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 『태일이』[기획회의 071201]

!@#…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단행본화가 오래 걸린 것이지 이해는 잘 안가는 것이, 한 권당 9회고 현재 잡지는 49호가 나오고 있으니 이런저런 펑크 좀 감안해도 거의 완결을 향하고 있어야 할 터. 뭐, 이제라도 나와준 것이 어딘가. 게다가 출판사가, 88만원세대 키워드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이 책에 대해서 노동자의 처지 이야기라는 토픽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 것이 은근히 의아한데… 뭐 모를 일이다.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 『태일이』

김낙호(만화연구가)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신입생들에게 입학과 동시에 손에 쥐어지던 책이 바로 『전태일 평전』이었다. 지배자들의 역사와 경쟁이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대학까지 온 신입생들에게, 이 사회가 어떤 이들의 무엇 위에 실제로 서 있는지 세상의 참가치를 보여주자는 학생회 선배들의 일종의 고정된 루틴이었던 것이다. 특출하게 잘난 것 없는 그저 노동자 출신이지만,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서 노동현장의 참혹함을 알리고 한국에서 노동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적 의제는 물론 진보 운동의 의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선구자 중의 선구자. 바로 이런 이미지야말로 전태일 평전의 주인공 전태일을 민중주의적 진보의 아이콘으로 포장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의도가 신입생들에게 실제로 도달하거나 실제로 공감되는 비율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곤 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선배들의 자의식과는 달리 정작 신입생들은 해방을 시키는 투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해방이 되고 싶어서 들어온 것이니까. 방향이 좀 다를 뿐, 『전태일 평전』 역시 또 다른 “그들의 삶을 본받지 않겠는가”를 강요하는 위인전으로 취급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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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의 아쉬움 – 『거짓말』[기획회의 071115]

!@#… 핵심은, 이 무크지 시리즈의 장점도 단점도 이 3권째에 이르면서 확고해졌다는 것.

소심함의 아쉬움 – 『거짓말』

김낙호(만화연구가)

거짓말이란 참 재미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의사소통 행위보다도, 내용 자체보다 그 말이 오가는 상황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되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죄악이 되기도 하고 유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하며, 상대를 거꾸러트리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또는 따듯한 배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단순히 말의 내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오게 되는 상황, 즉 이야기의 맥락을 궁금하게 만들어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때로 그것은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사건의 거짓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세계적 규모의 음모론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하고, 때로는 연애의 솔직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의 교차로를 나름대로 이해하게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거짓말은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픽션’이라는 말 자체가 결국 지어낸 이야기, 즉 거짓말이라는 것 아니던가. 거짓말은 상상력과 이야기 같은 개념들과 찰떡궁합이다. 다만 독자들에게 그럴싸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감을 스스로 즐기는 쾌감을 주는가, 아니면 되도 않는 설득에 짜증이 발생하도록 만드는가에서 이야기 품질의 승부가 갈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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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편리한 장치 -『일본인과 천황』[기획회의 071101]

!@#… capcold의 영원한 테마인, “with no power comes no responsibility”(영화 Clerks2에서 차용)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신 좀 차리게 해주기 프로젝트™의 연장선 상에서 쓴 내용의 도서 리뷰.

무척 편리한 장치 -『일본인과 천황』

김낙호 (만화연구가)

마치 남한의 정치인이 북한의 공식 국호인 ‘북조선’이라는 용어를 쓰면 큰 홍역을 치루듯, 한국에서 일본의 왕을 그들의 용어인 천황이라고 부르는 것은 터부시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이라고 하면 별다른 울림이 없지만, ‘천황’에게는 강제부역과 인권탄압의 고통을 겪은 현대사가 있으니까. 물론 천황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하늘의 직계손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식의 발상으로 세계 도처는 물론 한국의 건국신화에서도 사용하는 코드이고,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고도 상징적 존재로서 군주를 두고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특별히 드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국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배가 여왕의 이름보다는 대영제국 자본의 이익 논리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일본은 어째서인지 천황이라는 상징체를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는 했다. 덕분에 천황과 천황제는 전체주의, 군국주의, 파시즘 등 일본식 극우 일반의 폐해를 논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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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코드’의 유쾌함 – 『그=그녀』[기획회의 071015]

