옥신각신 하면서 결국 무언가를 공사하는 모습도 있다. 이런 풍경들은 그림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길지 않은 한마디의 설명과 결합하며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허름한 쪽방 집 아이들이 헌 의자를 놓고 노는 모습에 달려있는 짧은 문장 하나. “울 아빠 10년 다녔다는 회사 망하고 월급 대신 가져온 중역의자. 마당의 우주정거장.” 그 작품들 속에는 우리네 삶,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풍경이 있고 그 속에는 항상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때로는 짠하게, 보통은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담긴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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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 영혼 –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기획회의 080301]

!@#… capcold.net에서 리플 제로인 경우가 은근히 적지 않은,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의 연재 만화 서평들. 설마 이 작품에도 무플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은근히 신경쓰나…?)

 

진화하는 영혼은 진행형 –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김낙호(만화연구가)

육체의 진화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아주 극단적인 창조론자가 아니고서야). 어쨌든, 주어진 환경에 대한 효율적인 적응이라는 비교적 강력한 기준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낌이 뚜렷하다. 그 속에는 “만약 내 목이 더 길었다면 저 나뭇가지 위의 열매를 따먹어서 생존을 할 수 있을꺼야” 같은 욕망의 규칙도 쉽게 들어선다. 하지만 영혼의 진화라면 어떨까. 도대체 영혼이 진화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할 것인가. 보다 완전한 인격체가 되는 것 같은 편리한 대답 정도로 만족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 사이 모든 단절의 벽이 없어져버리고 모두의 영혼이 하나의 군집체로 융합하는 상상을 발휘하기도 했고, 순환 속에서 카르마의 적립을 통한 영혼의 해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아마 진화하고 있는 영혼이 바로 자신이라 할지라도 영혼의 진화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저 나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고 있고, 아마도 육체의 제한과는 달리 여러 시대를 초월하며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연을 겪고, 자연의 여러 면모들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여러 생각과 느낌들이 퇴적된다. 해탈이나 최종융합 같은 ‘끝’이 오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느릿느릿 현명해져 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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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 한마음의 어두움 – 『이끼』[기획회의 080215]

!@#… 하지만 이왕이면 ‘발칙한 인생’으로 돌아와주기를 바랬다…;;;

 

일치단결 한마음의 어두움 – 『이끼』

김낙호(만화연구가)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뒷받침해준 하나의 철칙이 있다면 바로 뭉치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맘모스 사냥할 때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뭉치고 타인을 배제하는 지극히 현대적인 이합집산에 정통으로 들어맞는다. 특히 같은 지역에 살기에 공동의 이익을 지니는 동네 사람들끼리 뭉칠 때 그 힘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주거단지에서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을 내쫒고자 하는 펜스 세우기든, 동네에 위치한 공고를 문 닫게 만들기 위한 실력 행사든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단결이야 당연한 행동이지만, 그것을 위해 타인에 대한 해코지를 당연시하는 순간부터 광기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번진다. 마치 습한 바위 밑의 이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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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탐구하는 공감대 – 『탐구생활』[기획회의 080201]

!@#… 웹만화 종이출판의 모범.

 

생활을 탐구하는 공감대 – 『탐구생활』

김낙호(만화연구가)

공감이라는 기법은 비단 어떤 작품이라도 어느 정도 의지하는 기법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짧은 에피소드 방식의 웹 연재만화(속칭 ‘웹툰’)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활용되다 못해 아예 ‘공감툰’ 이라는 유사 장르로 굳어지고 있을 정도다. 하나의 도식이 된 공감 만화는 일반적으로 1인칭 자전적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생활 속 어떤 순간을 등장시키고는 “다들 이런 적 있지 않나” 하고 반문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크게 신경쓰고 살지 않거나 혹은 사실은 신경 쓰고 있지만 굳이 따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닌 이야기일 때 효과가 더 강력하다. 그 결과 “아 맞아”라고 이마를 치면서 즉각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장르는 젊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빠르게 호응을 얻어서, ‘엄마친구아들’(만화『골방환상곡』에서 퍼트림) 같은 키워드를 크게 유행시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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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를 포용하는 자들 – 『마녀』[기획회의 080115]

