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꿈은 꾸는 쪽이 낫다 – 『무한동력』[기획회의 254호]

!@#… 기본적으로는 책내 서평의 확장형.

 

그래도 꿈은 꾸는 쪽이 낫다 – 『무한동력』

김낙호(만화연구가)

자신이 꿈꾸는 바를 실제로 이룬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꿈과 현실의 격차는, 지나치게 멀어도 가까워도 곤란하다. 꿈과 현실이 지나치게 가까우면 추구의 대상으로서 꿈을 꿀 이유가 없어진다. 반면 너무 멀면 꿈과 현실의 격차가 고스란히 아쉬움과 스트레스로 남는다. 그렇기에 현실 속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삶은 꿈과 현실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실제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혹은 꿈을 더 키우거나 줄이면서 말이다. 꿈은 고작 낭만이 아니다. 실제와 공명하며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눈 앞의 모습에만 몰두한 나머지 꿈이라는 측면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그렇게 동력원을 잃은 상태에서 그저 관성으로만 살아가다가 그 관성이 다할 때 허무하게 정지하는 삶도 있다. 사회가 안정망보다는 근시안적인 격투 경기장이 될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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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다층성으로 표현하는 우울 – 『지미 코리건』[기획회의 253호]

!@#… 만화를 보는 것을 만화에 대한 폄하의식이 가득한 뭇 사람들에게 굳이 정당화시키는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취향을 존중해달라능” 아니면 “훗, 이게 얼마나 뽀대나는건데”. ‘지미코리건’은 후자를 위한 최강클래스 아이템 중 하나.

 

혁신적 다층성으로 표현하는 우울 – 『지미 코리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김낙호(만화연구가)

평범하게 훌륭한 작품과 고전의 반열에 오를 걸작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층성’이다. 여러 층위의 의미와 표현들이 하나로 겹쳐지며 풍부한 해석의 여지와 복합적 감상을 남기기에, 두고두고 여러 방향으로 다시 읽어볼 가치를 만든다. 다만 당연하게도 다층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잘못하면 딱딱한 형식주의의 함정에 빠지거나 작가 자신만 알아보고 독자를 소외시키는 자아도취 코드로 귀결되기 쉽다. 그럼에도 성공한다면, 특히 그 안에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작품의 매력은 극한으로 올라간다. 다층적으로 겹치고 변주되는 카논 악곡의 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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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거대한 모순과 직면시키기 – 『어린왕자의 귀환』[기획회의 252호]

!@#… 생각해보면 ‘어린왕자’ 자체도 현대 자본주의 물질문명 사회에 대한 비판이 쩔었던 통쾌한 작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낭만화되어 받아들여진 감이 있다.

 

일상의 거대한 모순과 직면시키기 – 『어린왕자의 귀환』

김낙호(만화연구가)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모순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수많은 ‘교과서’들이 그런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 개념들의 향연을 벌이거나, 혹은 선명한 만큼 특수할 수 밖에 없는 몇몇 대표적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런 접근이 물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문제에 주목하고 결국 나서게 만들고 싶다면 그다지 크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필요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 된 세상사 속의 어떤 패턴을 살짝 끄집어내서, 그것이 약간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 직면시켜주는 것이다. 일상의 패턴은 더 일상적일수록, 모순은 거대할수록 효과는 뚜렷하다. 예를 들어 어느덧 시대정신처럼 되어버린 자본주의 과잉(흔히 문제점들을 모아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로 통칭하곤 하는데, 그 용어의 원래 의미는 좀 더 복합적이다) 속에서,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평등은 증가하는 이상한 상황을 뽑아낸다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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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계속 한다 – 『백도씨』[기획회의 251호]

!@#… 이번 여름은, 사회성 짙은 만화책들 가운데 재미와 품질을 갖춘 양질의 작품들이 풍년이다. 실로 바람직한 현상.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계속 한다 – 『백도씨』

김낙호(만화연구가)

모든 이에게 행복한 사회는 좀처럼 존재하기 힘들겠지만, 사회성원 상당수를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소수만이 자신들 유리한 방식으로 정책을 끌고 가는 사회라면, 확실히 부당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부당함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회 성원들의 불만이 쌓이다가 결국 변혁이 일어난다. 그 변혁이 더 좋은 쪽으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물론 없지만, 최소한 더 인간다운 세상을 실현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훌륭한 선진적 사회라면 그런 변혁의 요소들을 사회성원들의 합의에 의해서 원만하게 도입하는 곳이지만, 보통은 대규모의 전면적인 저항과 많은 희생을 딛고 큰 단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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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의 오락코드 – 『서울협객전』[기획회의 250호]

!@#… 지면으로 인한 저평가는 슬프다. 특히 한때 오히려 고평가를 나을만한 지면이었다면.