!@#… 일부러 3권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리뷰를 올린 작품. 작품 전개상, 한 5권 정도면 완결되지 않을까(혹시나 인기 연재작의 무한 루프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동성애 ‘코드’의 유쾌함 – 『그=그녀』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크게 유행했던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다. 보통 한국의 소위 전문직 드라마들이 그렇듯 커피를 다루는 부분은 거의 곁가지고 결국 커피 다루는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인데, 사실 방점은 ‘프린스’에 있다. 청소년 대상 주류 순정만화의 캐릭터 취향을 깊이 참고한 듯한 성격안배도 안배지만, 여자 주인공마저 신분위장하고 남장을 시켜서 프린스로 만들어버린 것. 그 결과 남녀주인공의 연애는 미묘한 동성애 코드를 품게 되고,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동성애 자체를 다루지 않고 동성애 코드를 일상사에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동성애 자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이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애정 문제, 취향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만 할 것 같은 비장함이 있다. 혹은 동성애에 대한 무지한 편견으로 무장하여 유치한 희화화(‘남자/여자답지 못한 것’)로 가버리거나 말이다. 그런데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로 읽힐 수 있으나 아닌 것을 다룸으로써, 비장함도 희화화도 살짝 비켜나가며 편견도 버리게 해주고 자연스러운 의외의 재미를 주는 것이다. 코드만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희화화하지 않고도 성 역할과 가치관의 전복에서 나오는 건강한 웃음을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사회적 상황이 있는 만큼 정면승부도 필요하지만, 이런 접근을 통해서 즐거움과 약간의 생각을 던져주는 미덕 또한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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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된 자료와 효과적 소통 – 『9/11 테러 리포트』[기획회의 071001]

정돈된 자료와 효과적 소통 – 『9/11 테러 리포트』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항상 경쟁자, 적대자들과 마주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고도로 발달한 사회일수록 때때로 불안은 활용할지언정 충격과 공포만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노력을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세금도 고분고분 내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방식이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으니, 막강한 폭력으로 삶의 터전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때다. 직접적인 파괴의 현장에서는, 승패니 이권이니 하는 나름대로 세련된 이해관계와 논리가 아니라 순수한 적의와 공포가 지배한다. 특히 적의 정체, 공격의 방법, 그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동안에는 더욱 더 공포가 공포를 먹고 성장한다. 사회를 위협할 정도의 적의와 공포를 해소하는 방법은?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 쉬운 길은, 대충 외부의 적을 하나 만들어서 사회에 팽배한 공포와 적의를 죄다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선악구도 같은 단순명쾌한 것도 도입하면 더욱 호응이 좋고, 얼떨결에 적의를 뒤집어쓴 자들이 실제로도 뒤가 구린 것이 많고 또 일반인들이 사실 별로 자세히 알거나 가깝게 여기지 않는 존재라면 안성맞춤이다. 반면에,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있다.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밝히고,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기술하며, 어떤 식으로 이런 일이 방지될 수 있는가 복잡하게 경우의 수와 가능성, 대안들을 타진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것을 심지어 공포와 적의에 사로잡힌 사회 성원들에게 이해시키기 까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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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서의 락 음악 – 『창고라이브』[기획회의 070915]

!@#… 난데없이 직장인 락밴드 영화가 두 편이나 동시개봉해서 그저그런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락덕후 몸부림과 좌절의 타이밍에 지난번 원고를 끄집어내고 말았다.

소통으로서의 락 음악 – 『창고라이브』
김낙호(만화연구가)

90년대 초중반 즈음, 한국에서 대중문화 담론이 폭발했을 당시 락 음악은 무슨 대단한 저항정신의 상징이어야만 한다는 듯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진 후 남은 실상은, 락 음악도 다른 여느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은 기존 다른 장르들에 만족하지 못해서 탄생했고 대중적인 무언가를 두드리며, 때로는 상업성에 찌들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성을 꿈꾸기도 하는 또 다른 대중음악이었다. 다만 음악의 형식상 좀 더 원초적으로 열정적이며 강렬하게 내지를 수 있는데(하기야 그런 성향 자체가 이미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반골’이지만 말이다), 예술적 성취에 목숨 거는 다른 온갖 고상한 장르들보다도 훨씬 편하게 소통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원래부터 그렇기에 기타연주 기교와 찰랑거리는 갈기머리 휘두르기, 위악적 무대설정으로 포장된 80년대 주류 락이, 90년대 초에 그저 동네 청년들 같이 차리고 나와서 젊은 세대의 불안과 자조를 거칠게 내지르던 너배나에게 밀려났던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저항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크고 작은 억눌림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의 감성을 솔직하게 락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저 창고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굉음을 낸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좀 더 솔직하게 우리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망,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소통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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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기획회의 070901]