!@#… 모 나라 모 인수위 분들은 심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하니, 그들과 우리 세상을 소통시켜줄 ‘마녀’들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두 세계를 포용하는 자들 – 『마녀』

김낙호(만화연구가)

마치 아기가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세상의 전부로 믿기 때문에 눈을 가리면 모든 존재가 사라진 듯한 공황에 빠지듯, 우리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이곳의 자연법칙들이 세상의 전부다. 그런데 간혹 이쪽의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사기꾼인가 아니면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는가를 떠나서, 다른 세계의 이치와 소통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상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산다. 그 결과, 어떤 경우에는 초월적 존재로 존경받거나 더욱 많은 경우 박해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한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로서 권위로 다스리는 제사장이 아닌 좀 더 일상적 영역에서 그런 소통을 일삼는 것은 대체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맡곤 한다. 물론 여러 사회적 조건 맥락들이 맞아 떨어져서 그렇겠지만, 여기에는 여성상의 스테레오타입이 개입된다. 논리와 이치에 목숨을 걸며 자연의 지배자 역할을 자처하는 남성상과 대비되는, 다른 세계를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감성으로서 공감해주는 하나의 전형으로서의 여성상 말이다. 사회적 일상에서 약자에 가까운 위치에서 다른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중개하는 역할을 맡은 그녀들은 각각의 시대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서 때로는 무당, 무녀, 혹은 마녀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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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성장담 -『도로시밴드』[기획회의 080101]

!@#… 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 호의 원고도 락음악 관련 만화여서, 담당자분이 잠시 혹시 원고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튼, 높은 품질에 비해서 화제성이 참 떨어지는 비운(?)의 작품.

락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성장담 -『도로시밴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락앤롤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발상은 참 60년대적이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와 밥딜런과 기타 락의 젊은 신들이 한 세대를 새롭게 재발명해내던 의기충천한 시대의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좀 다른 형태와 규모이기는 했지만, 90년대에 재발견되며 잠깐 대중문화의 창조적 힘에 대해서 이야기되고 락 담론이 반짝인 적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음악이 거의 ‘배경음악’이 되어버린 2000년대의 오늘날, 그 정도 과대망상급 긍정성은 많이 희박해졌다. 요즈음 락이 각종 밴드 영화나 만화로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재발견되고 있는 것은, 락의 힘 자체보다는 주로 뭔가 아련함을 이야기하는 계통이 많다. 고된 삶으로부터 잠시 동안의 청량감 있는 도피를 하는 것이다 보니, ‘쿨’함이 부족하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 편중화의 문제인데, 비유하자면 진득한 블루스락에 편중되어 직설적으로 발랄한 펑크락이 가려져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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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의 즐거움으로 버텨봐 -『SLTS』[기획회의 071215]

!@#… 연말연초는 자고로 롹이 제 맛.

락의 즐거움으로 버텨봐 -『스멜스 라이크 30 스피릿』

김낙호(만화연구가)

작년 여름 무렵, 필자는 모 영화 잡지에서 만화 원작 작품 붐과 관련지어 “영화가 한번 내볼 만 한 한국만화”를 몇 개 선정해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당시 온라인에서 연재 중이던 직장인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밴드 경연에 나가는 내용을 담은 삶의 페이소스와 은근한 낙천성이 담겨있는 만화였다. 안 그래도 대세가 그랬던 것인지, 올해들어 실제로 두 편이나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개봉했던 바 있다. 다만, 그 두 편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뭐랄까, 필자가 추천했던 그 만화가 가지고 있던 독특한 재미와는 거리가 먼 컨셉의 작품들이었다. 여전히 ‘와이키키 브라더스’스러운 복고정서에 가까웠지, 정작 오늘날 가장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8-90년대에 한국 락과 해외 락의 하드한 대폭발을 온 몸으로 향유했다가 지금은 한창 사회의 쓴맛에 절어 들어가며 30줄 회사원이 되어가는 락키드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꿈을 버렸다가 일상에서 일탈하며 되찾는 청춘만세보다 훨씬 진한 공감대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락커의 꿈을 버릴 듯 말듯 하면서도 계속 아쉬움을 가지고 뭔가 해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그 답답함이다. 그런 삶 속에서 바로 밴드를 만들고 연주를 시작할 때, 비로소 락은 일시적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즐기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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