 

무협의 오락코드 – 『서울협객전』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문화의 특정 인기 장르에 대한 편견은 결코 드문 것이 아니다. 아니 일각에서는 아예 장르라는 말이 접두어로 붙으면 격을 여러 단계 낮춰 인식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장르소설’ 이라든지). 이런 자세가 장르의 뻔한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새로운 예술적 성취가 없으니 얕잡아 봐도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논리가 덜 갖춰진 어렴풋한 우월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생활의 다양한 층위 만큼이나 문화 역시 여러 층위를 총체적으로 볼 것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심히 한탄스럽다. 장르물이라는 것은 하나의 틀일 뿐, 그 안에 담기는 것은 사실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도 있고(히치콕을 재발견한 카이에뒤시네마를 기억하자), 사회적 문제의식을 던져넣을 수도 있다. 다만 장르물은 특성상 대중적 오락기능에 더 우선적인 초점을 두고 있을 따름이다. 아니 애초부터, 대중적 오락기능 자체에만 집중하면 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애초에 목표한 바가 명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완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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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축적 – 『치키타 구구』[기획회의 249호]

!@#… 일련의 출판사들이 만화사업을 대폭 정리하며 떨궈버렸던 보석들 가운데 하나가 또 이렇게 돌아왔다. 이번에는 무사완간 좀.

관계의 축적 – 『치키타 구구』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이 든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주제다. 이미 『어린 왕자』같은 작품의 왕자와 여우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이것을 다루어 여러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바 있고, 소위 인생역정의 큰 흐름을 그리는 장편극 가운데 이런 요소를 바탕에 두지 않는 것이 드물 정도다. 이것은 어떤 작품이 독자들이 살아가는 일상에 직접적으로 밝은 방향의 영감을 줄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식 중 하나다. 불같은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가 주는 드라마틱한 재미와 달리,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살아가는 이치라는 듯 은근한 깨달음을 주는 과정의 포만감이 있다. 그 중 좀 더 집요하게, 무척 이질적인 혹은 아예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관계의 두 주인공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축적되며 어느덧 끈끈하게 연결되는 과정을 다룬다면 어떨까. 더할 나위 없이 이 주제가 주는 매력의 본질을 건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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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도 없이 머뭇거리는 성인들 – 『속좁은 여학생』[기획회의 248호]

!@#… “적어도 나름대로는 평화로운 현대 한국사회” 같은 말이 좀 뻘쭘해졌는데, 월초에 쓴 원고다보니 그런 것. 소개하는 작품은 인디팝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같은 제목 노래를 들으면 더욱 재미있다.

 

별 것도 없이 머뭇거리는 성인들 – 『속좁은 여학생』

김낙호(만화연구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주말드라마가 아니다. 적당히 크고 작은 부침은 있지만, 극단적인 인간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쫒는 열정을 불사르다가 배신을 당한다든지 하는 파국은 없다. 아니 그런 파국이 행여나 다가올까 피하기 위해서라도, 꽤 소심하고 머뭇거리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견주어보면서 다가간다. 그리고 조금만 틀어져도 뒤집고, 쿨하게 초월했다는 듯 허세를 부리다가도 알고 보면 마음이 허전하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가 말았다가 한다. 때로 그것은 정말로 생활의 모든 것을 침범할 정도로 무겁지만, 사실 약간만 다른 곳에 신경쓰고 집중하고 나면 또 의외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꾸로 여느 드라마 속이라면 대범하게 지나갈만한 것들도, 자꾸 다시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대범하게 불사르고 맺고 끊는 그런 마음들보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런 속 좁은 마음들이 (적어도 나름대로는 평화로운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현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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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라는 참여과정 -『기동전사 건담 1년전쟁사』[기획회의 247호]

!@#… ‘기획회의’의 만화 리뷰 지면에 만화로 되어있지 않은 책을 소개한 첫 케이스이긴 하지만, ‘만화문화’와 떼어놓고는 도저히 성립이 되지 않는 책이다 보니 뭐…;;; 설정의 즐거움이라고 하니, 최근 히트중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도 한번 엮어서 생각해볼 구석이 있을 듯.