!@#… 솔직히, 루미코 여사보다 최소한 한 수 아래. 아다치는 어떤 성인 감성 소재를 들고와도 결국 뼛속까지 청춘 소년의 한계를 못벗어난다… 아니 뭐 꼭 벗어나야할 필요는 없지만.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

김낙호(만화연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는 종종 일정한 후회가 따른다. 좋든 싫든,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보이니까 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그래서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상념이 드는 것은 굳이 지난 주 로또번호가 아니라도 인생의 여러 순간에 대해서 해당된다. 왜 그 때 붙잡지 않았을까 하는 연애사든, 왜 그 때 좀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추구하는 과정이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런 식으로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회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철없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지나간 것을 돌아가서 바꿀 수 있을 리도 없는데, 그런 상념에 쓸 지혜를 차라리 지금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다. 가끔 그런 상상이 현재의 삶에, 앞으로의 선택에 비슷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같은 ‘철없는’ 희망,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텐데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생사, 어차피 살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종종 드러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럴 때, 철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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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소망 사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기획회의 070815]

!@#… 출판 전문 저널에 바로 이런 작품을 소개하는 재미가 바로 이런 연재를 계속하는 이유. 핫핫핫. 그러고 보니 재능과 현실의 차이를 다룬 다른 장르의 명작이 최근 한 편 있었으니, 바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전혀 달라!!!)

재능과 소망 사이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날 일은 좀처럼 드물어서, 오히려 많은 경우 꿈을 꾸는 것은 처절하고 고생스럽다. 그리고 그 고통이 있기에 결국 그 종착역에 도달했을 때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며, 꿈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고통도 고통 나름이다. 꿈을 추구하지만 운이 나쁘거나 재능이 없거나 해서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그나마 다행이다. 이루지 못하는 고통은 꿈을 향한 하나의 길 위에 있는 장애물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꿈과 정 반대의 영역에서 재능이 넘쳐날 때다. 단지 꿈을 향한 난관을 극복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까지 선택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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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도 성장의 일부 – 『고스트 월드』[기획회의 070801]

!@#… 이번 소개하는 작품은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기괴한 제목으로 개봉하고 장렬히 침몰한 바 있는 수작 영화의 원작이기도 함(도대체 가끔, 정말 이해불가능한 영화홍보 담당자 센스에 놀라곤 한다고나… 최근에는 심슨가족 극장판의 한국 홍보컨셉에도 고개를 크게 갸우뚱). 한국어판이 나와주기만 해도 고마운 작품 중 하나.

냉소도 성장의 일부 – 『고스트 월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누구나 성장과정에 있어서 한번쯤 겪게 되는 세계관의 변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고, 대단하지 않고, 한 마디로 별 볼 일 없다는 것. 당연한 일이다. 내가 당장 그 전에는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릴 때 동경하던 그 엄청난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다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결국 그런 사람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완전히 실망할 만큼 자신이 잘나지도 않았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지만. 그 괴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냉소다. 아예 좀 더 성장하다보면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도 점차 확실하게 인식을 하고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며 다시금 세계관이 바뀌기에, 그 도발적인 냉소는 전환기의 미묘한 지점에서 생겨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을 냉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일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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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위의 상상력 – 『빙하시대』[기획회의 070715]

!@#… 고옥탄가휘발성 시사정치 이야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 가끔은 다시 유희로 가득한 만화 소개 (다음 회는 다시 시니컬대마왕세상통찰 만화인 ‘고스트월드’로 갔지만).

백지 위의 상상력 – 『빙하시대』

김낙호(만화연구가)

아주 간혹, 모르는 것이 때로는 약인 경우가 있다. 알면 알수록 중요한 정치나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순수한 상상력의 영역이 그렇다. 물론 상상력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기존의 것과 겹치지 않게 잘 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모든 (의식적인) 지식과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서 그저 떠오르는 대로, 완전히 기존 맥락과 관계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꿈꿔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행위에 있어서 특히 이것은 중요하다. 이런 리뷰를 쓰는 필자야 물론 워낙 고답적이라서 가능한 한 원래의 맥락, 현재의 맥락을 자꾸 공부하며 쌓아놓는 쪽을 선호하지만, 그 정반대 지점에 있는 완전한 무지의 감상방법을 때로는 동경하곤 한다. 대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새로 찾아나가는 과정을, ‘정답’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럴듯한 상상’을 함으로써 추구하는 것. 그 순수한 유희적 즐거움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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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고전만화해제』[기획회의 070701]

!@#… 좋은 출발. 아마 이번 소설편보다, 시편 정도에 들어가면 더욱 진가가 드러날 듯.

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곰선생의 고전만화해제』

김낙호(만화연구가)

‘고전’이라는 수식어는 작품에게 있어서 영광이자 커다란 짐이다. 영광인 것이야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짐이라니 무슨 말인가.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대표적인 우수작이기에 부여되는 타이틀인데, 거꾸로 보자면 그만큼 일관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범생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전이라는 딱지는 재미없는 옛날 작품이라는 의미를 자동적으로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운 나쁘게도 의무교육 과정 속에서 교과서로 처음 접하는 불행한 사태라도 생긴다면, 그 작품의 재미는 영영 복권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이전에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기에, 끌렸기에 그랬다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고전으로 인정받을 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우수작들은 실제로는 재미있다. 인간사의 사연이 서정이나 이야기로 담겨있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렬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를 제거하는 엄숙주의 교육문화의 폐단일 뿐, 고전 작품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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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기획회의 070615]

!@#… 하지만 거꾸로 소시민 정서 위주의 작품들만 남발되면, 짜증이 난다는 단점도 있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다양한 선택권.

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

김낙호(만화연구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한 때는 너도나도 세계정복이니 세계평화니 하다못해 남북통일이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멀리 있는 커다란 것에 대한 동경, 자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정상적인(?) 경로로 나이를 먹고 세상에 적응하며 사회인이 된 사람이라면 목표의 거리 범위가 더 짧아지고 자신의 성장 속도가 어느 선을 넘지 못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품었던 것과 지금 품고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한다면 몰라도, 만약 스스로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는 특별히 아깝거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평화에서 아파트 이웃 간의 평화로 목표가 옮겨가고, 세계정복은 직장의 철밥통 자리 정복으로 이동했을 뿐. 호연지기니 야망이니 어쩌니 교육받으며 자라난 교육환경과는 달리, 세상은 대부분 소시민적 가치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바로 그 속에 훨씬 더 많은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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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 『26년』[기획회의 070601]

!@#… 하지만 따지고보면 지금은 27년. ‘서평’이라는 것은 종이책으로 단행본 출간된 후에야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좀 불편하다. 이 정도 레벨의 물건을 정작 작년에는 한국만화 전반 추천이나, 그냥 개인 포스팅에서 밖에 다뤄주지 못했으니 원… 연재중인 웹만화를 바로 평가하고 추천할 수 있는 공식 지면도 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결국, 없던걸 새로 만들어내야겠지만.

현재진행형 – 『26년』

김낙호(만화연구가)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오래된 명언을 다시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나간 일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양분이 되어주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과거에 배운 것은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주고, 과거에 겪었던 어려움은 현재의 조건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의 정리되지 않은 사건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도록 종용하곤 한다. 만약 그것이 개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큰 차원 – 사실 국민이니 민족이니 나라니 하는 범주들을 동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 이라면, 한 사회의 현재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온통 해방 후 현대사가 워낙 인과응보를 깨끗하게 무시한 닥치고 전력질주를 일삼아온지라, 그 결과 참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현재를 살고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지다시피, 그런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물론 법적인 평가도 끝났고 책임자 처벌과 사면도 이루어졌다지만, 가해자의 반성도 자숙도 없는 이상은 역사적 교훈이 아니라 그저 ‘비극’으로 치부되고 끝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가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낼 마감시간은 점점 임박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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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기획회의 070515]

!@#… 논의 초기에 기획 참여했다가 유학차 도망쳤던 물건으로, 결국 2년만에 세상의 빛을 본 케이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꽤 충실한 품질로 나와줘서 반갑고, 당초 기획한 컨셉들의 상당 부분이 잘 녹아들어가서 또한 재미있다. 2권, 3권까지는 후딱 출간되어줘서 상승세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