 

설정이라는 참여과정 -『기동전사 건담 1년전쟁사』

김낙호(만화연구가)

작품을 즐긴다는 것은 종종, 작품에 얼마만큼 참여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의 형태로 나타나곤 하지만, 때로는 작품 속에 구성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몰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현실세계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작품을 위해 하나의 독창적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환타지와 SF 장르의 작품들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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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 구멍, 그리고 명품 성장물 -『블랙홀』[기획회의 246호]

!@#… 하필이면 이번 글을 캡콜닷넷에 백업올리는 시점에, 돼지플루 창궐이라니;;;

 

전염, 구멍, 그리고 명품 성장물 -『블랙홀』

김낙호(만화연구가)

성장은 전염성이다. 흔히 떠올릴 법한 개인이 사회와 부딪히며 차츰 무디어져가고 철이 든다는 식의 그런 관점이 아니라, 어느 한 명의 성장이 특정한 조건을 거치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전염되고 확산된다는 것이다. 각자의 학창시절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성장에 대한 욕구든 아니면 별반 생각도 없었는데 성장의 길로 내몰리는 것이든, 항상 주변에 누군가가 성장의 모습을 보인 후 압박이 확산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장통을 겪는 또 다른 이들의 사연이 매혹 또는 공포 속에 내 생활에 침투하고, 그 속에서 내 방식의 성장을 겪고 나면 다시금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또래집단 위주로 전염되곤 하는 성장이라는 전염병은, 결국 그 집단 전체가 ‘감염’될 때 즈음 이상하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생활조건이 된다. 심지어 그 성장의 결과로 이전의 시각으로 보자면 무척 괴상한 존재들이 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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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성과 전문소재 -『오늘의 커피』[기획회의 245호]

!@#… 단행본이 좀 잘 나가면 연재도 재개되고 열심히 나와줄까 하는 희망을 담아 보낸다.

 

이야기성과 전문소재 -『오늘의 커피』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문화에서 전문 소재를 다룬다는 것은 무척 자주 정해진 패턴을 따르곤 한다. 애초에 “90%의 익숙함과 10%의 신선함”으로 폭넓은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목표가 있고 전문 소재는 어디까지나 그 10%의 역할을 위한 도구인 만큼, 그럴듯하기는 하되 너무 본질적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금물이다. 그럴듯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는 자극 (또는 지적 허영)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깊게 들어가면 입문교과서가 되어 재미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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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 – 『샌드맨』[기획회의 244호]

!@#… 샌드맨 시리즈 한국어판을 나름대로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터라(최소한 현문에서 2001년 무렵에 출간 검토하고 있었을 때부터), 나오고 난 후 따로 소개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야 당연. 다만 좀 더 커버스토리스러운 지면으로 다루어져 마땅한 작품이건만, 어째 미디어의 관심이 의아할 정도로 소극적인 느낌(역시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야만 관심 1그램인가, 아니면 출판사의 이슈메이킹 능력이 약한 것인가). 작가 닐 게이먼에 대해서는 이전 월간 판타스틱 글 참조.

 

이야기의 이야기 – 『샌드맨』

김낙호(만화연구가)

도대체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동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 수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내놓곤 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존재에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을 꼽아서, 그 발상은 흐르고 흘러 『블레이드런너』에 이르렀다. 다른 이들은 좀 더 편하게 사랑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을 운운하며 휴머니즘을 부르짖고는 한다. 필자의 경우, 인간의 특징이라면 바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야기의 전달에는 언어적 소통이 있고, 체험하지 않은 것을 체험시켜주는 이입과 상상력이 있으며, 이야기와 그것을 만드는 이야기꾼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들어가고, 현실이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한 구체적 혹은 헐렁한 희망과 상상이 들어간다. 이야기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 특유의 활동이며 사회와 문명을 구축하는 벽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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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형사 – 『배트맨: 이어원』[기획회의 243호]

!@#… 또 배트맨 관련… 인데, 앞으로 아캄어사일럼이나 킬링조크 같은 당연히 다루어줘야 할 만한 물건들이 한국어판 나오면 그때 가서 또 어쩔 수 없겠지. -_-;

 

탐정과 형사 – 『배트맨: 이어원』

김낙호(만화연구가)

특정한 작품 속 캐릭터와 세계관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애초부터 원래의 작품이 충분히 흥미를 끌었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 소수만을 위한 비인기작이었다면 ‘실마릴리온’은 작가의 창작노트에 불과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설정으로 해당 작품에서 바탕에 깔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주는 것에 불과하다면, 마찬가지로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그렇기에 두 번째 조건, 바로 기원 자체가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와 캐릭터에 과거를 부여함으로써 현재 모습 이면에 있는 동기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틀어주는 과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매력요소를 다시 파내야하며, 더욱 깊숙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고리들을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셈인데, 때로는 작가 자신의 처음 의도를 넘어서는 부분까지도 고도의 이해력이 필요한 만큼 기원 스토리는 성공보다는 실패사례가 더 흔하게 눈에 띄곤 한다. 반면에 ‘대부2’에서 볼 수 있듯 기원 스토리와 현재의 모습들이 제대로 엮여 들어가면, 시대의 명작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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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고발보다, 성장에 관한 – 『피부색깔=꿀색』[기획회의 242호]

!@#… 신문기사나 도서리뷰는 대호평인데, ‘네티즌 감상’ 같은 것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취향의 작품. 즉 “모에 없음 / 쿨함 없음 / 짤방매력도 낮음 / 하지만 작품적 재미와 깊이 상당” 부류.

 

사회고발이 아니라 성장에 관한 이야기 – 『피부색깔=꿀색』

김낙호(만화연구가)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히트 드라마가 있었다. 결국은 눈빛 멋진 남자주인공과 비련의 여주인공이 본격 연애하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초반만큼은 해외입양아 문제를 소재로 해서 묵직한 화두들을 몇 가지 던져주곤 했다. 적어도 필자는 그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의 허무한 멋스러움보다는 그런 표정이 몸에 스며들 때까지 겪었을 사연이 더 궁금했으니 말이다.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틈바구니, 심지어 자신을 받아들인 가족들도 외모에서부터 나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서 자라난다는 것이 주는 고독감은 정신세계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나를 버린 곳, 하지만 나의 원류가 된다는 어떤 곳에 대한 애증은 또 다른 응어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은 중간에 걸려 넘어져 좌절하기 쉬운 만큼, 반대로 잘 삭여서 인생의 일부로 잘 받아들이면 그만큼 성숙해질 수 있기도 하다. 만약 스스로 그 성장경험을 회고하고 정리하면서,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 담담함과 다소간의 유머감각으로 스스로 아픈 부분을 다독일 줄 안다면 말이다. 나아가 그 과정을 여러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있기까지 하다면 귀중한 성숙함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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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것의 강렬함 – 『남한산성』[기획회의 241호]

!@#… 이번에는 무사히 마무리 좀… 그리고 여세를 몰아 남자이야기 연재 재개 성사 내지 해와달 시즌2 같은 희소식도 나오면 좋겠지.

 

버티는 것의 강렬함 – 『남한산성』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싸움이 있다. 무언가를 무너트리기 위한 싸움, 그리고 이쪽을 무너트리려는 힘에 저항하며 버티는 싸움이 그것이다. 물론 많은 싸움은 그 두 가지 싸움들이 크고 작게 섞이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구분은 전략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항상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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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해먹고 사는 생활 – 『어제 뭐먹었어?』[기획회의 240호]

!@#… 요시나가 후미가 남성커플이 요리하는 만화를 그리니, 이거야말로 물을 만난 고기.