아이들에게 재미를 허하라 – 『크로니클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수년간은 확연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화는 ‘비교육적’인 것의 대표격으로 종종 어른들의 걱정 속에 동원되고는 한다. 사실 그 어른들이 원하는 아동들의 교육을 저해하는 것은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 인터넷 상의 넘치고 넘치는 잡스러운 정보와 커뮤니티들 등 넘치고 넘친다. 즉 거꾸로 생각하자면 만화가 그만큼 어른들이 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 – 바로 ‘책’의 형식과 가까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락성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만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물론 과장법이 다소 끼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는 언젠가부터 부모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학습’이라는 컨셉을 차용하곤 했다. 아동들에게 오락적 재미를 주어 승부하고 싶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굳건한 벽, 부모의 교육 만능주의 – 솔직히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기보다는 그저 경쟁적 입시준비에 대한 변명이지만 – 를 돌파하기 위한 밑밥인 셈이다. 하지만 밑밥은 종종 멍에로 돌아온다. 학습성을 어떻게든 집어넣겠다고 신경 쓰느라 재미가 없어지거나, 아무리 봐도 전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학습성으로 덮어보려고 하는 얄팍한 술수 말이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것은 결국 아동층을 독자층으로 하는, 재미 그 자체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나니아 전기』, 소설로 따지자면 『해리포터』 연작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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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기획회의 070501]

!@#… 지난 호에 실렸던 ‘푸른 알약’ 리뷰. 에이즈라는 꽤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참 솔직한 생활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인상적인데, 한편으로는 의료복지체계가 잘 발달한 서유럽권의 나라이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

 

사랑의 조건 – 『푸른 알약』

김낙호(만화연구가)

질병이란 참 성가신 것이다. 특히 만성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파서 아무런 대인활동도 하지 못하고 단지 회복에만 전념하기에는 아직 인생을 살만한 정도의 힘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병이 가벼운 것은 아니니 자꾸 신경 쓰이고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주변인들의 시선까지 겹치면 한층 복잡해진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것만으로도 불안해 죽겠는데, 정작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고 호들갑을 떨어서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에 인간 아무개가 아닌, ***환자 아무개로 사회적 위치가 지워진다. 게다가 이 과정에는 병의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가보다는, 병 자체가 어떤 병인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즉 병이 바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존하는 만성적 질병 가운데 가장 사회적 정체성으로서의 ‘힘’이 강한 것은 바로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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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현대사 – 『타짜』[기획회의 070415]

!@#… 왠 뒷북 ‘타짜’냐고 한다면… 영화 덕분에 다시 한번 유명세도 타고, 신판본으로 완결까지 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제 때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사후분석이 아닌 ‘리뷰’를 할만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 듯 하여 4월 초에는 그냥 이걸로 갔다. 앞으로는 한동안 다시 신간다운 신간(?)으로 리뷰 대상을 스위치하고자 (지난호에는 푸른 알약이 들어갔고, 이번호에는 크로니클스 예정) 한다.

 

『타짜』 – 도박의 현대사

김낙호(만화연구가)

도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확률과 보상의 크기를 놓고 서로의 판단력을 겨루는 대결이다. 성공의 확률이 낮을 수록 보상의 크기는 커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얻어냈을 때 일시적으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성취감이 지극히 중독적이라는 것, 그리고 역시 크게 실패할 확률이 애초부터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사례라면 대부분, 재도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붇고 산화하기까지 한다. 정말로 돈을 따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차라리 적금을 붓고 투자 펀드에 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도박은 어디까지나, 돈 자체의 문제 이전에 돈을 매개로 한 스릴에 대한 집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하는 원래의 목적이든 생각이든 뇌리에서 증발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발생한다. 이기는 것, 복수하는 것, 혹은 그냥 ‘손맛’ 그 자체에 힘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극대화된 경쟁에 스스로 도취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자면 비단 도박이라는 극단적인(?) 놀이문화가 아니라도, 정치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가 되었든 한국사회에서 종종 나타난 공통된 패턴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왜 잘 살아보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룰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한국의 현대사다. 성찰과 룰을 생략하고 입시경쟁과 취직시험 경쟁에 몰아넣고, 낮은 확률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각종 족집게 과외와 꼼수들을 머리에 우겨넣는 것이 우리 생활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 말로 목적을 잃은 스릴 중독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 자체가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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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현시연』[기획회의 070401]