 

밥 해먹고 사는 생활 – 『어제 뭐먹었어?』

김낙호(만화연구가)

자고로, 밥을 해먹고 산다는 것은 상당한 일이다. 메뉴를 고르기 위해 쓰는 신경, 준비하는 것에 걸리는 시간,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 등 이것저것 갖출 것이 적지 않다. 이런 투자의 폭 또한 넓어서, 하한선이야 굶지 않는 정도지만 상한선은 삶의 유일한 낙이자 거의 집착적 수준까지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밥을 해먹는 것은 직업적 영리활동이 아닌 가장 일상적인 생활풍경이기에, 약간 과장을 섞자면 밥을 해먹는 것에 대한 자세는 그대로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의 일면이 되어준다. 사먹는 밥은 그냥 일터에서의 양분 보급, 혹은 취향이 섞인 소비활동에 머물 수도 있지만, 밥을 해먹는다는 것은 그런 특별한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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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탈을 쓴 인격존중 -『삼단합체 김창남』[기획회의 239호]

!@#… 전작 ‘삼봉이발소’ 쪽이 비록 페이스는 불안정하고 연출은 가끔 흔들렸으나 더 알찼다. 아쉽.

 

SF의 탈을 쓴 인격존중 -『삼단합체 김창남』

김낙호(만화연구가)

원래 인간이 인간형 피조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는 최소한 그리스 신화 시절부터 존재했다. 모습은 유사하지만 낯선 이, 그것도 만들어진 존재에 대한 관심이 애정의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실제 인생 속 어떤 패턴들을 이입해 볼 만한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대 SF 장르의 경우, 이 소재는 로봇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으로 나타나곤 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로 동원되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결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로서의 로봇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하게 이 소재를 파고드는 작품들의 경우, 사실은 정반대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인간들은 고등 두뇌 활동의 복합적인 인지과정에 의하여 사회활동을 하고, 덕분에 권력관계에 대한 수많은 이성적 및 감성적 세부적인 맥락 속에 살고 있다. 반면 로봇들은 그런 복잡한 것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사전 프로그래밍된 논리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 결과 예를 들어 인간들은 열등한 상대를 폄하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로봇은 그저 기본적인 도덕률에 의하여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해준다든지 말이다. 덕분에 로봇은 정작 인간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오히려 고지식하게 계속 가지고 있는 위치에 처하고, 인간이 상실해가는 어떤 ‘인간적’ 본성에 대한 알레고리가 되어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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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부조리 개그 – 『파레포리』 [기획회의 238호]

!@#… 요점은, 이건 좀 과격하지만 개그만화라는 것. 그러니 안심하고 지르시길… 아니 안심할 만한 건 아니지만.

 

예술적 부조리 개그 – 『파레포리』

김낙호(만화연구가)

여느 표현 양식과 마찬가지로, 만화 역시 가장 대중적인 기법들의 반대편 스펙트럼에는 전위의 영역이 있다. 예술적 파격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그쪽 영역의 경우 일반 대중들이 바라는 적당한 익숙함과 약간의 새로움이라는 황금공식을 구태여 신경 쓰지 않는 덕분에 보통 그들만의 리그에서 호평이든 혹평이든 평가받곤 한다. 하지만 어쩌다가 한번씩, 전위의 첨단에 서있으면서도 나름대로 다양한 재미의 층위를 배치해줌으로써 더욱 더 효과적으로 자신이 지닌 파격의 에너지에 감상자들을 흡수하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끝도 없는 다양한 전위적 실험을 하면서도 내면에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든지, 혹은 그저 순수하게 어떤 ‘정서’에 집중해서 공감을 유도한다든지 말이다. 사실 후자의 경우는 굳이 독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자의식이 그쪽인 경우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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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로봇은 가장 인간적 로봇 -『플루토』[기획회의 237호]

!@#… 작가 특유의 만성적인 후반 페이스 망가짐 증후군이 언제 발현될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6권까지 이정도 전개해줬으면 안심… 이라고 판단하고 써버렸음. 물론 다음 권에서 당장 뒤집혀서 가토의 왼팔이 될지도 모르지만.

 

최강의 로봇은 가장 인간적 로봇 -『플루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도 ‘우주소년 아톰’(원제: 철완 아톰)이라는 작품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종종 어린 날 재미있게 보았던 추억 속 무언가로 치부할 뿐, 그 작품이 얼마나 한 시대를 대표하고 이후의 만화는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다. 현대만화 문법의 상당 부분을 일거에 만들어내고 대중적 인기 또한 출중하여 일본에서 ‘만화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에는,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 SF적 실존의 질문과 활극의 직선적인 재미가 동시에 묻어나온다. 그런데 단순한 추억상품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파급력이 있는 고전은 종종, 그 영향을 받고 스스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한 후대에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재해석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림만 새로 입힌다거나 배경과 소품만 현대로 바꾸는 정도로는 부족하다(애석하게도 많은 경우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원작의 핵심 가치를 보존하고 큰 맥락을 유지하여 원작의 원형을 쉽게 연상시켜주는 동시에, 가장 현재적인 맥락에서 주제의식들을 구체화시켜서 리메이크 작업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리메이크를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개성과 장기를 잔뜩 버무리는 것 역시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리메이크를 하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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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청춘을 맞이하다 -『넘버 파이브』[기획회의 236호]

!@#… 써놓고 보니 무척 낮간지러운 제목인데, 그래도 그런 소재로 이렇게 멋지게 작품을 뽑아주는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세계가 청춘을 맞이하다 -『넘버 파이브』

김낙호(만화연구가)

하도 팬들의 호들갑에 늘상 동원되곤 해서 신선도가 형편없지만, ‘천재’라고 불릴만한 작가들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호칭은 활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붙이기 힘들어지는데, 천재적으로 혁신적인 작품을 처음 탄생시키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계속 일관되게 후속작도 그 이상의 충격을 주도록 하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작품세계 흐름의 일관성을 지니면서도(하다못해 “항상 변신한다”는 일관성이라도) 동시에 독자의 기대치보다도 더욱 큰 작품적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내고 있는 작가라면 그만큼 훌륭하다 할 수 있을텐데, 만화 분야에서 그런 천재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츠모토 타이요다. 2000년대에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갱신한 역작 『넘버 파이브』(마츠모토 타이요 / 김완 번역 / 전4권 / 애니북스)가 최근 한국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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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의 승리 -『본격2차세계대전만화』[기획회의 235호]

!@#… 한 호 분량 건너뛰고(직접 번역한 책 ‘만화의 창작‘에 대해서 도서리뷰를 하는 건 좀 이상하겠다 싶어서 234호는 대타로 다른 좋은 글을 게재했었음. 생각해보니 2004년 9월 처음 지면을 맡은 이래로 무려 첫 휴재였다!) 다시 재개한 지난 ‘기획회의’ 도서리뷰 원고. 뭐, 당연히 다룰 것이다 싶은 작품을 다뤘다.

 

‘본좌’의 승리 -『본격제2차세계대전만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오타쿠라는 용어를 동원하든 긱이라고 부르든, 어떤 분야에 대한 매니악하면서도 대중문화 친화적인 심취는 나름대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특히 일부 소재는 그런 현상을 더욱 부추키는 경향이 있는데, 내용 측면에서는 인간사의 이야기 거리로 풍부하며, 몰입의 측면에서는 세밀하게 설정을 파고 들어갈 구석이 많고, 쿨함의 측면에서는 뭔가 매력적인 형상과 기능의 물건들이 가득한 경우가 그렇다. 그런 범주에 해당되는 인간 문명 속 소재라면 스타워즈든 건담이든 열광적 팬, 혹은 폐인들을 양성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소재를 하나 뽑으라면 큰 망설임 없이 많은 이들이 어떤 가상의 작품보다도 인류사의 어떤 순간, 바로 2차세계대전을 꼽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차세계대전이야말로 인간문명이 지금껏 탄생시킨 가장 화려하고 복잡하고 잔인한 삽질이니 말이다. 덤으로 각종 아이템들까지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 소재에 심취한 이들이 여러 다른 대중문화의 매니악한 요소들을 섞는 향유방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나아가 그들에게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매체 가운데 하나인 웹만화의 형식으로 소통한다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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