!@#… 완결 기념으로 지난달에 다루어준, ‘현시연’. 한번쯤 다루어보려고 하다가 계속 타이밍을 못잡다가, 완결을 맞이하여 결국 붙잡았음. 이것이 진짜 오타쿠니 아니니 그런 것 보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매니아/오타쿠라는 것으로 드러나는 취향과 정체성,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잡아보기에 좋은 텍스트… 라고 capcold는 생각하지만, 뭐 어떨지.

 

『현시연』- 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김낙호 (만화연구가)

대중문화의 ‘매니아’라는 것은 참 애매한 위치에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 대중문화라는 것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쉽게 소비층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미디어로 동시 대량 접근 가능하며 동시에 취향의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 하지만 매니아라는 것은 그 분야에 심취하여 확고부동 뚜렷한 취향과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는 경지를 이야기한다. 즉 근본적으로 ‘얕도록’ 설계된 문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깊어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장르가 바로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캐릭터 장난감 등이다. 이들 매체는 영화나 대중음악 같은 매체들보다도 더욱 더 대중문화의 본질에 가까운 만큼, 이 분야에 대한 매니아가 된다는 것은 더욱 큰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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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힘 – 『무크지 에로틱』[기획회의 070315]

망상의 힘 – 『무크지 에로틱』

김낙호 (만화연구가)

굳이 프로이트니 뭐니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성적 욕망을 돌리고 돌려서 창작열로 승화시키는 행위는 대중예술 전반에 너무나도 흔하다. 그 중에서도 그 ‘본심’을 비교적 꼭꼭 숨겨놓은 장르가 있는 반면, 자신의 에로스적 원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장르가 있다. 그 중 후자를 바로 ‘에로’물으로 지칭하곤 한다. 성적 자극이 넘친다, 혹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교하고 싶은 욕구를 지핀다는 뜻의 ‘섹시하다’라는 말이 더 이상 천박한 표현이 아니게 된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가장 애매한 처지에 있는 것이 이러한 에로 장르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물리적 자극을 통해서 지극히 실용적인 기능성을 추구하는 ‘포르노’와 스스로를 차별화해야 하는 당위와 함께, 장르에 대해서 요구되는 자극의 수위를 충족시킨다는 두 가지 임무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묘한 표현과 기발한 발상으로 성적 욕망의 정수를 압축해내어 향유자로 하여금 외부로부터의 성적 자극보다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성적 망상을 자극하는 ‘참여적 망상’이 에로물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 와중에 그림과 그림 사이 글과 그림 사이를 채우는 참여적 상상력이 표현양식의 기본 원리 그 자체인, 만화라는 매체가 지니는 강점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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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동화 – 『우주인』[기획회의 070301]

백수동화 – 『우주인』

김낙호(만화연구가)

백수라는 종족이 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칭하지만, 약간만 파고 들어가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주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금전적 압박이 있다는 점이야 뻔한 이야기지만, 무직자라고 할 때와 백수라고 할 때의 미묘한 어감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일을 그냥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나 신체, 지능이든 뭐든 여러 조건들이 분명히 어떤 일을 할 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거리가 없어야 한다. 일을 못하는 것과 일을 ‘안’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서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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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동경 – 『바벨2세』[기획회의 070215]

소년의 동경 – 『바벨2세』

김낙호(만화연구가)

활극형 서사문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몇 가지 원형적 요소들이 있다. 초월적으로 강력한 주인공, 그 힘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동료, 물리쳐야할 대상인 강력한 적. 이 공식을 성장하는 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입이 가능하도록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힘을 놓고 보자면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초월적인 힘’이 되어주는 것이 좋다. 실제로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근육이 붙는 (혹은 옆의 친구들이 그렇게 변모해나가는 것을 목격하는) 시기, 엇비슷하던 또래 동료들이 서로 다양한 개성으로 분화해나가는 시절, 본격적인 사회적 경쟁에 눈을 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엇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엇비슷한 사람들 중에, 혹시나 내가 급격한 성장, 거의 변신에 가까운 성장으로 초월적인 힘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동경을 충족시켜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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